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크래시 - 팬데믹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웠는가
그레이스 블레이클리 지음, 장석준 옮김 / 책세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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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부인 헴프셔 카운티의 베이싱스토크 출신의 그레이스 브레이클리는 올해 1993년생으로 점차 정치 경력을 쌓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입니다. 그녀는 햄프셔 북부의 공동 교육 독립 기관인 로즈 완즈워스 칼리지를 거쳐, 옥스포드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에서 철학, 정치, 및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아프리카학 석사를 취득합니다. 졸업 이후 그녀는 공공 부문 및 의료 실무 부서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지역 경제 정책을 주로 다루는 좌파 싱크탱크인 맨체스터 공공정책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는 영국 내 대표적인 좌파 시사 잡지인 '트리뷴'에서 일하고 있으며, 주변으로부터 촉망받는 앞날을 인정받는 청년 진보 지식인으로 금융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내에서 엘리트들의 불법적인 정치경제적 결탁과 부패에 대해 끊임없이 고발해왔으며,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놀라울 만한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글의 주된 인상은 콜린 크라우치의 논법과 매우 닮아있다고 느껴졌는데요. 군더더기 없는 논증과 높은 설득력을 답보한 간결한 주장들은 크게 마음에 들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원제, "The Corona Crash"로 지난 202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1년 4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 글의 정해진 제목으로 인해, 독자들은 잠시 글의 주제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엄밀히 따지면 블레이클리는 현재의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본주의의 강화된 경제 왜곡과 이를테면 금융 자본주의의가 북반구와 남반구의 국제경제체제 전반의 심각한 차별을 발생시키고 더욱더 빈민주화로 나아가고 있는 현실을 놀라운 논증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 주된 요점입니다. 이와 관련해 그녀는 좀 더 신랄한 어법으로 1장에서 금융위기를 '만드는 자들 makers' 에 대한 '거저먹는 자들 takers'의 승리로 빗대어 설명하고 있었는데요. 여기서 거저먹는 자들은 일종의 금융 자본가들과 이러한 시스템을 옹호하는 이들이라 볼 수 있을겁니다. 블레이클리는 이미 케인즈를 통해 자본주의의 하이브리드화라고 할 수 있는 금융 자본주의를 여실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금융 자본주의의 표면적인 움직임, 체계, 지향점 등을 굳이 분석하고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금융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이 시스템이 결국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과두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그녀 역시 경고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사실상의 결론이자 해지라고 할 수 있는 4장에서 그녀는 금융 산업 전반에 '민주적 통제'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많은 민주주의자들이 더이상 자유주의자들이 쌓아 놓은 시장 자유에 긍정하지 않게 됨으로써, 사회를 첨예한 불평등과 사회 갈등으로 내몬 이 시장 자유주의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적 통제'를 좀 더 견고한 기법으로 만들어 제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요. 다만, 기존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이를 뭔가 사회주의적 기법의 음모로 몰고가고 있습니다만 일차적으로 '민주적 통제'에 왜 사회주의가 튀어 나오는지 저로서도 큰 의문이 듭니다.

일전에 대니 로드릭도 인정한 부분입니다만,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가 저 '자유주의'라는 어법을 종래처럼 갖다 붙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정부의 막대한 구제 금융 지원을 받은 월 스트리트와 시티 오브 런던이 어떻게 스스로 자유주의 경제학을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 비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더군다나 블레이클리는 2008년 이후의 금융 경제 체제가 더욱 정치 엘리트들과 결탁해 국가의 지원을 이끌어 냈으며, 이는 결국 정치와 경제 전반의 엄연한 명목상의 분리라는 자신들만의 금기(신자유주의자들과 일부 민주주의자들 조차도 인정하는)를 해치면서 특히 신자유주의자들 스스로의 정치경제적 명분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애덤 스미스를 방패삼아 자유주의적 경제를 여전히 주장하는 논리적 모순과 더불어 자신들이 구명을 받은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국가의 또다른 시장 개입'을 또 백안시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코로나 사태에 있어서 블레이클리의 언급대로 더 심각해진 것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경제적 격차를 불러 일으킨 토대였던 자본 이동과 조세 회피의 존재와 금융 자본 전반이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국가와 정부에 사실상 요구하고 있는 현실일겁니다. 이것을 3장에서 논의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입장권'이라고 할 수 있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필두로 이 클럽에 가입하기 위한 엄격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암흑 대륙'인 아프리카와 일부 아시아 국가들에게 있어서 국제 체제가 얼마나 이들을 가혹하게 다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국제 금융에서 투자된 자본의 이동이 지금도 매우 당연시 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빈국을 상대로 가혹하게 일관하고 있는 '국제 채권자 무리'들을 옹호하고 나선 이 신자유주의 체제가 사실상 모두에게 평등한 클럽이 아님을 입증시킨 바가 있습니다. 이처럼 3장에서 동일한 사례로 등장하는 잠비아와 아르헨티나의 문제는 그저 쉽게 여길 수 없는 단서들을 제공하는데요. 잠비아의 구리 수출과 관련한 시장 가격의 하락과 부실한 정부의 대응은 경제 전반을 국제 채권자 무리에게 인질이 되었으며, 아르헨티나도 역시 수차례의 구제 금융과 정치적 무능이라는 공격으로 경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현 세계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작고한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미 제시한 바가 있는데요. 시민들 모두가 스스로 정치적 결단자이자 더불어 자본주의적 소비자로서 안온한 사회 체제를 위해 양자에 대한 책무란 결코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한데요. 앞서 저자인 그녀의 인식이 동일하게도 정치 엘리트들과 경제 엘리트들의 결탁, 즉 우파와 신자유주의자들의 결탁은 다수의 시민들에게 대안을 결코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자유시장이라는 미명하에 시민들의 정치적 의견을 제한하고 언론을 매수해 여론을 관리하기까지 한 비정상적인 사회적 왜곡를 초래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블레이클리의 언급대로 단순히 시민 단체에 의한 기업 감시를 넘어 분명한 공적 의무를 답보하는 공공 단체로 하여금 시장 전반을 제대로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단순히 시민들이 원하는 '돌봄 민주주의'에 국한되지 않고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에 대해서도 일종의 지렛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시민들이 맞이한 현재의 SNS 시대에 있어 지금보다 더 많은 현실적인 이슈와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활발한 토론과 정치인들의 정치적 결정을 위한 민주적인 방식의 압력을 위해 좀 더 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최근의 전세계적 코로나 확산 사태와 지난 2018년 이전과는 체제의 상황이 일변한 것은 분명합니다. 여기에는 극우 포퓰리즘 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자유 지상주의자들과 이에 더욱 편승한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법에 평범한 시민들의 비범한 사회적 변별력을 시급하게 기대해야 할 순간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인 블레이클리의 경고대로 이대로 넋놓고 있다가는 우리가 우려하는 과두제는 정말 일찍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 여전히 시장 전반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대한 조장된 반감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어, 이를 시민들이 정치적 변별력으로 극복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실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시급하게 긍정하는 '자유'라는 함의는 시민과 인간 본연의 자유였지만 이제는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종교보다 더 가혹하고 폐쇄적인 의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과거 전세계적인 냉전의 영향으로 보여집니다.


코로나19 위기가 진정되었을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될 과업은 이 국면을 이용해 권력과 부를 늘린 자들로부터 통제권을 다시 빼앗아오는 일일 것이다

금융화란 소수 금융 엘리트의 이득을 위해 근로 대중에 피해를 입히면서 경제 활동의 전 영역에 금융의 논리, 즉 대출, 투기, 투자의 논리를 침투시키는 과정이다

우익 사상가들은 자신들의 극단적인 자유시장 의제를 이행하고자 마거릿 대처의 출마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로써 금융공황 이후 10년은 나폴레옹 전쟁 이래로 가장 긴 임금 정체기가 됐다

한편 세계의 경찰 미국은 주변부에서 벌어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최종 보증자 구실을 했다

2008년과 2020년의 결과로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이제는 비금융기관까지도, 즉 ‘독점-금융‘혼종의 완전체가 국가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으며 이들은 완전히 영구적으로 국가에 의존하게 됐다

두 관점의 지지자들 모두 어쨌든 정치와 경제가 분리돼 있다는 자유주의적 통념에 의존한다

국가가 수십억 파운드를 들여 자국의 부유한 은행가들을 구제할 여력이 있다면 왜 위기가 끝나고 나서 고등 교육, 주거, 의료를 무상으로 제공하면 안되는가?

영국 좌파는 국가의 한 형태, 나아가 자본주의의 한 형태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부활했지만 이 자본주의 형태는 위기가 끝나면 세상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의 전 지구적 독점기업들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반 경쟁 관행으로 창출한 산더미 같은 현금 방석에 앉아 있다

여기서 ‘개방‘이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국가 주도 발전 프로그램에 착수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밖으로부터 국제 자본을 이롭게 할 ‘시장 친화적‘ 정책을 강요하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이미 자본주의 시스템은 국제 독점기업들과 국가 및 국제기구 깊숙한 곳에 포진한 그들의 고객 사이의 뿌리 깊은 결탁을 특징으로 하며, 이는 온갖 부채와 비효율성을 낳고 있다

현재 많은 서방 민주주의 국가에서 출현 중인 과두제 경향에 맞서는 유일한 길은 근로 대중에 대한 공직자의 책임을 강화하고 경제 자체를 민주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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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8 0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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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8 15: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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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8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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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8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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