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회 - 평등이라는 거짓말
대니얼 리그니 지음, 박슬라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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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주에 소재한 세인트메리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인 대니얼 리그니는 로버트 머튼과 군나르 뮈르달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사회 정의와 관련된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민주주의에서 평등의 회복이라는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보편적으로 사회 정의에 집중하는 학자들은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평등과 관련된 보장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저자가 연구 분야를 포함해 문화사회학쪽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왠지 피터 싱어와 학문적 유사성을 보인다고 여겨지는데요. 다윈주의적 사회학에도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도 이해됩니다. 이 책은 원제, ˝The Matthew Effect : How Advantage Begets Further Advantage˝로 지난 2010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1년 8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일단 국역으로 된 책 제목과 관련해 한가지 아쉬운 점은 원제를 그대로 적용했으면 좀 더 의미전달이 잘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는데요. ‘평등이라는 거짓말‘도 그렇고 제목까지 독자들이 책을 펼치기 전에 뭔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뉘앙스이지 않나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입에 유명한 마태복음의 한 구절로 시작되고 있는 이 글은, 전반적으로 로버트 머튼의 ‘마태 효과‘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마태 효과를 아주 간단히 설명해 본다면 ˝우위와 열위의 양자 비교에서 그 격차가 터무니없이 벌어질 수가 있는데, 이를테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계속해서 벌어질 수 없는 상황과 그 이유를 사회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학문적 연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 간단히 말씀드리면, 빈익빈 부익부와 양극화 정도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경제학자들은 다윈의 도태론을 접목시켜 불평등의 문제속에서 그 메커니즘이 사실상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임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러한 불평등 문제가 사회를 좀 더 발전시키는 추동 요인이 되고, 각자 개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위해 더 노력하게 된다는 이론일텐데요. 제가 경제학자들의 저런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사회학적으로 이런 현상을 연구하는 것은 꽤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그저 인간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극히 자연스러운 부분‘이라고 인정하고 크게 문제를 삼지 않으면 일부 세력이 현상을 오도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에밀 뒤르켐이 모든 사회학에서의 주장들이 마땅한 근거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절로 수긍이 될 정도이니 말입니다.

따라서 저자의 이 글은 이 마태 효과를 기반으로 과학과 기술분야, 경제분야, 정치와 공공 정책의 분야, 교육과 문화 분야에서의 우위와 열위를 기본으로 어떻게 경제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이 양자의 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지 해당되는 적절한 여러 사례들을 취합해내고 있습니다. 이미 1장 후반부에서 ˝사회적 삶의 다양한 면에서 빠짐없이 마태 효과가 발견되고 있고, 대항력이 부재할 때는 사회적 결과에 대해 잠재적으로 강력한 결정 인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들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3장의 경제학 분야의 마태 효과를 조금 살펴보자면, 저자는 경제학자들이 이 마태 효과에 대해 다소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경제학자들이 무지하다기 보다는 마태 효과를 규정하기 전에 매우 불확실한 요소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일종의 규정의 어려움으로 판단하는 듯 보입니다. 특히 마태 효과는 ‘자원 분배의 불균형‘으로 설명하려는 요인이 있기에 특히 부자들과 빈자들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앞선 수단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에 수긍하게 됩니다. 어차피 이미 나와 있는 수많은 사회학적 이론에 의해 격차가 크면 클수록 그 반대 급부는 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성향이 있습니다. 사실 구태의연하다는 종속 이론을 살펴봐도 북반구가 남반구를 종속에 불과한 상태로 몰아넣으면 그만큼 북반구에게는 엄청난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미국이 칠레를 사실상 엘리트 들에 의한 과두제에 처하게 만드는 등의 일종의 정치 모략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일련의 개입들이 이러한 맥락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사실 소설을 쓰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건전한 민주주의를 전세계에 확산시키겠다는 대의를 표방했지만, 속으로는 CIA를 통해 더러운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해당 국가의 엘리트들을 지원하여 친미 정부를 세우는 등의 국가 헤게모니를 적극적으로 획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이 마태 효과가 ‘착취의 효과‘로도 읽혀지는데요. 이 글 3장과 뒤이어 4장에서도 ˝가난하 자들의 처지를 더욱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이 극심한 빈익빈 부익부는 상대적으로 부유층에게 커다한 이득이 되어 왔다˝고 전반적으로 논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역효과의 원인은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와 그동안 자유 시장주의의 함의로 인해 분배의 문제, 특히 사회적 자원 분배의 불균형이 상황을 악화시켜 왔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다만, 저자는 약간 완곡한 어조로 ‘현대 자유주의의 영향‘이라고 일단 해석하고 있는데요. 아니 그냥 신자유주의의 여파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현대 자유주의로 갖다 쓰는 점이 다소 이해는 되지 않았습니다. 전반적으로 글의 논조가 꽤 신중한 면이 있기도 한데요. 그런 연유 때문인지 아니면 좀 더 면밀히 이론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자유주의의 세련된 버전과 같은 수사적 표현을 갖다 붙인 것은 불확실해 보입니다. 또한, 6장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이 마태 효과에 대한 여러 분파들의 판단에 대해 불평등을 그저 불가피한 자연법칙이자 사회적 편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상당하고 그러면서 이 불평등에 대해 어떠한 인식도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앞장에서 절묘한 비유로 넣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좋아하는데요. ˝야구로 치면 3루에 있는 자가 원칙적으로 3루에서 태어난 것에 불과한데 자신은 스스로 이 3루를 쟁취했다고 여긴다˝는 표현은 이처럼 극적입니다. 즉, 이미 부자인 사람들은 부모를 잘 만났거나 상당한 유산을 받은 케이스들이 많을 텐데 그보다 반대의 경우, 가난한 사람이 정말 엄청난 노력과 기회를 잡아 부자가 될 확률은 현 사회와 경제적 상황에서 거의 소수 점대에 수렴한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의 계층적 강고화가 보유한 부에 따라 강화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텐데요. 자본주의가 계급주의적 상황을 긍정한다고 볼 수 없는 이데올로기인데, 이미 교조의 법칙을 부정하는 상황이 현 사회에 나타나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결국 많은 이들이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그에 따른 번영으로 자신과 자신 가족의 운명을 바꾸게 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발상이 거의 허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금융 자본주의로 자본주의가 한번 더 변화하게 됨에 따라 아메리칸 드림과 같은 꽤 선명한 인간 발전의 자화상은 더이상 목격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마태 효과로 설명되는 현 시대의 자화상은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에서의 평등의 실종과 관련이 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민주주의의 평등을 약화시키는 것은 일종의 ‘거세된 민주주의‘라고 여깁니다. 저자는 이 글의 6장에서 ˝누진세와 사회보장제도, 메디케어, 인권운동과 여성평등운동이 없었다면 과연 미국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라고 반문합니다. 많은 이들이 경제적인 측면만 바라보고 이러한 번영이 인간 사회의 선결 조건이라 여기는 듯 하지만 실상 사회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인간답게 그 권리를 항유하게 된 연유에는 기본적인 평등의 정신과 인권의 개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경제학이 이런 중차대한 가치를 뒷받침해 왔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젠 시장의 공정성을 믿는 자유주의 철학이 철회되어야 함은 마땅합니다. 아주 단적으로 돈이 더 많은 자들이 훨씬 자유로울 수밖에 없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유의 빈곤을 받아들 수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아예 ‘승자 독식‘의 기조를 강화시켜 더욱 불균형 사회로 만드는 데 이바지 한 것이 바로 저 자유시장 이론이 아니었습니까.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일침을 하고 있는데요. 경제학자들은 이미 사람들을 가난이라는 덫에 가두는 다양한 인과적 순환을 알고 있다고 명백하게 글에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유 시장의 공정이라든지, 선순환 내지는 모두의 경제적 번영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고 이를 이미 경제학자들은 인지하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끝으로, 이곳에서 다루고 있는 이 마태 효과는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이론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자주 바우만을 인용했습니다만, 그는 ‘경제학이 인류의 태동과 함께 등장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고 자주 강조해왔습니다. 더욱이 가난한 자들을 배를 곯게 해야 스스로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허버트 스펜서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회의론자들을 비롯 이러한 체제에 달콤한 과실만 먹은 이들은 전혀 현 상황의 부조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온건주의자라고 잘 알려져 있는 조지 소로스조차도 이 자유 시장체제에 대해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시민들에게 인내를 발휘해 줄 요구만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모두가 잘 살수 있을것이라고 믿었던 애덤 스미스를 교조적으로 만든 신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기에도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고 시민들 중 대다수는 ‘계몽적 이기심‘과 같은 말도 안되는 수사가 판을 치는 마당에 권력의 불균형 상태 마저도 이를 악화시키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이 그저 쳇바퀴 같은 현실에서 실낱같은 개선의 가능성을 보려 노력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진보는 지리멸렬했고 보수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와 결탁하고 보낸 햇수만 40년이 넘습니다. 사실 평등이 뒤집어 쓴 허위와 다름없는 오욕을 걷어내는 것만 해도 이미 숨이 벅찰 지경인데 해결해야 될 문제는 이미 산적해 있습니다. 저는 정치가 경제와 대결해서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기 보다 후퇴한 정치의 영역을 다시 회복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금권 정치의 문제, 이익화 된 정치인, 더욱 가중되는 경제적 불평등은 자꾸만 현실을 도외시하는 시민들을 잉태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의 결론에서도 ˝부자들의 이익은 가난한 자들이 얻는 이득을 크게 능가한다˝고 입증하면서 경제 성장 자체의 명암을 확실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고삐풀린 자본주의가 과연 우리의 삶을 어디로 인도할지 불안한 마음만 가득합니다.

마태 효과에 대한 연구는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특히 선행적인 우위를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모든 사회적 제도는 어느 정도는 의도하지 않았던 부가물들이 자연스럽게 축적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된 불평등은 억압된 계층들 사이에 불평불만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사회적 불안과 갈등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주장은 마태 효과가 엄연히 실재하며, 사회적 삶의 다양한 면에서 빠짐없이 발견되고 있고, 대항력이 부재할 때는 사회적 결과에 대해 잠재적으로 강력한 결정 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보다 발전된 사회에서는 비교적 민주적이고 공평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경제지배층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정치적 절차를 좌우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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