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외교는 도덕적인가 - 루스벨트부터 트럼프까지
조지프 나이 지음, 황재호 옮김 / 명인문화사 / 2021년 8월
평점 :
조셉 새뮤얼 나이 주니어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고 있는 국제정치학자입니다. 그는 현실 정치와 이론 간에 거의 치우치지 않은 많은 경험을 갖고 있기도 한데요. 학자로서나 혹은 정치인으로서 이러한 균형적인 경험은 유익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나 프린스턴을 거쳐, 명예로운 로즈 장학금으로 옥스포드에서 수학하고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게 됩니다. 나이는 1964년부터 하버드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여 1985년부터 1990년까지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국제 문제 센터의 이사로 경력을 쌓게 됩니다. 뒤이어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당시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제 안보 담당 차관보를 역임하고, 이후 국부부의 공로 훈장을 수여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헨리 키신저와 달리 국제정치에서 자유주의적인 해결 방안을 추구하는 학자이자 관료로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이 글에서도 간략하게 나오지만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를 세계에 확장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대외 기조가 자유주의적 정책하에서 국제 무대에서 합의와 신뢰의 구축이라는 토대를 마련했던 것이 다수의 현실주의자들이 공격하는 자유주의적 정책의 성과물이라고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행정부의 도덕적 원칙을 분석해보는 가운데, 조지 W. 부시 시절의 공격적 현실주의적 입장을 천명했던 네오콘의 부류들과 확실히 상반되는 견해를 그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비판과 이러한 인식의 지점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그의 노작을 통해 전공자들과 일반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 보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이의 이 글이 꽤 의미있는 연구물이라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원제, "Do Morals Matter? : President and Foreign Policy from FDR to Trump"로 2020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1년 8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최근에 번역된 이 책과 관련해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요. 제본된 책 중간에 3칸의 흑색 표시가 전 페이지에 걸쳐 너무 도드라지게 표시되어 있어서 가편집된 상태의 미완성본을 돈주고 구매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인쇄소의 문제로 추측되는데요. 구매한 입장에서는 다소 불쾌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인 조지프 나이는 책의 제목이 가리키고 있는 국제 외교 정책에서의 도덕주의와 관련해, "도덕적 외교 정책은 의도 대 결과의 문제가 아니고, 유럽 계몽주의 전통의 임마누엘 칸트의 입을 빌어, "기본적인 가치들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설사 자유주의적 순진함으로 매도된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도덕적 의무는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외교 정책을 단순히 다른 국가들이 최대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정책과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겠습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 글의 7장인 조지 H. W. 부시와 관련된 인식에서. 냉전 시기에 소련이 있었기에 "이와 같은 세력균형 상황이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자만심을 제어할 수 있었다"고 언급되는데요. 이처럼 이는 초강대국인 미국의 외교에 있어서 적절한 세력 균형이 자신들의 국익에 부합되었다는 의견입니다. 더욱이 미소 양국 간에 보유한 핵무기로 인한 상호 확증 파괴 (MAD) 가능성이 역설적으로 40여년간의 번영을 이끌어 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전후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부터 최근의 트럼프의 백악관까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서는 CIA와 특수군을 동원해 여러 국가들의 정치에 개입한 것"은 암울한 역사의 한 단락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결국 어느 정도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적 기조가 서로 경직되지 않고 경우에 따라 적절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최종 결정권자(이를테면 대통령)의 면밀하고 예민한 감각이 있어야만 할 텐데요. 이 부분과 관련해 조지프 나이는 상황 지능과 감성 지능 등을 이용하여, 각 시기의 대통령들의 공과를 꽤 정밀한 객관성으로 분석해 내고 있습니다.
우선 나이의 이 글에서 다른 여타 글들과 비교해, 크게 고유성을 갖고 있는 분석이라면,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까지 각 대통령의 임기내 정책들과 평가에 대해 나름의 '윤리적 성적표'를 제시하고 부분이었습니다. 대표적인 현실주의자들인 조지 케넌과 미어셰이머 혹은 키신저 등과는 저자인 나이와는 조금 구별되는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하지만 나이가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자유주의적 이상주의를 긍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의 국익과 관련해서는 선후의 판단을 들어 무리가 되더라도 미국에게 유익한 결과물을 안긴 정책들에 대해선 긍정하고 있고, 지미 카터와 같은 경우 진솔하고 도덕적인 대통령의 품성과 의지를 긍정하면서도 당시 국제 외교의 여러 이슈들에 있어서 그저 단순히 순진한 측면만 내보인 카터를 어느 정도 비판하면서 논점에 대한 균형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 지점은 많은 현실주의자들이 공격해 마지않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의 도덕적 원칙이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대체로 무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최소한의 도덕적 원칙을 갖고 있어야만 미국의 정책적 결정에 있어 일종의 국제적 명분을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첨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를테면, 과거 빌 클린턴 대통령의 보스니아 사태와 소말리아에 대한 외교적 무능에 있어 당시 유럽 국가들이 적잖게 그에게 실망했다는 것을 반증으로 제시할 수도 있는데요. 자유시장이나 민주주의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일정한 원칙을 강조하는 미국의 지도층과 향유된 권력이 이것을 시시때때로 어떠한 원칙 없이 즉흥적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국제 여론과 미국의 동맹국들이 이를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국제 제도와 그러한 원칙들을 조율하고 결정한 미국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비대칭 동맹들이 미국의 정책에 일희일비하고 심지어는 냉전이 시작된 시기에 미국이 과거의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실로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후에 유명한 트루먼 독트린을 통해서 당시 한국 전쟁과 같은 공산주의 세력의 도발에 전혀 망설임 없이 최대한 시급하게 개입하게 되었던 진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국 외교사에 있어 가장 중대한 시점으로 여겨지는 베트남 전(戰) 발발과 미국의 참전과 관련해, 케네디 행정부 부터 존슨 그리고 닉슨 시기까지 후에 제한된 국력을 투사할 수밖에 없었던 냉전시기, 더 빠른 베트남 전쟁에서의 탈출이 그만큼 지연된 것은 저자가 판단하기에도 아쉬운 부분으로 진술되고 있습니다. 닉슨 행정부 시기,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와의 기적적인 회담과 당시 중공에 대한 미국의 대화 의지가 마찬가지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냉전 종식과 꽤 설득력 있게 양자 간의 연계가 글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키신저보다 닉슨이 중공의 개방을 먼저 포착했다는 것은 그만큼 흥미로운 부분인데요. 그가 비도덕적인 공작 정치로 자신의 임기를 도중에 끝낼때까지 닉슨은 공산권에 대한 명확한 의지를 갖고 있던 대통령이었습니다. 이처럼 각기 백악관의 주인들에게선 그들의 두드러진 개성 만큼이나 참모를 대하는 태도, 각료에 대한 인선, 국민을 재교육시키는 태도라든지, 여론에 대한 입장 등 선출되고 나서의 통치 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나이는 대통령들에 대한 사생활적인 부분에서부터 출생과 가족 관계의 분석으로 이 행정부의 수반이 어떠한 도덕적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지에 대한 해박한 시각이 글 전반에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이 부분은 이 글의 특징적인 부분이기도 한데요.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당시 존슨 대통령의 비도덕적인 통킹만 사건으로 시작된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의 개입은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었습니다. 고립과 개입이라는 미국 외교사의 주요한 국제 정치적 수단으로 제시되고 있는 '과거 윌슨 대통령의 자유주의'와 관련해서도, 이 베트남 전쟁의 성격은 매우 복잡한 양상을 갖고 있습니다. 존슨 자신이 주창하는 미국의 '위대한 사회'를 위해 이 베트남 전쟁을 이용했다는 것은 분명 주지된 사실이기도 한데요. 처음에 반대에 입장에 있던 그가 도덕적 원칙을 저버리면서까지 앞선 정치적 술수에 몰입한 것은 그와 미국에 있어 불행한 일이기도 했는데요. 당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 내의 전반적인 반전 여론을 나이는 거의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1950년대 초반의 '매카시즘의 광풍'과도 같은 심각한 국론 분열을 야기시켰습니다. 적절한 예시인지는 모르겠으나 '레이건이 사뭇 중요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카터는 레이건의 케이스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고 분석하고, 물론 존슨이 카터와는 다른 류의 대통령이었지만 지도자가 최소한의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이거나, 견실한 참모들의 조언을 제대로 듣지도 않는 경우에서 어떠한 결과가 초래할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가정이지만 베트남 전쟁에서의 보다 이른 탈출이 시도되었다면 이후 냉전의 양상도 그만큼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로널드 레이건과 관련해서도 이 글에서 몇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언급되고 있었습니다. 우선 심각한 정치적 스캔들이었던 이란-콘트라 사건에 있어서 그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닉슨처럼 마땅한 정치적 후과를 받지 않은 것은 일종의 불공평한 일이기도 할텐데요. 이 이란-콘트라 사건을 그의 거대한 업적에 비해 눈곱만큼도 안되는 과오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국내외에 아직도 많기 때문에 이러한 대통령의 비도덕적인 개입을 그저 과업으로 넘어가려는 행태라고 생각됩니다. 냉전을 종식시키는 데 역사적으로 큰 기여를 한 로널드 레이건의 업적이야 대단한 것이지만, 콘트라 사건에 연루된 모든 자들에게 사법적 처벌을 회피하게 하는 사면권을 임기 말에 쥐어준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레이건과 관련된 글의 6장에서 레이건이 이 콘트라 사건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을 동의했다고 나이가 언급하고 있는데, 당시 콘트라 사건은 레이건 행정부의 거의 기밀 사항이 아니었던가요. 이 부분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냉전의 종식과 관련해 레이건 특유의 공갈과도 같은 압박으로 소련을 화해의 장으로 나오게 만들고, 대 소련 정책에 대한 그의 실용주의적인 해법은 충분히 긍정적인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칠레와 그레나다, 파나마 등에 불법적으로 개입하고 동티모르를 침략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을 지지한 클린턴 행정부 시기의 그러한 외교적 맥락들이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미국의 거대한 선명성인 선(善)의 정치와는 사뭇 맞지 않아 보이는데요. 더군다나 조지 H. W. 부시 시절의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생포하기 위해 주권 국가에 불법적으로 군사력을 투입한 당시 행정부의 결정에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인정하는 나이의 진술은 역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미국처럼 사활적 이익을 중요시하는 국가에게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조금 철지난 논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철두철미한 도덕적 관념을 지닌 대통령이 무능한 정책과 무의미한 결단(이를테면 지미 카터 행정부)을 갖고 있었다는 식의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일 텐데요. 사실 장황하게 글을 썼습니다만, 외교 무대에서 일견 전세계의 일극 국가라 할지라도 도덕적 명분과 본보기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야만 하는 부분입니다. 미국과 같은 비대칭 동맹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국가는 자신들의 국익과 다수 동맹들에게 있어서 최소한의 명분을 갖고 국제 체제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물론 외교 자체가 독립된 고유한 권리로서 미국이 이를 이끌어 나간다고 공언할 수는 없지만 세계 민주주의의 맏형으로서 정치적 결정과 관련해, 최소한의 도덕적 함의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실주의와 자유주의간에 모두가 동의하는 공통된 인식을 서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것은 민주주의 혹은 인권과 합의 정신 및 국제적 제도에 대한 신뢰 등을 말합니다.
과거 존 코널리 재무장관은 동맹국들에게 "달러는 우리의 통화이지만, 곧 너희의 문제"라고 발언한 바가 있습니다. 일개 재무장관의 오만함은 둘째치더라도, 그가 언급하는 것은 당면한 국제적 현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깊은 기대를 안고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의 실패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혹자는 오바마를 가리켜 "지미 카터보다도 무능한 인사"라고 혹평을 하기도 합니다. 임기 초기에 국민들과 주변인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발언을 많이 했던 오바마는 그래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도 많이 비교 되기도 하였습니다. 중동에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그의 임기에서 리비아에 대한 신중한 개입과 자신이 주도하는 미국의 국제 정치가 과연 어떻게 외부에 비쳐질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 중동의 민주화에 국제사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견 그의 심사숙고가 꽤 신중하게 보였습니다만 중동에서의 민주화 혁명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치적 한계로 보여집니다. 나이의 의견대로 오바마의 독트린 자체가 "멍청한 행동은 하지마라"라고 요약된다면, 이후 그의 무능으로 인해 초래된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탄생은 미국 국내의 정치 상황에서 매우 극심한 정치 불신을 야기시킨 결과물이기도 한데요. 너무나 많은 것을 고려한 나머지 필요한 결정을 적절한 시기에 내리지 못한 그의 우유부단함은 경제적 문제에서 대부분 실패를 맛본 지미 카터와 유사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미국의 평론가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 자체를 분석하고 평가하려는 태도 자체가 실로 무의미한 일이다. 그가 평범한 정치인도 아닐 뿐더러, 그의 가슴에 무슨 대의나 선에 대한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했던 인물이었다. 그가 정치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언급한 내용이 문득 기억이 났습니다. 저자인 나이의 언급대로 트럼프는 스스로 정치나 국제 외교에 별로 아는 것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전혀 배울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던 그야말로 처참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관료나 측근들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특출나는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짐작대로 자신의 이권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 자신의 딸과 사위 등을 통해 이를 증명시킨 바가 있습니다. 트럼프는 왜곡된 포퓰리즘 정치인이자, 신자유주의에 매우 걸맞는 사익 추구의 완성형 인간으로 당시 미국 정치가 도덕적인 가치에 있어, 엘리트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몰락한 상황이라 볼 수 있을텐데요. 한 국가의 무모한 일방주의 만큼이나 국내 정치에 있어 만연된 개인주의와 사익 추구는 거의 도덕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글 초입에 강조되는 도덕적 원칙과 관련해, 현재 미국은 과도한 자유주의적 담론 등으로 인해 시장 자유를 옹호하는 신자유주의를 제외한다면 대체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담론이 전무한 것은 명백합니다. 그래서 저자인 나이가 "미국 국민들에게는 오로지 신자유주의 뿐이다"라고 언급했던 것인데요. 사실 경제적 자유와 이를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의 득세가 설사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의 독성을 제거할 시간은 그들에게 충분히 주어졌다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에 대한 필요한 의지는 거의 전무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과거 네오콘과 신자유주의자들과의 관계, 그리고 미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강요되어 온 그러한 국제 외교 전반이 타협과 원만한 합의를 실종하고 그것을 가속화시키기 위한 국방력 향상과 방산 업체의 이익 증대까지 이런 주도적인 메커니즘이 40년 이상 미국 사회에서 강화된 것은 익히 주지된 사실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전반적인 국제 체제가 세계화와 그에 따른 시장 자유를 위해 그동안 산파의 역할을 해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이렇게 고착화된 환경에서 나이는 도덕주의적이고 윤리적인 원칙의 실효성을 앞으로 있을 중국과의 대결과 혹여 있을 국제 무대의 무질서를 제시하며 어쩌면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힘을 외교에 투사할 수 있는 그러한 정책과 수단들에 있어 미국이 필요에 따라 국제 규범을 어기고 일방적인 군사력을 투입하고 주권 국가에 개입한 역사들을 나이와 같은 정치 이론가들이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면 그의 아이디어는 거의 유명무실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단순히 정책적 결과를 세계의 국가들에게 알리면서 미국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 도덕적 원칙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차라리 한스 모겐소와 같은 철저한 현실주의 논법을 더 연구하는 것이 미국에게 더 유용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인간에게 도덕적 원칙은 인간성을 규정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권력의 속성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더 많은 국가들의 원리 원칙에 있어서도 이 도덕은 애써 무시받을 정도로 쓸모 없는 것은 아닐겁니다. 이 부분은 역시 나이도 거듭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인 나이는 좀 더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도덕주의적 원칙을 새롭게 제시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이 글이 미국 외교사의 한 영역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있어 보였습니다만 더불어 그만큼 한계도 이처럼 명확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미국과 같은 강대국에게 도덕이 국제정치와 외교에서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유명무실한 가정으로 전락한다면 이것을 초래한 노골적인 힘의 투사를 현실적으로 뒷받침하는 국방력과 정보력 등으로 화살을 돌려야 할까요. 자신들이 보유한 힘 앞에서 절제를 보이지 않고 쉽게 가려고 하는 백악관 수장의 개인적 특성으로 치부하기에는 미국이 가진 힘이 정말 무시무시한 것은 부정할 수 없을겁니다. 무정부 상황의 국제정치를 과연 민주주의적 합의로 나아가는 것을 미국이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먼저 결정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민주주의와 도덕은 서로 긴밀히 소통하고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오바마 행정부를 다룬 글의 8장에서 나이는 "국제금융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그의 조치는 세계적인 공황과 불황을 막은 결정적인 행동이었지만, 실업률이 증가하는 가운데에서 은행들을 살린 것은 대중들의 불만을 야기했다"고 진술하고 있었는데요. 기존의 국제금융체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 없이 그저 파급의 측면에서 미온에 방지한 오바마의 결정을 막연하게 존중하며, 한편으론 대중의 불만이라는 언급으로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모양새가 나이의 여러 분석과 평가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었습니다. 오바마가 월 스트리트로부터 막대한 정치 자금을 받았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현재의 국제금융체제가 별반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읽혀져 저는 뭔가 안타까웠는데요. 그 막대한 공적 자금으로 노후 연금 놀이를 했던 CEO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책임이 있는 자들, 어느 누구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을 비평하나 없이 그저 진술로 때우는 것은 심히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대중들이 왜, 어떤 부분에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최소한의 앞뒤 맥락 정도는 삽입해야되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가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과테말라, 이란, 그리고 일부 정부들이 전복에 개입했던 외교적 결정들은 윤리적 정당성에 의문을 남겼다
마찬가지로, 2016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1960년대 이후 전개되어온 깊은 인종적, 이념적, 문화적 분열의 결과가 반영된 것이다
외교정책에 있어 진정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으며, 자국의 이익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도덕성이 외교정책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극단적인 현실주의자들의 관점이다
미국이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정책을 생각할 때, 미국의 대통령들은 선한 가치를 표방하는 것과 함께 이를 성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세계정치의 제도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오늘날 세계정부는 존재하지 않지만, 세계 통치를 위한 어느 정도의 세계 거버넌스 기반이 구축된 상태이나, 국제사회에서의 무정부 상태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강압과 강제력의 수준은 지역적 선택과 권리를 제한하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이젠하워는 CIA 국장 덜레스가 여러 국가에서 암살 시도를 포함한 은밀한 행동에 참여하도록 허용했는데 이는 양극체계의 냉전에서 가능한 한 공산주의 진전을 막아야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플로리다 해안에서 90마일 떨어진 쿠바에 대한 것이지만 동시에 베를린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존슨은 ‘위대한 사회‘의 법제화가 자신의 유산의 핵심이라고 믿었다. 이것 때문에 존슨은 의도적으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전쟁에 대해서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코널리는 동맹국들에게 "달러는 우리의 통화이지만, 곧 너희의 문제"라는 유명한 발언을 했다
레이건은 정말로 냉전을 끝냈는가? 그의 언변과 소련을 압박한 군비 증강은 부분적으로 그 결과에 기여했지만, 레이건의 진정한 기술은 공격적인 수사를 실제적인 협상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