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가는 민주주의 유혹하는 권위주의
앤 애플바움 지음, 이혜경 옮김 / 빛소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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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아고라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앤 엘리자베스 애플바움은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서 큰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그녀는 예일대학과 런던정경대를 거쳐 이코노미스트에서 언론인으로서 첫걸음을 뛰게 되는데요. 이후 워싱턴 포스트에서 칼럼을 기고하고, 미국 정치적 현안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을 언론을 통해 피력한 바가 있습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에 대해 미국의 포퓰리즘 정치의 출현을 크게 우려했었는데요. 이 글을 통해 스스로 중도 우파라고 밝히고 있듯이, 조지 W. 부시와 네오콘이 자행한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광범위한 고문에 크게 충격을 받아 아마도 미국의 양당 정치에 적지않은 회의를 느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개인적으로 사실적 서사가 가미된 르포 형식의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유럽의 엘리트 인맥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요. 사실상 현재의 엘리트 정치의 쇠퇴에 따른 공격, 그리고 극단주의 정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 아마 저자인 애플바움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물론 이러한 정치 변화에 대한 시대적 흐름도 이 책이 잘 조망하고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리가 앞으로 이 권위주의 정치에 직면할 수 없는지에 대한 꽤 논리적인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싶었습니다. 바로 저 부분이 이 책을 통해 얻게되는 소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글은 원제, "Twilight Of Democracy"로 2020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1년 7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현재, 유럽에 비로소 정치적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에 따른 극단적 정치, 반이민 정서와 인종적 혐오주의의 상황에 대해 저자인 애플바움은 이를 해석하기 위한 수단으로 쥘리앙 방다의 '클레르 clerc'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프랑스어로 성직자를 뜻하는 이 단어는 방다가 규정하는 타락한 지식인의 전형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한데요. 여기 방다를 통해서 '진리 추구'라는 지식인의 책무를 저버리고 비타협적인 종교적 교리만을 추종하는 성직자들처럼 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맹목적인 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클레르에 대해 좀 더 면밀히 논해 본다면, 저자의 설명대로 스스로에게 합리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던 지식인들이 어떻게 자신의 이익과 그에 따른 맹목적인 결과물을 얻기 위해 어떻게 변절했는지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현상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거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6장에서 그녀는 "모든 권위주의는 사람들을 적대적인 진영으로 나누고 양극화하고 대립시킨다"고 강조하는데요.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저 클레르들이 소위 권위주의에 (자신들의 이득만을 위해) 맹목적으로 부역하여 사회를 극단주의의 경연장으로 만드는 데 한 몫을 해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의 이 클레르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기존의 엘리트 정치나 엘리트 권력이 오로지 사사로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몰두하게 만드는 능력주의와 자유지상주의 같은 터무니 없는 왜곡된 가치들이 공적인 의미로서의 사회를 사실상 파탄에 이르게 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반강제적으로 강요된 능력주의와 그에 따른 엘리트들의 사적 이익 추구가 다수의 그렇지 못한 계층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식의 논리는 작금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상황에서 거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난 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자원이 전무한 사람들의 자유는 거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과 거의 동일한 맥락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연이어 글 3장에서 저자는 오늘날 직면한 광범위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널리 퍼진 정치적 불신으로 이를 설명해내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요. "유럽의 젊은 계층이 스스로의 정치적 의견이나 경향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정치인을 선호하게 된다"는 진술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을 달리 표현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누군가의 정치적 행동에 있어 그 숨겨진 의도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파고드는 것을 마냥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권위주의 정치 자체에 대해 그저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인용에는 얼마간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불어 4장에서도 저자는 시민의 권위주의적 성향을 연구한 카렌 스테너의 "권위주의적 성향이 엄밀히 말하면 폐쇄적인 마음 상태라기 보다는 단순한 마음 상태에 더 가깝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권위주의를 옹호하거나 그것을 긍정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심리가 그와 같다는 것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최근에 이르는 권위주의 정치 자체가 그러한 체제 가운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 앞선 체제를 온전히 다 설명하기 어렵다는 인식의 도입 부분을 뒷받침하는 근거러도 읽힙니다. 반대로 현대의 민주주의 자체가 다소 혼란스럽고, 거기에 논리적이고 명확한 의견을 서로간에 교환하는 것 자체에 대한 피곤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언급하는 부연 설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와 독재 정권이 도덕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는 자들의 "도덕적 등가성"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과거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과거 오랜 냉전시기의 대결구도에 엄청난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존재했고" 사회적으로도 그러한 경직된 모습이 시민들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봐야 할텐데요. 물론 후쿠야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승리가 꽤 명예로운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내부적으로 이러한 권위주의적인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포스트 민주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자 역시 당연하게도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크나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일차적으로 수긍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저자인 애플바움은 우리가 현재 고통을 받고 있는 이 펜데믹 상황이 아니더라도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적 위기는 분명 겪게 되었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었는데요. 앞선 현대적인 클레르들의 출현과 마찬가지로 폴란드의 '법과정의당' 그리고 헝가리의 제2의 푸틴, 오르반의 출현은 단순히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게 하는 권위주의를 넘어 극단주의적 정치의 도래는 그야말로 '세계의 파행적 재편'이라고 불릴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최근의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예외주의와 동일한 부분텐데요. 더욱이 '스페인을 더 위대하게"라고 주장하는 스페인 복스 당의 소위 '정견'과 보리스 존슨으로 대표되는 브렉시티어 등의 출현은 그동안 유럽이 전세계의 '자유 민주주의'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종래의 견고한 토대를 한순간에 흔들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애플바움은 이에 "민주주의-권위주의-다시 민주주의'로 일면적으로는 정치 지형이 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었습니다만, 과거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나서 히틀러가 세운 나치 독일이 전세계에 어떠한 파급을 미쳤는지는 우리 모두가 충분히 기억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다시 한번의 권위주의를 지나 새로운 민주주의를 또 세우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경고하는 것으로도 읽혀집니다.

그저 스스로 존경이나 받고 싶어하는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어떻게 보면 준비된 총리는 아니었습니다. 드널드 트럼프 역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으나, 양자는 브렉스티어와 대안 우파들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고 정치 일선에 등장합니다. 물론 보리스 존슨과 도널드 트럼프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에 대해 의아함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두 사람이 현 시대의 문제에 대한 어떤 명확한 관념이나 해결의지를 갖고 기존 정치 무대에 나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을 더 염두해 두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트럼프의 경우는 자신이 포퓰리즘적 선동으로 기존의 체제를 비웃듯 백악관에 입성했지만 기존 엘리트 지배체제를 온갖 불신의 미사여구를 사용해 반대급부를 얻었다면 스스로가 종교 지도자와 같은 겸허한 도덕성과 선구적 의지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줄곧 인종차별주의적인 부동산 개발업자의 정체성을 전혀 변화없이 유지하는데 이릅니다. 보리스 존슨 또한 유럽을 취재하는 언론인 시기에 교묘하게 거짓을 섞은 기사로 주목을 받았으며, 스스로가 정치를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데 사용하는 수단으로 치부하는 데 그치고 있어 그에게 정치인의 어떠한 소명을 기대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과정과 방법이 정당하다면 충분히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정치입니다. 그 숱한 명분 싸움과 소모적 논쟁이라 일컬어지는 대화의 넘나듦을 터부시하고 건전한 공론장의 유명무실화를 주장하는 클레르들이, 헝가리의 오르반에 협력해 사법체제를 무력화 시켜 그의 권력을 위해 동원되는데 이론적 근거를 자발적으로 제공한 이력이 있습니다. 오로지 클레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죠. 그러므로 이러한 반정치적 기미가 현재 유럽 곳곳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봐도 가히 지나치지 않을텐데요. 과거에 대한 향수, 즉 정치적 노스탤지어의 유산을 그리워하는 적지 않은 시민들이 오히려 권위주의 정치를 촉발하게 되었다는 저자의 분석에 조금 이해가 되었던 것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작인 '레트로토피아'에서도 그런 유사한 관점의 노스텔지어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펜데믹 사태가 가속화되고 유럽의 펜데믹 사태가 이슬람 이민들 때문이라는 '거짓말'이 마치 진실처럼 읽혀진다면 정말로 시민들의 정치적 분별력이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결정하기 위해서라도 무척이나 중요해지는 시기가 도래할 것입니다. 이 글에서도 언급되듯이, 헝가리의 클레르들이 "미국 민주당이 조지 소로스 손에 넘어간지 오래다"라는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양산하는 상황에 "정말 그러했던 것인가"로 음모론에 분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정치적 의견이라든지 이데올로기에 대한 어떠한 관념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과거에 민주주의를 위해 일했던 자들이 극단주의 정치와 권위주의에 더 많은 자신의 이익 가능성을 놓고 변절하게 된 상황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 듭니다. 과거 냉전시기였다면 저 변절자들이 어떠한 판단을 체제로부터 받았을지는 거의 명확해 보입니다. 물론 개인의 정치적 의견이 이데올로기로부터 탄압을 받아서는 안되겠지만, 민주주의를 지지하던 자가 권위주의로 새정치(자신들의 입으로)를 찾는 것 자체가 우리 정치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겠죠. 어떻게 보면 과두제도 이러한 맥락 가운데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윌리엄 서머셋 몸이 위기를 머금은 시대의 하늘에는 숱한 까마귀 떼들이 날기 마련이다는 수사에 현 시대를 비교해 보는 것이 지나친 저의 기우일까요. 그저 단순한 걱정으로 끝나기를 오직 바랄 뿐입니다.



-네오콘보다도 더 수준이 낮은 자가 미국 정치무대에서 기웃거렸다는 것은 현재의 우리 정치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바로 그 자의 이름은 스티브 배넌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상황은 아니겠지만 사법부의 과도한 정치화 혹은 노골적인 정치주도는 민주주의 쇠퇴를 불러일으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것은 저자의 연계대로 권위주의적 정부가 사법권을 좌지우지 하고 싶어하는 욕망과 맞닿아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 말이죠.


선동가를 추종하거나 독재 정권의 지배를 받을 때 더욱 큰 위안을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선동 정치가 승리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한나 아렌트는 권위주의가 1940년대 당시, 분노와 열패감을 느꼈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만약 누군가가 스스로 지배자가 될 자격이 있는 데다가 그리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사법부 장악, 언론 왜곡, 그리고 엘리트 를 공격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낄 것이다

최근의 권위주의적 흐름은 지난 10년 동안에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다. 그것은 신비한 과거의 "유령" 때문이 아니라, 현존 민주주의 체제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면서 생겨났다

그리스 역사는 순환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지만 그다음에는 과두제가 등장할 수 있고, 그러다 다시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올 수도 있다

폴란드의 법과정의당, 영국의 브렉시티어,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공무원과 외교관을 대상으로 공격적 언사를 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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