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심리학 부글 클래식 boogle Classics
귀스타브 르 봉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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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많은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친 논저 '군중심리'의 저자 귀스타브 르 봉은 명확한 개념이 잡히지 않았던 사회학과 심리학으로 세계를 해석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던 지식인었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큰 명성을 얻게 해준 '군중심리'가 출판되기 전에, '국민들의 진화의 심리학적 법칙 Les Lois Psychologiques de l'Évolution des Peuples'이라는 제목의 민족에 대한 해석을 담은 글을 1894년에 출간하게 되는데요. 국문 제목으로 '국민의 심리학'인 이 책이 앞선 글을 번역한 것이 되겠습니다. 아마도 추측하건대, 다른 글들에서 '민족의 심리학'이라고 지칭되는 글이 바로 이 글로 여겨집니다. 최근에 군중심리를 다시 일독하고나서 정리되지 않는 미진한 부분들이 다소 머릿속에 남아 있었는데요. 다행히 이 '국민의 심리학'을 접하고 나서, 그에 대한 의문이 정리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원제, "Les Lois Psychologiques de l'Évolution des Peuples'로 189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 번역된 판은 아마도 영역본을 번역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역자가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나오지 않아 영역본으로 추정해 보게 되었습니다. 국내 번역본 출판은 2019년 11월로 나오는데 이것도 출판 날짜 항목란에 따로 스티커를 붙여놓은 것이라 서지정보가 정확한 것인지는 마찬가지로 추정하기 어려웠습니다.

본래 의학을 전공한 학자가 문화와 문명 기록에 관심을 갖고 여기에 심리학적인 논증까지 동원해 만든 결과물이 바로 이 글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분명히 당시 사상적 조류에 걸맞게 르 봉의 이 책 역시 '진화론'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 본인은 민족의 문명적 특성을 고려하며, 그것을 심리학적 분석이라 강조했지만 원시적인 민족부터 열등한 민족, 평균적인 민족, 우등한 민족 즉, 세계의 대표적인 민족들을 4개의 분류로 나눈 것은 내용상의 논증으로 볼 때, 심리학적인 측면이 아니라 진화론적인 입장에 더 가깝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더욱이 그의 다른 논저인 '전쟁의 심리학'에서 "전통적인 심리학이 인간의 영혼까지 다룰 수 있었다"는 진술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에 대한 르 봉의 믿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뿐만 아니라, 민족적 특질에 의해 규명되고 있는 국민성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든 현재의 양태로든 국가내의 다수의 민족들이 융합되면서 단일화가 이루어질 경우, 민족의 고유한 정신이 '혼혈화'에 의해 사실상 종말을 고할 수 있다고 르 봉은 논증하고 있었습니다. 민족의 이런 고유한 정신은 오래도록 조상들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서, 무엇보다 이처럼 어느 민족을 다른 민족들과 차별화시키는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바로 이것을 증명하는 예로써, 르 봉은 영국의 앵글로 색슨 민족을 제시하고 있었는데요. 우선 이 혼혈화에 따른 '고유한 민족 정신의 일종의 해체와 재구성'에 대해 언급해 보자면, 민족은 크게 3가지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조상들의 영향과 부모의 영향 및 환경의 영향입니다. 오늘날 규명된 프랑스 민족의 복잡한 유전적 인종 구성을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차치한다면 여기서 르 봉은 프랑스인들을 구성하고 있는 민족적 구분을 '라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라틴의 민족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프랑스인들은 스스로 고개를 숙이며 '지배당하기를 원하며' 이들이 전유럽에 파급을 끼친 혁명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혁명적 기질이 나폴레옹에 의해 잦아들었고, 그는 이것을 1부 2장에서, "나폴레옹의 온순한 노예들"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영국의 앵글로 색슨은 앞선 증명으로, "민족의 심리적 등급"이라는 기반하에, 3부 1장에서, "이런 상태는 라틴계 민족의 이상과 정반대이다. 영국에서 항만과 운하, 철도, 교육 시설 등은 언제나 사적인 개인들의 주도로 창조되고 유지될 것이며, 그런 분야를 국가가 주도하고 나서는 예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영국엔 혁명도 없고 헌법도 없다"고 이처럼 비교 분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시는 '전쟁의 심리학'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요. 영국의 앵글로 색슨은 개인의 자유,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자유를 추구하지만 독일의 게르만 인들은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미덕을 중요시하게 생각한다며, 이는 더 나아가 1차 대전 당시 독일이 전쟁을 결정하게 된 주요한 요인이라고 해석되고 있습니다. 흔히 오늘날에도 유럽 여행에 나서는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프랑스인들은 기질적으로 스페인 사람들과 많은 차이가 난다.','영국인들도 민족성이라는 측면에서 프랑스인들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인정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인식론이 현대에 직접적으로 르 봉에게서 이어진 것은 아닐지라도 제국주의 시기에 영국이 자신들의 지배하에 있는 피지배민족의 열등성을 규명하기 위해 벌였던 학문적 작업과 자신들 말고 다른 인종에 대한 극명한 경멸과 구분은 이러한 민족적 구별성을 전제로 한 작업들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의 '전쟁의 심리학'에서도 독일인들이 언론과 지식인들의 주장들을 터무니 없이 신뢰하고 있었고, 이는 정부의 명령에 수많은 독일인들이 순종하게 된 연유라고 지목되고 있는데요. 제가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18세기 중반 무렵의 진화론이 이처럼 당시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알게모르게 편협한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짐작되며, 르 봉이 스스로 꽤 새로운 개념으로 여기고 있는 이 '우등한 문명', '열등한 문명'의 비교가 단순히 군사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우위만을 받들어, 그렇지 않은 열등한 민족과 문명이 지배를 받아 마땅하다는 제국주의적 시각과 다름 없이 기술된 것은 꽤 유감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앞선 문단들에서 제가 언급을 했지만, 르 봉은 글 초입에서 소위 유럽의 민족들을 분리해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 이유로 자신들의 오래된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기질'의 특수성을 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유전학 형질이 세대와 세대를 거쳐 지속적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식의 이해가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이는 우리의 피속에서는 조상들의 경험과 영향이 끼치고 있다는 일종의 '진화심리학적인 결정론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이 각 민족의 유전적 특성에 집중하고 있는 경향이 있는 연유에는 이것을 순수 과학으로 풀어보고자 하는 열망도 분명 있겠는데요. 르 봉에게는 영국의 앵글로 색슨의 사례처럼 그 고유한 민족적 등급 내지는 민족적 특성을 유지하는 것이 그 개별 문명의 고유성 유지를 넘어, 결과론에 입각해서도 꽤 중요하다는 점을 논증을 통해 밝히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앵글로 색슨의 신(新) 국가인 미국이 제도 자체를 답습하기에 바빴던 남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기에 이릅니다. 르 봉은 바로 이 부분에서 영국이 미국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여기는 듯했는데요. 물론 이 글에서 비교 사례로서 분석되는 주된 대상은 중국인과 영국인들이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르 봉이 역사적인 민족의 문명의 특성을 거론하면서 몽고인과 일본인 그리고 중국인을 평균에 속하는 민족들로 규정하고 있는 점은 제가 무조건적으로 다원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유럽의 백인 우월적인 시각이 여실히 보여지는 점이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계몽주의에 있어서 자유의 대상이 유럽 백인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다는 지난 역사의 사실과 유사한 부분일텐데요. 더욱이 군사적 발전과 팽창에 힘을 기울였던 과거 로마 제국의 사례를 문명화의 일반적 관점에서 비판적인 시각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국민의 특별한 기질로서 탄생했던 것이, 앵글로 색슨의 영향하에 있던 미국이라고 보는 르 봉의 3부 2장의 해석은 다음에 나오는 '자유'와 관련해 특별히 제 이목을 끌었습니다. "영국인들이 그 지역을 세계의 강국들 반열로 끌어올리는 데는 1세기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그는 설명하고 있는데요. "오직 앵글로 색슨족만이 독립과 에너지가 넘치는 이런 분위기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마찬가지로 첨언하고, "미국이라는 위대한 공화국은 틀림없이 자유의 땅"이라고 규정하면서, "라틴계의 두 괴물인 평등과 형제애의 땅은 절대로 아니다"라고 단언하기에 이릅니다. 얼마간 인용되었던, 앵글로 색슨의 개인에 대한 관념과 아직 잉태되지 않은 개인주의에 있어 영국인들은 르 봉이 보기에 매우 적합해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혁명을 겪지 않은 영국의 그늘이 자유를 잉태하고, 피비린내는 혁명을 거친 프랑스가 평등과 형제애 혹은 박애로 대비되는 것은 꽤 신선한 시각이었습니다. 물론 이후의 미국인들이 민족의 특별한 기질이라고 할 수 있는 '도덕성'과는 상당한 거리가 먼 역사를 만들어내지만, 이 '도덕성의 부재'를 그 시점에서 남미 국가들의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고 있으니, 만약 여기서 조금 더 나간다면 거의 인종주의적 시각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 라틴계의 공화주의자들을 저대로 놔둔다면 순수한 야만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그는 단언했는데요. 이 지역 대부분이 근현대 시기에 정치적으로 혼란을 겪었기에, 르 봉의 저런 예견들을 전부 억측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엘리트 계층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나, 꽤 높은 교육을 받았다고 자부하는 지식인이나 반대로 일반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르 봉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분명히 입장의 차이가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어제 서평을 쓴 군중에 대한 그의 해석도, 다음 날부터 읽기 시작한 이 민족과 국민에 대한 진화심리학적인 연원도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른 시대상을 고려하여 읽는 것이 독자들에게 필요하다 여겨졌습니다.   

르 봉은 그의 고유한 민족 개념에서 그들 가운데 얼마나 특출난 지성의 소유자가 태어나느냐에 따라 우등과 열등의 경계를 결정하는 것으로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마치 특출난 개인의 출현이 문명적 발전에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1부 4장에서, "지적인 관점에서 보면, 민족의 가치는 문명의 과학적, 문학적, 산업적 발달을 이루는 원동력인 작은 엘리트 집단에 의존한다"는 점은 앞선 진술과 유사한 맥락이라 파악됩니다. 이는 사실 군중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의 요체를 언급하기 이전에, 르 봉에게 사회에 대한 통치의 권위를 가진 그룹은 소수의 소위 능력있는 자들로 지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의학의 차원에서 민족별로 뇌의 크기를 비교하는 진술도 그렇고, 다수들 가운데서 소수의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민족 자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연결되기까지 하는데요. 이 뿐만 아니라, 그는 기질 차원에서 여성과 남성의 분명한 차이와 그러한 맥락을 거의 변할 수 없는 당위의 차원으로 여기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의 시대가 여성들에 대해, 기본적인 인식이 교육을 받았다는 지식인들조차 그들의 인식이 계몽의 언저리 바깥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생각됩니다.. 뭐 여성의 인식도 그러하거니와, 전반적으로 르 봉의 이 글에서 민족에 대한 개념이 오늘날의 다원주의적 인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인식을 애써 배제시킨다 하더라도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르 봉이 말하는 18세기 민주주의 이상의 발전된 민주주의는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진정 궁금했습니다. 또한, 군주제이든 대통령을 선출하는 공화제이든 권력 지배적인 모습일 뿐이라는 회의적 시각과 보편적인 자유에 대해, 르 봉의 인식이 크게 확장되지 않은 느낌도 받았는데요. 당시 자신이 살던 시대가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대이긴 하지만 이러한 시대가 영원히 지속하기란 어렵다고 인정하고 있었는데요. 이 부분과 더불어 앞선 초창기 자본주의 시기에 있어서 노동자들이 과거의 순수한 명장들처럼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부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술이나, 개인 자유에 대한 사실상의 회의적인 시각, 그러니까 시대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해석의 단락들이 꽤 많이 보였는데요. 어차피 그 정치체제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 권력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예시들은 무정부주의에 대한 스스로의 비판을 강화했으면서도 과연 그의 합당한 정치적 인식을 어디에 두고 이러한 글을 쓰게 되었는지 아직도 의문이 듭니다. 단순히 해부학의 대가로서 인간의 철학적 본성이 아니라 그저 육체적이고 생물학적인 관점에 이 민족을 다룬 것이라면 일견 그 이해의 상관성이 짐작됩니다. 그저 그것으로 국한되었다면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인간은 추론의 동물이라면 이와 같은 민족에 대한 편협적인 이해가 우리에게 어떠한 본질적 이해를 제시할 수 있는지 마찬가지로 르 봉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분명 그는 급진적인 혁명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과 함께 국가와 국민의 관계, 특히 양자가 어떠한 관계인지에 대해선 앞선 '군중심리'에서도 일견 느꼈지만, 선출된 권력에 대한 회의와 개인이 사실상 국가의 소산이라는 것과 동시에 국가의 한 부분임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주장은 어쩌면 개인이 기본이 된 자유주의적 맥락이 모두 사라져 버린 인상을 받았는데요. 글의 말미에서 그가 말하는 문명화의 진정한 의미 역시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르 봉의 글을 왜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선동가들이 탐독하게 되었는지 이 또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은 각 민족의 제도와 예술, 신앙, 정치적 격변의 뒤에 그 민족의 진화를 결정하는 어떤 도덕적, 지적 특징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국민의 기질에 너무나 큰 변화가 나타나는 것 같지 않은가! 17세기오아 18세기의 프랑스 국민의 기질에 나타난 변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역사학자가 있는가?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 국민 공회를 맹렬히 지지했던 사람들과 나폴레옹의 온순한 노예들 사이의 기질 차이보다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있는가?

도덕성은 지성의 결과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질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유전적인 것이 되고, 따라서 무의식적인 것이 될 때까지는 절대로 단단히 구축되지 않는다

6만 명의 영국인이 2억5천 만 명에 달하는 힌두인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영국인들의 기질 때문이다

여자의 교육 수준이 대단히 높을지라도, 여자와 남자 사이에 정신적 분리는 엄연히 존재한다

앞에 언급한 내용은 민족들 간의 혼혈이 새로운 민족의 형성에 근본적인 용소로 고려되어야 함과 동시에 옛 민족들의 해체에 큰 역할을 한 요인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이런 미묘한 구분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역사가 언제나 허리를 굽히는 유일한 우월은 군사적 우월이다

우리는 그 민족들의 해체가 혼혈의 결과라는 점을, 그리고 통일성과 힘을 간직한 민족들, 예를 들면 과거으이 인도의 아리아인과 다양한 식민지들에 거주하는 현대의 영국인은 언제나 외국인과의 결혼을 신중하게 피했던 민족이라는 점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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