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털 엔진 견인 도시 연대기 1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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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라이튼에서 태어난 필립 리브는 오늘날 뛰어난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및 아동 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앵글리아 러스킨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터를 공부하고 이후 브라이튼 대학의 학생 연합 잡지에 만화를 주제로 여러가지 작품들을 그리면서 만화와 일러스트 작업 등에 주목하게 됩니다. 몇몇 책에 만화를 제공하면서 명성을 얻기도 하는데요. 특히, 그런 자신의 진로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 준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지금 소개하는 견인 도시 연대기의 첫번째인 ‘모털 엔진 Mortal Engines 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지난 2001년 위의 동일한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8년 이전에 초도 번역이 이뤄진 것 같은데, 제 능력 부족으로 정확한 서지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읽은 판본은 피터 잭슨의 영화가 개봉한 즈음에 나온 개정판으로 2018년 판본입니다.

앞서,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이 모털 엔진이라는 작품은 저자인 필립 리브의 ‘견인 도시 연대기‘의 첫번째 장을 장식하는 글입니다. 일단,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도 주문을 하긴 했습니다만, 과연 모털 엔진 만큼의 이야깃거리를 줄 수 있을지 이 시점에서는 약간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 모털 엔진이라는 작품이 대단하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스토리의 구성상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과 꽤 치밀한 스토리 라인의 개연성은 단순한 SF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의미심장했습니다. 사실 이런 류의 디스토피아적인 소설은 작가들에 따라 다소 틀에 박힌 설정과 구성상의 진행이 많이 시도 되었는데요. 그와는 반대로 저자인 필립 리브가 글을 쓰기에 앞서 꽤 많은 시간을 공들여 정치와 사회학의 여러 모티브들을 소설에 녹여낸 점은 칭찬을 해주고 싶습니다.

대략 3000년 전에 있었던 60분 전쟁으로 고대인들이라 불리우는 과거 그 시기의 과학 문명이 절단나고 나서, (아마도 지독한 환경 훼손 때문인지) 이후의 인류가 땅과 대지가 아니라 도시 밖을 나가지 않음으로써, 이 소설의 큰 이데올로기인 ‘도시진화론‘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약육강식의 야만적인 이념으로 이들 주류에 맞서 ‘반견인 도시 연맹‘이라는 땅과 대지에 정착한 반대의 세력이 등장하게 됩니다. 단순히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저자는 양자의 대결을 그리지 않고 맹목적이지는 않지만 거의 도시들의 야만화에 따른 생존의 문제로 이를 그리고 있습니다. 자원과 식량은 나날이 부족해지고, 특히 견인 도시 세력이라 불리우는 움직이는 도시들은 약한 마을이나 도시를 약탈해 이를 근근히 이겨내는 식으로 버텨내게 됩니다. 여기에 작중 (더 큰 악에게 이용되어 반항하지 못하는) 악으로 나오는 밸런타인의 딸인 캐서린이 왜 다른 도시들과 거래나 대화를 통해 이러한 위기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밸런타인은 ˝도시진화론은 그런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일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는 암울한 우리의 미래도 그려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삼권분립과 유사한 일종의 지배체제가 런던에서 보이는데요. 엔지니어 길드-역사학자 길드-상인 길드 간의 삼권의 체제가 첨예화된 계급사회로 이를 떠받들고, 약탈이든 뭐든 간에 쟁취하고 강탈한 달콤한 꿀은 ‘하이 런던‘의 계층만이 온전히 누릴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계급간의 이동은 출신 성분으로 인해 매우 어려우며 이런 구조속에 기술 관료 지배체와 같은 ‘테크노크라트‘의 상명하달의 독재로 도시 전체가 굴러가고 있습니다. 흡사 이것은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과두체제‘와 너무나 닮아있지 않습니까. 더욱이 과거 많은 지식인들이 도덕주의가 일방적으로 결여된 과학 문명의 귀결점에 대해 예측한 바와 같이, 여기에서도 이 길드 지배 체제가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과거 60분 전쟁 이후, 전 인류가 절멸에 이르게 되었고, 이후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그 후손들은 아무래도 권력의 소유물이 되어 도시 전체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게 되는 ‘구조적인 합리화‘의 희생양이 됩니다. 사실 이런식의 견고한 디스토피아적인 소설은 찾아보기 힘들텐데요. 그런점에서 작가의 사전 작업이 어떠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만했습니다. 그리고 이 테크노크라트가 위력을 발휘하는 연유에는 종래의 기독교 소멸이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었는데요. 소설 속에는 이미 업적을 남긴 사람을 신으로 받들고 또한 이미 다신교의 분위기였습니다. 이들 각 신전은 이미 정치 권력에 예속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전체적으로는 종교가 이들 계급 정치에 자정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더욱이, 두 주인공인 톰과 헤스터의 성장에 이르는 과정은 특히 주목할 만했는데요. 여기에 캐서린까지 더하면 세계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이 어린 아이들의 발걸음과 톰과 같이 사뭇 갈등하면서도 자신이 해야할 일을 명백히 인식하고 깨닫게 되는 길 또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톰은 본디 내면의 나약함과 주저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평범한 소년이었으나, 행로중에 여러 인물들과 흔치 않은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 가는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게 됩니다. 다만, 톰의 부모님에 대한 사건이 뭔가 복선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시장에 의해 약간 언급만 되는 것으로 그치고 마는데요. 다음 권이나 다다음 권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끝으로, 추천의 글을 쓴 홍인기 교수는 ˝심지어 신자유주의의 격류에 휩쓸려 파편화되어 가는 삶을 힘없이 응시하고 있는 한국의 소설가들에게도 들이밀고 싶다˝고 추천사 마지막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마르셀 프루스트가 ˝인간은 마땅히 대지위에 발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말을 스쳐지나갈 뿐이라고 생각해도 이것의 의미는 명확합니다. 어떤이들이 그렇게 부르짖는 자유 역시 오롯한 인간의 결정으로 남겨놓아야겠죠. 보이지 않는 손이라든지 합리적인 계산이라든지 정치 없는 시장이라든지 이런것들은 도리어 인간을 파편화에 던져버리고 말았으니, 적잖은 경제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정치까지 좌지우지해 사실상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하는 시도에 소설이든 뭐든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글 본문인 121페이지에 주인공 톰을 통해 약간 인종차별적인 문장이 보였는데 번역상 오류인지 아니면 제가 문맥상 잘못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아쉬운 부분이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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