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가격 - 돈에 갇힌 미디어와 언론, 그리고 민주주의를 구해낼 방법들
앙드레 쉬프랭 지음, 한창호 옮김 / 사회평론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지난 1935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러시아계 유대인인 친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앙드레 쉬프랭은 출판업자였던 아버지의 가업을 사실상 이어 받으며, 미국 출판계에서 독립적인 명성을 쌓은 인물입니다. 그는 예일대와 켐브리지에서 학업을 마치고 바로 판테온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인문사회과학 서적 출판을 위해 열을 올렸던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바로 그러한 취지에서 1990년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비영리 공익 출판사인 뉴 프레스 New Press의공동 창립인으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출판업에 종사했던 초년 시절에 그는 반전과 관련된 기획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 이후에 출판의 공익적 목적에 관심을 떴을 때는 서구 유럽의 출판문화와 출판계에 대한 비판을 담은 꾸준한 글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그러한 노력들에 힘입어 2011년에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영예로운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2013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78세의 나이로 그는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이 글은 지난 2010년, “Words and Money”라는 원제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2년6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이 책은 저자가 결론에서 간단히 설명하고 있듯이, 출판과 언론을 포함한 ‘말의 세계’가 현재 어떠한 상황을 맞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장부터 4장은 유럽의 출판시장에 대한 분석을 다루고 있으며, 5장과 6장은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언론업계의 상황 그리고 르 몽드와 BBC를아우르는 유럽 언론계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꽤 상세한 진술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쉬프랭은 우리의 ‘말의 세계’가 직면한 문제들 가운데 크게 다국적 자본의 위협에 따른 영리 우선주의와 인터넷 웹 기반의 발전에 따른 언론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른 수익 문제와 독자 기반의 감소 등을 이 글 전반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이 점으로 인해 (아마도 번역한 출판사가 타이틀화 한 것으로 보이는) 부제, ‘돈에 갇힌 미디어와 언론, 그리고 민주주의를 구해낼 방법들’과 얼마간의 적합한 관련이 있을지는 다소 의문입니다만 하여튼 이런 언론과 출판의 급격한 변화는 우리 정치에 있어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일전에 우리는 루퍼트 머독과 같은 미디어의 독점 자본이 등장한 광경을 목도한 바가 있습니다. 이러한 머독의 등장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오로지 한쪽 방면(이를 테면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이익을 위해 헌신한 나머지 반대편의 영향력을 돈의 힘으로 억누른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에 이러한 거대 자본에 의한 언론 독점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한 학자들과 지식인들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을 먼저 밝히고 싶습니다. 결국 어느 한쪽의 손만을 가리켜 흔들어대는 골리앗 언론의 출현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민주주의에 있어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점은 매우 명확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와 유사하게 현재 미국과 영국은 말할것도 없고 그 외의 유럽 출판계와 언론의 자본화 논리에 굴복하고 있는 상황은 그 자체로 유감스럽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다소 반하는 프랑스의 자국 문화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차원에서 프랑스가 핵을 보유한 국가이고 유럽 연합의 기득권을 독일과 양분하고 있다는 점이 그러한 정책의 배경이 될 수 있겠으나,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이 국가가 자국 문화에 대한 보수적이면서 단호한 정책을 펼 수 있는 원동력이 존재한다는 점은 다른 국가들에게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저자인 쉬프랭은 이 지점에서 프랑스 문화 당국이 자국의 영화에 대해 투입하고 있는 보조금을 마찬가지로 출판업에도 제공하는 것이 어떻겠느냐에 대해 논의를 보입니다. 이를테면, 현재에도 거대 서점 체인과 공룡 출판사에 기를 죽이고 있는 도시의 영세 서점과 독립 출판사 및 작은 규모의 인문사회과학 출판사에 이들이 어느 시점까지 자립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지원을 하는 것은 바로 자국의 문화와 건전한 언론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지난 역사에서 이러한 관점에서 멀리 벗어났던, 1980년대의 미국과 영국의 신자유주의의 이행의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미국과 영국의 출판사들은, 신간이면서 가치있는 책들을 각각 1,000 ~ 1,500 부씩 사주는 지역 도서관에 의존할 수 있었던 적이 있다. 이런 예산은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시절부터 여타 공공 프로그램 예산과 더불어 대폭 삭감되었다.”고 쉬프랭은 이를 경고의 취지로 밝힙니다.

또한, 이 글 4장에서 잠깐 언급하고 있듯이 지역의 공공 도서관에 직접적으로 관내의 중소 규모의 서점이 이들 도서관에 책을 공급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저자는 함께 고민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 꽤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졌는데요.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에는 출판 도매 업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제외하고 도서관에 필요한 책을 공공 지원금으로 소규모 서점들에게서 지원을 받는 것은 꽤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물론 여기에서 관건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독서 인구와 이런 상황에서 별다른 대책을 보이지 않고 있는 공공 도서 정책의 현실적 갭을 얼마나 좁힐 수 있겠느냐의 문제일 겁니다. 물론 위르겐 하버마스의 경우처럼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정부가 시민의 ‘우민화’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응답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공공 도서관으로 대표되는 공적 학습 기반을 맨 뒷줄로 세우는 것은 분명 신자유주의적 기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찌됐든 시민이 스스로를 지식으로 단련해 정치요구에 나서는 것을 ‘피곤한 일’로 여기고 더욱이 심각한 부의 불평등 상황에서도 오히려 가진자들의 영합된 이익에 줄을 서고 더불어 민주주의가 거부하는 계급 정치에 힘을 쏟는 것은 현재의 전반적인 신자유주의의 이행 과정이 어떠한 결과로 나타났는지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5장에서는 미국 내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견실한 언론사들의 문제와 이들 언론사들의 주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는 광고 수익의 점차적인 축소에 대해 비판과 그 대안을 함께 저자는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본사 신축에 6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붓고 있는 ‘뉴욕 타임스’의 사례를 제외한다면 자본의 이익에 영합하는 경영화에 힘입어 언론사의 전문 인력들이 반수 이상으로 감원되고, 그에 따라 사주와 최고위층의 돈벌이에 힘쓰는 등 사실상의 금융 기업과 같은 구조화에 들어섰다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이것과는 반대로 꽤 건전한 사례로 제시되는 노르웨이 언론의 사례를 차치한다면 전반적으로 많은 민주주의 국가 내의 언론사들이 이러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이러한 가운데 프랑스 정부가 제안한 “18세의 모든 젊은이에게 1년 무료 구독 혜택”을 주어 잠재적 독자를 증대시키겠다는 점은 꽤 신선했는데요. 애초에 이들 젊은이들이 현재의 인터넷 기반의 웹 현실에 익숙한 나머지 이러한 인쇄 기반의 매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문제 의식은 우리도 고민해 봐야 되는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프랑스 정부가 나서 지원책을 제시하는 것은 공화주의를 탄생시킨 국가 다운 행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끝으로, 현재 구글이 진행하고 있는 독서물의 디지털화에 대해 이 글 결론에서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데요. 저는 단순한 몇줄 기사와 같은 이 구글의 사업에 대해 만약 이런식으로 구글이 지식에 있어 디지털화를 독점하게 된다면 과연 우리의 지식 산업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우려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에서도 충분히 시장에서의 반독점에 반대하는 법령을 들어 구글과 같은 거대 웹 기반 기업들을 제어해야 하지만 빅 데이터와 같이 개인 정보의 무분별한 수집으로 인한 이들의 잇속 불리기에 대해 이제는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2009년 프랑스 파리에서 법원이 “구글이 도서를 발간한 출판사와 집필한 저자들의 승인없이 도서를 디지털화하고 초록을 온라인상에 게재함으로써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시한 점과 “프랑스의 도서 전산화 프로그램의 중지”를 명령한 점은 우리 역시 관심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사회의 공공재로서, 이들 거대 웹 기업들이 수많은 지식들을 돈벌이에 이용하고 나아가서는 지식의 독점에 이를 수 있는 잠재적인 위협을 초래하는 이러한 행적에 우리가 더 경계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보여집니다. 이처럼, 저자가 독자들에게 이 ‘말의 세계’의 본질과 변화에 대해 가감없이 제시하는 이 글의 목적은 꽤 분명하며, 결국 자본의 영향에 휩쓸려 가고 있는 언론과 출판을 제대로 시민의 버팀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보호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책을 다 일독하고 나서, 지난 2006년에 번역 출판된 로버트 맥체스니의 “부자 미디어 가난한 민주주의”의 재간행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모쪼록 독자들을 위해 출판사의 재간행을 기대해 봅니다.

과거 미국과 영국의 출판사들은, 신간이면서 가치있는 책들을 각각 1,000 ~ 1,500 부씩 사주는 지역 도서관에 의존할 수 있었던 적이 있다. 이런 예산은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시절부터 여타 공공 프로그램 예산과 더불어 대폭 삭감되었다. 71p

프랑스의 많은 극장에서 영화가 끝난 뒤 특히 정치적 메시지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끝난 뒤 토론자리가 마련된다. 83p

기자들이 일간지에 심층기사를 쓸 수 없다는 무능력에 좌절감을 느껴왔다는 점과, 독자들도 똑같이 그런 심층기사를 읽을 수 없어 언짢아한다는 점이다. 1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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