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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숨겨진 부 - 국가에 내 행복의 책임을 묻다
데이비드 핼펀 지음, 제현주 옮김 / 북돋움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2000년대 초반 영국 노동당 정부인 토니 블레어 정권에서 관료를 역임한 데이비드 헬펀은 주로 실험심리학에 근거한 사회 분석 및 인간 심리학을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영국 국내에서 국민들의 사회적 인간 행동 심리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옥스포드에서의 전임 교수와 킹스 칼리지에서 방문 교수를 역임하는 등 관료계와 학계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손씻기 운동과 같은 사회적 장려 운동 등에 관심을 갖고 대중 매체 등에서 얼굴을 알리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영국내에서는 과거 내각에서 일했던 경력 때문인지 앞서 언급한 대로 BBC를 비롯한 여러 방송에서 전문가로서도 조언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의 이 책은 원제 ˝The Hidden Wealth Of Nations˝로서 지난 2010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년 뒤인 2012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일단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국내 번역본은 완역 여부를 떠나서 역자가 아마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인지 역자 주를 넘어 다른 자료들를 임의로 첨부해 놓기도 하였습니다. 이 점은 독자들에 따라 평가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지점이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편역본이라기 보다는 역자 보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저의 평가는 애매하다는 정도로 갈음하고 싶습니다.
먼저, 헬펀의 이 책을 좀 더 면밀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선 문단에서 설명한 것처럼 독자들이 읽을 때 역자가 표명한 인식과 저자의 주장하는 바를 대체로 구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특히, ‘끼어들기‘라는 미명하에 한국 상황을 보론이랍시고 삽입하고 있는데 이 점은 명확하게도 본래의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밝혀두고 싶습니다. 따라서, 너무나 광범위해서 의미가 없는 ‘웰빙‘ 다룬 1장을 제외한다면 (사실 1장도 저자가 쓴 원글인지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만) 2장부터가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보기에는 저자인 데이비드 헬펀이 근래 세기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빈부 격차에 대해 어느 정도 균형 감각을 유지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능력주의(Meritocracy)에 대한 옹호와 ˝불평등에도 공정한 것과 불공정한 것이 있다는 논리˝등과 같은 수사를 봤을 때 주장하고 선호하는 바의 근거가 다소 부족하지 않나 생각해 봤습니다. 사실 현시대의 자본주의가 단순히 형식상의 능력주의 체계라든지 아니면 그 일면의 모든 것을 옹호하든지 간에 현재로서는 찰스 틸리가 설명한 것처럼 평등의 문제가 자본주의가 침식한 민주주의하에서는 더욱 불명확해졌기 때문에 사회 정치 이론에서 많은 오해가 발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즉, 능력주의 자체가 극복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민주주의적 본질에서 평등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기 때문에 능력주의 자체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현시점에서는 매우 어렵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그리 판단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차별˝이라는 정치학적 수사에도 그 본질의 완벽한 이해가 대체로 평등의 인식 부재로 한계가 명확하기에 전체적으로는 민주주의에서 자유의 문제 보다 평등의 문제가 보다 이념적이고 보다 기피하게 되는 가치가 되었던 것은 어느 국가의 사회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4장 도덕의 정치학과 5장 국가의 역할 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글임은 일독하고 나서 분명해졌습니다. 사실 그동안 많은 서평에서 오늘날 정치의 문제점은 극명하게 법에 판단에만 의지할 정도로 도덕주의의 실종이 큰 역사적 손실임은 자명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래 사회 구조가 루소의 말대로라면 모든 인간들이 자신들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국가와 같은 조직체를 만들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권리들을 뒷받침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 도덕주의적 원리가 항상 살아있어야 하는데 이 책의 2장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능력주의‘ 사회의 최대한의 공정성은 과연 누구한테 혹은 어떤 제도한테 기댈 수 있는 불명확한 것은 도덕주의의 실종과도 연관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통주의적인 도덕적 사회는 타인과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이러한 관계들이 건전해질 때야말로 그 사회가 온전히 돌아간다고 전세대들은 그리 판단했습니다. 그런 사회학 역사의 중간에 오도된 허버트 스펜서류의 사회진화학 등이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거의 모든 도덕주의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급기야는 신자유주의자들 역시 오로지 개인의 이익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면에서 이 글, 2장의 논의들은 꽤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는데요. 약간 틀에박힌 논의일 수도 있으나 사회적 자원의 집중과 그에 따른 부의 쏠림이 과연 건전한 방식이냐에도 시민들의 이성적 판단에 기대하는 것 또한 충분히 중요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글에서 인용된 ˝우편향의 정치인 좌편향의 정치인˝ 정도의 사회적 문제 해석은 다소 미흡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 설명을 위해 앞선 용어를 크게 고려하지 않고 삽입했겠습니다만 불평등 문제와 빈부 격차를 오로지 이념에 기대게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의 사회 문제를 더욱 극단화 시켰던 원인이기도 하기에 현재로선 각계 각층의 열린 토론과 합의에 이르는 어떤 획기적인 방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취지의 결론을 이 책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4장은 꽤 중요하다고 판단이 되었는데요. 단순한 ‘존중‘ 이상을 넘어 그리고 쉽게 투입되는 돈의 여부를 넘어서서 사회 구성원 모두의 변화와 이를 통한 사회 전체적인 폐해를 개선하는 데 저자는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복지의 사각지대를 매우는 네트워크˝와 같은 문단은 생각해 볼 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명백하게 정부의 투입되는 돈이 아니면 무기력하다는 시민들의 인식을 뛰어넘는 꽤 중요한 ˝행동주의˝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도를 통해 결론적으로는 사회와 국가가 진화할 수 있다는 저자의 인식에도 ‘아주 터무니없다‘ 라고는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동안 국제무대에서의 공익을 위한 여러 NGO단체들의 활동이 있어 왔는데요. 앞선 사회적 갈등과 대화 단절 등을 비롯한 신자유주의적 책동에 분명히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있을겁니다. 다만 그동안 복지 문제와 관련해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반감은 꽤 노골적이었으며 소위 슈미트의 영향이라고 봐도 일견 무방해 보이는 ˝경제적인 개인의 결단주의˝는 스스로의 존엄과 자유에 연결된 가치라고 맹목적으로 주장한 인사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애초에 조화로운 사회가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불협화음 정도의 부정적 정체성을 갖고 있어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목소리의 힘이 불식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자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후, 5장에서는 그런 변화된 사회를 통해 나아갈 국가에 대해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 저자는 설명하고 있는데요. 전통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달리 말하자면 휴머니즘에 입각한 자유주의를 적절하게 안배하는 국가의 여러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파트너 관계라든지 공동 책임이라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와 관련해 5장 도입에서는 ˝과연 훌륭한 통치는 무엇인가˝대해 적절히 가늠하고 있는데요. 단순히 북유럽 국가들의 면면을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경제가 더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국가의 적절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은 설득력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는 민주주의적 이념에 따라 국민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부가 꽤 적절하고 훌륭한 정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국가에 해야만 하는 혹은 시민들이 행동해야만 하는 여러 당위들에 대해 논하는 것으로 글이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헬펀의 여러 제안들은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는 원칙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유층들이나 권력층이 자신들의 입맛에 맛는 정책이나 권력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연유에는 아마도 본질적으로는 다중 정치에 대한 불신이 자신들의 권력이 집중되어도 해소가 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래의 태국에서의 국왕 퇴진 운동을 비롯한 민주주의 운동을 보노라면 확실히 교육을 받았던 안 받았던 시민 정치 전체에 대한 불신이 이들의 사회맥락적 메커니즘의 전반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관계들 간의 정상화 내지는 내밀화가 각계 각층의 불신을 씻어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불확실한 점은 우리의 당면한 숙제로 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제목의 국가의 숨겨진 부는 다른 의미로는 매우 중의적인 표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자의 과도한 편집이 전체를 독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금 밝혀두고 싶습니다.
불평등에도 공정한 것과 불공정한 것이 있다는 논리는 ‘실력중심주의‘, 바로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빨리 승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실력‘을 어떻게 규정할 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 계좌에 몇백 파운드 (몇십만 원)의 돈을 가진 것만으로도 청년 시절, 인생에서 내리는 중요한 결정이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의 자본 지원은 다른 정책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를테면 부유한 학생들이 일류 대학을 다니는 데 드는 돈을 정부가 일부 부담하면서 대학 진학이 아닌 다른 진로를 선택한 젊은이, 전통적인 대학 교육에서 요구하는 만큼의 지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젊은이의 능력 계발에는 재원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를 해결할 수 있다
대중으로서 우리는, 그리고 정치인들 역시 개인의 책임에 대해 상당히 모순된 자가당착적 입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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