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 - 자유의 가능성 탐구
줄리언 바지니 지음, 서민아 옮김 / 스윙밴드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인 줄리언 바지니는 영국 내에서 꽤 유명한 대중 철학자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는 레딩 대학과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은 뒤, 영국 내의 여러 방송 출연을 통해 철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20여편이나 되는 철학 관련 서적의 집필은 그런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가디언 지 등을 비롯한 언론사에 칼럼을 쓰고 월스트리트 지와 관련해서는 북칼럼을 쓰는 등의 꾸준히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활동들 덕분에 국내에도 그의 이름을 접하는 독자들이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의 원제는 “Freedom Regained : The Posssibility of Free Will”로서, 지난 2015년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2년 뒤인 2017년 4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이 책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인간의 광범위한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탐구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는 2부에서 소개하는 과학자들의 자유의지에 대한 뇌과학적인 접근에 대한 사실상의 비판과 이들 과학자들이 이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도 함께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신경과학연구에서 “우리의 행동은 의식적 사고, 욕구, 의도가 아니라 뇌에서 이루어지는 무의식적 과정에서 비롯하며, 이 단계는 대개 우리의 인식보다 앞선다”는 일종의 뇌에 의한 얼마간 규명되지 않은 부수적 신체 활동 내지는 신호 전달이라는 측면의 이해에 대한 얼마간의 반대 의견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전반적인 인류사의 접근에서 14세기 르네상스를 거쳐 이후 몇세기 후의 계몽주의에 이르러 인간의 자유와 관련된 중요한 철학적 담론으로 이 자유의지가 생겨나고 또한 인식적으로 강화되어 왔습니다. 특히 임마누엘 칸트가 천착한 이 자유와 이성에 대한 부분, 그리고 칸트의 뒤를 이어 학문적 연구를 지속해 온 많은 철학자들의 고유한 사상 등을 차치하더라도 단순히 인체 과학적인 측면에서 보이는 일관적인 단일한 해석으로는 자유의지와 자유 더 나아가서는 인간 정신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의를 내리기란 어렵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과학계의 전반적인 이해가 “자유의지에 관한 과학적 회의주의의 뿌리는 결정론이 아닌 유물론에 근거해 있다는 점”이 철학주의적 기반에서 과학에 대한 비판의 주된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이러한 ‘자유의지’에 대한 면밀한 해석을 위한 전제 조건에 이어, 바지니는 “자유의지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중요하고 긴급한 사안이다”라고 시급히 규정합니다. 이에 우리가 이 자유의지를 좀 더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 저자는 “자유의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선택에 관해 논할 때 그게 우리 뇌나 정신, 우리의 이성적이거나 의식적인 자아에 의해 이루언지다고 생각하려는 경향을 버려야 한다”먼저 언급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의지는 우연의 산물이므로 역시나 그 의지에 대해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2장의 기본 인식과 동일하다고 여겨집니다. 더욱이 우리가 이 자유의지를 통해 스스로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이성을 갖고 있는 우리가 주어진 어떤 상황이나 결론을 위해 행하는 여러 선택들이 사실상 주체적이라기 보다는 주변의 상황과 환경이 시스템적으로 매우 한정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이 정말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에 대해 회의를 갖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자유의지와 관련해 우리가 명심해야 될 부분은 진정한 자유의지는 “하지 않을 자유의지”까지도 포함한 것이라고 봐야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책에서 논의된 철학적 개념상 진정한 자유의지가 과연 존재할 것인가에 대해 저로서도 다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만 어찌됐든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와 자유의지에 대한 편협한 이해의 타파를 위해서도 전반적인 이들의 인식적 연결고리는 하나하나 파악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진술 가운데에서 일찌기 스피노자는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와 욕구를 인식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고 의지하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그 이유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것을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꿈조차 꾸지 않는다”며 꽤 단호하게 우리의 무지를 비판하고 있는데요. 제가 저자의 입을 빌어 앞서 언급해 드렸듯이 인간이 소위 자유의지를 행하는 이면에는 인간을 둘러싼 그 한정된 시스템적 한계로 인해 그것을 진정한 자유 내지는 자유의지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놓여져 있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만족과 안식을 위해 면밀한 분석을 하지 못하고 그저 무지의 상태에서 스스로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자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뭇 고심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이러한 결정론적 이해가 “우리의 결정이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며, 단순히 우리의 결정이 바뀔 수 없다는 뜻도 아니다”는 바지니의 결정론적 이해는 마찬가지로 귀담아 들어야 되는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어쩌면 이러한 현실에서 단적으로 성경에 인간에 대한 자유의지 개념이 전무하다는 점은 기독교적 교리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무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만 물론 이런 후자의 추측은 조금 과한 해석일 수도 있겠죠.

뒤이어 3부에서는 앞선 장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진면목을 살펴보고 이를 현실의 인간에 대입해보는 여러 과학적 예시와 이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서술해 나갑니다. 소위 인간에게 ‘폭력유전자’가 있는가에 대한 진술과 인간 사회에서 일부의 인간들이 폭력을 행하게 되는 매커니즘에 대한 여러 측면의 이해를 저자는 나름대로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데요. 이것은 인간이 의식을 통제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와 무의식과의 관계 그리고 소위 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폭력 행태에 대해 뇌과학자들과 신경학자들의 이론을 철학과 비교하여 분석하는데 집중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의식적 정신의 역할”이라는 주제에서 적잖은 생각을 해봤는데요. 마찬가지로 “의식적 숙고”에 대한 부분에서도 특히, 예술가와 안무가들의 창조력이 어떻게 뇌과정과 관련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한 전문가의 진술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이는 단순한 신체기관에 우리의 창조력이 관련되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기도 했는데요. 인간의 정신 활동이 단순히 뇌의 전기 신호이거나 뇌세포의 작용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파악하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인류가 그동안 쌓아올린 형이상학의 이론에서는 쉬이 인정하기 힘든 부분일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이 뭔가 고차원적인 영적인 활동의 일환으로 뭉뚱그려 해석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형이상학적인 측면을 넘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고유성이라고 봐도 무방할텐데요. 이 고유한 정신은 바지니가 특별히 다음과 언급하는 것과 같이 “인권과 사회적 대의를 위해 자신의 안녕이나 안전을 희생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들은 특히 이러한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지 않고서는 삶의 존재 이유를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의식의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류가 있는 반면에, 좀 더 고차원적인 신념과 가치에 대해 삶의 존재 의의를 기대는 사람도 있는 등의 그 인간들 가운데 일부와 일부를 구별하는 정말 대단한 존재라고도 생각됩니다. 이 부분을 차치한다면 기본적인 정신의 온전성을 위해 모두에게는 스스로의 교육과 정보의 취득이 중요할텐데요. “교육과 정보가 부족한 사람들은 부정적 자유는 많을지 모르지만, 긍정적 의미에서 자유의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한 점에서는 부족하다”고 보는 점이 이와 같습니다.

끝으로 저자는, 글의 대미에서 자신이 권하는 자유의 현실적 관점은 적절한 인간적 척도에서 자유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간략히 소개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자유의지라고 부를 만한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믿기 위해, 굳이 현대 서양의 자유의지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추가적으로 언급하고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와 자유의지를 다소 맹신하는 것을 경고하는 것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앞선 3부에서 “제약이 없는 자유란 있을수도 없고, 또한 존재해서도 안된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전반적으로 앞선 장들에서 자유의지에 대한 농밀한 철학적 분석과 근거를 저자가 훌륭히 제시했어도 본질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란 도덕적 측면과 인간적인 척도에서 이해하는 수준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소 이해와 과도한 이해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절충점을 갖는 것이 이번 자유의지에 대한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개인적으로는 한번 더 이 책에 대한 정독이 필요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집단 죄의식이라는 부분과 관련해 바지니는 2007년 4월 버지니아 공대에서 발생한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을 본문에 인용하고 있는데요. 많은 한국인들이 이 사건과 관련해 희생자들과 다른 미국인들에 대한 죄의식을 갖고 있다는 부분의 해석이었습니다. 당시 주미 한국 대사가 매일 한 명씩 희생자를 추모하며 32일 동안 단식을 한 것도 이 죄의식과 수치심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분석하는데요. 주미대사가 32일 동안 단식을 했다는 점도 약간 의외지만, 일부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많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체면에 대한 문제와 특히 우리가 미국에 갖는 부채의식을 빼고 이 사건을 이해하는 것은 다소 몰이해라고 여겨집니다.

교육과 정보가 부족한 사람들은 부정적 자유는 많을지 모르겠지만, 긍정적 의미에서 자유의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부족하다 156p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유롭거나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자유롭다는 것이다. 누구도 완벽하게 자유롭지 않으며 완벽한 자유에 이르지 못할테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유는 정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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