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의 길 - 엇갈린 남·북·미의 선택
라종일.김동수.이영종 지음 / 파람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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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천대학교의 석좌교수를 맡고 있는 저자는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대학 석사를 마치고, 이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정치학 박사 과정을 졸업했습니다. 그는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김대중 대통형 후보 선거캠프에 참여했고, 1998년 3월에 국가안전기획부 1차장이 되었습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주영 대한민국 대사관의 대사를 역임합니다. 여기 이 책은 라종일 교수와 함꼐 김동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과 이영종 전 중앙일보 외교안보팀장과 함꼐 쓴 글이기도 한데요. 주된 배경은 평창 올림픽에서의 남북 화해 노력, 이후 싱가포르 북미 회담 및 트럼프 김정은 간의 하노이 정상 회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글은 거의 최근이라 볼 수 있는 2022년 2월 출판되었습니다.

흔히들 근래 미중 관계에 있어 양자간의 '전략적 불신'을 극복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화해 협력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요. 물론 현재 돌아가는 양상으로 봤을 때, 과연 워싱턴이 베이징과의 극적인 화해를 바라고 있는지는 극히 회의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찬가지로 남북관계에 있어 전략적 불신이야 말로 우리의 어려운 현실을 매우 극명하게 드러내는 문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거의 유례가 없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남북 화해와 북미 정상화에 사활을 걸고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과 싱가포르 회담 및 하노이 회담을 운전자와 중개인의 입장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요. 바로 이 적은 분량의 글은 당시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의 바쁘게 돌아갔던 외교적 행로를 제법 차분한 어조로 그려내면서, 해당 당사자들의 막전막후의 여러 상황들을 거의 가감없이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일반 언론의 추정으로만 간접적으로 접했던 당시의 실상을 거의 진실에 가깝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우리 정부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다소 파격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웠던 인물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한반도 비핵화를 비롯한 시급한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했던 것이 이 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이 부분에 있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각별한 기대를 가졌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존 미어샤이머의 입을 통해 트럼프에 대한 저간의 평가를 인용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트럼프가 비정상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 외교에는 맞지 않는다"는 언급이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백악관이 자신들의 국무부 관료 등과 백악관 내부의 참모들 의견을 수렴하여 미국의 외교 노선을 적절하게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일텐데요. 과거 클린턴 행정부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도 바로 이러한 논의 과정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공개된 볼턴의 발언이나 폼페이오의 여러 심각한 의견들을 취합해 봤을 때, 트럼프는 정치외교적인 문제에 있어 다소 정상적인 범주 안에 속하는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특히나 트럼프가 혹여 국익에 반하는 예상치 못한 폭주를 감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김정은과의 싱가포르 회담에서도 볼턴과 폼페이오가 밀착 마크를 했다는 일화는 뭔가 희극 같지만 그 의미하는 바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종래의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백두 혈통의 존재는 여러 언론과 북한 정권의 세습을 다룬 논저들을 통해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항입니다. 이 백두 혈통에 대한 기본적인 저의 인상을 크게 바꾼 것은 이 글에서 보여지는 이들 남매들에 의해, 자신들이 과거 유럽의 구귀족보다 더한 혈통의 자손들이라는 것을 이미 자기들 스스로가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내부 단속과 체제 유지를 위해 백두 혈통을 일종의 정치적 선전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 스스로가 '신의 자손'과 같은 맥락의 북한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유지 및 강화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는데요. 이는 평창 올림픽에서의 북한 당국자들의 언행이나 행동을 통해, 체제 자체보다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에 대한 거의 신격화와 다름없는 숭배가 우리의 예측을 넘어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신정 국가와도 같은 북한과 가열차게 타협과 협의를 진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충분히 짐작할 만한데요. 민족의 대의라는 측면에서 북한과의 협의도 중요하지만 이들에 의해 자행된 한국 국민의 불법적인 납북에 따른 이들 납북자들의 송환 문제와 아직도 북한 내에서 핍박 받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국군 포로들에 대한 생환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보인다는 저자의 비판은 정치권이 새겨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이 기울인 노력과 매우 상반되는 면이라 비판할 수 있겠는데요. 이 뿐만 아니라 '종전 선언'에 다소 매몰되어, 1950년 한국전쟁을 일으킨 스탈린과 김일성의 군사적 모험주의에 대한 명백한 역사적 과오에 대한 반성 요구 없이 그저 종전 선언에 급급한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우리의 진보세력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이와 같은 문제 등한시하고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로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점을 들어 당시 논란의 인물이었던 볼턴이 문재인 대통령을 현실을 보지 못하고 형식에 급급하다고 평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나르시시즘의 화신이라고 평가 받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당시 우리 정부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큰 기대와 모험을 걸었던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후에 정의용 실장이 백악관으로 가져온 김정은 위원장의 제안에 즉흥적으로 반응해, 모두의 예측을 벗어나는 백악관에서 회담 수락 기자 회견을 트럼프가 허락한 것은 이를 잘 증명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여기에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맥마스터 보좌관을 차치하더라도 그저 우리측 특사인 정의용 실장의 '홀로 회견'은 워싱턴과 서울의 보이지 않는 선을 여실히 보여줬던 일화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의 청와대는 이 예측불가의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보이게 되었고, 이러한 북미 간의 조율에 막대한 외교적을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 간의 동상이몽은 결국 손쉽게 드러났고, 트럼프 스스로가 '남들보다 먼저 배신을 감행하는' 캐릭터임과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힘들게 구축한 핵무기를 포기할 의도는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마찬가지로 타당해 보입니다. 김정은은 그저 미국과 적절한 협상을 통해, 핵보유국으로 인정 받고 미국 주도의 유엔 제재를 풀어내어 손쉽게 북한 경제의 정상화를 이룩하는 것이 자신의 시나리오였음이 분명해 보이는데요. 물론 많은 대내외의 전문가들에 의해 이 점은 충분히 예측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저자의 발언에 의하면 북한 당국이 미국 주도의 핵 시설에 대한 완전 검증 가능한 사찰을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려운 부분이었으며, 기본적으로 이러한 사찰을 북한이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자는 거듭 밝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에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미국과 북한 양측을 조율하는데 엄청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고 봐야 하며, 이는 문 대통령 스스로의 신념을 떠나 매우 지난한 과정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더욱이 개성 공단의 남북협력사무소가 회담 실패를 경험한 김정은에 의해 무참히 파괴될 정도로 북한의 터무니 없는 책망과 비난의 화살을 이 정부에게 쏟아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국내 일부 언론들의 냉소와 많은 국민들의 지탄을 전부 받기까지 하였지요.

외교가 아무리 기본적으로 불활실성을 내재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 글에서 드러난 2018년의 험한 난맥상은 오로지 우리 정부만을 비난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합니다. 이에 오래도록 외교가에서 금언처럼 돌아다니고 있는 문구는 "상대방의 정확한 의도를 감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과연 미국과 완전무결한 핵포기를 합의할 수 있었는지는 매우 불확실한 측면이 있습니다. 국내에 많은 전문가들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사태에 있어 김정은이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고들 하고 있지만, 아마도 김정은이 원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UN 안보리 이사국과 같은 핵보유 인정이 아니더라도 최근에 미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에 내렸던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 묵인을 바라고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국내 정치에 있어 핵무기는 김정은 자신의 통치 명분이자, 내부의 강경파를 달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고 아마도 미국의 체제 위협에 대한 대처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일수도 있겠습니다. 설사 몇 년간에 협상으로 미국과 북한이 핵합의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김정은이 그에 대한 반대 급부로 한미 동맹 파기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철폐 및 주한 미군 철수 카드를 꺼낼텐데 위의 사항은 현실적으로 한국이나 미국 양국에 있어 들어줄 수 없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북한의 핵무기 포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은 나름 ‘자신들이 미제의 침략을 막아주고 있으니 남한이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등 지원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개발했다

불충분한 대로 그사이 알려진 몇 가지 자료를 근거로 살펴보면 역시 이 회담에 가장 열성적인 것은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었고, 그 측근들 사이에서는 회담의 의미에 관하여 회의적인 의견과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일정한 기간이 지난 다음 핵무기 폐기의 결정적인 단계에 이르러서는 합의를 중단하거나 번복하는 것으로 핵 보유와 함께 경제적인 실리를 기하는 것이 기본적인 북한의 입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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