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전쟁책임 - 쇼와초기 20년과 헤세기 20년의 역사적 고찰
코케츠 아츠시 지음, 김경옥 옮김 / 제이앤씨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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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 학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진보적 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는 고케츠 아츠시는 기후현 출신으로 도쿄도 쿠니타치시에 위치한 사회과학 명문 히토츠바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야마구치현에 소재한 야마구치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그는 과거 일본 제국 시절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문제에 있어 꽤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는데요. 명백하게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에게 사죄를 해야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저자인 고케츠 아츠시와 일본 내의 일반적인 리버럴 지식인들과의 극명한 차이점은 현재의 반일과 혐일에 대한 인식론이 상이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와 더불어 대표적인 리버럴 지식인인 강상중 교수가 한국의 반일에 대해 일본의 혐한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고케츠 아츠시는 이 책을 통해 그와 같은 인식론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반일과 혐한에 대해 비교론에 대한 비판에 있어 면밀한 논리적 근거는 거의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반일과 혐한은 그 궤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에 대한 상세한 서술을 뒤에서 다시 하기로 하겠습니다. 더불어 저자에 대해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서의 활동 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에서도 드물지만 연구활동을 해왔다는 점에 있을 겁니다. 이 책은 지난 2009년, 원제 ˝私たちの戰爭責任˝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3년 8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약간의 논외로 이 글의 진정성 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여느 일본의 학자들과는 달리 일본의 전쟁 책임과 역사 수정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그대로 책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이 글의 8장인 소제목 하나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전쟁 책임은 국경과 시효를 넘는다˝는 일본인으로서의 저자 자신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기본적으로 이 책은 과거 일본제국주의 시기인 쇼와 20년간과 최근의 헤세 20년간을 비교하면서 어떻게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이 과거 제국주의 시절로 회귀하기려는 욕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학자로서의 비판적 분석을 하고 있는데요. 저는 얼마전 모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어느 일본인이 고백하는 일본 내의 역사 교육에 관한 실체를 파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요지는 ˝현재 일본 교과서가 조선 침략과 식민지 수탈 및 아시아 대동아 공영에 대한 짤막한 기술과 그와 반대로 진주만 침공으로 비롯한 미국과 전쟁 과정에 대부분의 서술을 할애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언급하고, ˝그동안 한국과 중국에서 심각한 문제제기를 해왔던 난징 학살과 같은 문제는 일본을 포함한 세 국가의 입장 차이가 있어, 그것을 제대로 기술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과거 일본 제국 시절의 침략의 역사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기도 한데요. 이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가 ‘자학 사관의 타파‘라는 미명하에 과거 역사 기술을 마음대로 재단해 가르쳐 온 결과가 현재의 혐한과 혐중을 비롯 일본 내의 자정의 목소리가 전무해진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일본 정부 스스로의 역사 묵인과 날조가 원인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에 저자인 코케츠 아츠시는 이를 두고 6장에서 ˝비열한 역사수정주의˝라고 일본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패전을 앞둔 일본 제국의 쇼와 일왕은 원자 폭탄 두 방에 의해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됨으로써 실질적인 제국의 시기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특히 일왕은 스스로도 ˝일왕제=국체˝임을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전쟁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물론 여기에는 당시 내각 각료와 일본 정치권이 일왕의 전쟁 책임을 놓고 맥아더와 협상을 한 연유도 있었지만 당시 일왕 스스로가 소위 조서를 통해 ˝타국의 주권을 배제하고 영토를 침범하는 것과 같은 것은 처음부터 짐의 뜻이 아니었다˝는 내용의 광범위한 책임 회피를 시도합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내부 특히, 사학계에서는 일왕의 저런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자들이 있는데요. 여기에서 그 이름들을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추종 세력들이 한국에서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원칙적으로 일본의 진정한 반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5장에서 ‘조선근대화론‘과 같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언급하면서 조선을 중국 대륙 진출의 기반으로 삼으며 수탈에 나섰던 역사를 희석하기 위한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2차 대전 이후 냉전의 도래와 더불어 일본의 반공 세력과 한국 내부의 개발 이데올로기를 등에 업은 자들의 반공 정치가 교묘히 미국을 기반으로 양자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면서 독일과 달리 일본의 전쟁 책임이 적극적으로 회피되었다는 사실도 뒷받침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 사학계가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사조와 더불어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다년간에 걸친 미국 백악관의 미온적 대처가 이러한 문제를 심화시켜 왔으며, 그런 연유로 일본 내의 ‘총체적인 역사 수정주의의 기반˝이 구축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즉, 전후 일왕이 과거 막부 시기와도 일맥상통하는 ˝입헌군주제의 군주˝로 회귀하고 미국 국익에 의해 전쟁 책임에 대한 모든 면죄부가 주어지면서 요시다 정권 이후 나카소네 정권부터 ˝일본이 전쟁에 진 것은 미국 때문이지 조선이나 중국 때문이 아니다˝라는 전쟁 책임의 회피론이 고개를 들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차례대로 이어지는 자민당 정권이나 짧았던 민주당 정부에서도 노골적으로 ˝전쟁 국가˝라는 측면의 배타주의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거듭된 논증은 쇼와 시기로의 복구에 집착한 헤세 시기의 고이즈미 정권이 미국의 군사 동맹을 기반으로하는 일본의 전쟁국가론이 대두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비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점은 아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의 정계 복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전쟁을 일으킨 부역자들의 위패 뿐만 아니라 전몰자들의 야스쿠니 합사 문제에 있어 주도적으로 나선 일왕의 선택과 국체와 일본의 전쟁 국가론이 맞물려 주변 국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상징적인 야스쿠니 합사 문제에 있어 이러한 일왕의 주도와 정치권의 이해관계 및 미국의 일본 재무장에 대한 막연한 인식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부정적 파급으로 이어진 것이라 파악되는데요. 일본 내부적으로는 일왕의 국체가 무엇보다도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일개 국왕을 숭고히 ‘천황‘이라고 취급하는 자들이 어느 정도 진행된 정치적 논리에서 이를 철회하기란 상당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일본의 국격을 이 일왕의 존재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는 자들이 태반인 지금에서는 유신을 통해 일본 정치 전면에 등장한 과거를 어쩌면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도 잠재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현재의 자민당 독주채제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다시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정치 체제가 상상속의 산물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민주주의가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것과 정치적 정당성의 기반 모두가 미국에게 달려 있는 상황은 다른 의미로 우려할 만하다 생각됩니다.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문제에 있어서 해결을 근원적으로 방해하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즉, 일왕제의 정치적 문제이자 역사적 왜곡의 실체라 할 수 있는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꼬집은 저자의 다음과 같은 문장은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거듭 강조해 두고 싶다. 고이즈미 수상이 말한 대로 일본국가를 위해 사지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은 자연스런 감정‘이라고 한다면, 원폭 공격을 포함한 공습 및 전투로 말미암아 죽게 된 비 전투원, 특히 오키나와의 피해자를 왜 모두 ‘합사‘하지 않는 것인가. 또 시베리아 억류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나 강제적으로 일본인이 되어 일본인으로서 전사한 예전의 조선 및 대만 등의 식민지인 모두를 필히 합사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것은 왜 인가. 이 비합리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로 그 논리적 허점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정부나 국민으로서는 과거 조선인 희생자들이 일본의 일개 신사에 합사되는 것은 극히 반대할 것입니다.

저자는 글 곳곳에서 내면화된 일본인들의 우월 의식과 아시아 인들을 고통에 빠트렸던 대동아 공영 및 서구 열강에 대한 그 정의로운 전쟁에 대해 반성이 없는 일본에 대해 학자로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불법적인 조선의 강제 병합이 자신들이 조선의 이익을 위해 나선 것이 아니라 그저 중국 대륙의 진출 교두보로서 여겼다는 것은 미개한 자들을 마땅히 문명인들이 통치해야된다는 서구 제국주의의 저 알량한 논법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식일텐데요. 물론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었던 윌슨의 자결주의를 갖다 붙일 생각은 없지만 침략 전쟁 자체를 미화하고 그것을 아시아인들의 해방 전쟁으로 날조하는 것이 일본의 국격과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묻고 싶을 따름입니다. 본질적으로 일본의 안보를 비롯한 자위권 문제가 오로지 미국과의 안정적인 관계에서 시작된다 믿고 있다면 그것은 일본의 오판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현재 저들이 너무나 원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는 한국의 진정한 협조가 없어서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아시아 대륙 내에서 실질적으로 존경받는 국가가 되고 싶다면 독일과 같이 역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코케츠 아츠시의 겸허한 이 글이 일본 내의 리벌럴 지식인들인 강상중 교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반일과 혐한이 어떻게 다른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저자는 기존의 일본 극우 정치가 한국의 반일을 그저 국내 정치로 이용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폄하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일본이 과거 문제를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서 반일과 혐한은 그 궤가 다르다는 것을 명백하게 주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점은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한 소위 리버럴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그와 같은 인식을 개선해야하는 문제이며 일본 내의 정치권 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중국 내의 진보적인 인사들에게 조차 일본 리버럴의 한계로서 여겨지는 점으로 치부되는 것에서 스스로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급히 개선해야 되는 시각이라 여겨집니다. 자신들의 양심이 어느 정치나 어느 세력에게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러한 관점부터 고쳐 나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특히 저 리버럴들이 한국내의 식민지 개발론을 주장하는 파렴치한 자들을 다각도로 비판한다면 그 양상이 사뭇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데요. 하지만 이 조차도 저들이 일본의 국내 정치에 휘말려 자신들의 주장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하는 것에서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최근에 날치기로 합의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일본 리버럴들의 인식적 한계가 이를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207 페이지의 띄어쓰기 오류, 258 페이지의 오타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번역 자체가 매끄럽다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일왕은 신과 다름없는 존재로서 삶을 마치고 현생을 떠나 일왕이 안배하는 세상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안식을 취한다는 일종의 구원론을 저자가 소개하고 있었는데요. 야스쿠니의 존재 이유도 바로 저런 인식에 기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후에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일왕제가 혁파되지 않은 상황은 이처럼 유감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소위 말하는 승전국 미국 조차도 하늘의 인정을 받은 일왕의 존재를 인력으로 무너뜨릴 수 없었다는 허무맹랑한 일본 내부의 프로파간다와 함께 말이죠.

일찍이 청일, 러일 전쟁에서 많은 일본인들이 피를 흘렸다. 이는 요컨대 만주와 몽고의 패권을 둘러싼 대외전쟁이었으며 이 지역의 확보는 일본인의 권리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반전평화 운동이 고조되지 못하고 데모크라시와 같이 파시즘에 대항하는 사상도 성숙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쇼와 일왕은 아시아의 해방자이며 국내에서는 대일본제국을 아시아의 일등국으로까지 끌어 올린 최대유일의 공로자라는 역사인식이 지금까지 계속 살아있는 것이다

원자폭탄의 투하에 이르는 경위 및 배경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오히려 원폭투하의 책임을 넌지시 암시할 뿐 원폭투하를 유인한 국가의 잘못된 지도에 대해서는 모른척 했다

결과적으로 쇼와 일왕의 면책은 전쟁책임 문제를 불투명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후 일본사회가 당연히 정면으로 직시해야만 했던 전쟁 책임 소재의 추궁작업 자체를 보류시켰다

이러한 대국 내셔널리즘을 배경으로 일반 국민들이나 다수의 기업가 및 기업노동자들도 아시아 태평양전쟁 이후의 부정적 역사를 없애버리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었다

중국 및 한국에서 분출하는 민중의 반일 내셔널리즘 심층에는 일본의 역사상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는 것은 지적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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