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와 유럽연합 -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세계경제의 블록화를 전망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김준효 옮김 / 책갈피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세계 경제학계에 있어서 좌파 경제학의 선두 학자로 불리우는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짐바브웨 태생의 영국 국제사회주의자입니다. 20세기가 나은 유명한 영국 역사학자인 액턴 경의 딸이 그의 모친이자, 세계 제2차대전 당시 나치에 대항해 그리스 레지스탕스에서 활동한 부친을 둔 그는 마르크스와 알튀세르를 비롯한 사회주의에 심취해 현재는 영국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의 유럽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상적 측면은 국제주의적인 보다 개선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일련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와 같은 자유주의적 좌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 글에서는 우파 사상가인 토마스 프리드먼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요. 신자유주의에 따른 세계화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갖고 앞으로 몇 년의 미래를 예측한 프리드먼을 어처구니가 없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출판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지난 2019년 8월, 국내에 번역 출판된 ˝브렉시트, 무엇이고 왜 세계적 쟁점인가?˝의 일종의 보론을 포함한 증보판이라는 점입니다. 기존의 브렉시트와 관련된 여러 연구자의 글을 실고, 마지막 부분에는 현재의 유럽 연합에 대한 성격을 논한 글 또한 실려 있는데요. 전반적으로 브렉시트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독자들의 좀 더 면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출판이라 봐도 크게 지나치지 않는다 볼 수 있겠습니다.

이미 2016년에 있었던 브렉시트와 관련된 영국 투표를 다룬 많은 기사와 논문이 국내외적으로 나온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럽연합 탈퇴라는 영국 시민들의 결정에 티모시 스나이더가 러시아의 개입을 언급한 바와 같이, 외부적 요인에도 기인한 바도 분명 있습니다. 캘리니코스는 기본적으로 브렉시트와 관련해 영국의 유권자들이 정치 및 경제 엘리트들에게 신물이 난 상황에서 ˝영국의 일은 영국인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슬로건으로 당시 영국 정부와는 다른 결과가 도출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투표 결과 이후에는 브렉시트와 관련된 많은 이견들 가운데 인종주의적 시각을 가진 극우 정치인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지지층들이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이에 캘리니코스는 ˝현대 자본주의에 이주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한데, 영국을 포함한 이주민 계열의 시민권자들에 대한 무분별한 증오와 인종차별에 대해 ˝좌파는 인종차별적이고 최근 힘을 얻고 있는 영국 애국주의와 선을 긋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이러한 측면의 이해에는 영국 노동당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애매한 태도와 더불어 대기업들과 부자들의 이익에 영합함으로써 이러한 다수의 유권자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정치적 결정에 기본적인 토론이나 대화로서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인종주의적 증오와 행동이 끼어들었다는 점에서 일련의 포퓰리즘적 정치를 비판해내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는 이 포퓰리즘 정치에 대해 일련의 분석과정이나 이들이 원하는 결론에 대한 비현실성으로 말미암아 포퓰리즘에 대한 판단을 약간 보류하고 있기도 한데요. 개인적으로 캘리니코스가 이 우파 포퓰리즘을 좌파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은 전후, 미국의 인도에 따라 대서양 관계를 확립하고 꽤 적극적으로 당시 미국 경제와 손을 맞잡기도 합니다. 이에 처칠은 영국은 유럽과 행동을 같이 할 수는 있겠으나, 유럽의 일부분이 될 수 없다는 식의 국제정치적 인식론과 더불어 영국이 이집트 정권에 불법적으로 개입하는 1956년전까지 기존의 제국주의를 철회할 여지는 없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자국과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 영국인들은 이후 20여년간 이뤄지는 독일의 경제적 부상과 유럽 내의 정치적 패권이 영국과 점차 멀어지는 상황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와중에 유럽이 통합의 움직임을 지속하는 동안 영국에 대한 소위 최혜국 대우는 ‘특별적 지위‘로서 영국을 취급하기도 했습니다만, 솅겐 조약과 같은 일련의 움직임에 영국이 참여를 하지 않음으로서 사실상 미국-캐나다-영국에 이르는 ˝앵글로 색슨 자유지대˝를 기대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이미 영국은 미국과 캐나다와 더불어 ˝Five Eyes˝의 일원으로서 미국의 뉴욕 월스트리트와 영국 런던의 시티 오브 런던이 국제 금융의 혜택을 누리는 와중에 이들 영국인들이 유럽 연합의 필요성을 크게 인식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다만, 유럽 자유주의가 표방하는 개인의 기본권과 인권, 자유롭게 살 권리와 같은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부정할 수 없는 입장이므로, 이주민 시민권자들에 대한 정확한 입장 정리는 정부나 시민 차원에서 매우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국 정부는 그저 앞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는 이주민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 지출을 사실상 거부함으로서 유럽과 영국의 분리를 이룩하게 되었는데요. 문제는 유럽을 그 자체로 신자유주의 세력의 요람으로만 봐야하는 지에 대한 국제정치학적인 복잡성과 당시 브렉시트와 관련된 오바마 정부의 비판은 캘리니코스가 서술하는 대로 이 세계화가 전반적으로 종식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과 그 궤가 일치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캘리니코스의 글 가운데서 그가 적나라하게 써 나가는 ‘신자유주의적 긴축‘에 대해 목도할 수 있었는데요. 지배 계급의 입장에서 긴축이 진짜로 뜻하는 바는 ˝우리가 구축한 신자유주의는 우리를 진짜 부유하게, 어쩌면 우리가 탐욕스럽게 꿈꿔 온 것보다도 더 부유하게 했어. 신자유주의는 이번 위기를 촉발했지만 그 비용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 서민이 치러야지. 일자리, 공공서비스, 교육 따위를 삭감할거야. 평범한 사람들이 대가를 치를 테지.˝라고 언급하고, 이러한 지배 계급은 자신들이 이번에도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의 세계화는 앞으로의 전망 또한 암울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노동자들의 삶 뿐만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편화에 이르게 하고 생존의 문제를 개인의 몫으로만 환원시키는 이들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제대로 파훼해 내지 못해, 일련의 유럽 정치 상황이 극우 포퓰리즘으로 더 악화되는 데 일조를 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글의 결말에서 저자가 언급하고 있듯이, ˝사실 극우에게는 신자쥬주의의 대안이라 할 만한 경제 정책이 없다˝고 단정하는 진술은 일정 부분 이들의 한계를 짐작하게 합니다. 물론 평범한 시민들의 입장에서 다소 어이가 없는 부분이겠지만, 반대로 현재의 시스템적으로는 정치 및 경제엘리트들에게 상당한 이익을 보장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에서 캘리니코스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실패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요. 이 부분은 충분히 공감이 갈 만하며, 굳이 프레카리아트나 시민들의 삶의 존엄과 관련된 문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이에 동의할 것입니다.


-현재 ECB 총재인 프랑스 정치인 출신의 크리스틴 라가르드에 관한 캘리니코스의 비판은 현재의 유럽 연합이 어떻게 지위를 이용해 자리 나눠먹기를 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제국주의란 근본적으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 간의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서로 얽히는 것으로, 현재는 사실상 제국주의가 완전히 종식된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캘리니코스는 본문에서 밝혀두고 있습니다.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긴축이 진짜로 뜻하는 바로 이렇다. ‘우리가 구축한 신자유주의는 우리를 진짜 부유하게, 어쩌면 우리가 탐욕스럽게 꿈꿔 온 것보다도 더 부유하게 했어. 신자유주의는 이번 위기를 촉발했지만 그 비용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 서민이 치러야지. 일자리, 공공서비스, 교육 따위를 삭감할 거야. 평범한 사람들이 대가를 치를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