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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의 국제 관계에 대하여 - 세계적 마르크스주의 석학의 시사논평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정구 옮김 / 책갈피 / 2020년 3월
평점 :
알렉산더 시어도어 캘리니코스는 아프리카 짐바브웨 태생으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서양 철학을 전공한 좌파 지식인입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그의 어머니는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인 액턴 경의 딸이기도 한데요. 최근에 그가 그리스 경제위기에 대한 유럽 연합와 유로화에 대한 비판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가 액턴 경의 손자라는 사실은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와 같았습니다. 그는 영국 옥스포드에서 수학해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지난 2005년 9월부터 런던 킹스 칼리지의 유럽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캘리니코스는 여느 지식인들과는 달리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실제로도 시민들과 조직을 만들어 시위에도 동참하기도 하였습니다. 2001년 6월 제노바에서 열린 G8 정상회의 즈음의 시위가 그렇습니다. 사실 지금에는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으나, 월가와 시티오브런던이 함께 맹위를 떨치던 2007년 이전까지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데올로기적인 낙인을 찍는 경우가 허다 하기도 했었는데요. 그럼에도 소신을 지키고 글과 행동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캘리니코스가 한편으론 대단하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소개할 이 책은 따로 원전이 존재하지 않는 책이기도 한데요.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영국의 반자본주의 주간신문 "소셜리스트 워커"에 실었던 논평들을 엮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슬라보예 지젝의 글도 국내에서 이러한 형태로 발간된 적이 있으니 크게 새로울게 없는 일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2020년 3월 출간되었습니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크게 7장으로 독자들이 보기에 쉽게 주제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특히, 튀니지 혁명과 시리아 내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는 장이 따로 있어서 기존의 기사만으로 한계를 느껴왔던 분들에게는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 외에 크게는 세계 경제와 국제체제 그리고 중동 문제 등을 중점으로 캘리니코스 특유의 간략하고 일관된 주제를 포함한 제법 인상깊은 글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세계 경제와 관련해 캘리니코스는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2007년 이전까지 미국 경제를 포함한 세계 경제를 추동한 것이 민간의 막대한 부채였다고 분석하고, 2008년 이후에는 정부가 주도하는 막대한 공적자금의 지출이 사실상 세계 경제 특히, 금융을 포함한 시장 전반에 생명수를 붓고 있었다고 진단하는데요, 이것은 아직까지도 미국 경제가 2007년 이전의 경제 규모를 회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큰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2008년의 뉴욕 발 위기는 세계 경제를 파탄해 이르게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은행들이 2000년대 중반까지 무분별한 대출을 해왔다고 저자는 진단하고, 스페인의 경우는 해안가를 따라 소위 '콘크리트 건설 붐에' 지방 은행들이 대출장사에 뛰어든 것으로 이는 당시 세계 경제가 건설 시장의 거대한 거품으로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과 같습니다. 뉴욕 발 금융 위기 역시 외형상으로는 금융 문제이긴 했으나 그 본질은 주택 시장 자체의 거대한 거품과 그를 이용한 은행과 신용 평가 기관의 거대한 도덕적 해이가 일으킨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현재까지 이어진 세계 경제의 상황은 누리엘 루비니가 언급한대로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꾸준히 이어진 더블 딥 상황이라고 진단 내릴 수 있습니다. 물론 케인스가 언급한 "자본주의가 불안정한 것은 이 체제가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돈을 거는 메커니즘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라는 본질에 따라 이 '카지노주의적 자본주의'가 그 실체임을 드러내는 것이라 여겨지는데요.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가 이러한 맥락하에 시장이 움직이고 있고, 개인들의 대출이 증권화가 되어 그 리스크와 하등 상관없이 팔려나갔다는 점에서 이는 거의 명백한 부분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1장에서 인용되고 있는 우파 지상자유주의자 데이비드 스토크먼의 발언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월가 카지노를 후원하던 중앙은행 불한당은 예금주들을 제로 금리라는 십자가에 못 박고 국제상품시장 거품을 키워 식량과 에너지 가격을 높이면서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렸다"는 다소 분노에 휩싸인 듯한 말입니다. 이는 데이빗 코츠의 말대로 건설 시장을 비롯한 시장 전반에 거품을 야기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이익 창출의 근본인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 이 지점에서는 그동안 숱하게 저항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더욱이 저임금 노동력이 있는 곳을 따라 생산 시설이 옮겨가는 현재의 자본주의적 생산 기조를 고려해 봤을 때, 저임금 상태의 소녀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이집트의 권위주의 정권을 미국이 열심히 후원했던 것은 세계 경제 시스템이 자본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효율적 측면으로 지원해 마지 않는다는 신자유주의적 정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마찬가지로 대만 폭스콘의 노동자들에 대한 여러 처우 문제들도 이와 유사한 사례입니다. 이러한 도덕주의적 정치적 문제에 대해 세인들이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도 세계 경제 전반을 신자유주의적 기조가 권력을 잡고 있는 상황 때문일텐데요. 그럼에도 캘리니코스는 "이러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의 상황에서도 유럽과 중국, 미국과 중국은 자신들의 경제 이익에 따라 무역 보복과 관세 카드를 남발했고, 최근 트럼프에게 시진핑이 굴복한 것은 이러한 측면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즉, 그렇게 수치화 된 자유시장과 거의 자연권에 필적한다는 시장의 갈등 조절이 사실은 거의 유명무실한 관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캘리니코스가 직접적으로 밝히는 오늘날 세계 경제의 진면목 일것입니다. 그래서 캘리니코스는 몇번이나 글을 통해 시민들이 자본주의에 대항해 나설 것을 강조하고 있었는데요. 세계 자본주의가 하나의 권력이라면 마찬가지로 반대편의 반자본주의를 주장할 시민들의 권리 또한 또 하나의 권력이라 저자인 캘리니코스는 크게 의미를 두고 있었습니다.
다음 이어지는 국제체제와 관련해서,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의 개입을 잠정 실패한 작업으로 결론을 내리고, 애초에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게 된 명분조차도 거짓과 날조에 지나지 않은 것임을 재차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한가지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있었는데요. 차기 정부였던 오바마 행정부가 네오콘들에 의해 주도된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잔혹한 고문들을 수행한 군인들의 얼굴을 공개하고 이를 경고하고자 했던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적인 군부의 저항에 굴복해 무위로 끝난 것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그냥 제 상상의 공간에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만, 백악관의 관례대로 당선인인 오바마가 전임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와 회견을 통해 대화를 나눴을 때, 아마도 부시가 오바마에게 "일단 이 자리에 앉아봐라. 너도 아마 별거 없을 것이다"라는 터무니 없는 공상을 떠올려 보는데요. 이는 다른 말로 전임 정부가 마무리를 짓지 못한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이미 군부에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의 장성들의 압력을 아마도 오바마가 해소하지 못했던 것으로도 여겨집니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이 글에서 앞선 제 상상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캘리니코스는 예상과는 다르게 민첩하게 탈출하지 못한 이라크 전쟁을 포함해, 그렇게 중동 정세하에서 지체된 미국이 푸틴의 러시아의 팽창을 미처 막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었는데요. 러시아의 그루지야 (현재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작전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고 결국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만을 키워준 꼴이 되었습니다. 이는 현재 대략 48만 규모의 미군으로는 주요 병력이 이미 들어가 있던 중동에서 러시아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것 자체로는 미국의 국익에 전혀 이롭지 못한 영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애초에 1994년에 서명했던 우크라이나 핵무기 철수를 명분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보장했던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합의한 '부다페스트 메모랜덤'을 무력화시킨 것은 차치하더라도 당시 미국만 보고 있던 우크라이나 정권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미국의 행태는 사실 동맹국들의 우려를 짓게 하였습니다. 물론 전임 부시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오바마 역시 러시아와 핵전쟁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뒤이어 오늘날 중국의 대두와 관련해서 캘리니코스는 현재 미국의 각계 각층에서 우려하고 있는 '중국 위협론'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와중에 단지 우려스러울 부분은 지금까지 미국이 구축해 놓은 세계체제에 말을 듣지 않으려 하는 국가가 조만간 탄생될지도 모른다는 점일텐데요. 역외균형전략이 미국의 국익과 아주 밀접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는 현실적으로도 필요한 수단 중에 하나였습니다. 다만, 저자의 말대로 그동안 중동에 너무나 붙잡혀 있던 나머지 러시아와 중국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국제 정세의 한계가 미국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봐야할 텐데요. 마찬가지로 소수의 수니파가 지배하고 있던 이라크를 절단해 버린 나머지 인근의 시아파 맹주인 이란의 지배력만 강화시켜준 결과를 초래한 개입 전쟁의 실패가 결국 이 전쟁에서 승리한 유일한 자는 이란이라는 저자의 냉정한 평가는 거의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욕적이라도 이란과의 화해를 시도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을 물거품시킨 트럼프의 행동이 과연 미국의 국익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는 지금으로서는 현재 진행형인 상황이기도 합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조차 미국을 믿지 못해 이란과 협상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가까운 주변의 권위주의 정부들이 이집트와 튀니지를 돕지 않은 미국의 행태에 아직까지도 분노하고 있는 상황은 중동 내에서의 분열과 파편화를 좋아하는 미국에 입장에서 과연 이게 이득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기도 합니다.
4장에서는 별 기대가 없었는데도 우리 한반도에 대한 내용이 짤막하게 소개되고 있기도 합니다. 김정은 추구하고 있는 경제 발전과 안보 불안의 해결 추구 등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왜 미군이 한국전쟁이 끝난 지 65년이 지나도록 여태 남아 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 실정"이라는 것에는 다소 실망스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말 왜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일까요. 이 부분은 정말 캘리니코스의 인식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그는 중국에 대한 서방 세계의 압력과 최근의 한반도 위기를 거의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었는데요. 그가 좌파임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좀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압도적인 한미 동맹의 재래식 전력에 북한의 김정은과 그 윗대가 두려움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이 '스탈린주의의 국가'가 자신들만의 왕조 시대를 열어 스스로 폐쇄적인 길을 걸은 것의 여러 결과물을 얻게 된 것을 전적으로 누구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여기에다 굳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꺼내지는 않겠습니다만 정상적인 정권이었다면 이러한 문제를 애초에 초래하지는 않았겠지요. 더 쓰고 싶은 말들이 많지만 이 정도에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바로 앞선 우리 한반도에 대한 인식을 제외한다면 캘리니코스의 이 글은 전반적으로 현재 세계의 진실된 이면을 독자들에게 가감없이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현재 미국이 구축한 국제경제시스템과 각지의 안보 동맹을 '제국주의'라고 불리우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분들도 계실겁니다. 다만, 미국의 이 시스템이 결코 만능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의 대부분이 자신들의 국익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비록 우리나라가 오래전부터 자유 세계에게 포함되어 있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여지가 있다 생각됩니다. 일전에 노엄 촘스키는 시민들이 언론인들이 실어나르는 신문 기사 만으로는 현재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러한 글들이 자주 출간되는 것은 독자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우리의 실질적 운명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점은 꽤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요. 특히, 우크라이나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엘리트층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여기 이 글이 모두에게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찬가지로 알렉스 캘리니코스 역시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을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 지칭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트럼프와 푸틴은 둘 다 정치적 올바름을 싫어하는, 아니 혐오하는 정치인이라고 글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케인스는 자본주의가 불안정한 이유 하나는 이 체제가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돈을 거는 행위인 투자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세계를 변혁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과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큰 격차가 있는 듯 보일 때가 있다
유로존은 독일 자본주의 지배력을 공고화하는 데 이용된 신자유주의적 구성물이다
스토크먼은 연준에 특별히 분노를 느낀다. "월가 카지노를 후원하던 중앙은행 불한당은 예금주들을 제로 금리라는 십자가에 못 박고 국제상품시장 거품을 키워 식량과 에너지 가격을 높이면서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렸다
즉,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중국 국민 13억 6000만명의 평균 생활수준이 서구를 따라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전망 때문에 스위스 중앙은행이 최저환율제를 포기했을 수 있다. 포기 발표 후 몇 시간 만에 프랑화 가치가 유로 대비 무려 39퍼센트나 올랐다. 이 일은 세계적 금융 붕괴를 겪고도 얼마나 많은 위험한 행동들이 계속됐는지 그 민낯을 보여 줬다
설사 미국이 군사적 여유가 좀 더 있었다 하더라도 캅카스 파병은 러시아와 전면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부시와 (부통령)체니도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 핵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고립된 스탈린주의 국가 북한의 통치자 김정은은 사담 후세인이나 무아마르 알 카다피와 같은 최후를 피하고 싶어 한다
결국 트럼프가 푸틴에게 경도된 것은 매수나 협박 때문이 아니라 푸틴을 진짜로 존경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트럼프를 싫어하는 것은 트럼프가 국제걱 극우의 성장을 부추기는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 제국주의와 다른 열강의 패권 경쟁에서 트럼프의 무능함이 갈수록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라크의 정치권력이 종단주의 세력들 간에 분할돼 내전이 일어나기 전의 레바논처럼 되기를 미국이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국방부는 2000년대 중반 이란을 공격하려던 부시 행정부의 계획을 가로막았다
더 근본적으로 중국의 부상은 세계경제라는 무대에서 미국이 만든 규칙에 따를 생각이 없는 강력한 행위자가 등장했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트럼프는 이미 임기 초에 시진핑에게 값진 선물을 준 셈인데, 바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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