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 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질문의 책 27
자크 파월 지음, 박영록 옮김 / 오월의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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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의 역사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자크 R. 파월(혹은 자크 R. 포웰스)은 벨기에 겐트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에서도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오랫동안 파시즘 연구에 공을 들여왔고 그런 측면에서 오늘날 학계에서 대표적인 수정주의적 역사학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가 집필한 대부분의 역사 주저가 양차대전을 다루고 있고, 그 가운데 나치를 비롯한 파시즘 연구가 들어가 있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지난 2017년에 번역 출간된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에 이어 두번째 서평이기도 한데요. 개인적으로 그의 이 책은 앞선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와 제임스 Q. 위트먼의 ‘히틀러의 모델 미국’에 대한 훌륭한 보론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더욱이 2차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의 권력 야욕으로 이해되는 기존의 대전사에 대해 상당히 반하는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기에 독자들의 면밀한 배경 지식이 요구되는 글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지난 2017년, “Big Business and Hitler”라는 원제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 10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먼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보다 간단히 자크 파월의 이 글을 소개해 드리자면, 지난 세계대공황의 혼란한 시기 이후, 독일과 미국의 거대 경제인들이 어떻게 히틀러의 파시즘을 지지하고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가에 대한 역사적 서술과 이 기업가들이 왜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파시즘과 같은 권위주의적 체제에 기울어갔는지에 대한 아주 가감없고 여실히 비판적인 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일독하는 내내, 전세계에 거대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 사회 권력층이라고 불리우는 거대 기업가들이 어떤식으로 민주주의를 불신했고, 반대로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를 자신들의 최대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체제로 여겼는지에 대해 저자가 논하는 내내 실로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실체를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 기업인들은 당시 볼셰비즘을 유대인들과 연계시키고 히틀러가 그 처참한 반유대주의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을 분명 잘 알고 있으면서도 헨리 포드와 랜돌프 허스트와 같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이 어떻게 그것에 동조했는지에 대해 마찬가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의 증거로 제시되고 있는 이 저명한 경제인들의 실체에 대해 여러분들은 또 어떻게 느끼실지 매우 궁금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군요.

이 책의 대략적인 서술 방향은 독일 재계인들에게 사실상 발탁되었다고 인정되는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의 총수 이자 독일 파시즘의 화신인 히틀러의 행적과 앞선 경제인들과의 실체적인 관계를, 그리고 2부에서는 전시 경제를 밟아가고 있던 독일에 막대한 투자와 그에 따른 거대한 이권을 유지하고 있던 미국의 경제인들과 이들이 어떻게 히틀러의 독일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반적인 대전사의 접근과는 달리 자크 파월의 이 책은 그 궤가 사뭇 다르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다만, 당시 유럽과 미국의 분위기에서 소비에트에서 벌어진 혁명의 기운으로 인해 많은 자본가들이 공포에 떨었다는 점은 분명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만, 이들은 일정 이상의 금도를 넘어서는 오로지 자신들의 거대한 이익 창출에 골몰한 결과를 참혹한 대전에 이입하고 있었다는 것은 실로 이들이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히틀러가 볼 때, 지난 1차대전의 결과는 “독일 내부의 적색 혁명론자들과 유대인이 등 뒤에서 칼을 꽂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힌덴부르크에 의해 히틀러는 ‘보헤미안 상병’이라고 일축되기도 했습니다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사업가와 은행가, 그리고 돈 많고 힘 있는 개인들의 재정 지원이 없었다면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이 대중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1929년 이후 독일 정치에서 히틀러의 부상에 대해 언급됩니다. 또한, 외부적으로는 영국의 체임벌린을 필두로 당시 영국 지도층과 프랑스 엘리트 층이 히틀러와의 온건한 지원 관계를 유지하며, 뮌헨 협정을 영국이 손에 쥔 것은 단순히 체임벌린이 유약하고 순진했다는 기존의 학설과는 달리 체임벌린 자신이 히틀러의 지지자였다는 점을 파월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름뿐인 사회주의 노동당을 달았던 히틀러의 정당은 스스로가 지독한 민족주의자였으며, 또한 반유대주의적인 맹목적 믿음을 내면화하는 실체를 보이고 있었는데요. 이 반유대주의와 관련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헨리 포드의 연관성을 저자는 제시하고 있습니다. 헨리 포드가 1920년에 출간한 노골적인 반유대주의적 주장인 ‘국제유대인’을 히틀러가 수차례나 탐독했다는 점은 그가 얼마나 미국 경제계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었는지 드러내는 사례라고 분석됩니다. 히틀러가 포드의 이 책을 통해 “영감과 용기를 받았다”는 것은 후에 무차별적인 유대인 절멸에 이르렀다는 것은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이런 히틀러와 동조하는 국내외에 세력에게 있어, “이들 파시스트와 필로파시스트는 자신들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애국심도 쉽게 접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이해됩니다. 마찬가지로 당시 영국의 기업가와 은행가를 비롯한 지배층 대다수는 파시즘을 무척 선호했고,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히틀러가 동부 유럽을 삼키면서 이곳을 식민지화하고 이곳에 거주는 이등 시민들의 재산을 약탈해 독일 국내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사용했으며, 더욱이 아우슈비츠와 같은 ‘절멸수용소’에 있던 유대인 노동력들을 강제 노역에 처하게 함으로써, 이 파시즘의 권위주의가 어떤식으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기여했는지를 밝혀내고 있습니다. 2부에서 그려지는 당시의 미국 역시, 다수의 많은 경제인들이 백악관의 주인이었던 루즈벨트 대통령을 경멸해 마지 않았으며, 미국 재계의 주요 인사들 역시 파시즘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임과 동시에, “미국의 기업가와 은행가가 실제로 상당한 금액의 돈으로 히틀러를 후원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다”고 저자는 단언합니다. 또한, 이 시기에 헨리 포드는 자신이 그동안 보여왔던 히틀러와 나치즘에 대한 지지를 1939년 이후 사실상 철회하면서도 그 본심에는 일전에 행했던 아돌프 히틀러를 지지한 양심의 가책이 아니라, 연합국과 나치 독일 어느 한 곳이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로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포디즘과 더불어 당시의 자본주의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이들 기업인들과 은행가들이 반사회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인식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는 점은 초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대전의 막바지까지 나치 독일이 전쟁의 지속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러 미국 기업들이 손수 고무와 석유를 지원하고, 특히 알루미늄이라는 전략적 원료를 ‘무한정 비축’ 할 수 있었던 건 대체로 엘코아라는 또다른 미국 기업 덕분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따라서 이 독일의 프리츠 티센과 햘마르 샤흐트와 미국의 헨리 포드, 월터 C. 티글, 이레네 듀퐁과 같은 양국의 기업인들이 가차없는 징발과 노예 노동력을 제공한 이 파시즘을 얼마나 선호했는지 대체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초기 자본주의에서 이들 기업인들의 상상도 못할 정치적 인식을 모든 자본가들의 일로 치부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자크 파월의 앞선 논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의 주요한 결론이 왜 그런식으로 도출되었는지 충분히 이 글을 통해 함께 이해할 만했습니다. 자크 파월의 말대로 미국은 루즈벨트의 케인스식 대처 뿐만 아니라 이 거대한 대전에 의해 경제 위기를 벗어났으며, 영국에 제공한 무기대여법과 이를 통한 전쟁 물자 판매로 인해 이후의 ‘아메리카 드림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은 결코 부인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 여겨집니다. 전쟁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자들이 있다는 역사적 경험은 인류가 결코 극복하기 힘든 딜레마로 남겨질 것은 매우 분명해 보이는데요. 이것이 역사적 진보라는 측면의 부산물인지는 모르겠으나 파월의 이 책이 얼만큼의 교훈을 제공하게 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적정한 생활 수준을 누리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당시) 미국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과두제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뒤, 나치스와 협력해 또는 나치 독일에서 사업을 벌였던 제너럴모터스 등의 미국 기업들은 처벌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미 연합군의 폭격으로 자회사가 입은 손해까지 보상 받았다

(당시) 지식인들에게도 ‘위험한 계급’ 또는 ‘군중’에 대한 공포가 표출되었다

히틀러는 1926년에서 1927년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산업계 금융계 명사들 앞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를 표출했다

당시 재계의 구성원들은 국가 통제주의 (케인스식 경제)를 혐오했고, 이상적인 자유방임주의 세계에서는 자신들의 사업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데, 그 권한을 침해하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지배층은 그들의 관점에서 성가신 민주주의 체제를 자신들이 원하는 권위주의 체제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프랑스 지배층이 굴욕적이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패배를 통해 독일에서 파시스트 ‘정권’을 ‘수입’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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