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의 귀환 -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붕괴하는가
로버트 케이건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앤김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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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리투아니아 유대인의 후손인 로버트 케이건은 역사가로 알려진 친부의 영향으로 예일대와 하버드 대를 거쳐, 연방 공인 연구 대학인 아메리칸 대학에서 미국 역사와 관련한 박사 학위를 수여받습니다. 이 책의 저자나 그의 논저를 번역한 출판사는 저자인 로버트 케이건의 한가지 수식어를 빼먹고 있는데요. 그것은 그가 네오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케이건이 공화당 당적을 포기하고 무당적으로 있는 것을 흡사 네오콘의 노선에서 벗어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왜 그가 '네오콘'이라는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는지 매우 의문이 듭니다. 물론 그가 공화당 당적을 정리하고 같은 당의 정책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의 정치적 노선을 바꾼 것으로 취급될 지도 모르겠지만 '무지의 베일'도 아니고 그러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2010년 9월 브루킹스 연구소의 미국과 유럽 센터의 선임 연구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한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고, 힐러리를 지지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원제, "The Jungle Grows Back : America and Our Imperiled World"로 지난 2018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1년 1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역자와 관련해 한 가지 개인적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어느 극우 유튜버의 방송에 출연한 역자를 발견한 것인데요. 그래서 한동안 출연한 사람이 역자와 동일 인물인지 여러모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동영상은 소위 유럽의 좌파 사회학자들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이었는데요. 그곳의 내용들은 거의 대안 우파들이나 주장할 법한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블로그에서 역자의 정치적 성향을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역자가 번역한 책들을 찾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그래서 소위 뻔해 보이는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의 논저를 누구보다 잘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진영을 지지하는 번역가인가 라는 고심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케이건의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저자가 분명하고 확고하게, "자유주의와 자유주의 세계"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부분은 충분히 이해가 될만합니다. 작게는 미국에서 자유에 대한 인식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크게는 미국 자신이 국제 사회에 항상 강조하고 투영하는 것이 소위 자유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자유주의가 이룩한 역사적 진보라는 것 또한 거대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글 전반에 흐르는 논리적 맥락에서 소위 '민주 정체(마땅히 민주주의로 불려야 합니다만)' 역시 원대한 자유주의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뭔가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에 의해 그 소명을 다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요. 제가 이론적 현미경을 들이대고 일일이 다 따지고 들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이 부분도 역시 실망스러운 지점이었습니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와, 이 글의 9장에서 저자는 다수의 진보주의자들을 위한 발언으로 보이는 "개입주의와 제국주의는 엄연히 다르다"는 문법에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있었는데요. 많은 진보 좌파들이 미국의 패권 개입을 가지고 제국주의라는 맥락으로 비판을 가하는 것은 저 역시 다소 논점을 벗어난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세계가 오로지 미국의 지대한 헌신과 어떤 역사적 사명에서 비롯되었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과거의 냉전이 저자가 인용한 존 르 카레의 "절반의 천사와 절반의 악마"와 같은 초월적인 선악론이 아니라 그런 대결에도 인간적인 이기심과 도덕적 무절제의 한계가 담겨 있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글의 5장에서 "선한 명분에도 이기적이고 타락한 측면이 있고 적도 적 나름의 사연이 있으며, 자기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고충들이 줄줄이 이어진다"는 서술은 이를 명확히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자유주의가 갖는 인상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고매한 이상과 순결한 도덕론 따위를 언급할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미국이 선도한 자유주의 세계' 자체가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다는 사실이겠지요.

2차대전의 서막이 본격적으로 무르익기 전에 전세계가 유럽에 암운을 드리우던 전체주의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은 실로 문제였던 것은 확실합니다. 케이건은 이에 정치권의 무분별한 '파시즘의 전도'는 언급하고 있지만 당시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익을 얻고 있던 자본가들과 산업 기반 소유자들의 히틀러에 대한 동경은 빼먹고 있습니다. 저자가 1920년대의 자본주의에 다소 경도되기 시작한 자유주의의 본질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이쯤에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고자 한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만 3장부터 일관되게 논증되고 있는 이 '자유주의'가 대전 이후의 유럽에 만연되어 있던 민족주의와 국수주의의 망령을 미리 억제한 공로를 갖고 있으며 이것은 전체적으로 모든 유럽인들과 자유 세계의 공통된 이익을 위해 경주하게 된 원인이라 저자는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확신하고 있는 연유에는 오늘날 점차 머리를 들고 있는 인종주의적 극우주의와 이슬람 이민을 상대로한 배타적 민족주의가 어떻게 보면 자유주의의 위기로까지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는데요. 케이건이 다소 흥분이 담긴 어조로 쓰고 있는 듯한 인상까지 받은 "이 자유주의가 과거 인류의 '계몽과 이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자유주의가 어떻게 배타적 이데올로기들을 시민들 사이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막고 있는지 그러한 연관성에 누구나 설득당하게 될 것 같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지금까지도 불필요하게 막대한 국방비를 투입하면서까지 전세계의 안보에 미국이 희생을 해야하는 하느냐에 볼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종래의 고립주의와도 유사한 미국 국민들의 이러한 불만은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다만, 전후 구축된 미국과 서방 그룹의 이 자유주의적 세계는 인간 본연의 숭고한 가치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이런 재구축된 세계 자체'가 미국에게 더할나위 없는 이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냉전 시기에 자신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CIA의 더러운 군사작전과 정치적 개입을 자신들의 동맹과 일절 상의도 없이 자행했던 것입니다. 물론 저자인 케이건은 이러한 문제와 직면해, 여느 보수주의자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일이었다"고 마무리짓고 있습니다만 적지않게 도덕적 신뢰에 타격이 되었던 비민주주의적 행태를 안고 갈 수 없을 만큼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던 것이죠. 뭐 큰틀에서야 저자의 강조된 문구처럼 미국이 자유주의 체제를 지탱하게 만드는 유일한 패권국이라는 논법이 논리적인 프로파간다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도 분명합니다. 후쿠야마식대로 냉전의 종말을 눈으로 경험했던 많은 세대들에겐 미국이 서방세계라고 불리우는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자유를 지지하는 체제를 존속시키기 위해 남들도 하기 쉽지 않은 국방력의 총투사로 이러한 토대를 지켜냈다고 볼 수 있을겁니다. 다만, 냉전의 훌륭한 종결이 근 40여년간의 전세계에 대한 핵전쟁의 위협을 깡그리 잊게 만들정도는 아니며, 인류를 몇번이나 절멸에 이르게 할 핵무기를 머리 위에 놓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몰빵하면서 그룹 모임에 있는 이들이 앵무새처럼 내뱉는 것과 같이 '그래도 적당히 안전한 세계'였다고 자위할 정도가 되는 것일까요.

이즈음에서 우리가 자유주의 체제에서 다시금 발견해 낼 수 있던 것은 이 체제가 일견 보여주는 어감처럼 실제로 나약하지는 않다는 사실일겁니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유 세계의 리더가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전세계에 보여줬고 관타나모에서의 포로들에 대한 고문은 이 점을 아주 명확히 했습니다. 저자인 케이건은 스스로 네오콘이라 불리우는 것을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디서 본 기억이 납니다만 사실 그에게 리버럴적인 양심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비도덕적인 문제에 대해 과거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중동 관여를 언급하면서 위에 언급한 점들을 꺼내지도 않은 것은 적잖이 실망스런 기분이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이 경멸까지는 아니더라도 진보주의와 민주당과 같은 리버럴에 대해 그 이중성을 지적하면서도 단순히 도덕적인 문제여서가 아니라 최소한 인간의 자격을 상실한 첨단의 미국 군대에게 아무런 비판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앞선 존 르 카레의 논법을 그가 맹렬히 추종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뒤이어 글 3장에서, "자유주의 질서에 속한 국가와 사회들은 자국의 국민을 대할 때, 그리고 심지어 범죄인을 대할 때조차도 보다 인도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라는 진술은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은 왜 그러지 못했는가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은 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이 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숭고한 의미를 단순히 먹고 살만해지고 자유롭다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국제 외교와 같은 것들에 논리적 선명성 따위를 지지할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갖고 있어야 하겠죠.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이 없는 세계'에 대한 비관적 전망의 "미국이 월등한 지위를 유지하지 않는 세계"는 폭력이 난무하고 무질서하고 민주정체와 경제 성장이 후퇴하는 세계로 이어진다는 논법은 과거 영국이 가진 패권과 지금의 미국이 얼마나 입장이 다른지 짐작하게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보유를 용인하고 이스라엘의 핵무기를 묵인하는 것처럼 미국 자신도 스스로의 국익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패권국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더이상의 핵무기 확산을 억제하고자 했던 오마바 행정부의 노력은 이미 수포로 돌아갔고 아마도 기존의 질서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요리하고자 하는 수동적인 러시아와 매우 적극적인 중국의 부상은 말 그대로 다음 세대의 확실한 위협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저자의 강조래도 "자유주의 체제가 중국을 번영케 했다"면 이것의 양면성은 마찬가지로 미국의 기업들과 유럽의 자본가들에게도 마땅히 이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강대국 지위를 회복시키기 위해 자유주의가 이에 산파가 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보기에 따라 이들 권위주의 국가들의 행동에 대한 논리적 예측이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정말 미국이 자신들의 국민들에게 강요했던 것처럼 '개인과 시민의 자유'가 그토록 귀중하고 숭고하다면 중국의 배타적 부상을 제대로 관리할 필요가 있을겁니다. 제가 평소에도 미국의 외교 정책과 정치 일반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나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체제에 대해 지지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이익계산에 따라 대만을 희생할 건지 아닐 것인지와 같은 주변의 동맹국들에게 매우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만큼은 자제하는 편이 미국의 국익에 옳다고 여겨집니다. 저자가 인용한 라인홀드 니버의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하려는 행동에 대해 '안일한 양심'을 지니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 만약 정론이라면 정말 작금에는 치열하고 아주 명확한 대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인들과 미국 정부가 자신들이 이룩한 이 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확고하고 변치않는 지지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말입니다.


-케이건은 글 중간에 노엄 촘스키를 인용하고 있었는데요. 저로서는 뭔가 자명한 기분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단순히 진영 논리에서가 아니라 촘스키에 대한 과거 네오콘들의 수많은 공격들을 되짚어 본다면 말입니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불행은 미국과 소련의 '부다페스트 메모랜덤'이 무력화 된 것과 더불어 앞으로 부상할 러시아에 대한 위협을 미국이 주저한 댓가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자국의 방위와 생존은 스스로가 답보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사정은 그러한 당위를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지정학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제한된 국가'의 전형일겁니다. 국제체제 역시 이들에게 등을 돌리려고 하는 작금의 시점은 2차 대전 당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와 뭐가 다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미국인은 자국이 무엇 때문에 세상만사에 그토록 깊이 관여하고 중동과 같은 구제불능의 지역에 인명과 돈을 쏟아부어야 하며, 무엇 때문에 독일, 일본, 남한과 같은 부유한 동맹국들이 자국을 지키기 위해서 국방의 부담을 더 짊어지지 않으며, 미국은 무엇 때문에 자국의 경제와 안보 이익과 직결되지도 않은 문제들 때문에 전쟁을 감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해리 트루먼 같은 이들은 1930년대에 세계질서가 붕괴한 까닭은 미국이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건국 이래로 늘 독재체제 정부가 민주정체 정부보다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해왔다

영국이 지탱해왔던 기존의 자유주의 질서는 사라졌다. 따라서 세계는 무질서로 빠져들든가, 미국의 국익과 원칙에 적대적인 나라들의 지배를 받든가 둘 중 하나였다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이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분괘하기 위해 군사적 개입과 비밀 작전을 수행했는데, 보통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참여한 다른 나라들의 승낙을 구하지 않았고, 때로는 많은 동맹국들의 반대를 무릅쓰기도 했다

그해 새뮤얼 P. 헌팅턴은 "미국이 월등한 지위를 유지하지 않는 세계"는 "폭력이 난무하고 무질서하고 민주정체와 경제 성장이 후퇴하는 세계가 된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월등한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만 미국 국민의 복지와 안보, 그리고 세계의 자유와 민주정체와 개방경제와 국제질서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자유 세계가 이들이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그리고 이러한 무기를 발사할 미사일"을 갖지 못하게 막지 않으면 이들은 "한층 더 치명적인 적"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오늘날 문제는 지정학이 귀환한 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이 한동안 중단했던 과거의 야망을 다시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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