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권력의 시대
마이클 페렐먼 지음, 오종석 옮김 / 난장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미국의 손꼽히는 진보적 경제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인 마이클 페렐먼은 미시간 대학을 거쳐 버클리에서 농업경제학에 관한 박사 학위를 수여 받게 됩니다. 당시 경제학계의 큰 족적을 남긴 조지 쿠즈네츠의 사사를 받은 펠렐먼은 이후 사회경제 분야와 관련해 다양한 관심을 갖고 진보적 경제학의 틀을 자신의 학문적 토대로 삼는 등의 여러 연구활동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를테면 진보적 매체인 먼슬리 리뷰에 글을 기고한다던지 미디어 매터스와 퍼시피카 라디오 등의 여러 방송에서도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등의 학자 이외의 활발한 활동을 지속해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왕성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올해인 2020년 9월 21일 캘리포니아 주 치코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병명에 대해서는 구글링을 통해서도 나오지 않고 있는데요. 어찌됐든 이런 저명한 경제학자가 세상을 등진 것은 매우 아쉬울 따름입니다. 일단 그의 여러 저서들 가운데 특히 ‘자본주의의 발명‘은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가 있는데요. 하지만 국내에는 그의 논저들이 많이 번역되지를 않아 아쉬움이 크기도 합니다. 이 책은 원제, ˝Manufacturing Discontent : The Trap of Individualism in Corporate Society˝로 지난 2005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9년 7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다만, 현재 이 글은 현재 절판된 상태입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원제를 국역한 책의 제목이 내용 전반을 설명하는 데에는 다소 부족하지 않나 생각해 보는데요. 원제를 그대로 번역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을 통해 저자인 페렐먼이 밝히고자 하는 점은 ˝오도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기업들의 거대 권력화가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이 부분과 관련해 미국의 소름끼치는 상황은 낙농축산계의 우유 생산에 있어 배설물과 여타 오염물을 방사선으로 처리해 출하하고 있는 현재 미국의 상황과 이러한 시스템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광범위한 로비 시스템‘이 사실상 소비자 주권을 무력화하는데 힘쓰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2장에서는 이 소비자주권과 관련해 오히려 기업들이 많은 소비자들에게 ‘과시적 소비‘를 확대하는 것으로 본래의 의미를 무력화시키고 있는데요. 전통적인 경제학 측면에서도 애덤 스미스 조차 노동자들의 소비활동에 대한 꽤 윤리적인 문제 등을 다뤘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오늘날 나날이 기업들의 권력이 비대해짐에 따라 현재의 많은 사회들에서 보여지는 양보와 지원책을 좀 더 배타적으로 유지하고 기득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실은 깊은 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캘리니코스가 오로지 이익만을 취하려는 기업과 그 반대의 세금 부여, 사회적 책임 등은 사회와 시민들에게 전가하는 이러한 행태들을 마찬가지로 강하게 질타한 바가 있습니다.

앞선 개인주의에 돌아가서 우리가 역사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개인주의와 대규모 기업들이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는 그것은 매우 결이 다르다 할 수 있을겁니다. ˝소위 노동자를 굴복시키는 기업 개인주의 즉, 기업형 개인주의˝는 사회의 많은 시민들에게 ˝개인의 역할이란 것은 오직 부지런히 일하고 동시에 적절히 소비하는 것˝이라고 주입합니다. 많은 자본주의의 문제점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이렇게 개인들을 파편화시켜서 오로지 시스템의 구성 요소로 전락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을텐데요. 자본주의가 태동한 시기가 그리 짧으면서도 어떻게 민주주의를 비롯한 유구한 정치철학의 과거를 무너뜨리고 어떻게 이토록 빠른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선 참으로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 특히, 기업이 효과적으로 운영됨에 따라 그것의 실리를 노동자이자 시민인 우리들이 얻게 되고 이러한 선순환이 지속된다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주장들이 현재에 어떤 식으로 파행적 결과를 낳았는지는 ‘프레카리아트‘ 및 개인의 파편화, 복지 제도의 유명 무실화 등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4장 기업의 책임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환경오염과 같은 일련의 도덕적인 불감부터 자행되고 있는 여러 기업들의 범죄행위에 있어 법률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큰 우려할 만한 사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미국과 같은 나라는 일반 개인들이 거대 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할 수 있어야만 하는 소송과 관련해 여러 막대한 비용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소송 자체에 대한 접근을 멀어지게 한다는 점에서 사법 시스템 자체가 비효율적인 측면을 떠나서 다소 기업 친화적인 편견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미 사회 계약에 따른 법치주의와 법 제도의 근간이 자본주의화에 따른 매우 불합리한 기업들의 권력화가 이러한 사태를 조장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다음, 6장에서 많은 분량을 할애해 저자가 설명하고 있듯이 경제 정의에 입각해 법 테두리 안에서 이어나가야 하는 기업의 운영 법칙들이 어떻게 불식되고 있는지 잘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장에서는 금융 자본주의와 전통적인 자본주의 간의 인식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현재까지 자본주의 자체가 고도화 된 금융 자본주의의 시녀가 되어가고 있다 받아들여도 거의 무방합니다. 전세계 금융의 역사에서 지난 2008년에 있었던 뉴욕발 경제 위기의 책임을 어느 누구도 지지않는 사태는 모든 기업들의 윤리적 함의가 어디에 있는지 명백하게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선 개인주의를 기업이 변형시켜 배포한 기업형 개인주의가 사실상 윤리와 도덕 문제, 더 나아가서는 법의 문제를 ‘탈각‘시키는 쪽으로 시스템 전반의 변화를 기업들이 획책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2008년 당시 거대한 도덕적 해이와 대마불사와 같은 ‘이득은 오로지 자신들만이 손해와 책임은 사회에‘라는 이념으로 무장한 자들이 국가와 사회를 어떻게 무력화 시켰는지는 충분히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라구람 라잔과 누리엘 루비니 더 나아가서는 하이먼 민스키 정도로 대변되는 정상론자들을 무력화시킨 작금의 금융 자본주의가 과연 모든 시민과 사회의 이득이 될 수 있겠느냐는 그 결과의 도출이 매우 명백하지 않겠습니까.

글 중간에 저자인 페렐먼은 ˝현재에 지속되고 있는 테러의 위협에 투입되는 돈 만큼 기업의 위협과 불안에 대비해 투입되어야만 하는 돈의 총량˝이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테러에 대해서는 모든 국가가 즉각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이 방만한 기업들의 권력 독점에 대해서는 왜 국가가 제대로 나서고 있지 않는지에 대해 시민들의 무력감은 차치하더라도 소위 보수주의자들과 지식인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점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 의미로 이 글 마지막 8장에서 저자는 약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자유방임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개인들이 가지는 민주적 권리는 시장 경제의 소중한 미덕 중 하나˝라는 주장에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이 멋대로 돌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과 전자의 가치는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뒤이어 진술된 내용들이 마땅히 따라오는 시장 내부에서의 정치의 퇴장과 선거의 모순 등이 나오는데요. 전반적인 시장의 문제들은 사실상 우리가 자초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기업들이 시민들의 ‘민주적 권리‘를 제거하는 데 몇십년에 걸쳐 노력해 왔지만 소위 ‘먹고사니즘‘에 따른 일방적인 강요된 개인주의화에 대해 제대로 저항하지 않은 우리들의 책임도 분명 있는 것이죠. 전반적으로 시장과 정치에서 시민들을 괴리시키는 일련의 정치경제적 작업에 우리 시민들이 어느 정도의 파급을 갖고 있겠느냐의 문제를 잠시 제쳐놓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 최소한의 의구심을 우리가 견지하고 있었더라면 아마도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특히, 샹탈 무페가 강조했던 바대로 전 사회적으로 좌파들의 철지난 이념 논쟁으로 인해 몰락한 것은 보수주의가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는 것을 방조하고 기업들의 문제들을 수수방관하는 데 도움을 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역시나 지금으로선 기업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시민들의 힘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대체적으로 그동안 자본주의가 기업 경영에 대한 어떤 성역을 강요하고 기업 전반의 자율권을 배타적인 권리 등으로 포장한 일련의 사회경제학 과정을 철폐하는 데 힘써야만 앞으로 50년의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우리는 리스크를 감내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취급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일자리가 부족한 시대에 기업이 특권을 요구하는 것이 더 공익적이라는 게 되어버렸다.

소비자 주권이라는 수사가 맞다면 기업들의 존재 이유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해 주기 위함에 있다.

개인들이 자유롭게 경제적 선택을 하면서 시장이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게 돌아가도록 내버려두게 만드는 여러 전제 조건들 중 가장 필요한 것은 대중이 완전한 정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갈수록 정부가 학계로부터 오는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데 막대한 힘을 쏟아붓는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좋아하는 학자들에게는 연구비를 대주는 반면 자신들에게 불리한 연구결과를 제시하는 학자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인댄다.

회사의 이윤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비용을 전가함으로써 얻는 것이다. 기업이 환경 오염을 발생시키면 사회전체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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