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의 시대 - 페미니즘은 끝났다는 모함에 관하여
크리스틴 J. 앤더슨 지음, 김청아.이덕균 옮김 / 나름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휴스턴 다운타운 대학 (UHD)의 인종 연구 센터의 심리학 교수이자 연구원인 크리스틴 J. 앤더슨은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크루즈 (UC 산타크루즈)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양성 평등과 사회 심리학 및 여성 심리학 등을 연구해 오고 있는데요. 그녀는 아직까진 해당 연구에서 신진 학자로 알려져 있고, 스스로 여성학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팔로우수가 이제 220명이 넘는 그녀의 트위터에도 잠시 방문을 해보기도 했는데요. 다만, 위키 백과에서도 저자에 대한 자료가 등재되어 있지 않고 웹 상에서도 특별한 정보가 나오지 않아 저자에 대한 소개는 아무래도 이정도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원제 "Modern Misogyny : Anti-Femnisim In A Post-Feminism Era"로 지난 2015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 10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쉽지 않은 논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매끄러운 번역을 해주신 두 분의 역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번역된 글의 부제인 "페미니즘은 끝났다"는 것에 대한 반론이 이 글의 주요한 논점이 아니라, "그동안 여성들의 권리가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도달했기 때문에 이제는 여성의 전통적인 성역할과 남성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외모 치장과 전통적인 순종허는 여성상을 추구할 것"을 주장하는 '포스트 페미니즘'에 대한 매우 상세한 반론이라 할 수 있겟습니다. 바로 1장과 2장이 그런 내용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준비되어 있는데요. 먼저, 저자가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포스트 페미니즘과의 연관성'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저역시 저자인 앤더슨의 논증을 통해 이해한, 그녀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이 높다고 여겨졌습니다. 1장 도입에서, 저자는 "포스트 페미니즘은 특히 1980년대에 미국과 영국에서 널리 퍼진 신자유주의와 잘 어울린다"고 언급하고 이는 다음 2장에서 논증될 "9.11 테러 이후 신자유주의가 교묘하게 공공 분야의 지출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면서 시민들의 권리를 축소하고, 고통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과거 전통주의적인 여성성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포스트 페미니즘과 신자유주의는 발을 맞춰왔다고 요약되고 있습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여성주의 운동 자체가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주주의적 이념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며, 이를 확대해보면 결국 여성들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이해와 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관념체계 자체가 우리의 민주주의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포스트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여성들의 전통적인 성역할에의 복귀와 강요는 앞선 진술대로 신자유주의와 깊이 관련되어 있는데요. 2장에서 상세하게 논증되고 있는 '비상 상황'에서, "전쟁 기간의 시민권은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사치가 된다"는 언급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즉, 이 부분에서 신자유주의는 진보주의 운동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이 당시 어떻게 신자유주의가 신보수주의(네오콘)와 결합이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될만 합니다. 일전에 데이비드 코츠의 주장대로 신자유주의자들은 유독 국가의 막대한 국방비 지출에 대해서 만큼은 매우 관대한 편인데요. 아마도 이 지점에서 네오콘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의 야합이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이미 1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어떻게 신자유주의가 포스트 페미니즘과 연결되는지 저자가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포스트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을 약하시키고 신자유주의의 금과옥조인 이윤, 사유화, 개인주의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필수요소라 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시장을 중시하는 문화를 일상생활 전반에 뿌리는 내리는 것, 복지 '개혁'(빈곤층 지원 축소)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이미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만 덕을 볼 수 있는 일종의 소비자 시민권을 장려하는 것"이라고 요약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특권 혹은 특권층에 관한 부분은 4장, 남성의 종말과 소년의 위기에서 다루고 있는데요. 그것은 "강한 특권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온갖 좋은 것을 받아 마땅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실 시장 자유라는 명목으로 시민 절대 다수에게 강요했던 신자유주의적 이념이 실상은 특권층과 기득권 계급 및 엘리트들을 위한 비타협적 관념 체계로 이는 민주주의적 이념인 평등에 반하는 것이고,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 계급 정치를 용인하지 않는 기본적인 골자를 위해하는 것으로 그동안 평범한 노동자들마저 이런 논리에 세뇌되어 왔다는 것이 그동안의 수많은 연구로 밝혀진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시 페미니즘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알고 있는 페미니즘 자체는 좀 더 사회적 맥락에서 여성들의 권리에 대해 이해하고, 인종을 가리지 않는 여성 전체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자도 3장에서 '남성 혐오'를 내포하고 있는 극단주의와 극단주의자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대체로 3장에서 논증되는 바와 같이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에 대해 대체로 '중립적인 인식' 갖고 있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또한, "페미니즘의 주장에 동의하는 많은 여성은 페미니즘이 부정적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칭하길 꺼린다고 알려져 있다"는 진술은 페미니즘 운동 자체가 얼마나 외부에서 왜곡해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는데요. 사실 페미니즘은 소년 시절부터 주입되는 '남성성에 대한 터무니없는 강요' 방지한다는 점에서 남성들에게 유익하고 아무 이유 없이 대다수 여성을 적대시하는 분위기를 이성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충분히 기여를 할 수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여러 주장들 가운데 주의깊게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높은 교육을 받고 인정을 받는 성공한 여성들조차도 심지어 남성들의 연애 요구와 섹스 요구에 응해야만 한다는 포스트 페미니즘의 주장이었습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이미 여성들의 권리가 충분히 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이제는 과거 전통주의적인 여성성에 여성들은 집중해야 한다는 일종의 당위성이었는데요. 전반적으로 현재 미국에서 일고 있는 "남성이 원하는 연애를 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적대감"이 이것에 기반한다고 생각됩니다. 첨단 과학의 발달과 합리적인 이성의 시대라고 불리우는 현재의 세기에 아직도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이토록 무시하는 행태가 있다는 것이 실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과거처럼 여성들이 익히 알면서도 고분고분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남성들이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습니다만, 종래처럼 여성들과 성소수자들, 유색 여성들의 권리를 '백인 여성들의 권리' 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만인이 긍정하는 인권법과 사회 체제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인데요.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극단적인 혐오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지 작금의 시점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앞선, 유색 인종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 글 1장과 2장에서 꽤 논의되고 있는 사항이 있는데요.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들이 성적으로 문란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이들을 백인 여성들 만큼이나 사회에서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미국 사회에서 인종주의적 편견은 아직도 타파되지 않은 상황이고, 4천만이 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한 도를 넘는 태도와 선입견은 아직도 여전한 편입니다. 더 심한 말로,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들을 소위 '창녀' 취급을 하면서, 반대로 백인 여성의 인권은 예외로 취급한다든지, 고학력 전문직 백인 여성들의 권리와 그렇지 않은 서비스 직종과 '파트 타임 잡'에 있는 여성들의 인권을 예외취급하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포스트 페미니즘의 노골적인 구분법입니다. 이는 제도권 교육을 받은 많은 미국 남성들에 의해서도 이러한 시각을 볼 수 있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여성, 즉 능력있고 사회에 귀감이 되는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대부분 미움을 받는다"는 분석을 하고 있는 5장에서는 남성들에 대해 대체로 고분고분 하지 않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에 대한 원초적인 반감을 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높은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남성을 혐오하거나 남성과의 연애를 회의적으로 볼 것이라는 일부 주장들과 맥락을 같이 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은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남성들의 보살핌을 받는 존재들이라는 인식 아래, 좀 더 남성들에게 고분고분해질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광범위하게 오랫동안 진행된 민주적 사회에서 과연 이러한 왜곡된 가치 체계들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인가는 여러분이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남녀간의 입장차이나 어떤 대결 구도에 집중해 이를 일종의 중화하고 개변시키는 어떤 당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남녀 평등의 기본 가치와 사회적 약자와 성소수자, 인종소수자들에 대한 권리 문제는 염연히 민주주의가 마땅히 보장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과 한 묶음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처음 글 도입부에서 저자는 포스트 페미니즘이 여성의 몸을 성애화하고 대상화 하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었는데요. 이것은 우리가 "거의 벗다시피 한 여성의 몸을 즐기는 것이 다시금 괜찮은 일이 되어버린 상황"을 스스로 반성하게 하였습니다. 물론 1장에서 하이힐을 신고 추는 '폴댄스'의 사회적 의미와 더불어 "자신의 몸을 과시할 준비가 돼 있는 여성은 누구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에 많은 젊은 여성이 매력을 느끼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는 저자의 놀라운 언급이 있기도 했습니다. 여성의 몸을 성상품화하고 이를 확대시키는 것이 여성들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즉 몸이라도 팔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득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이념과 동시에 포스트 페미니즘이 그러한 상황을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여기에 인용되고 있는 국제적 패션 브랜드들이 강간이 묘사되는 사진 구도와 여성의 눈빛을 흐릿하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것으로 묘사해, 성적 대상화를 하고 있는 광고들의 본질이 바로 오늘날 소비 자본주의의 속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이처럼 뿌리깊은 반페미니즘에 대한 사회경제적 맥락과 그것을 조장하는 포스트 페미니즘을 분석한 이 글의 통찰은 충분히 높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생각되었습니다.


-포스트 페미니즘과 신자유주의의 야합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사회를 균질화시키고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노골적인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절대 잘못되지 않았다는 믿음과 그러한 배경 가운데 자신들이 주도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담론이 마땅히 시민 다수가 따라야만 한다는 그들만의 당위를 완전무결성과 같은 것으로 주장함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판단은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적인 거부가 사회내에서 좌파의 몰락 내지는 유명무실화를 추구했던 지난 40여년간의 신자유주의자들의 행적과 구조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포스트 페미니즘은 특히 1980년대에 미국과 영국에서 널리 퍼진 신자유주의와 잘 어울린다

반대로 포스트 페미니즘은 마치 모든 여성이 백인 중간계급 아니면 상류계급 이성애 여성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시장을 중시하는 문화를 일상생활 전반에 뿌리내리는 것, 복지 ‘개혁‘(빈곤층 지원 축소)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이미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만 덕을 볼 수 있는 일종의 소비자 시민권을 장려하는 것이다

개인주의 경향은 자아도취, 비대한 자아, 특권 의식,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나르시시즘에 관한 심리학 연구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광고에서 일어나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분석한 결과, 슬프게도 현대 여성들이 10년이나 20년 전보다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더 가까이 수용하고, 불쾌함을 덜 느낀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자신의 몸을 과시할 준비가 돼 있는 여성은 누구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에 젊은 여성이 매력을 느끼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포스트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을 약화시키고 신자유주의의 금과옥조인 이윤, 사유화, 개인주의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필수요소라 할 수 있다

(군에서) 남성의 성적 접근을 거부한 여성 병사들은 레즈비언이라고 고발당했고 동성애 행위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페미니스트를 "남자 까는 여자"라고 부르는 것은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문자 그대로 폭력을 당하는 시스템의 문제를 보이지 않게 만들고, 대신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 때문에 남자들의 기분이 상하는 것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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