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냥꾼의 사회 - 우리는 왜 서로를 혐오하는가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37
석승혜.김남옥 지음 / 스리체어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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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석승혜 교수는 소개된 짧은 이력으로는 현재 강원대 SSK 사업단의 전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특히, 그녀는 한국 사회의 내부 모순과 신자유주의의 연관성 등에 관심을 갖고 있고 이와 관련된 여러 논문을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공동 저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김남옥 교수는 중 한 사람인 석승혜 교수는 소개된 짧은 이력으로는 현재 강원대 SSK 사업단의 전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특히, 그녀는 한국 사회의 내부 모순과 신자유주의의 연관성 등에 관심을 갖고 있고 이와 관련된 여러 논문을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공동 저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김남옥 교수는 개인적으로 낯설지 않은 학자인데요. 예전에 서평을 쓴 컴북스스이론총서의 ‘마누엘 카스텔‘을 쓴 저자이기도 합니다. 현재 김교수도 역시 강원대에서 연구 교수로 일하고 있고 주로 한국 사회에서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서지정보는 지난 2019년 4월 편저 논문의 형식으로 국내에 출판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논문집의 제목은 매우 탁월하게도 현재 한국 사회의 병폐를 아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자크 랑시에르는 유럽 내에 소외되고 인종적으로 배척되는 이슬람 청년들이 ‘외로운 늑대‘로서 이슬람 테러 단체에 포섭되어 자살 폭탄 테러에 이용된 것을 유럽의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이해했는데요. 여기에 한 사례로서 등장한 ‘일간베스트 사이트의 이용자들‘이나 이들을 밀접하게 미러링 하고 있는 메갈리안 이용자들은 혐오를 통해 일종의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표출하고자 한다는 잘 포장된 당위에 대해 물론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상 외로운 사람들‘이 현재까지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누적된 모순의 근본적인 문제를 매우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 저자들의 분석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밝히고 싶습니다. 물론 저 두 사이트의 이용자들이 끝내 극심한 여성 혐오나 처참한 남성 혐오를 이데올로기로 체화시켜 강남역이나 종각역 등지에서 폭탄 테러를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한국 사회의 고학력화를 감안한다면 저들이 일반적인 이성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뿐만 아니라 혐오 자체에 매우 비정상적인 쾌감을 느끼는 병리학적 문제를 안고 있는 자들도 분명 많다는 점도 역시 감안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성공적으로 자본주의 시장에 주도적으로 편입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은 혹여 많은 경제학자들이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기조에 의해 사회 전반이 극심한 불안정성을 내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그문트 바우만이나 슬라보예 지젝이 거듭 밝히는 대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아주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것을 분명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 지배체제 하에 발생되는 부의 쏠림이나 권력의 비대화 및 노동 전반의 도구화가 일개 시민의 삶 전반을 매우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모든 책임을 오로지 개인의 능력으로 치부하고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무분별한 강화로 사회 전체가 변질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만약 이 지점의 이해를 고려한다면 현재에 남성과 여성에 극심한 혐오를 발생시키는 무지한 차별주의자들의 논리는 그 칼끝을 상당히 잘못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들의 신념이 저토록 견고한 이데올로기에 기반하고 있다 여기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입니다. 왜냐하면 말과 행동으로 토해내는 저 차별적 발언들과 혐오 표현은 일정부분 저들에게 정신병리학적 문제가 있지 않는가 생각될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좀 더 사회 구조적이고 계층적인 문제에 집중을 해 본다면, 자본주의 자체가 계급지배적인 구조를 용인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개인들이 사회에서 유용될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이라든지 자본 및 자원 효용성의 수단 등에서 격차가 발생하는데 특히 1990년대 이후 여성들의 교육과 사회 진출이 남성들과 비교해 활발해짐에 따라 이 책에서 저자들이 평가하는 대로 과거와는 달리 ˝무조건적으로 가정에 헌신하는˝ 여자들이 가면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늘어남에 따라 각자가 전통적인 가정에서 조차 목소리를 내게 되는 변화 전반이 일부 남성들에게는 마뜩잖게 여겨진 부분도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결혼 제도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집 구입과 관련된 일종의 관습적 이해를 상대적으로 늘어난 권리 만큼 바뀌지 않고 구태연연한 기존의 입장을 보임으로써 드러난 여러 사례들에 의해 남성들이 분노하게 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마땅한 저축이나 가용될 수 있는 돈이 준비되지 않은 많은 남성들이 쉽게 결혼을 포기하게 되는 케이스들이 알게 모르게 매우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수 여성들의 결혼 가치관에 대한 종래의 입장을 계속 주장하는 등의 타협불가한 문제로 치부되어 여성들의 결혼관이 강고하다는 이미지를 다수 남성들에게 심었습니다. 더욱이 결혼 제도에 대한 논의에서 남녀간에 매우 소모적인 논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생각됩니다.

남녀 대결 구도의 사회적인 문제는 이렇다 쳐도 언론들에 의해 극우 청년들로 알려져 있는 일간베스트 사이트 이용자들과 그들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많은 네티즌들의 오판은 민주주의의 주요한 가치 체계라 할 수 있는 다양성에 대한 옹호와 다원주의를 직접적으로 배격하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겠는데요. 이 부분과 관련해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인종 차별 및 장애인과 기초 생활 수급자들에 대한 저들의 증오와 다름없는 구별짓기는 파시즘에 비견될 정도로 위험하다 여겨집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극우라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북한의 존재로 말미암아 이미 본질적으로 왜곡된 이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마땅히 용인받아야 될 기존 기득권들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반공이라는 잣대로 말도 안되는 법의 심판을 받았으며 지금도 정상적인 발언과 주장에 대해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는 왜곡된 관념을 정상인 양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제도가 아니기에 저들이 기득권이나 돈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를 지지할 수 있어도 과연 실제로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있는지는 실로 의문이 듭니다.

끝으로 여기에 소개된 사례와 관련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요. ˝한국 여성은 일상적으로 성폭행, 성희롱, 모욕, 데이트 강간, 살인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고 느낀다˝는 단정적인 주장인데요. 더불어 다수 남성들에 의해 외모 품평 등을 당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이미 많은 분들이 한국이 범죄 발생률에 있어서 세계적인 억제 국가임을 잘 알고 있을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누구에게나 불안 심리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테죠. 다중 매체에 의해 외부로 드러나는 여성들에 대한 범죄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과거 나치 독일이 자행한 게토 구역처럼 남자와 여자를 분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즉, 현재 미국이 자신들의 국가 안보를 위해 과도한 안보 조직을 운용하고 있는 것처럼 안보에 대한 욕구는 대체로 완벽하게 채울수 없는 것인데요. 자신의 안전에 대한 완벽한 충족 또한 이와 동일합니다. 미국의 비대화 된 안보조직은 국가 조직이 시민들을 제어하고 감시해 민주주의를 사실상 축소시키고 과두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여러 학자들의 경고를 받아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부 여성들이 자신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 심리를 갖고 있다고 해서 남성 전반을 주요 관찰 대상으로 어떤 법적인 조례까지 만들어 감시하자고 하는 것은 거의 병적인 일과 같습니다. 일관된 논지를 위해 저자들이 저런 사례를 대입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일정 부분 과도한 불안 심리까지 사회현상으로 용인해야 된다는 식으로 논문에 쓰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 남녀 관계에 있어서 고분고분한 여자가 가면 갈수록 보기 힘든 현상 자체를 터무니 없이 비난하거나 남자의 경제적 능력의 유무를 따지는 여자들의 종래의 조건 선호 풍조를 일관되게 지지하는 사이의 타협할 수 없는 간극들이 소수의 고소득층을 제외하면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극우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종래와는 완전 다른 도덕적 프레임을 갖고 있다는 판단에 실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를 품평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낀다는 의견에 있어서도 우선적으로 자본주의의 여성의 성 상품화를 먼저 다뤘어야 함에도 이것을 남성의 문제로만 국한시키는 것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장의 결실을 분배하기도 전에 맞은 신자유주의의 파고로 경쟁에서 도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상화됐다

사람들은 무시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이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데, 박탈감이 원한으로 심화되면 그 방식이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난다

미셸 라몽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백인 남성 노동자 계급은 전통적인 부르주아나 상류 계급을 적극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새로운 현상은 뚱뚱한 사람과 못생긴 여자, 키 작은 남자나 취업 포기자 등 주관적 선호의 영역에서 차별 대상이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사람들은 스스로가 무력하다고 느낄 때 이에 대한 반동으로 보상적 폭력을 보인다. 보상적 폭력은 자신의 삶이 완전히 무기력해지거나 불구 상태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집요하고 강력하게 나타난다

극우 보수가 활용하는 도덕적 프레임 안에는 부정합이 있다. 배려 없는 공정성과 강자에 대한 충성심은 기득권에 동조하고 타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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