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쇄신 - 디지털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법을 제시하다
네이선 가델스.니콜라스 베르그루엔 지음, 이정화 옮김 / 북스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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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거의 주도적으로 기획했다고 봐도 무방한 베르그루엔 연구소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 엔젤레스에 소재한 독립적 민간 싱크 탱크입니다. 전 상원의원인 크레이크 칼훈이 의장으로 있는 이 기구는 ‘월드포스트’ 공동 발행인인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에 의해 설립된 민간 연구 단체인데요. 마찬가지로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은 이 책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습니다. 참고로 베르그루엔 연구소는 거버넌스 연구를 기반으로 서구에 의해 주도되어 왔던 세계화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공동 저자인 네이선 가델스는 UCLA에서 비교정치학을 전공하고 1985년 이후로 쭉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언론인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2014년 ‘월드포스트’의 편집장으로 참여하면서 니콜라스 베르그루엔과의 연줄로 그도 역시 이 베르그루엔 연구소에 참여하게 된 듯 보이는데요. 특히 개인적으로 느끼는 이 책의 의의는 4장의 세계화 통제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는데요. 이것과 관련된 부분은 다음에서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은 원제 “Renovating Democracy : Governing in the Age of Globalization and Digital Capitalism”으로 2019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최근인 2020년 4월 초에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우선, 이 글은 서문과 결론을 포함한 총 6장의 주제로 되어 있는데요. 제가 앞서 언급해드린 바와 같이 4장의 ‘세계화 통제’ 하나 만으르도 일독의 이유가 되며, 오히려 이 4장을 따로 분리하여 소고로 내어도 될만큼 내용이 충분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더불어 서구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된 전방위적인 세계화에 대해 저자들은 일정 부분 비판적 인식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언론인에 의해 주도되어 설립된 민간 연구소가 이러한 이해를 보이는 것에 대해 약간 새로운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요. 그러한 측면에서, 1장은 오늘날의 중국의 번영과 빗대어 이상하게 나타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포퓰리즘 정치의 등장으로, 2장은 앞선 1장에서의 일종의 포퓰리즘 파급 효과라고도 볼 수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시민 발안제’를 포함한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 모델을, 3장은 앞으로의 기술 혁신에 의한 테크노 자본주의의 등장과 이에 따른 사회 변화 및 인간의 노동 환경 변화를, 4장은 미국과 유럽이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정치적 제도와 반대로 가고 있는 중국, 그리고 그런 중국의 번영이 과연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에 대해 매우 객관적인 분석을 하고 있으며, 뒤이어 암울한 포퓰리즘의 그늘을 드리운 전세계 정치에 대한 미래를 끝으로 글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 주요하게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겠는데요. 현재 민주주의 정치하에 등장하고 있는 포퓰리즘 정치와 이러한 가운데 오랫동안 진행된 세계화에 대한 진정한 의미, 그리고 이 세계화와 반대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오늘날 중국의 번영과 그에따른 복잡한 함의가 글의 중요한 골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와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등이 정치 무대에 등장하게 된 연유에는 “가짜 뉴스, 증오 섞인 연설 그리고 ‘대안적 사실 alternative facts’”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식 인파와 더불어 불거진 이 대안적 사실은 일종의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구성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이 단어와 관련해 일반적인 지식사전에서도 그날의 사건 위주로 진술되어 있습니다만 저는 명확한 사실과 전혀 상관없이 정치인 자신과 그 지지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대체 진술이라고 이해됩니다.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 여론과 위배되는 소위 대중에 대한 선동 요인들이 오늘날 포퓰리즘의 등장을 알리는 사실상의 서곡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연방법에서는 네트워크 시행법 Network Enforcement Act 에 의거 증오 연설이나 가짜 뉴스를 웹상에서 삭제하지 않을 경우 5,000만 유로의 무거운 벌금을 부과한다고 이 책에서는 언급되고 있습니다. 물론 위의 독일의 사례는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 내에서 개인 발언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와 같은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겠는데요. 반대로 중국에서의 중국 국민들에 대한 대단위적인 디지털 검열 사례가 과거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에 의한 정보 개방으로 인한 국가와 사회 붕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반대로 앞선 가짜뉴스와 극도의 혐오적 발언 및 증오 연설을 법으로 규제했을 때 나타나는 정치적 실효성에 대해 한번쯤은 논의해 봐야 되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다만, 이렇게 제가 글을 써가는 도중에도 마음 한켠으로는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개인의 말할 자유의 보장이 권력을 견제하는데 충분한 효과를 보였던만큼 보편성의 측면에서 개개인들의 이에 대한 금지를 논하는 공론장에서의 논의 필요성을 외치는 이런 저의 모습이 뭔가 모순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만큼 역설적으로 이러한 조치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겠죠.

이와 비슷하게 1장에서 저자들은 “포퓰리즘은 우리가 보아왔듯이 복잡한 문제에 직면해 울분을 열정적으로 토해내고”, 그러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현상은 과거 수십년에 걸친 민주주의 자체의 부패에 기인하다”고 확언하고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진술은 바로 “기존의 엘리트 계층의 부패와 방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포퓰리즘에 기반하고 있는 대중 자체를 어리석은 정치로 몰아가는 기존의 엘리트주의의 타성이 바로 방만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현상에 있어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에 따라 해결방안을 찾아보는 등의 일련의 사회과학적 과정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을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점차 포퓰리즘적 이행에 놓여 있는 많은 국가들에게는 더욱 ‘개방사회’로 나아가려는 목표가 강화되어야 하며, 이 개방사회의 근본적 가치는 “자신들의 미래에 관해 핵심적 선택을 플랫폼화 할 수 있는 능력”을 실행시킬 수 있는 배경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특유의 개방사회라는 가치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다원주의적 정치로 나아가기 위한 선결 조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다음 이어지는 2장은 포퓰리즘적 정치와 더불어 일정 부분 정합되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국민 소환제와 결이 비슷한 ‘시민 발안제’에 대해 저자들은 비판적 분석을 하고 있는데요. 주지사를 비롯한 행정적 절차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을 요하는 문제에 대해 시민들이 일정 요건을 갖춘 시민 발안제를 그동안 광범위하게 제출했던 나머지 지난 몇년간 캘리포니아 주의 정치적 환경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이 글에서는 부분적으로 비판해 보고 있습니다. 더불어 매디슨 이후 변화된 미국의 상원제도를 언급하면서, “상원이 탐욕스러운 디지털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새로운 부호, 기성 경제 엘리트, 조직화환 특수 이해집단이 휘두르는 특대형 권력에 맞서는 방어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선출되지 않는 상원의 구성원들의 특수 권력화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방지하면서 탁월하고 비범한 시민들의 상원 참여가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해 그 방법의 재구성에도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는 오늘날 기술 혁신 산업의 초기 시대로 진입한 것과 관련해 “고임금 일자리와 저임금 일자리 간의 노동력 양극화 현상”을 어떻게 하면 해소하고 그 가운데 더 강력해진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 일반 시민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 진행됩니다. 여기에는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가 등장하는데요. 노르웨이와 베네수엘라의 각기 비교되는 자원 개발 행태를 소개하고, 국부 펀드를 이용해 석유 자원을 관리하고 있는 노르웨이와 반대로 무분별하고 기득권층의 이익에 올인했던 베네수엘라의 대비되는 현실을 비교합니다. 이 노르웨이의 사례는 소위 미국 알래스카 주의 시민배당과 꽤 유사하다고 여겨졌는데요. 각국의 국부 펀드는 미래의 국가 부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경제적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이를 대비하기 위한 측면이 강합니다. 따라서, 3장이 함의하는 현실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지식 주도의 경제가 더욱더 역동적일수록 재정립되는 사회안전망과 기회망을 더욱 튼튼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하는 것과 일견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기술 기반의 산업 기반으로 인해 더 심각해질 불평등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저자들은 현실적으로 부유층에게서 재산을 빼앗아 재분배에 나서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기회 균등의 측면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시민들의 기회망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드워킨의 방식이나 롤스의 방식이냐를 떠나서 상식적인 선에서의 해결 방안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이해되었습니다. 다만, 저자들이 이 기회망의 보장과 사회 안전 보장이 몇줄로 진술되는 것만큼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점을 과연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지는 약간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좀 더 주목한 4장에서는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변되는 기존의 자유민주주의적 정치 기반 가운데 진행되는 시장 자유화에 반하는 중국의 권위주의적 경제 주도 체제에 대한 서구 유럽의 복잡한 심정을 먼저 저자들은 언급하며, 현재 중국 정치의 강점으로 “합의적 통치 형태”에 주목합니다. 저는 이 부분과 관련해 현재 중국의 합의제에 의한 통치가 사실상의 과두제와 유사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이를테면, 전 인구가 가운데 고작 9,000만에 이르는 중국 공산당원과 이 인원들과는 거의 상관없는 거의 세습구조의 소수 권력 독점이 일반적인 과두제에서 만큼의 숙청과 배제를 중국의 합의제 통치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에 의문을 갖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이는 현재의 통제된 중국 언론과 여론을 전혀 믿을 수 없다는 점과 휴 화이트 등에 의해 제기된 중국 국내의 은폐된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 여부와 같이 사실상 중국의 저 합의제 통치가 보나파르트 식의 과두제와 다를바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이 글에서 인용된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후치리의 다음 진술인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모델은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고 시장이 기업을 이끄는 것이다”는 것과 이러한 체제 가운데 극심한 개인 인권을 억압하고 언론을 통제하면서도 “비록 공산당의 고압적인 가부장주의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지만, 여론 조사에 참여한 중국인 중 80% 이상이 자신들의 조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인용되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 과연 통제되지 않는 정보와 그에 따른 열린 사회가 얼마나 민주주의 정치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지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반대로 중국과 같은 사례에 있어서 자신들의 유래없는 경제적 발전을 기반으로 일대일로의 추진과 “중국의 지도자들은 남중국해 섬의 사슬을 지배하는 것은 ‘공격’이 아니라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점점 더 적대적으로 보이는 배타적인 미국 주도의 동맹에 대항하는 주위 방어선 구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으로 이런 특유의 문화사적 근거 하에 중국 내부의 배타적 민족주의가 기반한 국제 정치 무대에서의 중국 정치가 어떤식으로 귀결될지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거 아리기는 전세계 안보의 안정적인 환경 조성에는 중국이 얼만큼 평화적으로 국제 정치 무대에 안착할 수 있겠느냐에 달려 있다고 발언한 바가 있습니다. 오히려 현재로서는 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럼프의 사실상의 자유무역에 대한 철회와 미국 우선주의 그리고 (견고한 철학이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과거 전통적인 고립주의로서의 회귀로 오히려 시진핑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것은 거의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봐도 될지는 아직은 불분명확합니다만, 기존의 미국에 의한 동맹체제가 최근에 필리핀을 이 동맹체제에서 분리시키기 위해 벌이고 있는 중국의 고약한 접근과 이에 동조하는 두테르테의 행위는 사뭇 파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시진핑의 언급대로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중화의 역사적 회귀를 공고히 하는 것”을 과연 어떤식으로 펼쳐지게 될지에 대해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들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따로 확실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앞서 언급한 미국과 유럽의 포퓰리즘 정치의 확대와 반대로 권위주의적인 중국 정치의 비대칭적 확대와 자신의 우군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불협화음 그리고 그 와중에 서구 유럽과 미국의 불평등과 같은 내부 문제 등은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협이라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여기에 논의된 각각의 흐름들은 보기에 따라서는 관련성의 문제로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이해 가운데에서는 충분히 세계화의 문제와 더불어 직면한 갈등과 파급 문제는 앞으로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다뤄야 하지 않을까 책을 다 읽고 나서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4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중국의 미국 동맹 체제의 이탈을 위해 필리핀에 대한 접근은 반대로 보면 발전된 민주주의화와 경제적 번영이 결여된 미국 동맹국들에게는 단순한 미국에 의한 안보 그늘이라는 측면의 이익 만으로는 이들을 붙잡을 수 있을지 약간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태국과 파키스탄은 필리핀과 더불어 중국 영향권에 놓일 수도 있는 국가들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요.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취할 국익에 수렵하는 정책은 사실상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글의 4장은 세계화 과정에서의 진행된 중국의 발전과 이를 바라보는 미국과 서구 유럽의 시각 그리고 그에 따른 중국의 과거 지위 회복과 그것의 여파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꽤 광범위한 논의가 포함된 것인데요. 어떻게 보면 세계화를 강조하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오히려 각국의 내부 불안을 일으켜 미국과 선진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우위를 흔들리게 하는 직접적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국민을 멱살잡아 내부의 불평등 문제를 강제로 함구시키고 있는 중국의 현 상황이 어떤식으로 귀결될지에 따라 미국과 중국의 대결구도를 확정짓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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