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세계화 - 지구민주주의 선언
죠지 몬비오 지음, 황정아 옮김 / 창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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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저자인 조지 조슈아 리처드 몬비오는 영국 출신의 칼럼니스트이자 환경문제와 정치활동과 관련된 글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옥스포드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난 이후, BBC의 라디오 프로그램 프로듀서를 거쳐 자연사에 대한 탐사 보도 전문 기자로 인도네시아, 브라질 그리도 동아프리카 등지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현재에는 영국 가디언지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으며, 2004년 이후에는 정치 활동에도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생태학과 자연보호 및 세계화 정치에 대한 저작들을 꾸준하게 출판하고, 최근에는 ‘사로잡힌 국가 Captive State‘로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가 있습니다. 그의 이 책은 원제, ˝The Age of Consent : A Manifesto for a New World Order˝로 지난 2003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3년 뒤인 2006 3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잠시 글을 더 진행하기에 앞서 한가지 번역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데요. 여기에는 역자가 번역한 외래어 가운데, ˝꼴롬비아, 써비스, 꾸바, 프롤레따리아, 스딸린, 엘리뜨, 뽀르뚜갈˝이라는 한글 표기가 등장합니다. 서평을 쓰기전에는 저자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출신이어서 외래 고유 명사에 된소리 표기가 저런식으로 된 줄 알았는데, 이 책은 런던에서 출간되었고, 저자 역시 영국인이기 때문에 아마 영어로 출판되었을 것이라 추측해 봅니다. 그렇다면 역자가 예전인 1970년대에 ˝종속이론이나 재3세계 정치˝ 이론서에 등장했을 법한 외래어 표기를 저렇게 한 것에 대해 비판보다는 뭔가 이해가 되질 않네요. 그래서 역자의 한줄 답변이라도 듣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선, 저자가 글 서두에서 밝히는 이 글의 기획 의도는 다른 여타의 글과는 달리 매우 명확한 관점으로 독자들에게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전지구적 민주주의화‘를 위해서, 저자는 총 네 가지의 제언을 하고 있는데요. 첫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세계의회, 둘째 현재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부여된 권한을 제거한 민주화된 유엔 총회, 셋째 무역적자를 자동으로 소멸시키고 채무 축적을 예방하는 국제청산동맹, 넷째 부자 나라를 제약하고 가난한 나라를 해방시키는 공정무역기구 등이 그렇습니다. 아마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으리라 생각됩니다. 저자 역시, 앞선 해법들은 매우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며, 다만 이것 이외에 건설적인 다른 대안이 도출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첨언합니다. 사실, 2차대전 종전 이후 케인스의 용맹한 ‘다 같이 잘 살수 있는 경제 해법‘이 미국에 의해 거부됨으로써, 브레튼우즈 체제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소위 ‘자유 무역‘과 ‘각국의 최소한의 민주정치‘가 요구되는 국제 체제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개발 도상국에게도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이 자유 무역 체제는 기존의 G7국가는 말할것도 없이 우리나라와 대만, 중국 역시 경제 발전 초기에는 국내 시장 보호와 산업 보조금을 비롯한 보호 무역 체제로 내수를 방어하고 수출에 올인하는 정책을 펼친바가 있습니다. 이 책의 6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와 같이, 제국주의 시기의 영국 역시 자국의 면화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네덜란드와 인도 및 벨기에 등의 관련 산업을 각종 수단을 동원해 고사시킨 경험이 있으며, 최근에, ˝방글라데시는 의류 판매 특권에 대해 해마다 미국에 3억 1,4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은 개도국에 비해 산업 우세를 보이고 있는 선진국 역시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자유무역이라는 본질이 얼마나 자신들의 이익에 기반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저자인 조지 몬비오가 제안하는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지구적, 국제적 문제의 다수가 지구적, 국제적 민주주의의 부제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자명˝하므로, 오히려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 앞선 네 가지의 해법을 고려해보자고 주장하는 것이라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세계의회 건설을 위한 꽤 실효성 있는 제안을 담은 4장과 저자의 표현대로 거의 ‘자유주의에 의한 전체주의적 강요‘를 일삼고 있는 IMF에 대한 비판과 많은 개도국들의 무역 역조로 인해 발생한 부채 해결을 위해 국제청산연맹과 같은 제시는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다음에서 살펴보겠지만, 5장에서 서술되는 IMF 국제통화기금의 본질이 어떠한지는 1997년부터 1998년의 태국과 한국에서 여실히 잘 드러났으며, 국제 금융주의자들의 의견에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정부와 국제 금융 체제가 어떤식으로 이들 국가의 금융 시장에 대한 빗장을 제거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재편에 몰두했는지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됩니다. 물론 5장의 서술이 리처드 피트의 ˝불경한 삼위일체˝ 만큼이나 적나라 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제기하고 피력한 IMF체제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이 공감이 되지만, 미국과 서유럽이 쥐고 있는 IMF와 세계은행에 대한 주도권을 과연 이들이 포기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선 희의적입니다. 물론 말레이시아가 IMF가 요구한 반대로 자본 시장의 통제를 통해 1997년 이후의 위기를 벗어났지만, 이러한 사례는 극히 희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6장에서 비판하고 있는 WTO의 사례에서 G7국가가 주도하며, 밀실 행정이라고 봐도 무방한 WTO의 그린룸에서 이들 서방 선진국가들이 어떻게 개도국들의 대사들을 손에 쥐락펴락 하는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국제 경제 체제 내에서도 민주주의화가 필요하며, 이 민주화에 대한 선결이 전체적인 국제정치와 세계경제 측면의 맥락에서 제일 시급히 달성되어야만 하는 과제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해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러한 이행 가운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삶을 지배하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능력을 지구적 차원에서 효과 있게 억제할 방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보주의적 운동에 공감하는 많은 활동가들과 세계 시민 다수들을 실망에 빠트리는 조건이기도 할텐데요. ˝세계의 식량이 과잉 생산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식량 살 돈이 없는 8억 4,000만명은 영양 실조인 것으로 공식 집계된다˝는 점 역시,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무역 조건하에, 기득권을 갖고 있는 유리한 국가는 무조건 이러한 흐름속에서 이익을 추구하려 할 것이며, 여기에는 그동안 세계 정치가 분실한 도덕주의적 가치와 국제 정치 무대에서 힘있는 권력 국가가 다른 국가들을 여러 기만과 술수로 자신의 이익에 동조하게 만드는 그런 당위성을 어떻게 하면 타파할 수 있겠는가가 큰 과제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의회의 달성이 시급히 요구되지만, 미국의 국제정치와 기본 기조를 고안한 조지프 나이 뿐만 아니라, 저명한 경제학자인 대니 로드릭 역시 이것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한 바가 있습니다. 이 세계의회의 가능성에 대한 저자의 다각도의 분석에서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인구 비례에 따른 의석수 배정과 민주주의국가와 비민주주의국가로 분류해 비민주주의 국가가 민주정치의 국가들과 달리 좀 더 적은 의석수를 갖는 등의 전세계의 민주주의 달성을 위한 이런 장치들이 물론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과제로 여겨졌습니다. 이것은 베이징 컨센서스로 도출된 중국의 경제 발전이 ‘민주화 없는 성장‘으로 서구의 우려를 강화시켰던 것으로 국제 정치 무대가 민주화에 대한 해법을 인식하고 있다면, 중국 역시 그러한 기조 아래 자신들의 정치를 민주화 해야만 그에 합당한 국익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과 다름 없습니다. 다만, 이 지점에 대한 인식 역시 상당히 이상주의적 이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에 그 세계의회에 대한 요구를 많은 NGO들이 국제 무대에서 뒷받침해야 하며, 특히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시민들이 고결한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국가가 민주주의에 반하는 국가 정책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공감대가 마련되어야 하겠죠.

끝으로, 이 책에서 제시되고 있는 바와 같이 공정 무역에 대한 가치에 대해. 특히 ˝가난한 나라 그리고 가난한 나라만이 자신들의 경제 일부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론적 주장이 받아들여진 지는 이미 오래됐다˝는 부분과 동일하게 이들 국가들이 자신들의 자원을 온전히 국민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기반과 동시에 이에 대한 선진국들의 이해 관계를 철회할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은 단순히 국제 기구와 선진국들의 얼마간의 경제 원조 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일인당 국민 소득이 천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에게 오로지 자유 무역의 원리만 강조하는 것은 더많은 경제적 차취를 불러일으키는 결과 밖에는 도출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케인스의 주장대로 개도국 국가들을 일정 수준의 경제 규모로 달성시켜 이들 국가들이 성공적인 소비 자본주의의 구성원으로서 참여하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선진국들의 이익에 규합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역시 중요한 것은 이들에 끈질긴 인내가 바탕이 된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하며,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자유 무역이 사실상의 약탈 무역으로 오도되지 않기 위해, 국제 사회가 민주주의적 가치를 먼저 고려하는 풍토가 조성이 되어야 하겠죠. 글 서두에서 저자는 무정부주의와 자유시장주의가 결과적으로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근거에는 바로 이러한 자유 무역의 퇴행적 결과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애초에 이들 타협 불가의 자유시장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고려했던 것은 이와 같은 불균형한 무역 구조속의 국제 경제 체제를 더욱 고착화 시켜 자신들의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결코 입밖으로 내뱉지 않는 내심이 이에 담겨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적나라하게 WTO의 그린룸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IMF를 비롯한 이런 이해관계가 아직도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음에도 개선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해관계와 극명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누군가에게 지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천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환경을 개선할 수 있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논리와 영합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이 책 2장에서, 시민의 깨어있는 삶 mindful living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요. 실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바람은 국적과 인종을 떠나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이 2006년 출간된 이후로 변변한 서평 한줄 없이 지금까지도 절판되지 않고 판매되고 있다는 점은 뭔가 신기하게 느껴졌는데요. 출판사의 이름값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생경한 현상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민주주의 통치가 무정부주의 보다 정의를 실현하기에 적합한 이유는 그것이 강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적어도 원칙적으로 반대 의견의 기회를 제공하는 유일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1945년 이래 미국은 200 차례도 넘는 군사작전을 개시, 그 중 대부분은 세계 평화를 고취하는 일과 무관하고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행한 것이다

오늘날 권력을 잡은 거의 모든 정부는 오직 금융 시장이 받아들일만한 정책만 제시하므로 실상 지구적 자본을 대표한다

민주주의가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른 결과를 가져올지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부재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점 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케인스가 이미 제공했으나 지금껏 받아들이지 않았던 선물은 가난한 나라가 부자나라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도, 또 계속 가난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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