제국의 선택 - 지배인가 리더십인가
Z.브레진스키 지음, 김명섭 역주 / 황금가지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당시 지미 카터 행정부의 국가안보좌관을 지낸 인물입니다. 국제문제에 있어 미국 내의 대표적인 현실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그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서유럽간의 비정부기구로 알려져 있는 삼극위원회 Trilateral Commission 의 주요 참여자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브레진스키의 대해 알려져 있는 그의 정치적 견해는 진보적, 국제적 및 정치적 자유주의의 신봉자이기도 했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과거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주요 요직을 아우른 네오콘들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미국의 국제 관계에 있어 큰 그림을 그리는데 능숙한 인물이었으며, 특히 중동과 이스라엘간의 정치적 갈등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그가 지난날의 발언들로 인해 다소 친이스라엘적인 인물로도 해석되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미국에 의한 중동 개입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비판적 의견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약간 놀랍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책이 출판된 해를 감안한다면 현재의 국제 환경과 상당히 맞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미국의 패권과 그러한 과정에 미국이 중요하게 판단해야 될 가치들을 꼬집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크게 일독의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그는 지난 2017년 5월 26일에 버지니아에서 89세의 나이로 타계합니다. 이 책은 원제, "The Choice : Domination of Leadership"으로 지난 200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의 번역 출판도 2004년에 이뤄졌습니다. 현재 이 글은 절판된 상황입니다.

강고한 반공주의자였던 브레진스키에게 냉전 이후의 전세계 국제 환경의 변화라는 주제는 아마도 그에게 어떤 중요한 학문적 단초를 제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패권이 과거의 소련이라는 거대한 적대국을 대상으로 서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자유 진영의 생존과 번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 시기 이후부터는 후쿠시마가 선언한대로 미국에게는 완전히 다른 환경의 조건과 더불어 어쩌면 미국의 패권이 온전히 미치는 세상이 될 가능성도 거의 배제할 수는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러한 예측은 2001년 9. 11과 그로 인한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전쟁으로 말미암아 상당히 퇴색되었습니다. 브레진스키가 강조하고 있듯이, 세계를 선과 악으로만 보는 조지 W. 부시의 가장 큰 실책은 실제로 세계의 본질은 '온통 회색지대'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가 언급한 이 회색지대라는 수식이 뭔가 국제적 현실주의자들에게 잘 어울리는 인식적 배경으로도 읽혀졌는데요. 미국 내의 다수의 리버럴적인 이상주의자들에게는 이 회색지대가 결코 잘 어울리지는 않을 겁니다. 따라서 브레진스키의 이 글은 앞선 중요한 관점으로 당시(2000년대 이후) 미국 패권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중요한 방향타의 역할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요.

아마도 중동과 러시아 및 중국에 이르러 별로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는 미국의 전세계에 대한 리더십의 조건은 아무래도 다소 논란을 함의하고 있는 글 3장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는데요. "미국의 리더십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전지구적이고 포괄적인 이익을 반영해야 하고 효율적이어야 하며 반드시 비슷한 대중적 신념과 사회적 가치를 지닌 동맹국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인용된 문장의 후자에 대한 부분은 아마도 중동 전체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에서 서유럽과 미국이 보이는 극명한 정치적 인식 차이일 겁니다. 서유럽은 팔레스타인의 문제가 이스라엘의 강고한 군사적 무단 점검이 원인이라고 보고 있지만 미국은 그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에게 이 이스라엘의 존재가 이 지역의 전제적인 중동 정권들을 제어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억측일 수도 있지만 "1974년부터 이스라엘에 800억 달러의 원조를 지원"한 것은 여느 미국의 동맹국과는 사뭇 다른 대접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약간 불행하게도 브레진스키는 미국에게 있어 이스라엘의 전반적인 정치경제적 효용성을 논하면서 미국에 있는 거대한 유대인 조직의 존재와 그들에 의한 미국 정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보고 있었는데요. 이건 아주 단적으로 말하면 유대인 단체인 AIPAC의 광범위한 현금 로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대해 스티븐 M. 월트와 존 미어샤이머는 공저를 통해 이를 비판한 바가 있었는데요. 과거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에 의해 아무런 이유 없이 도륙된 600만의 유대인들의 존재는 매우 불행한 역사이나, 현재 이스라엘 주변의 중동 국가들에게 있어 영국과 미국에 의해 어느날 갑자기 예루살렘 인근에 박힌 이 국가의 존재는 지역 안보 불안의 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가자 지구의 불법 점거라든지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이스라엘 당국의 고압적 태도는 이러한 맥락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물론 하마스와 같은 자들을 잊고 잇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북아일랜드에서 IRA에 의해 자행된 참혹한 테러에 맞대응을 하던 영국이 이후 관점의 전환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이스라엘도 종래의 경직된 대처에서 지역 평화를 위해 정치적으로 나서야 하겠으나 이스라엘의 국내 정치가 복잡한 모양새도 해결의 접근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종래에 조지프 나이가 인정했듯이, 중동에서의 미국의 외교적 접근법이 주로 사우디 정권과 같은 부패한 전제적 정부를 지지하며, 지역 내에 현상 유지를 강조한 쪽으로 나선 것은 대다수의 착취 상태에 놓여 있는 해당 국가의 국민들에게 도저히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서유럽과 미국 심지어 동아시아의 에너지 수입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동 산유국들의 정치적인 미국 의존성이 전제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안정적인 원유 생산은 자유 진영의 경제적 번영에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사항으로, 어떻게 보면 미국 국무부가 이들 지역의 이슬람교의 종파적 문제와 정교일치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원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들 부분이 2003년의 패착에 주요한 원인이 되었고 지금도 중동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지속적인 현상유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에 대한 해당 지역 국민들의 반감은 극을 달릴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맥락에서 테러리즘의 발상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결론에 가까운 관점에서 브레진스키가 색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었는데요. 그것은 실질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이식은 그야말로 무신론적인 사회를 의미한다"는 분석이었습니다.이 지역은 터키를 제외한다면 거의 대부분이 이슬람 율법이 뿌리 깊게 작용하는 사회입니다. 브레진스키의 말마따나 율법의 지배에서 점차 벗어나려고 하는 이란을 제외한다면 강고한 정교일치의 사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지역에서 유일하게 핵무장을 하고 있는 파키스탄이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 발화될 수도 있다는 저자의 경고는 섬뜩하다고 볼 수 있었는데요. 다만, 내부의 이슬람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이 자신들의 제1 우호국이라고 할 수 있는 파키스탄의 교조주의적 근본주의화에 손 놓고 구경만 할 가능성은 없을 겁니다. 아마도 중국 당국은 북한의 핵과 마찬가지로 파키스탄의 핵무기도 언제든 처리할 수 있는 문제로 여길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크게 간과하고 있듯이, 핵전쟁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은 가까운 미래의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재래식 교전이 될 것입니다. 브레진스키도 이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유심히 보게 될 수밖에 없었던 3장, '동맹 관리의 딜레마'는 분명 비판할 부분이 있었는데요. 세계 제1의 패권국이 국력과 그 영향력에서 비대칭적인 관계로 유지되고 있는 '비대칭 동맹'에 있어 미국의 우선주의와 이들 동맹들간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에 대해 미국 내 극우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이러한 경향이 더욱 고조되었죠. 물론 안 좋은쪽으로 말입니다. 다만 제가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미국이 위협당한다면 해외의 민주주의는 더 취약해질 것이다"라는 브레진스키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점을 먼저 밝히고 싶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미국의 여러 동맹들의 정치적 상황과 지역별로 이들과 미국 간의 관계 문제에 있어 시사점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특히, 중국의 대두에 맞서 일본의 재무장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점이 전반적인 논증에서 읽힙니다. 중국은 일본의 재무장 자체를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럼에도 일본이 800 톤이나 되는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아무래도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중국의 봉쇄와 그 일면에 부정적으로 잔존하는 미국의 '애매한 핵우산 정책'에 실망하게 된 일본 정부가 언제든지 핵무장에 나설 수 있는 '현실적 증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통일된 한국이 핵무기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과 더불어 일본의 핵무장 역시 관련 전문가들과 기술이 충분히 갖춰져 있기 때문에 5~6개월 내에 일본이 충분하게 핵무장이 가능하다는 것은 해당 지역의 미국의 정책 변화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지 가늠하게 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이 곳의 군을 즉시 철수하게 되면 19세기의 유럽 상황과 비슷해질 것이라고 보는 브레진스키의 예측은 그만큼 설득력이 있었는데요. 다만, 우리와 관련된 정치적 분석에 있어, 기존의 저팬 핸들러들과 아주 동일하게 판에 박힌 인식은 절로 눈살을 찌푸려지기도 했는데요. 한반도에서 민족주의가 비정상적으로 고양되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보고 있었는데요. 한국의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친미적이면서 그 이면에는 반일이 기반되어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현대화 된 민주주의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 민족주의를 취급하는 것으로도 읽히는데요. 제가 이 지점에서 반일이 터무니 없다고 언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반일이 어떻게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되었는지 저자가 일말의 고찰을 해보긴 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앞선 중일관계에 있어 난징학살과 같은 극악한 전쟁 범죄를 일으켜 놓고도 중국이 일방적으로 일본에게 사과만 요구한다는 식으로 읽히기도 해서 절로 한숨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역으로 만약 2차 대전 당시에 멕시코가 미국을 강제 점유해, 몇 십 년 간 인력과 자원을 빨아내면서 심지어 역사와 문화조차도 말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멕시코 당국이 움직였다면 지금의 미국인들이 과연 멕시코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실로 궁금합니다.  

끝으로 4장의 '세계화의 딜레마'에서 논증되는 브레진스키의 의견은 매우 명확해 보입니다. "세계화가 힘 있고 특권 있는 자들에게 유리하다는 점"은 반대의 근거를 위해 각계 각층에서 항변을 하겠지만 이 점은 달리 이견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전세계가 당면한 불평등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고착화의 문제를 넘어 수십 년간 정치에 악영향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5장에서 논의되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의 위기"로 봉착할 도 있는데요. 브레진스키는 4장에서 반세계화의 물결이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식으로 방어 논리를 구축합니다. 분명 이 지점에서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것은 이 세계화의 이익이 서구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자유 진영의 동맹국들에게 집중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지금의 중국의 번영은 신자유주의가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끔 중국을 키워낸 결과로, 이 중국의 사례는 매우 드문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세계의 반세계화 물결과 반미주의를 도식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종래의 여러 시각과 다름 없는 것이어서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기도 했는데요. 앞선 중동의 사례처럼 브레진스키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미국에 있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포함해 분명히 전세계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4장 말미에 논의가 되는 '민주주의의 확대와 도덕적 근간의 외침'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여기에는 '자유 무역'과 '자본의 이동성'을 언급하며, 이것들이 그저 지도적 원리로 남겠지만 "개별적인 정치, 경제, 사회, 제도적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나라에 그 원리들을 무차별적으로 강제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꽤 감명 깊었습니다. 그리고 세계화가 "인간 조건의 향상을 위한 좋은 기회로 다루어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은 이러한 논증의 전개가 실로 진정성을 답보하고 있다고 여겨졌는데요. 이러한 브레진스키의 후반부 논의들은 특히 미국 내의 극단주의자들이 귀를 열고 경청해야 되는 부분이라 여겨졌습니다. 또한, 세계가 그만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만큼 이민과 같은 변화에 있어 각자가 민주주의에서 강조하는 다원주의적 원칙을 유지해야 하는 부분과 세계화에 있어 서유럽과 미국의 경험을 그렇지 못한 국가들에게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보는 관점도 적극 동의할 만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매혹적인 성공이 세계화를 통해 확장되면 미국의 힘이 지닌 효율성과 정당성이 강화될 것이다"는 문법 또한 꽤 감동이었습니다. 이런 논저에 일개 독서인이 감동 운운을 언급해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글의 마지막 부분인 5장과 결론은 미국과 세계가 당면한 문제들에 있어 꽤 훌륭한 접근과 해결책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래서 기존의 조지프 나이의 방안들보다 좀 더 발전된 논의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크게 의미는 없겠지만, 본문 45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브레진스키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서유럽의 나토와 일본과의 동맹을 통해 일차적으로 자국의 안보를 확보하는 당위로 이차적으로는 소련의 봉쇄를 위한 정치외교적 해법으로 동시에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었는데요. 이 두 지역에서의 동맹 관계의 시작은 현재의 민주주의 진영의 번영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안타깝게도 냉전 이후, 나토의 확장에 있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용인할 수밖에 없을거라는 브레진스키의 예측은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주장을 예시로 들어, 그 당시의 나토 확장은 낙후된 중부 유럽 국가들을 살리고 그와 동시에 시대의 소명으로까지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은 불행한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또래 강국의 견제를 받지 않는 정치적 힘을 소유한다는 이유로 미국은 부러움, 분노, 때로는 강렬한 증오의 초점이 된다

국무부를 통해 다른 국가들의 행동을 인준하고자 하는 미국 의회의 경향을 보면 자국의 주권에는 방어적이고 민감하면서도 다른 국가의 주권은 점차적으로 무시해 버리는 오늘날 미국인들의 태도를 알 수 있다

신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 16장에 묘사된 아마겟돈은 핵과 세균에 의한 전 지구적 자멸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안보를 위한 국가의 정당한 노력이 망상증인지 신중함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만약 미국 의회가 유럽, 극동, 페르시아 만이라는 3대 주둔 지역에서 미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결정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러시아와 안정적인 상호 핵 억지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 정책 결정자들의 주요한 안보 책임으로 남을 것이다

소위 ‘불량 국가‘들도 자신을 드러낸 채 미국을 칠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으며 미사일 발사의 경우가 분명히 그렇다. 미사일 공격은 거의 예외 없이 미국의 무서운 보복을 초래할 것이며, 이러한 보복으로 미국에 대한 어떠한 2차 공격도 불가능할 것이다

의회가 북대서양 조약을 승인함으로써 미국 국가 앙ㄴ보의 의미와 범위는 근본적으로 재정의되었다

특히 국가 간의 문제에서 증오와 편견은 동정심과 친화성보다 훨씬 더 강한 감정들이다

세계를 흑백으로 보는 시각은 대부분 회색 지대로 이루어진 전 지구적 딜레마를 무시하는 것이다

북한의 위험한 핵 추구와 이를 확산시키려는 시도는 동북아시아의 지역적 맥락 속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이익을 개별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고려해야만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만약 미국이 국내에서 소중히 여기는 가치인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고 싶다면 국외에서도 생명과 자유의 우월함이 지닌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

현대 서구 민주주의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볼 때 문제가 있는 개념이다. 대다수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란 본질적으로 무신론적 사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연방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이 미국에 계속적으로 의존하는 안보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그리고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임재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영속화하는 것을 방해하고자 하는 모스크바의 노력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대신 이란의 엘리트들은 서유럽이 이란에게 지역적으로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며 조국이 성공적인 근대화와 민주화의 경로를 밟을 수 있다고 인식한다

많은 이들이 미국의 헤게모니를 받아들인 이유는 미국을 인권의 증진에 헌신해 온 진정한 민주 국가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전략적 사고 방식을 지닌 유럽인들은(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려는 미국의 독단적인 결정을 두고 수면 위로 떠오른 논쟁에도 불구하고)미국의 일방주의가 미국의 독특한 안보 역할의 한 부분이며, 경제적, 법적, 도덕적, 안보적 동기를 쉽게 구획지을 수 없는 세계에서 ‘할 수 있다(can-do)‘는 미국의 자세를 보존하려면 썩 내키지 않더라도 인내하는 것이 나머지 세계가 지불해야 할 대가임을 깊이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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