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어떻게 우리를 단절시키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가 - 민주적·지성적 문화의 타락을 부추긴 세계 최강,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에 대한 미디어 생태학자의 신랄한 고발장
시바 바이디야나단 지음, 홍권희 옮김 / 아라크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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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저자 시바 바이디아나단은 현재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미디어학과 교수이자 미국 내에 저명한 미디어 학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과거 닐 포스트먼과 헬렌 니센바움 등과 현대 미디어의 새로운 도래와 관련해 함께 연구를 해 온 바가 있는데요. 특히, 그는 매우 견고한 민주주의자로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뉴미디어가 어떻게 우리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과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영국 가디언지의 칼럼니스트로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 등의 미국의 언론사에서도 정기적인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팟캐스트와 같은 인터넷 미디어에도 간혹 출연하고 있고 다큐멘터리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의 꽤 다방면의 활동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외에도 공공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미국 디지털 공공 도서관의 이사회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Antisocial Media˝라는 원제로 지난 2018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0년 5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서론과 마지막 결론을 포함해 총 9장의 다소 구분된 내용으로 쓰여진 이 글은 일목요연하게 페이스북과 이 회사의 CEO 마크 저커버그의 발언과 활동 등을 분석하고 소셜미디어라는 뉴미디어 시대에 우리의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좀 더 비관적인 전망을 담고 있습니다. 즉, 이 글 6장 마지막에서 보이는 꽤 단정적인 주장인, ˝페이스 북은 승리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패배할 수 있다.˝가 글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재런 러니어와 로버트 맥체스니와 비교해 봤을 때도 다소 비관적인 글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최근에 일독했던 크리스 샤퍼의 글과 제법 유사한 관점의 글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자인 바이디야나단은 이런 저의 평가를 넘어, 4장에서 약간 단정적으로 ˝당초에는 페이스북이 2011년 북아프리카의 봉기를 키워준 것으로 인식됐다. 이것은 사실 부정확했다˝고 평가하고, 이러한 판단에는 다음 5장에서 보이는 ˝권위주의 국가에서 거대한 저항운동은 충분한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충분한 사람들이 설득된 경우에만 가능하다˝라는 서술을 그는 제시합니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아마도 마누엘 카스텔이 인정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적극적인 행동에는 공권력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필요가 있다˝는 언급에 기반한 것으로 보이며, 그나마도 많은 사람들이 충분하게 이 상황에 대해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진정 공감해야 하며, 이 부분에 대해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가 이해와 공감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극히 이상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페이스북이 시민들의 봉기에 어떤 매개는 될 수 있겠으나, 페이스북이 민주주의나 올바른 정치, 도덕적 필요성 등을 시민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은 거의 망상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우선, 페이스 북의 기본적인 이상은 오로지 경영적인 측면에서 기업의 이익을 쟁취하는 데 놓여져 있으며, 창업자인 저커버그가 아무리 이상과 선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페이스북이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이와는 매우 다릅니다. 6장에서 이미 논의되고 있는 바와 같이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유력 정치인들이 자신의 홍보와 더 나아가서는 정치적 상대에 관한 허위 의견이나 조작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봤을 때, 페이스 북 자체가 어떤 정치 중립성의 맥락에서 이를 견실히 지키고 있다고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커버그의 의견대로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난무하는 페이스북의 현 상황이 어떤 이상과 합치하는지 저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히고 싶은데요. 차라리 정치적으로 양쪽 진영의 지지자들과 해당 정치인들에게 밉보이지 않고 적당히 모두에게 이익을 얻는 것이 그의 이상이자 이익이라면 차라리 솔직하다고 인정을 받을 만할 것입니다. 일찍이 밀턴 프리드먼은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요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이 거대한 사기업의 운영자인 저커버그가 프리드먼의 요구와 반대대로 행동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는 모두가 인지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 시점에서 저커버그에게 바라는 것은 그의 기업이 더이상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게 되지 않는 일종의 ‘정치적 자정능력‘을 발휘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저의 이런 기대는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겠죠.

미디어 연구의 대가인 닐 포스트먼의 영향을 받은 저자는 글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media literacy가 사실상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요. 이 미디어 리터러시는 현재의 인터넷 미디어 시대에 시민들이 적절한 분별력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 르네상스 시기에 활자인쇄술의 발달은 우리의 문명이 몇 단계나 발전하는 데 이바지 했는데요. 그에 반해 닐 포스트먼과 저자는 지금의 이 뉴미디어가 과연 문명의 발전에 이바지 할지는 매우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글 후반부에 각국의 권위주의 정부들이 페이스 북의 가짜 친구를 등록하여 소위 민주적 인사들이나 중요 시민들을 감시하는 데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일전에 티모시 스나이더가 폭로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러시아의 해킹 당국이 관여한 영국 브렉시트와 관련된 가짜 뉴스, 허위 조작들의 봇과 마찬가지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예전 대선에서의 사실상 개입은 문명 차원을 넘어 미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태로워질 수 있는지 매우 격렬하게 보여준 증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대다수의 시민들이 이 가짜 뉴스의 홍수에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명백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이 부분에 대한 해결책은 현재로선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더불어 꽤 몇년간 구글과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인터넷 기업들의 기득권이 날로 강화되어 왔고 정부가 운영하는 정보 조직 또한 시민들에 비해선 과도하게 비대칭 권력성을 내포하고 있어 우리의 권리를 위해 해결해야 될 부분이 이처럼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러한 페이스북의 꽤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있어 저자는 ˝강압적인 국가적 폭력은 존재하며, 때로는 확산되는 게 확실하다˝고 단언합니다. 즉, 민주주의에 반하는 각국의 권위 정부들이 현 상황에 대한 애매한 태도로 인해 이를 적극적으로 악용하고 있으며, 기업의 이익에 수렴하는 각종 알고리즘이 정치적 문제에 대한 페이스북의 전반적인 대응을 어렵게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통해 제가 페이스북에 면죄부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요. 그동안 이어온 구글의 사용자에 대한 적절한 검색 결과의 제공은 이것에 광고 수익을 비롯한 각종 수익이 연계되어 있어 전반적으로 이런 경제적 토대를 바꾸는 등의 결정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이들 소셜미디어의 사용자들에 대한 축적된 데이터 문제가 사적인 기업들의 사용 문제를 포함해 국가 정보국의 안보를 위한 함의 또한 분명하기에 저자의 예견대로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올더스 헉슬리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사회의 도래는 예상이 빗나가는 전망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이미 많은 전문가들을 통해 국가 안보는 절대로 완벽하게 충족될 수 없는 부분임에도 미국은 건드려서는 안되는 거대하고 비대한 정보 조직을 완성했습니다. 이 통괄 정보국이 누구의 손에 쥐어지냐에 따라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시민권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일텐데요. 안보를 지렛대로 엘리트 기득권이 요구했던 이 정보 권리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현 미국의 모습입니다. 사실 저커버그가 그동안 누누히 강조했던 이 연결성이 우리의 목줄을 옥죄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어떠한 정치적 견제 없이 연결성만을 운운해 무슨 이상주의 사회를 피력하는 그의 논법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깨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페이스북과 같은 인터넷 소셜미디어 그룹의 규제는 일반 기업의 관점과는 다르게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효능감에 대한 냉소주의˝를 갖고 있는 레이건주의자들과 대처주의자들이 아직도 많은 시점에서 시민들의 프라이버시와 권리를 침해할지도 모르는 이 소셜미디어를 오로지 자본주의 논리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동안 반민주주의 국가들에게서 민주적 열망을 고취하고 그것을 실행시켰다는 과분한 평가로 이 페이스북을 거론하면서 반대로 권위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국민들을 억압하는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이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쉬쉬하고만 있었습니다. 2016년에 276억달러의 매출을 올린 페이스북의 경제 지표는 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른 국가의 민주주의를 악화시켜 얻은 수익으로 미국의 사회 발전을 위해 재투자 하겠다는 저커버그의 발언은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은 괴리감을 느끼게 해주는데요. 이것은 그만큼 밀턴 프리드먼의 앞선 주장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러시아 당국이 해커 그룹을 운용하며 타국의 민주주의를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을 그저 내정 간섭에 따른 불법 행위로만 여기고 정부가 전반적인 산업 전부를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분명 큰 문제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런 비판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재런 러니어는 이 정도까지는 직접적으로 예측하지 못했다고 봐야할 텐데요. 그에 비해 바이디야나단의 ‘페이스북 국가‘에 대한 경고는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넷 기업들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전문 기술자들의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 인식 또한 개선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 새로운 생태계가 출현해서 먹거리가 풍부해졌다고 좋아하기만 하고 그 이면에 있는 시민들의 권리와 프라이버시의 문제 그리고 안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권력 비대화를 외면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시민들이 관심을 갖기 전에, 이들 전문가들의 각성 또한 매우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본문에서 토니 주트의 ‘현장 정치 교육 instant political education‘ 이 인용되고 있는데요. 문맥에 적절하다는 것을 넘어 뭔가 반가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조나선 지트레인도 인용되고 있어서 조만간 그의 저서를 구해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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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허위정보는 여러 형태를 띠고 있고 여러 가지 다른 동기를 갖고 있다. 어떤 것은 광고 수익을 내기 위해 클릭을 유도하도록 설계되었다. 어떤 것은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제도들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거나, 민주적 숙의를 방해하도록, 정당, 정부 또는 비정부 활동가에 의해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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