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의 시대 - 통제하다 평화롭다 불안하다
아르망 마틀라르 지음, 전용희 옮김 / 알마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벨기에 출신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진보주의 학자로 알려진 아르망 마틀라르는 미디어와 문화 및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특히, 역사와 세계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지식인입니다. 그는 미국의 록펠러 재단과 연계된 피노체트 정권 이전의 칠레의 제도 개혁에 자문 위원으로 나섰으나, 1973년 미국 리처드 닉슨 정권에 의해 자행된 칠레 군부의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 이후, 칠레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그의 이력을 통해 살펴보면 자유주의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후 벨기에가 아닌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37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학업을 다시 이어가, 노력끝에 파리 8대학의 방문 학자가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파리8 대학의 정보통신학과의 정교수가 되었으며, 1983년과 1997년 사이에는 프랑스 렌2 대학의 정보통신학과에서 교수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97년부터 2004년까지 파리 8 대학의 교수를 역임하다 2004년 9월부터 동 대학의 명예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이 책은 원제, "La Globalisation De La Surveillance"로 지난 2007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2년 4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다만, 이 글은 현재 국내에서 절판된 상황입니다.

국역된 책의 제목으로 인해, 글을 읽기전에는 9.11 테러 이후에 불어닥친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안보 강화를 다룬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는데요. 사실 이 글의 정확한 요점은 "오늘날 점차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안보에 대한 인식과 과거 프랑스 혁명을 통해 이어진 다수에 의한 권리 및 그에 따른 공화주의"가 미국과 같은 헤게모니 국가에 의해 어떻게 침탈당했는지를 여러 사례들을 통해 살펴보는데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업의 이익과 그것을 보장하고자 하는 국가의 안보 함의와 이것이 각국의 정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분석하는 광범위한 안보에 대한 본질을 추구하는 일종의 르포르타주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글에는 알제리 독립 시기에 자행되었던 알제리인들에 대한 프랑스 군부의 조직적인 납치와 고문, 그리고 그것을 지원하던 각종 조직과 시설 등을 다루면서, 비슷한 맥락으로 미국이 국가 안보와 국익을 매개로 자행했던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의 조직적인 군사적 개입 및 CIA와 같은 안보 조직에 의한 작전 등을 거의 가감없이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에드먼드 버크의 초기 사상에서도 기인한 것이지만, 무질서한 대중들에 의한 사회 체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권력층의 요구는 통제와 질서의 붕괴 가능성에 따라 안보 개념이 탄생한 것으로 1장과 2장의 논증을 통해 저자는 규명하고 있는데요. 가브리엘 타르드와 귀스타브 르 봉에 의해 확산되었던 '조직된 대중' 혹은 '무질서한 군중'에 의해 사회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는 당시 지식인들과 지배 계급의 공포는 현재 우리가 짐작하게 되는 공포보다 지대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지금도 사회 질서와 체제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질서 자체를 수호하고자 하는 테크노크라트와 엘리트들이 이러한 관념을 견고하게 지지하는 것도 분명합니다. 이것에는 저들의 사활적 이익이 체제적 안전이라는 틀안에 교묘히 숨겨져 있습니다만 그것을 떠나 설사 체제 자체가 건전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저들의 우려를 동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자유 세계의 리더라는 미국과 현재의 이 체제를 같이 고민하고 만들었던 서구 유럽 국가들이 자유주의적인 이론적 토대하에 '현실적인 살'을 갖다 붙인 것이 지금까지 국제 체제가 만들어진 과정이었습니다. 물론 국내 정치적 환경에서 저들이 자신들의 침해받지 않는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 공화주의와 민주적 절차를 절충해 받아들인 것이지만, 헌법의 존재 의미를 되도록이면 언급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현재의 안보에 대한 주요 국가들의 사회 제도와 그 태도의 기본적 인식에 있어서 전자와 같은 유사한 궤를 같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헌법이 먼저냐, 체제가 먼저이냐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요. 물론 이것을 후자가의 입장이 이데올로기화 되어 변질된 자유주의적 인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보이는 분석과 마찬가지로 위의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타국과 국제 체제에 능동적으로 개입할 필요성에 대해선 다소 주저했던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즈음에서 소위 현실적 맥락의 보수주의라고 부를 수 없는 보수주의자들이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죠. 이처럼 자신들의 국가 체제에 있어서 현재의 토대를 지키려고 하는 일차적인 요구가 처음에는 타국에 - 미국에 있어서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대해 명분 없이 개입하는 것을 꺼려했으나, 이 보수주의자가 아닌 자들에 의해 환경 자체가 백팔십도 변하게 됩니다.

지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냉전시기의 이 보수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그 가운데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들도 있었지만, 당시의 소위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자들은 명확히 말하자면 거의 '반공주의자'에 가까웠습니다. 즉, 민주적 가치에서 흔히 이해하고 있듯이, 정치에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결코 균질화될 수 없는 것인데, 이것을 넘어 사회 전반의 건전한 비판에도 이'공포의 레드'를 노골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아르망 마틀라르는 이 글의 6장에서, "매카시즘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같이 강력한 보수주의"라는 표현으로 이를 수식하고 있었는데요. 저자의 이러한 인식에 충분히 동의를 하게 됩니다. 최소한의 부조리를 개혁하기 위한 사회적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면서,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기존의 지배 엘리트들이 다수의 대중이 모인 그 '집합체'를 본질적으로 혐오하고, 잊지도 않은 혁명의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철지난 이상주의로 몰아왔는데요. 이 철저한 반공에 대한 노스텔지어는 지금도 강한 생존성을 갖고 있다 여겨집니다. 물론 시민의 자유를 포함한 민주주의에서도 충분한 함의를 갖고 있는 '자유주의'에 대해 저 역시 크게 긍정하고 있습니다만, 저 반공주의자들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지칭하는 자들)에 의해 규정된 자유(소수 기득권의 자유과 자유 시장 담론)와 다수 시민들의 자유가 그 맥락이 다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모두의 자유를 함의하는 것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안보 욕망이 오늘날 국가 체제 안정과 주변의 정치적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소수 힘있는 국가들에 의해 -특히 미국-  조직적인 군사적 개입 등을 나타난 것입니다.

이 글의 4장에서는 앞선 국가들의 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비대해진 안보 조직'에 대한 성역화를 먼저 꼽아 볼 수 있겠는데요. 미국의 CIA와 같은 경우 무조건 의회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긴 하지만, 이 정보 조직들은 기어코 헌법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동안 CIA는 테러리스트로 오인해, 프랑스와 미국의 시민권자를 납치한 경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의회와 사법 조직이 마땅히 경고하고 응징해야 했음에도, 이들에게는 아직도 치외법권적인 안전망이 존재합니다. 사실 이 뿐만 아니라 이들이 장차 시민들을 억업하거나 형식상은 민주주의이나 거의 '과두제에 준하는' 체제에서 시민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이것은 합리적인 의심을 갖을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에게서 정보 조직에 대한 명확한 정치적 견제가 이뤄지고 있다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직화 된 과정들이 과거 안보에 대한 프로파간다의 확립과 카를 슈미트와 같은 '예외 법칙'을 주장한 지식인들에 의해 마련되었는데요. 더욱이 이 슈미트의 논리들은 이후, 미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권 국가' 혹은 '종속 국가'에 별다른 도덕적 자책감이 없이 군사력을 투입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안보가 위협받는 비상한 시기이니 마찬가지로 비상한 작전과 개입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이죠.

다음, 8장에서도 논하고 있는 것처럼, 자유시장과 그에 따른 세계화에 따라 국가의 체제 안보는 더욱 중요한 관념이 되었습니다.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오늘날과 같은 긴밀히 연결된 시대에는 주변 국가 뿐만 아니라 견고하게 구축된 체체 전체의 안전이 중요하게 되었는데요. 신자유주의 시기에 정치가 경제의 시녀가 된 것을 차치하더라도, 주요 경제국들이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막대한 국방력을 투입하게 된 연유에는 이러한 자신들의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2001년 9월 이후 더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자유 시장과 무역을 위한 미국의 강조는 '중동 테러리즘의 축출'과 더불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대로 자유 민주주의는 좀 더 다원성을 지각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동등한 시민들의 권리 또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가 믿었던 체제입니다. 그런데 테러리즘의 시기라는 명목하에 안보 조직이 정치의 장이나 시민의 활동의 분야에 까지, 그 합법성을 운운하며 따지고 들려 하고 있으니 그 자체로 민주주의적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다수는 현재의 미국 정치가 민주주의하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있으니 전자와 같은 터무니 없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특히 우리의 민주주의가 소위 '정치적 톨레랑스'를 잃은지 이미 오래된 상황이면서, 또한 정치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한지 40여년이 넘었기에 이것을 마냥 안심하면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칠레에서 추방된 경험을 익히 겪었기 때문에, 안보에 대한 맥락이 어떤식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10장에서 논하고 있는 "시민 보호의 취약성"은 단순히 부풀려서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요. 유럽 연합이 2001년 이후 개인정보 수집과 관리에 대한 공격적인 대책을 신속하게 통과시킨 것은 이를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러한 이행 가운데, 우리와 우리가 아닌 사람들을 구분하고 더 나아가 유럽의 이민자들을 테러리즘의 배후로 인식해, 이들에 대한 시민권과 관련된 가혹한 조치를 시작한 것은 우리에게도 시시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유대인을 비롯한 비 게르만계 주변 이웃의 시민권을 침해하면서 이들을 격리시킨 나치 독일의 사례를 보면, 이와 같은 반이민주의와 그에 따른 강력한 안보 함의는 다소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마치 시민들의 안전이 국가의 일부 조직에 의해 인질로 잡힌 경우라고 볼 수 있을텐데요. 더욱이 고도화 되어 가고 있는 네트워크 시대에 개인 정보와 기본 권리가 기업과 국가 조직에 들어가 있는 상황은 헌법의 유명무실화를 통해 달성되고 있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현실적인 시민들에 의한 국가와 국가가 주도하는 안보 정책의 현실적인 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일종의 중립적인 민간 감시 기구를 만들어서 헌법이 이들에 대한 법적인 감찰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각국의 안보에 대한 매파가 득세하지 않도록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이 정치 일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고 있으며, 작금의 세태 자체가 다음 세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정치 환경의 개선과 무엇이 민주 국가에서 제일 필요하고 시급한 것인지를 공화주의와 헌법에 입각해, 다시금 고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철지난 이상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여겨지는데요. 또한, 이 지점에서 지배 엘리틀이 다수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자각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안전사회는 18세기 후반 이후 스코틀랜드 출신의 계몽주의자 애덤 스미스와 중농학파의 수장 프랑수아 케네가 초석을 쌓은 자유주의와 혼합된 형태다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군중에 대한 토론은 언론 자유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통해 획득한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표현법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징조였다

귀스타브 르 봉의 의견에 따르면, 군중은 프랑스대혁명과 함께 시작된 평등주의에 대한 망상이 승리하면서 불거져 나온 것에 불과했다

가브리엘 타르드는 ‘여론과 군중‘에서 군중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다시 강조한다

이 같은 조치는 1798년에 시작된 ‘외국인 단속법과 치안유지법 Alien and Sedition Acts‘과 동일 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 법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평화 유지를 명분으로 수천 명의 미국인을 구속하고 독일 출신 미국 시민권자들의 워싱턴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물로 근방 5킬로미터 내에 접근하는 것까지 차단했다

테크노크라시라는 용어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활동하던 윌리엄 헨리 스미스가 1919년 잡지 산업 경영 Industrial Management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들의 기대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영원한 전쟁"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발터 밴야민은 1930년,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에게 "매우 특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라틴아메리카를 부차적 국가로 분류했다. 그 원인은 19세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적 코드와 "정복 없는 미국의 원정문화"에서 나타난다

1954년 8월 4일. 르몽드 Le Monde에서 샤를 라쉬로이는 온건한 민주주의의 프로파간다가 그들의 타깃 중 10분의 9를 벗어난다고 말했다. 반면 엄격하고 강력한 수평 구조의 계급사회에 편입된 프로파간다는 최대의 효과를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쿠바혁명에서 영감을 얻은 크고 작은 혁명의 움직임이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속출하면서 미국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남반구의 안전을 위해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 간 군사협조 시스템 계획을 재가동시켰다

2년 후, 미국 정보기관들과 닉슨 대통령에게 국가안전보장에 관해 고문 역할을 했던 헨리 키신저와 아르헨티나 독재 정권,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우루과이의 정보부장관들은 납치와 강제 실종 그리고 고문이 자행된 ‘콘도르 Condor 작전‘을 실행했다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는가? 라는 물음은 점점 더 절박한 방식으로 서방 국가 지도자들과 기자, 연구원 그리고 대중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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