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 열 가지 키워드로 읽는 21세기 극우의 현장
카스 무데 지음, 권은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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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 무데 (혹은 카스 머드)는 네덜란드 출신의 저명한 정치학자입니다.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모국의 레이던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도미하여 조지아 대학의 국제관계학 교수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특히 무데는 주로 포퓰리즘과 극우 정치와 같은 극단주의 정치를 연구하는 학자인데요. 포퓰리즘과 관련한 연구에서는 전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 있어 극단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 연구를 위한 유럽 컨소시엄 (ECPR)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카스 무데라는 학자의 존재는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 보니, 극우주의자들에게 어떤 린치를 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안전을 먼저 챙겨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The Far Right Today˝라는 원제로 지난 2019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1년 2월 번역 출판되었다. 우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무데의 논저를 이처럼 문제없이 번역한 역자의 노고에 먼저 감사를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총 10장의 소주제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에는 독자들을 위한 약간의 보론도 실려 있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맥락은 꽤 일관된 논지를 갖고 있어 배경 지식이 다소 없는 분들이라도 쉽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데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된 내용은 ‘극우 정치와 우익 포퓰리즘‘에 대한 역사와 해석 및 앞으로 이들의 대한 대응이 되겠습니다. 그는 2001년 9.11 테러와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 및 2015년 유럽의 이슬람 이주민 사태를 들면서 거의 모든 유럽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이 좋지 못한 영향을 받았다고 진단합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조직적으로 그다지 변변하지 못한 극우 세력과 도널드 트럼프로 대표되는 우익 포퓰리즘이 일어서는 사회적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극우 정치 (Far Right)와 우익 포퓰리즘을 구분하기에 앞서, 무데는 6장에서 우익 포퓰리즘의 극단화로 인해 이 양자간의 정치적 스탠스가 많이 좁혀졌다고 인정하는 부분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유럽의 극우로 대표되는 ˝반유대주의 antisemitiism, 역사수정주의 historical revisionism, 인종차별주의 racism˝ 와 여기에 반지성주의를 더하면 극우를 설명하는 완벽한 해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극우적 폭력을 불법적으로 행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외국인 (소수민족, 이민자, 난민) 또는 타락한 도덕성 (페미니시트라고 여기는 사람, 동성애자, 좌익, 노숙자)를 그 범주˝로 두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무데는 독일을 포함한 상당수의 공권력이 이들 극우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으며, 실제로 해당 경찰들이 다수가 이 극우와 연관이 깊다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집단 린치를 당한 사람들이 심지어 경찰에게 자신들의 신변 보호를 맡기는 것을 사실상 꺼려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봐야합니다. 이와 같은 극우주의의 폭력적 행동에 있어 과거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선임 고문이었던 스티브 배넌 Steve Bannon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선동 정치인들이 어떻게 저들을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당신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르게 하십시오. 그들이 당신을 외국인 혐오자로 부르게 하십시오. 그들이 당신을 이민 배척주의자라고 부르게 내버려 두십시오. 그리고 이러한 모욕을 명예로운 훈장으로 착용하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카스 무데와 더불어 포퓰리즘 연구를 지속했던 폴 태가트는 ˝이 포퓰리즘의 현상을 정치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상당수의 정치 지도자들은 반엘리트주의적이고 반지성주의적이면서 기존 체제에 대한 극심한 혐오와 비난을 해대면서도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등 거의 파시즘만도 못한 배경 때문에 이것을 정상적인 정치적 현상이라 여기고 학문에 포함해야 할지 난감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사례를 통해 이제는 극명한 정치(실질적으로는 반정치)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수준되었기에 그가 6장에서 트럼프를 그저 평범한 극우 정치인 수준으로 인정한 것은 다소 이런 인식적 배경이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물론 저는 이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5장에서 파악되는 이들 정치 세력의 평가에서 ˝오늘날 가장 성공한 극우 정당들은 주류 우익에서 우익포퓰리즘 정당으로 탈바꿈한 정당들이 대부분˝이라고 그는 명확히 인정합니다. 사실 이 부분을 달리 말하면 그만큼 극우 정치와 우익 포퓰리즘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융합되었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포퓰리즘적 우익 정치인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포함하여) 줄곧 앵무새처럼 민주주의의 회복을 외치고 있지만 이 이면에는 이들이 민주주의를 그저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이 포퓰리즘 현상을 대중들이 실질적인 민주 정치의 회복이라든지 자신들의 선거권과 정치 참여가 좀 더 실효적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열망을 그저 이용하는데 급급한 이 포퓰리스트들에게 ‘민주주의의 기대‘를 갖다 붙이는 것은 그야말로 오판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무데는 민주 정치 대부분이 어떤 걸출한 정치 지도자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갖춰진 조직과 연대가 그러한 정치의 실질적인 모습이라고 해석하는데요. 저자의 이런 의견은 충분히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러므로 거의 정치적 선동가에 가까운 포퓰리스트 정치인에게 어떤 민주적 의식이나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념이 있다고 하는 것은 거의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금권 정치하에 자본과 밀접하게 연관된 보수든 극우든 이런 정치인들이 말로는 쉴새 없이,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떨떠름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가 있습니다. 다만, 이들은 유권자들의 표를 위해 그런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지 엘리트주의가 몸에 박힌 이런 직업 정치인들이 다수의 정치를 긍정한다라, 매우 믿기 어려운 것이죠.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한 노동 계층의 붕괴, 프레카리아트의 양산, 하루 벌이를 고민하는 취약 계층의 확대로 말미암아 이미 미국과 유럽은 전방위적인 이들 시민들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좌절로 급격하게 반정치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로 이러한 지점을 미국의 티파티 운동과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자들이 매우 유용하게 이용했으며, 현재의 경제적 시스템을 긍정하고 있는 관료들과 경제엘리트들 역시 이러한 분위기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 부분에서 저들 경제엘리트들에게 어떠한 면죄부를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동안 강조했던 견고한 민주주의의 회복을 운운하기 전에 민주적 권리를 갖고 있는 다수의 시민들 삶을 안정화 시켜야 저들 역시 안정적인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저 편협한 시선으로 큰 맥락을 보지 못하는 엘리트들의 단순명료한 사고관이 신자유주의적 파행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승자 독식과 약탈 경제와 같은 불균형적인 경제 시스템을 노골적으로 지지를 표명하더라도 그 기반이 더욱 취약한 부분을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만 하는데, 자본의 승리에만 몰두한 나머지 사회가 구조적으로 이미 정치 경제할 것 없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망각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경제학자들이 평범한 시민들의 가난의 굴레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한 채, 시장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순수함이든지 맹목적이든지 하여튼 그런 독특한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저는 일방적으로 민주주의가 약화 되었기 때문에 극우 정치가 출현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긴 했지만 그보다 약탈 경제에 의거한 소모적인 경제학과 이를 추종하고 비판하지 않는 지식인들 무리 그리고 각지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어 이것에 이득을 얻는 관료들과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러한 상황을 동시다발적으로 악화시켜 왔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근본적인 파행의 근거에는 과거의 공화주의적 전통과 민주적 정치의 충분한 믿음 없이 그저 정치 자체를 수단으로 삼은 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일겁니다. 그래서 누스바움의 의견대로 ‘진정성의 결여‘는 이처럼 터무니 없는 과오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극우 정치의 도래는 현실 문제의 부조리들과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고 다수의 정치와 공정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행태들을 거의 필연적으로 수반되었기에 이 ‘분노의 정치‘를 먹고 사는 거머리 같은 극우 정치를 발생시킨 것이겠죠. 여기에는 무데가 약간 과소평가하고 있는 반지성주의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트럼프는 대표적인 반지성주의의 선구자로 그는 엘리트 지배체제 뿐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지식 시스템과 전문 지식을 거부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반지성주의 자체는 다양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이미 표출되고 있기 때문에 포퓰리즘이 반지성주의와 결합한 것은 반정치 그 자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우 정치를 기존의 정치 세력에 포함하는 민주주의의 포용성의 가치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을 것로 여겨지는데요. 사실 극좌가 혁명의 문제로 기피되었다면 오늘날의 극우는 슈미트 식의 우리편 아니면 전부 대적이라는 의미로 쉽게 표출되는 폭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기에 제도적으로 공언받지 않는 집단 리치와 같은 폭력 문제는 단순히 인간의 본성으로서도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설사 저들에게 폭력성을 제거한다 하더라도 극우 정치는 이미 ‘교육 받은 백인 남성‘을 제외한 어떠한 인종들도 대등한 정치적 상대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남녀 차별은 저들에게는 사소한 문제이고, 전반적으로 극우 정치가 민주주의 정치에 위반되고 포용할 수 없는 것임은 명백합니다. 여기서 연급되는 리처드 스펜서의 대안 우파 (alt-right) 역시, 그저 온라인상에서만 암약하고 있지만 저들도 교육 받은 백인 남성의 국가라든지, 헝가리의 극우 정치가 똑같이 강조하는 백인들만의 국가는 확실히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정치입니다. 물론 이를 정치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저로서는 회의적입니다.

극단적 중도파라는 논저를 쓴 티크 알리와 마찬가지로 독자들이자 평범한 시민들에게 극우 정치를 명백히 밝혀내는 무대의 이 논저는 실로 귀중하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각지의 극우 정치는 정치적 세력이 보잘것 없는 관계로 기성 정치에 나타나지는 못했으나, 현재는 프랑스의 르펜 사례로 말미암아 의미있는 대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수많은 보수주의자들이 비판하는 민주주의 정치의 실패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보수주의자들이 저들을 수월하게 도태시키지 못한 책임도 분명 있을 겁니다. 물론 현실 정치에 약삭빠른 언론인들은 이들 극우 현상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만 대다수 민주 정치의 기반인 시민들에게는 분명 안좋은 현상임은 분명합니다. 단순히 벤자민 바버와 같이 현실 정치에서 다양성의 가치를 더 확대시키고 이를 긍정하는 시민이 늘어나면 늘어 날수록 저 극단의 정치가 설자리를 잃게 될지는 아직은 불명확해 보입니다. 뭔가 극우 정치를 도태시키자고 말하면 뭔가 파시스트가 되는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만, 매번 강조하는대로 이 극우 정치 역시 우리의 민주 정치에 위협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좌절에 빠진 취약 계층의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구해낼 수 있을지 그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미 극단의 정치가 자생할 토양은 충분하니 말입니다.

-본문에서 카스 무데는 손수 극우 단체 모임에 수차례 참석해 저들을 관찰했다고 하는데요. 그의 용기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또한 무데는 서문에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극우가 어떻게 21세기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파시즘의 대표적인 지도자인 히틀러는 "공산주의와는 달리 민주주의는 반칙이자 더러운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극우에서 가장 중요한 이념은 파시즘으로, 이는 좌익과 우익에게서 반민주주의 anti-democratic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혼합주의적 syncretic 이념이다

인종차별주의나 민족다원주의로 알려지든 간에, 극우의 핵심적인 이념의 특징 중 하나이자 현대 우익포퓰리즘의 지배적인 특징은 바로 이민 배척주의다

극단 우익은 민주주의의 본질은 정치적 평등과 다수결에 의한 정부라는 개념을 거부하는 한편, 우익 포퓰리즘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민주주의를 지지하지만, 소수의 인권과 법치, 삼권분립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제도와 가치에 근본적으로 도전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최근의 한 연구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트럼프 유권자를 구별했는데, 미국 보존론자들 American Preservations(20퍼센트), 견고한 보수주의자들(31퍼센트), 자유시장주의자들(25퍼센트), 반지성주의자들(19퍼센트), 예측불가(5퍼센트)로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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