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일본의 미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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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에서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난 강상중 교수는 일전에 서경식 교수가 언급한 ‘일본 사회 내의 재일 한국인들이 갖는 디아스포라‘에 해당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중에 ‘나가노 데쓰오‘라는 일본식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 평범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 한국인이라는 한계를 넘어 노력한 끝에 보수적이라는 일본 도쿄대의 정교수가 되었고 또한, 학문적으로도 푸코와 베버에 관한 한 일본 내에서 큰 명성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그저 글로써 일본 사회에서의 강 교수의 노력을 기술하는 데 그치고 있지만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는 뭔가 상상이 안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개인적으로도 많은 난관이 있었겠지요. 저는 주변 지인으로부터 일본 사회의 폐쇄성에 대해 익히 접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자이니치‘라 불리우는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차별은 꽤 노골적인 부분이 있어서 일본인들이 다양성의 측면에서 충분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이 정도로 강상중 교수에 대한 개인적 소감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은 ˝朝鮮半島と日本の未來˝ 라는 원제로, 2020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1년 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번역한 출판사가 편집으로 삽입했을 가능성이 높은 ‘혐한과 반일‘에 대한 기본적 인식에 대해 논하고 싶습니다. 물론 강상중 교수 역시 본문에서 많이 언급하고 있는 단어이기도 한데요. 먼저 한국의 반일은 민족주의적이거나 얼마전에 서평을 쓴 사와다 가쓰미의 국내의 ‘반일 현상‘과 관련된 한국의 좌파 정치 세력의 조직적 움직임과 같은 정치적 인식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은데요. 강상중 교수는 이 글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한일 관계가 더 좋았다고 언급하는 내용은 지극히 동의할 만하나, 오히려 반일과 혐한을 동일선상에 놓고 서술하고자 하는 부분은 전혀 수긍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혐일 데모를 주동하고 각 대형 서점에 ‘혐일 섹션‘에 동조하거나 일본 정부가 극우 세력인 ‘일본회의‘를 암암리에 지원하는 등과 비슷한 한국 정부의 움직임은 거의 없습니다. 반일은 한일 관계 전반을 부정하거나 일본과의 외교 단절을 주장하는 터무니 없는 정치 논법이 아니라 역사 수정주의에 따른 역사 부정을 일삼는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 의식이라고 봐야할 겁니다. ‘일본의 의견이나 주장에 반대‘하는 것이지 일본인들을 한국에서 쫓아내자거나 당장 한일 관계를 단절하시키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반일과 혐한의 인식 대결 구도는 실망스런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뒤이어, 한일 기본조약에서 명시된 바와 같이 한반도의 안보는 즉각적으로 일본의 안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글에서 북한이 서울과 도쿄에 핵무기를 날릴 경우에 그 시뮬레이션에 대한 결과가 인용되고 있듯이, 전반적으로 한반도와 일본의 문제는 꽤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할 텐데요. 그래서 저자의 이 글은 1945년 이후의 남북한 관계 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 및 고이즈미 정권 당시 북한과 일본과의 외교 정상화 노력 등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저자는 서두에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외교 운운으로 남북 관계 뿐만 아니라 주변국과의 외교 문제의 험난함을 설명하려고 하는데요. 여기에도 사실 저는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남북 관계 자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도저히 예측이 되지 않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와 백악관에 찰싹 붙어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았던 아베 정권의 주변에서 한국의 문 대통령과 그의 내각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으리란 전망은 매우 회의적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내부에선 반공주의와 북한에 대해 그저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꽤 다수였고 이들을 배경으로 정치 세력화 되어 있는 국내 정치 자체가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는데 그나마 판문점을 중심으로 북한과 미국을 중재한 것은 성과라고 극찬할 필요는 없지만 그 정치적 과정이 지난했으리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아예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도의 무능이라면 저런 수사가 가능하겠지만 문재인 정부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배경과 외부 요인의 불확실성을 고려한다면 좀 더 면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저자가 논증하고 있는 두 가지 정치적 해석에 대한 부분도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데요. 우선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배외적 애국주의가 들끓는 이유는 두 사회 모두 격차와 대립이 심화되어 일체감이 옅어지고 단절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 다소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내 정치의 문제를 한국으로 돌려 지지율 문제를 해결한 정권이 일본 아베 정권이라 생각하는데요. 그가 극우 세력을 정치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독도와 관련된 터무니 없는 영토 문제, 특히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와 비교해 봤을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식적 오류 또한 몇 번 양보해 제외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도 없이 몇 차례나 한국에 대해 도발을 감행한 사실은 배외적 애국주의가 어느 나라에 가까운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맹목적인 세계화와 금융 자본주의의 문제로 말미암아 일본의 불황과 한국의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한국은 정말 그렇다 하더라도 시민들이 밖에 나가서 ‘일본인들을 모두 추방하자. 일본인들 때문에 한국의 국격이 낮아진다. 일본은 언제까지 사과를 번복할 것인가‘라고 하면서 혐일에 손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까? 여기서 제가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은 잘 아실겁니다. 혐한의 뒤에 일본 정부가 있다는 것은 거의 분명한 사실인데, 그래서 강 교수의 저런 논법은 그런 연유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위안부를 비롯 강제 동원 역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은데요. 저자인 강교수는 4장 후반부에서 ˝전시에 국내 노동력이 고갈된 일본은 중국과 한반도에서 많은 노동자를 동원했고 이들은 태평양전쟁 후반부에 일본의 인프라를 지탱하는 중요한 노동력이 되었다˝라고 서술하고 있는데요. 사실 많은 역사적 사료들이 일본 정부에 의한 조선인들의 강제 동원을 뒷받침하고 있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조속히 해결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시다시피 일본과 관련된 역사 문제는 거의 모두가 정치 쟁점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특히, 일본은 역사 문제에 대해 노이로제와 비슷한 관념을 갖고 있고 더군다나 과거 역사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언급은 국격의 손상이라고 여기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독일은 국격이 손상되어 남아나지 않아야 되는 수준인데, 지금 독일은 어떻습니까? 사실 강교수가 이 문제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베 정권이 2014년도에 과거 고노 담화를 대외적으로 철회하고 싶어했는데, 당시 백악관의 압력으로 무산 됐던 바가 있습니다. 바로 아베는 고노 담화의 의의를 다시 새기기도 했죠. 이러한 일본 정부의 조석개변이 존재하는데 이를 한국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명백합니다. 우리가 저들의 국격을 심대하게 손상시켰으니 정식으로 사과라도 하라는 말씀입니까. 또 한 가지, 일본은 행정부의 권한이 한국과는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법원 관료들도 행정부의 결정을 존중하고 일종의 내각의 권위를 무엇보다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전혀 그렇지가 않지요. 설사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법원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그 내심을 드러낸다치면 탄행당하기 쉽상입니다. 언론의 집중포화는 말할 것도 없고요. 즉, 한국의 국내 정치 문제를 무슨 내정 간섭 운운하기 전에 한국의 삼권 분립은 이처럼 명확한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국제적 기본 조약으로서 한일 기본 조약을 양국이 준수할 필요는 있겠죠. 이 부분에 대한 강 교수의 언급은 실로 동의할 만합니다. 과거사에 대한 국가간의 합의는 이미 종료되었다고 볼 수 있기에, 그것이 우리 쪽에는 불합리할지라도 혹은 냉전시기에 졸속으로 체결된 조약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자유세계에 속해 있는 만큼 이를 노골적으로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익에도 맞지 않겠고요. 다만, 우리의 국내 정치는 시민 사회를 비롯, 시민들의 의견 개진이 일본 보다 자유롭고 여론의 생성 또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국제법 상으로도 민간 차원의 민사 문제를 정부가 강제할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법의 지배를 받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는 당연한 부분입니다. 행정부가 사법부에 관리를 보내거나 시민단체에 수석을 보내거나, 장관을 파견하여 입을 다물게 하는 등의 해당 조치가 우리 사회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강상중 교수는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의 근대화가 완성되었고, 무리한 만주 지배와 그에 따른 중국 팽창 정책이 일본 근대의 암(暗)이라고 서술하면서 이러한 측면의 이해가 일본의 공화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우리와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근대의 중요한 사상이 인간의 마땅한 권리와 계몽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일본은 일왕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체제로 변용됨으로써 일본 근대 자체가 과거 나폴레옹이 공화를 부르짖다가 제정으로 몰락한 반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국익과 정치적 견제가 없는 봉건 왕조로의 귀환과 비슷한 관점으로 볼 수 있을텐데요. 사실 일본인들은 이에 대한 개념이 전무하고 자신들의 근대가 아시아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성찰이 없습니다. 이것은 지배와 피지배 국민들간의 역사적 인식 차원을 넘어서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로 인해 관계 전반이 괴물이 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 괴물을 먹여 살리는 것은 일본의 국격과 극우 정치입니다.

저는 가끔 일본에 대해 우리가 왜 모든 분야에 있어서 저들과 협력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적당히 사회문화적 교류와 인적 교류만 하고 미국을 매개로 적당히 지내는 것이 양국에 이롭다고 생각하는데요. 마찬가지로 북한의 정치적 불안정성만 서로 잘 관리하면서 지내는 것이 양쪽의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국제 관계를 이런 식으로 쉽게 처리할 수는 없을겁니다. 과거 한일 관계 개선에 노력한 김대중-오부치 두 지도자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시점에서 한일 관계가 어떻게 재정립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만, 일본이 후쿠시마의 오염수를 태평양에 무단으로 방류할 시 그대로 한일 관계는 끝장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글에 대한 반론으로 많은 부분을 할애하긴 했습니다만 강상중 교수의 한일 관계의 일반론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이 글은 남북한과 일본의 집약적인 외교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고 배경 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들도 평이하게 일독할 수 있는 수준의 유익한 글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국내의 반일 여론과 관련해서 일부 부적절한 언론들에 의해 조장되는 측면이 있으니 특히 일본내에 거주하고 있는 지식인들과 학자들은 면밀히 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북한 핵문제의 정치적 전개 과정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는데요. 저자의 이에 대한 관점은 일반적이고 평이한 편이니 따로 사족을 달고 싶지는 않습니다. 평화적인 해결을 포함해 당사자들이 대화의 장에 나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북한 핵 문제를 종결시키기 위해 무단으로 미국이 무력 개입에 나서는 일은 한국의 협조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일본 내의 미군 기지의 공격 가능성 및 중국과 국지전으로 비화될 확률 또한 상당하니 저자의 평화 해결에 대한 조언은 그만큼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국익에도 부합되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이라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일본으로서는 전쟁 특수를 위해 내심 반겨했을지도 모르겠으나 도쿄에 북한 미사일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과거처럼 잇속을 셈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글이 고 김대중 대통령의 오마주로서 시작되었디고 밝히고 있는데요.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의 한일 관계에 대한 정치적 노력은 꽤 대단했다고 여겨집니다

-일본 내의 리버럴 지식인들이 한국 정치 상황과 맞물려 일본에 대한 인식 및 반일의 기본적 의미 등의 인식이 이 글을 통해서도 매우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체로 한국에 대한 나쁜 인식을 일본에 주입하고 있는 우리의 일부 언론들의 기여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이처럼 지식인들이 최소한의 분별력을 갖춰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2019년 11월 23일 겨우 지소미아의 파기는 면했으나, 그 까닭은 양국이 신뢰를 회복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한미일의 안보 채제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압박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은 이 조약(한일 기본 조약)으로 국가의 청구권은 포기하지만 개인의 청구권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한국 내에서는 이를 침략을 명기한 배상 조약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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