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위기 - 북한은 제2의 쿠바가 될 것인가?
안병진 지음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을 쓴 안병진 교수는 1967년 대구 출생으로 서강대 사회학과 서울대 정치학과를 거쳐, 한나 아렌트와 에릭 홉스봄이 몸 담았던 미국 뉴욕의 사회학 명문 뉴스쿨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그는 뉴욕 시립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다 2003년 귀국해 현재 경희사이버대학의 미국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안병진 교수는 최근까지 TV토론 방송을 비롯 시민들을 위한 정치 프로에 간간히 출연해,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바가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안 교수가 소위 미국내에서 리버럴이라고 불리우는 좀 더 상식적인 중도와 유사한 지형의 지식인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최근에 안교수의 발언을 담은 기사들을 봐도 민주당쪽에도 쓴소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여느 학자들과는 다른 스탠스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안 교수의 활동에 일정 부분 지지하는 편이기도 한데요. 특히 그동안 그가 자신의 여러 논저를 통해, 미국과 한반도를 둘러싼 틀에박힌 정치외교적 해석에 반대하면서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점은 꽤 신선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동일한 제목으로 지난 2018년 12월에 출간되었습니다.

미국 외교학계에 극명한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그레이엄 앨리슨을 다소 '순진한 생각의 소유자'로 여기게 만드는 듯한 제목은 단순히 저자가 학계 주류를 관통하는 학자를 폄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런면에서 이 글 2장에서 인용된 딘 러스크의 어느 대학 강연 자리에서 "여러분은 저처럼 유화책과 고립주의의 유혹에 빠지면 안 됩니다"라고 호소하며 눈물까지 보였다는 일화는 실로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2장 전반에서 논증되는 "전세계를 핵전쟁의 공포로 몰고간 1962년의 13일의 위기"에 피델 카스트로가 뜬금없이 흐루쇼프에게 "최후의 전쟁이 남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삶의 불확실성" 자체를 몸소 깨닫게 만듭니다. 이처럼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감행해도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하는 듯 보이는 카스트로라는 정치인의 존재감은 핵전쟁의 위협이 과연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끼게 합니다. 이와 관련해, 안 교수는 여느 정치학자와는 다른 관점으로 글 서두에서 의미심장한 '베두인의 전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칠면조를 훔쳐간 자들이 자신의 딸까지 강간하고야 말았다"는 베두인 족의 교훈은 1962년의 카리브해 쿠바섬에서 초래된 어쩌면 세계를 파멸로 이끌고 갈 수 있었던 "핵전쟁의 문턱"을 곱씹게 만듭니다. 저자의 고유한 해석대로 이 베두인 전설의 딜레마가 '쿠바 미사일 위기'를 통해, 당시 미국과 소련이 서로를 신뢰할 수 없던 문제와 매우 닮아 있는데요. 역시나 2장 말미에 등장하는 "국가간의 위기는 불완전한 정보에 기반한 상호 오인의 무덤이다"와 일맥상통한다는 부분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중차대한 불확실성을 단순히 그레이엄 앨리슨과 같은 현실주의에 경도된 학자들이 무슨 과학 법칙과도 같은 단순한 논법으로 해석해 마지 않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볼 수 있겠는데요. 이것은 마치 막 서막이 펼쳐지려고 하는 미중간의 패권 투쟁에도 한치의 어긋남 없이 오버랩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2차 대전의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로 망망대해의 외로운 섬과도 유사한 처지가 된'서베를린'은 미국과 서유럽에 있어 전세계에 자유 체제를 담보하는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세우려는 의도와 그 목적 자체를 광범위하게 이해하기 위한 원인들 가운데 하나로서, 충분히 근거를 세울 수 있기도 한데요. 당시 케네디 정부에게 있어서 베를린 문제는 매우 중요한 외교적 문제였고, 동시에 소련의 봉쇄 이후에도 미국과 서유럽이 서베를린을 정치적으로 지켜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봐도 이 도시의 존재 가치가 얼마나 중대했는지 미뤄 짐작하게 합니다. 이처럼 쿠바섬의 13일 사태에 대한 많은 외교 문서가 각국에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만 흐루쇼프가 그 와중에도 자신들의 행동이 베를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하는데요. 동일하게 3장에서 보여지는 당시 워싱턴은 이러한 소련의 복합적인 도발에 일견 분노했던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외부에 다소 온건해 보이기까지 한 케네디 대통령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는 후일담은 막대한 핵무기를 보유한 양국에 의해, 우발적 핵전쟁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됩니다. 물론 혹자들은 터키의 미사일 배치를 언급하며, 흐루쇼프 역시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대변합니다만 냉혹한 전쟁광으로 이해되기까지 하는 르메이가 당시 맥나마라 국방부 장관과 자신의 상관인 케네디 대통령까지 끝내 경멸했던 것으로 보아, 미국의 매파와 소련의 호전광들이 양국에 엄연히 존재하는 위험 요소였으며, 최근 국내 정치인의 주장만큼이나 "대통령의 자리는 전쟁이나 선제 타격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얼마만큼 위기 관리를 잘 해 낼 수 있느냐"를 매번 시험 받는 자리라는 해석이 실로 정확해 보이기까지 하는데요. 바로 상반된 이 지점에서 케네디의 정치적 미덕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그에 관한 정치적 호불호의 감정과는 별개로 스스로 패권국의 수장이라는 자존심을 짓밟힌다 하더라도 파국으로 몰고갈 수 있는 핵전쟁을 최종적으로 기피하기로 했던 결심이 포함된 정치적 결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국내외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 쿠바 미사일 위기를 최근의 북한 미사일 문제의 해법을 위한 '바로미터'로 살펴보고자 하는 사례가 여럿 있었습니다. 안 교수에 의해서도 꽤 훌륭한 논저로 평가받고 있는 마이클 돕스의 논저, "1962"년 또한 국내에서 높은 판매고를 올린 것은 바로 이러한 점에 기인한다고 생각됩니다. 돕스의 이 글을 접해본 많은 독자들도 조차도 "설마 핵전쟁이 그렇게 쉽게 일어날 수 있겠어?"라고 당연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강조하고 부분은 북한의 핵문제를 앞선 단순한 논법과 같은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던 여러 정치적 해결 방안들은 분명 북한의 그것과는 현저히 다른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거 카스트로의 이익과 현재 김정은이 추구하는 이익은 그 본질이 꽤 유사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카스트로가 소련 대사를 향해 "최후의 전쟁이 남았다"고 에둘러 말한 것은 자신이 권좌를 차지하고 있는 쿠바가 설사 미국에 의해 잿더미가 되더라도 마치 전세계의 안위 따위는 나는 신경쓰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됩니다. 이 부분은 김정은의 평양 역시 핵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잃을 것이 북한보다 현저하게 많은 중국이 사실상 북한을 후견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미사일을 제거하기 위해 중국이 자신들의 군대를 북한에 투입할 가능성이 희박다는 것과 관련있습니다. 많은 중국인들은 북한의 핵무기가 자신들을 향하고 있지 않다고 믿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이처럼 중국은 1962년의 소련보다 더 많은 불확실성을 갖고 있는 정권이고, 무엇보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과거의 소련보다 더 호전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배경들은 국제정치에서 현실주의 이론들이 쉽게 설명해주지 못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저자인 안교수도 역시 이러한 인식을 전제로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당사자들에게 진지하고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것에 이릅니다. 이는 1962년의 케네디 행정부가 선보인 '쿠바에 대한 전면적인 해상봉쇄'와 같은 방법이 항상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점과 최근에 조지 W. 부시가 맹신했던 설익은 '북한붕괴론'과 같은 성급한 예측에 거리를 두는 것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머리 위에 두고 있는 현실에서 악화를 막기 위해 최소한 고려해야 하는 점들을 4장 말미에 몇가지 사례를 들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논의된 안교수의 제안들이 하나같이 설득력을 갖고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북한의 김정은을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외길 낭떠러지로 몰아서는 안되며, 이것이 실패했을 때 벌어지는 핵미사일을 통한 전쟁 뿐만 아니라 재래식 전쟁의 참혹한 댓가 마저도 결국은 전적으로 우리만의 몫이라는 가정입니다.

미국과의 평화협상이 어찌하여 시간 끌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가에 대한 사실상의 답변을 담고 있는 4장은 북한 핵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매번 워싱턴의 주인이 바뀔때마다 벌어지는 일관되지 않은 국제외교적 정책과 특히 쿠바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 정치와는 거리가 먼 권위주의 국가들을 대화 상대로 조차 취급받지 못하게 만드는 미국의 혐오감정과 자신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중남미 아메리카에 대한 그동안의 놀라우리 만큼 비열했던 CIA를 통한 공작 정치의 유산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과거 미국의 이러한 '공작과 작전'들은 이것을 면밀히 연구한 미국의 적성국들에 의해 미국에 대한 신뢰를 답보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치부됩니다. 여기에는 제2차 이라크 전쟁을 위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수행한 '후세인이 각종 생화확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허위 주장이 나중에 어떠한 평가를 받았는지 고려해 보면 저들이 어떤식으로 교훈을 얻었는지 대략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러한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쿠바와 북한 등에 있어 미국이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결과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리처드 닉슨의 '미치광이 전략'과 같은 오인의 문제는 단순히 우스개 소리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엄연히 현재까지도 미국내에 각종 외교적 현안에 있어 군사적 개입을 주장하는 매파가 존재하고 있고, 국내 정치 전반에 있어 상당 부분 해를 끼치는 '기독교적 근본주의'가 미국에서 나날이 영역을 넓히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대로 행정부와 양당의 엄연히 구분되는 정책 때문만으로는 반자유주의 국가와의 신뢰와 평화 문제의 딜레마를 이해하기란 다소 어려운 법입니다. 여기에서 거듭 논의되는 북한 정권의 문제는 만약 중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그저 핵무기 만으로 북한이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려웠을것이라 추측됩니다. 그만큼 북한의 문제는 쿠바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복잡한 요소가 잔존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의 대단원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대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러 제언들 가운데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대화 창구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점은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는 우리 뿐만 아니라 미국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이며, 적대국에 준하는 국가와의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군사적 개입에 대한 손쉬운 유혹에 있어 세계 패권을 갖고 있는 유일무이의 민주주의 정부가 오로지 자신들의 국익만을 위해 이를 방편으로 삼는 것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느냐"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도 미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일례를 통해 핵확산 원칙을 스스로 어기는 선례를 만들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란과 북한의 핵보유 시도는 전세계에 미국의 국제외교적 정책에 의문을 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통해 알게된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미국 정보 당국이 파키스탄의 핵 물리학자 압둘 카디드 칸과 북한의 핵무기 커넥션을 오래전에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은 연유에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었습니다. 한편으론 뭔가 음모론으로 읽혀지기도 했습니다만 과거 이삼성 교수의 논저에도 이와 같은 부분이 언급되었기에 충분히 숙고해볼 만한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미 여러 글들을 통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그와 같은 우려가 전혀 터무니 없는 일이 아님을 입증했던 바가 있는데요. 예를들어 도널드 럼스펠드와 딕 체니가 군산복합체와 관련 깊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 글의 여러 교훈들 가운데 제가 극명하게 느낀 점은, "일개 국가의 위신이 세계를 파멸로 이끌게 되는 핵전쟁의 참혹한 결과물보다 명백하게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일부 정치인들의 끝모를 당위였습니다.   



베를린 대전략 가설에서도 드러났지만 케네디와 같은 리버럴 엘리트는 합리적 사고와 이를 근거로 한 설득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카리브해 위기의 책임을 소련과 쿠바의 군사모험주의 탓이라고 하는 우파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 탓이라고 하는 촘스키 같은 좌파의 시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1962년 소련의 쿠바 미사일 철수에 충격을 받은 김일성은 강대국에 대한 배신감을 키우면서 자주 노선과 핵무기 개벌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인지심라학적 개념 중 국제정치학에서 널리 알려진 개념인 오인은 위기 사례 분석에 매우 유용하게 쓰이는 도구다. 로버트 자비스는 "부정확한 추론, 결과에 대한 계산 착오, 정책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판단 착오"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 오인이 의사결정에서 중여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쿠바 미사일을 둘러싼 위기의 핵심 교훈은 앨리슨의 주장과 같은 전쟁을 각오하는 태도의 중요성이 아니라 강압 전략이 우발적 전쟁의 가능성과 얼마나 맞닿아있는가다

로버트 케네디의 자작극 제안은 후에 린든 존슨 행정부가 베트남 침공 명분을 만들기 위해 조작한 통킹만 사건 당시 미국 리버럴이 보여준 비윤리성이 예외적이라기보다는 통상적이라는 점을 시사해준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평화적 해법에 대한 흐루쇼프의 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신‘인 핵무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