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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 디지털 시대의 원형감옥, 당신은 자유로운가?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지음, 구본권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빅토어 마이어 쉰베르거는 오스트리아 젤암시 출신으로 현재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인터넷 연구소의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7년동안 법학을 공부했고, 이후 하버드 대학과 런던정경대를 거쳐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1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조지 워싱턴 대학의 대니얼 솔로브와 비슷한 학문적 관심사인 네트워크 프라이버시, 인터넷 규제, 가상 세계에서의 거버넌스 구축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의 또 다른 논저인 "데이터 자본주의"가 2018년에 파이낸셜 타임즈와 골드만 삭스가 공동으로 수여하는 올해의 비즈니스 북 어워드를 수상한 바가 있습니다. 이 책은 원제, "Delete : The Virtue of Forgetting in the Digital Age"로 지난 2009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지난 2011년 7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현재 이 글은 절판된 상황입니다.
여기 쉰베르거의 이 글은, 현재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 소위, 디지털 메모리 Digital Memory가 어떻게 인간의 망각을 방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명사를 비롯 현실 전반의 인식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를 아주 간단히 설명해보면 인간은 누구나 사회에서 망각을 당할 권리, 즉 잊혀질 권리가 있으며,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로 글 전반에서 부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쉰베르거가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대니얼 솔로브와는 사뭇 다른 구성으로 되어 있어 약간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상이한 두 개의 주제를 인위적으로 합쳐 놓은 것 같은 인상이 들어 약간이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즉, 1장에서 보여지듯이, 인터넷에 의해 강제로 기억된 보통 사람들의 행적들이 어떻게 이들의 삶을 파괴하는지에 대한 가감없는 르포르타주로 예상되었는데요. 하지만 실상은 인류의 문명화 과정에서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했던 '기억'과 기록에 대한 서사를 위한 목적의 2장이 과연 문맥상 필요했는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인상 때문인지 쇤베르거의 이 책이 '인터넷으로 과도하게 연결된 우리의 삶의 본질'이라는 고찰을 위해 다소 현실 인식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요. 물론 글이 나온 때가 2009년임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는 '노출된 우리의 프라이버시 문제'와 더불어 '과도하게 기억되고 있는 오늘날의 누적된 기억 매커니즘'에 대한 보다 명확한 나레이션이 마찬가지로 미흡해 보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웹 2.0의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더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내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들에 의해 강제로 노출되고 있는데요. 글 서두에서 소개되고 있는 스테이시 스나이더와 앤드류 펠드마의 사례는 개인들의 지난 행적들이 강제로 미래인 현재에 불필요하고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작점을 통해 본격적으로 르포르타주의 형식에서, 좀 더 현실적인 서술의 기법으로 글이 이어지리라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의 논조와 주제 의식은 대체로 평이하게 논증되고 인용된 사례 역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부분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구글이 막대한 저장장치를 이용해 전세계 개인들의 '검색 결과물'과 여러 사적인 디지털 기억들을 무차별적으로 저장해 왔고 이것은 마땅히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시민들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초기 자기 테이프부터 시작한 이 디지털 저장 장치의 혁신적인 기술 발전이 애초에 네트워크 시대의 빠른 연결성을 감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광섬유를 비롯한 인터넷 통신망의 획기적인 발전 그리고 그에 따른 전세계 이용자들의 '디지털 자취들'의 무차별적인 저장이 윤리적인 문제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민주주의하에서 우리는 시민이자 소비자"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과거 기억들이 디지털화가 되어 통제력을 잃게 되는 현재의 상황이 'AI의 탄생의 디스토피아적 가능성' 보다도 우려스러운 상황임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쉰베르거 역시 이러한 사태와 관련해, 법과 제도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구글과 같은 거대 인터넷 기업을 시민들이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사실상 강조하고 있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한 5장의 6가지 대안들은 그런 측면에서 각자가 고찰해 볼 필요는 있지만 저자의 평가대로 이 대안들 자체가 직접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실효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다소 불확실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글에서 읽은 내용이지만, 미국 FBI가 안면 인식 데이터를 600만 건이나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체제 자체가 설사 민주주의라 할지라도 정부가 시민들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원한다는 점에서 '시민의 자유' 라는 측면에서 마땅히 상충되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조지 오웰이 예견한 살 떨리는 디스토피아는 아예 허망한 것이 아님을 이쯤에서 짐작할 수 있는데요. 저자는 글 5장에서, "아마존이 추천 도서를 제공하고, 구글이 좀 더 맞춤 검색 결과를 제공하는 혜택"을 과연 시민들이 포기할 수 있겠는가를 그럼에도 되묻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본주의의 효율적 차원에서의 맥락은 아닐텐데요. 시민들이 자신들의 '디지털 풋프린트'를 어느 정도 용인하에 구글과 같은 인터넷 기업에 양도하고 그에 대한 반대 급부로 자신의 소비와 정보 획득의 효율로서, 대체 어느 정도의 제한선까지 이를 수용할 수 있겠느냐가 앞으로 토론해야 될 부분이기도 한데요. 물론 이 책에선 자세히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국가 안보'라는 차원에서 어느 정권이든 시민들의 개인 정보에 접근하려는 욕구가 과거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점령한 네덜란드의 인적 정보를 낱낱이 뒤져 자신들의 의도대로 유대인들을 걸러낸 사례로 미루어 봤을 때, 정권이 다루는 시민들의 개인 정보 자체가 어느 정도 이러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생각됩니다. 사실 현재의 미국을 이러한 시민들의 사적 정보를 정보 당국이 소유하고자 하는 '시스템적 초기 시기'라고 규정했을 경우 미국의 사법 당국이 정보 당국의 이러한 의도를 시민의 이익과 사회의 공익을 위해 칼같이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신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시민이 민주주의 하에서 사법 제도를 신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독일계 변호사를 테러리스트로 오인해 멋대로 구금한 FBI의 사례를 보더라도 그런 오판은 개인의 삶 자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맨 서두에서 언급한 두 명의 미국 시민에 관한 일련의 '주홍글씨' 사건은 이들이 과거에 실수로 디지털적으로 영원히 낙인을 받을 것을 뜻합니다. 현재 미국의 교육계에선 청소년들에게 '페이스 북'과 같은 곳에 자신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려는 행동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인격이 갖춰지기 전인 청소년 시기에 남긴 글이나 행적들이 성인이 되어서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디지털 시대가 모든 평범한 인간의 '망각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개인 정보들은 복제되어서 더욱 확산될 수 있다는 면에서 일개 개인이 겪을 고초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는데요. 물론 그렇다고 저자의 의견대로 민주사회의 시민이 스스로 '자기 검열'이라는 기재에 막혀, 미처 할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방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내가 말한 의견이 사람들에게 공격 받을 것을 고려해, 의견 자체가 양심의 문제가 아닌 자기 검열에 떡하니 걸리게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슬픈 일일텐데요. 또한, 이것은 일전에 하버마스가 강조한 시민의 발언과 사회 비판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유사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이 과도한 '디지털 메모리'가 네트워크 시대의 기민한 연결 시대의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암울한 측면으로서 강화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쇤베르거는 이런 저의 관점과는 다르게 인간의 자연스런 망각 작용이 디지털 메모리에 의한 과도한 기억 축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삶 자체가 피폐화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일반적인 '프라이버시 문제'보다 먼저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디지털 시대의 소위 많은 혜택들을 온전히 거부하지 않는 차원에서의 기업과 소비자들 간의 신사 협정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쇤베르거는 판단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해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체제 내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 프라이버시'와 개인의 삶의 보호가 동시에 가능할 수 있을지는 정부와 정보 당국 및 인터넷 기업에 대한 시민과 여론의 면밀한 견제가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사법 당국이 이 시민들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설사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이라 할지라도 대테러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다수 시민의 개인 정보들을 열람한 정보 당국의 선례와 같은 것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미국 의회내에 지금과는 다른 정보 당국을 견제하기 위한 강력한 소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언제나 미국의 민주주의가 건실하고 튼튼해야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를 보고 건전한 정치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불거진 민간 의료 보험 문제를 개인의 자유로 강력하게 국한시켜버린 미국 시민들이 자신들의 프라이버시 문제도 똑같은 맥락으로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저는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미국 시민들의 앞날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다는 것은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개인의 차원에서 과거로부터 강제로 기억된 디지털 메모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도 부정적 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거대 인터넷 기업과 시민간에 불협화음이 상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시민의 프라이버시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어서 구글과 같은 기업들이 주도하는 시민들의 개인 정보 축적을 제도적인 측면에서 제어할 수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했던 모든 행동이, 그것이 위법이든 합법이든 간에 항상 현재 상태로 존재한다면 사고와 판단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과거의 행동들에서 분리할 수 있을 것인가?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에 이메일을 도입했을 때, 몇 년 뒤 케네스 스타 특별 검사가 자신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일상과 보좌진들이 보낸 이메일까지 낱낱이 드러나도록 마구 조사할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골치 아픈 일은 미국의 건강보험 회사들의 3분의 2가 건강보험 가입 신청자들을 걸러내기 위해 이들의 과거 처방 기록에 디지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여러 해 전에 각기 다른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된 정보에 제3자가 접근하는 것은 대체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권력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정보 권력을 재분배하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 종종 권력을 빼앗기는 사람들의 명확한 동의나 인지 없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런 방식으로 어떻게 우리가 양식 있는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한 사람이 여러 해에 걸쳐서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수정하고 얼마나 진화했는지 이해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누군가의 가치관과 사고, 그의 인격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우리가 보여준 모든 개인정보가 시간이 없는 콜라주일 때, 우리가 어떻게 그 사람을 오늘날 아는 것처럼 행세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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