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그 너머 - 우리의 정치 미래를 상상하다
지지 파파차리시 지음, 이상원 옮김 / 뜰book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지 파파차리시는 그리스 테살로니카 출신으로 미국 메사추세츠 사우스 해들리에 위치한 사립 인문대학인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을 졸업하고 오하이오 주에 있는 켄트 주립대학에서 석사를 마지막으로 공립 연구 대학인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 뉴미디어와 정치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박사 학위를 수여 받습니다. 그녀는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의 디지털 미디어와 그에 따른 정치 변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흔히 기술 발전에 따른 민주주의 변화 가능성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녀 역시 마누엘 카스텔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시대에서의 시민 연대와 반대로 디지털 미디어에 의해 촉발된 사회 운동에 대해 명확한 한계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도 한데요. 아마도 이는 시민들의 정치 변화에 대한 요구가 시민들 스스로의 정서적 관계와 공감대가 일정 부분 결여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일전에 한나 아렌트가 "틈새 연대"의 중요성을 중요시했던 점과 일맥상통한다 여겨집니다. 바로 여기의 이 글도 그녀의 앞선 연구와 맞닿아 있는 논저라 생각됩니다. 이 책은 원제, "After Democracy : Imagining Our Poltitical Future"로 지난 2021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22년 3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아마도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일반적인 학자라면 특히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할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이 글은 일반적인 학문적 논저와는 약간 다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체류했던 적지 않은 국가의 시민들과 인터뷰의 형식으로 오늘날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여러 의견들을 취합하고 정리한 일종의 '르포르타주'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분석은 이미 시민들도 지금의 민주주의적 한계에 대해 매우 공감하고 있었으며, 특히 각국의 엘리트들이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통제하려는 숨겨진 시도나 그러한 의혹들에 대해서도 각국의 시민들이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많은 시민들은 선출된 권력과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수단을 원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명확한 목적에 있어 이 글의 4장, "권력은 지닌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쉽게 그 의미가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생각됩니다.

이곳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 스스로의 고유한 해석과 여러 아이디어들이 잘 소개되어 있기도 한데요. 저는 그중에 저자가 보인 민주주의의 가장 명료한 해석으로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모두 평등하게 자유롭다는 것을 보증한다"는 문장이 제겐 크게 와닿았습니다. 그렇죠. 보유한 돈이나 남보다 월등한 권력으로 사람의 자유가 차등이 되어선 안될 겁니다. 일부 계층에서 주구장창 외치는 자유와 자유주의가 과연 저런 의미인지는 지금 현실에선 극히 회의적이라고 봅니다. 다시 돌아와, 앞선 장(章)들에서는 비슷한 이해로 자본주의하에 민주주의가 스스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우려스러운 점이기도 했습니다만 그것보다 정치인들을 포함해 무려 시민들까지 평등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다소 소극적인 관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우리의 민주주의가 가면 갈수록 약화된 지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신자유주의의 이행에서 특히 평등은 경제 엘리트들과 기득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거부되어 왔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평등을 백안시하고 부정적인 이데올로기의 덧칠을 수십 년 간 지속적으로 해온 결과, 시민 모두가 평등을 그저 사회주의의 산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엄밀히 따져 보면 민주주의에서 자유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평등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 글 2장에서, "대부분의 민주주의는 순수한 민주주의라기보다는 타협적인 형태"라는 말이 이토록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인데요. 이 부분의 논증은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로도 읽히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본주의에 의한 정치적 균질화'가 기득권 엘리트들에 의해 진행되면서 사실상 민주주의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된 연유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저들에 의해 "일반적인 정치는 시장에 해롭다", "인간은 마땅히 자신의 이기심을 우선할 권리가 있다" 라든지 이를 통한 시장 원리의 우월성을 공공성의 정치보다도 더 우선하기에 이른 것이죠. 마찬가지로 저자 역시 오늘날의 '공공성의 쇠퇴'가 민주주의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된 현대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생각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각국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모국의 정치 상황과는 관계없이 모두가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저자와 인터뷰에 응한 중국인조차도 말입니다. 앞선 부분과 관계있는 비판이기도 합니다만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들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과 더불어 글 3장에서도, "우리의 선택 능력은 점점 더 제한받고 있다"고 여실히 비판하고 있는데요. 사실 시민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좀 더 충실하고 윤택하게 영위하여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아레테 arete, 즉 행복하고 덕 있는 삶의 이상적 상태"에 이르는 것이 개인이라면 누구가 원하는 마땅한 삶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흡사 존 듀이의 여러 주장들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 시대의 일부 계층에게만 주어진 제한적인 민주주의가 계몽주의와 공화주의적 관념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현재에는 각 시민들의 "발언권과 평등"이 반민주주의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기득권과 정치경제 엘리트들에 의해, 소위 조정되고 적절하게 제한되어 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만 기득권들이 입으로 주장하는 민주주의와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그런 측면에서 아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어쩌면 저 정치 엘리트들이 입으로만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면에는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작금의 사회 체계가 급격한 변화를 추인하지 않아야만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왜곡된 보수주의가 시민들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적절히 제동을 가하는 것이 이런 연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와 비슷한 연유로 현재 모국의 정치적 상황을 강하게 일침한 한 미국인은 이미 국내 정치가 수많은 로비스트들과 기업에 의해 반세기 이상 유린되어 있고 미국의 민주주의가 여러 국가들의 민주주의에 비교당하는 상황이라고 한탄합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의 이행, 그리고 그로 인한 무분별한 시장 자유에 대한 함의가 어느 정도는 민주주의와 건전하게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생각됩니다. 심지어 2008년의 월스트리트에 대한 막대한 공적 자금의 투하는 정말 일반적인 민주주의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대마불사 too big to fail 의 논리, 어떻게 이런 것이 민주주의적 가치와 맞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민주주의의 정상화를 위한 5장 말미의 10가지 제안은 시민 모두가 어느 정도 새겨들을 만하다 생각되는데요. 물론 이러한 결론은 저자 나름의 정치적 숙고의 결과물일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여기 인터뷰들의 훌륭한 의견들로 탄생한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정치적 실효성과 언론의 정상화 그리고 시민들의 지속적 정치적 관심 등은 민주주의에서 선언적인 주장들로 끝나서는 안되는 문제이기도 한데요. 존 듀이가 강조한대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시민이 마땅히 현실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부분인데, 오랜 시간 자본주의는 시민들의 이러한 정치적 역할에 매우 부정적인 시각들을 주입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일전에 질베르 리스트가 경제와 경제학에 대해 비판한 부분이 이러한 맥락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여기에 슘페터의 논증을 더한다면, 자본주의 시장에서 독점적 이익을 더욱 갈구하는 기업들의 욕망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좋지 않은 결과는 민주주의 체제에 해가 될 수 있다 보는 것이 일견 타당합니다. 즉, 현재 우리의 정치 내지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결과물들이 전세계적으로 '무늬만 흉내내는 민주주의'의 일종의 단면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과잉된 민주주의'를 지금도 주장하는 자들이 적지 않은 현실인데, 실상은 이들의 주장과 매우 다르다는 것이겠죠. 더욱이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인터넷 환경에서의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포퓰리스트들과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더욱 왜곡된 것은 여기에 이익만 얻으려는 인터넷 기업의 행태와 맞물려, 많은 시민들에게 전혀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는 점도 현재의 민주주의가 어떤 위기에 놓여 있는지 가늠하게 합니다.

-여기에 많이 인용되는 여러 논저들과 사상가들 중에 특히, 한나 아렌트와 샹탈 무페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샹탈 무페의 '민주주의의 역설'은 하루 빨리 재간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 역시 그전부터 너무나 애타게 재간행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시민들의 이러한 희망을 악용한다. 포퓰리즘은 공허한 약속을 한다. 그리하여 희망과 순환이 이어진다

예를 들어 증오발언을 일으키는 것은 사람이지 인터넷이 아니다. 그럼에도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은 증오 행동을 눈에 더 잘 띄게 하고 그에 따라 더 쉽게 전파되도록 만든다

민주주의의 현재 상태가 많은 부분에서 내 연구의 동력이 되었다. 정치 이론가 샹탈 무페가 언급했듯이, 민주주의의 역설은 대중 사회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기가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선거는 해킹당하고, 포퓰리즘은 디지털로 확산되고, 증오발언이 온라인에 횡행하고, 온란인에서 활성화 된 운동이 오프라인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인터넷은 우리를 하나로 묶지만 동시에 서로 멀리 떨어뜨린다고 말이다

장 자크 루소는 무관심한 시민이 민주주의의 잠재력을 위협한다고 불평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평등과 자유를 한꺼번에 떠올리곤 하지만 대화를 하다보면 이 두 개념이 서로를 제약할 때가 많다는 점을 깨닫는다

게다가 풍성한 자유는 더 풍성한 다원화를 이끌지만, 반드시 더 좋은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지만, 이러한 정의는 우리가 인정하거나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하게 민주주의를 경제와 연결 짓는다

시민들은 많은 일들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질곡 속에서 언제나 삶을 영위해 왔다

우리는 자기 운명의 주인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 능력은 점점 더 제한받고 있다

일반 대중의 길은 신나면서도 위험하다. 그것이 많은 이들의 소망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신나지만, 다수의 의지가 쉽게 이용당할 수 있고 때때로 우리가 원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망성 있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헤게모니는 민주주의 정권에서든 비민주주의 정권에서든 엘리트가 타인에 대해 권력을 주장하고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이데올로기적 우월성의 한 형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