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이란 무엇인가 - 근대 국가의 기원과 진화
로버트 잭슨 지음, 옥동석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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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저자인 로버트 잭슨은 버클리 대에서 정치과학과 관련된 박사 학위를 수여 받은 이후, 보스턴 대학에서 국제 관계학을 가르치고 있는 학자입니다. 그는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아프리카 식민지를 비롯한 식민정치에 대한 연구와 이와 관련해 동시대의 영국의 견고한 제국주의 정치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이 뿐만 아니라 옥스포드 대학과 런던정경대 및 스탠포드 대학의 방문 교수이기도 하며, 영국과 캐나다 그리고 덴마크 정부의 외교정책 자문위원을 역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은 지난 2007년에 “Sovereignty”라는 원제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6년 11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한가지 번역과 관련하여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역자는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인데, 아무래도 정치학과 인문학에 관련된 배경 지식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본래 인명 표기에 대한 영문상으로의 표기를 그냥 갖다 쓸 정도로 개념이 부족해 보였는데요. 이 부분은 맨 마지막에 따로 밝혀 두기로 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이 책은 약간 특이하게도 역자의 번역 취지의 글이 맨 앞에 위치해 있었는데요. 이것을 서문으로 여겨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적으로 역자의 변이라는 장으로 맨 뒤에서 다루는 것과는 매우 상이한 것입니다. 물론 원저자의 서문이 뒤에 이어지기도 합니다. 다시 글로 돌아와서, 이 글은 총 6장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다시 엄밀히 말하자면 주권과 주권체 개념에 대한 유럽 위주의 시대적 서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평가하는 데에는 저자인 로버트 잭슨이 1장에서 주권체에 대해 밝히는 의미와 일맥상통합니다. 즉, “주권체는 중세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등장한 헌법사상인 동시에 그 이전 시대를 명확히 구분짓고 또한, 보편적 기독교 신정에 반하는 사상에 기초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규정되는데요. 이는 시대를 거치면서 주권체의 개념이 변화하게 되고 이것은 최종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읽히 인지하고 있는 “주권체는 바로 다름 아닌 일반 의지의 행사”이면서 이러한 주권체를 형성하며 발전해 온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주권은 거부될 수 없기 때문에 문어상으로는 국민 주권체는 대중이 실질적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정부로 이해될 수 있다”는 4장, 대중 주권체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래서 1장에서 저자가 단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은 ‘이 책이 사상사적 관점에서 기술되었다’는 부분입니다. 애초에 정치발전과 공화주의적 착안과 민주제도 전반의 부분에서 학술적으로 주권과 주권체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이 주권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역사적인 사상의 흐름을 거쳐 변화를 거쳐 왔는지에 대해 저자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접근법이 아예 무의미하거나 한계를 갖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애초에 유럽의 역사에서 이 주권을 다루고 있고 (물론 그럴 수 밖에 없겠습니다만) 소위 문명 세계를 이루는 사람들의 권리라는 것으로 다루고 있는 점은 소급으로만 이해해도 그 근거가 명확해 보였는데요. 이를테면 3장의 유럽의 주권과 전 세계에서, 각 유럽의 국가들이 제국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들이 임의로 정해놨던,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의 토착 정권에 대한 사실상의 주권 불인정은 바로 이것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흐름속에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열강이 식민지 건설에 나섰고, 근대를 넘어선 1910년대의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 원칙 조차 유럽인들을 제외한 다른 민족과 인종에는 적용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저자가 밝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유럽의 정치가 주권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겁니다. 과거 중세 시대에 있었던 정교 일치 사회에 대해 저자인 로버트 잭슨은 이 시기의 로마 교황으로 선도되는 여러 정치적 기술과 체제에는 각 유럽의 봉건 영주들 중심의 일종의 선정권을 갖고 있는 중세 왕정으로 구분된다고 보고 있는데요. 이는 로마 교황이 봉건 왕정에 대한 정당성 답보에 관여했으며, 14세기 이전까지도 왕이라 지칭되는 자들이 완전한 중앙 집권체를 이루지 못했기에 봉신의 권리만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봉건 국왕들이 자신들 위에 신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한 존재임을 피력하는 루이 14세와 찰스의 시기까지는 교황권에 대한 쇠퇴에 따른 일종의 권력 공백이 이들 봉건 왕들의 정치적 권력 확대와 더 나아가서는 17세기 이후 로마 교황의 권한까지 억누르는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는 격렬한 종교 개혁과 그 흐름에 따른 사회 변혁이 봉건적 왕들의 이익 확대에 부차적으로 기여한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하였는데요. 단순히 자신들의 군주를 뽑고 옹립할 권리를 종교 개혁 와중에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당시 만연된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터무니 없는 민중들에 대한 착취는 국왕과 교황권이라는 권력의 교체를 추동했던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저자는 바로 중세 시대 이후의 유럽 시기를 주권의 시대의 시작으로 파악하는 듯 보였습니다. 특히 저자 자신이 엄청난 변화라고 인지한 군주 체제에 대해 점차 인정되는 주권과 기독교 공화정이라는 체제로의 해체과정은 수세기에 지속된 것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친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국가 체제와 각 봉건 영주들이 자신들이 신성을 부여 받은 존재라는 의미로 “기독교 신이 인정한 권리에 의해 통치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체제적 유지는 유럽이 근대 초기에 이를때까지 지속되었으며, 외형적으로는 유럽의 세력 균형이 시작된 시기이며, 그런 연유로 베스트팔렌 체제 자체가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신성의 유지와 신성한 권력이라는 이름의 각 국왕들의 주권체가 뒤이어 ‘제국 주권체’라는 미명하에 식민지 건설과 인종적으로 차별을 지우는 식의 권위와 정치적 선점이라는 오명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뒤이어 4장에서는 ‘국민의 이름’이라는 대중 주권체에 대해 기록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3장과 4장은 집중해서 읽어야 되는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토머스 페인의 인간의 권리라는 대목에서 시작된 이 대중 주권체는 후에 프랑스 혁명이후로 초래된 나폴레옹 보나파트트의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로 전달됩니다. 이 대중 주권체는 정치적으로는 과거 제국 주권체와는 달리 매우 다변하고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됩니다. 영국의 명예 혁명과 미국 독립 혁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중이 스스로 주권을 챙취하게 되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으며, 더욱이 프랑스 혁명 이후 발생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제정은 전 유럽은 전화의 불길로 이어지게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의 의회 주권체라는 개념이 발생한 게 아닌가 문득 예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대의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프랑스 혁명을 목도하고 난 이후에 그것의 폭력적 결과를 얼마간이라도 방지하기 위해 의회의 주권 개념이 도입된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 ‘대리인 정치’가 일반적인 대중들을 대신해 반대와 첨예하게 싸워 나가는 개념으로 일정 부분 인정한다면 이러한 체제의 발전이 아주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런 의회 정치와 의회 주권의 시기에는 “국민의 이익, 공공재, 공익, 국가안보, 시민권, 공공복리 등이 내포하는 정치 사회의 규범적 기준에 의한 주권체”를 등장하게 하였습니다.

현재의 국민 국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민족 자결주의와 관련해 ‘동일 민족 동일 국가’라는 의미하에 양차대전 이후 이러한 정치 결사체의 획득이 시도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전 유럽에서의 국민 국가 개념의 발생일텐데요. 특히 이 부분은 저자가 밝히는 대로 캐나다의 ‘두 개의 민족 그리고 한개의 민족 자결’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배타적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오늘날에는 세계화의 범람 가운데 이 국민 국가의 축소 내지는 쇠퇴가 예견되어 왔는데요. 물론 저자의 논법과는 약간 벗어난 경우일 수도 있겠지만, 근래 중동에서의 테러리즘 발호는 이러한 국민 국가의 쇠퇴를 여실히 증명하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실 그동안 초강대국 미국과 국제연합이 주도하는 ‘인도적 개입’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테러리즘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해당 지역에서의 주권 약화를 불러일으켰다 이해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애초에 주권 개념을 국제 연합의 지위나 국제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배타적이 고유한 개념으로 이어져 내려 왔다면 많은 실패 국가에서 보여지는 내전과 전쟁에서 고통스런 인명 피해와 무분별한 살상을 막기 위해 이 인도적 개입이라는 명분이 바로 앞선 측면에서 주권의 쇠퇴를 가져왔고 더불어 세계화의 흐름속에서 이어지는 탈국경화 역시 여기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자가 의문을 표하는 부분인 이러한 세계화의 시스템에서의 세계시장과 같은 초국가적 활동이 과연 평화를 불러왔는가에 대해 우리 모두가 깊은 성찰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의 블랙 워터와 같은 민간 군사 조직이 초래한 여러가지 혼란과 갈등을 보더라도 애초에 국민 국가의 주권적 쇠퇴가 과연 환영받을 만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들이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국헌적 체제 하에 공인된 시민들의 주권 개념이 명목상으로만 우선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주 전반적인 국민 국가 개념의 퇴출은 있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글의 결론에서도 국민 국가의 시스템이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만 한 국가와 국민 그리고 이들이 모인 국제 체제에서의 주권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이 최소한 외부요인에 의해 붕괴에 이르지 않기 위해 제도의 마련이나 인식의 재정비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 권리와 이익이라는 것에도 귀결되며 다소 곁가지일지도 모르겠지만, 서두에서 일찍 저자가 확언한 바와 같이 어쩌면 주권 개념이 현실 정치의 포퓰리즘을 극복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할 수 있겠습니다.



- 118페이지의 텔리랜드라는 인명이 나오는데요. 이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전후 복구에 참여했던 탈레랑 Talleyrand 을 뜻합니다. 매우 공공연하게 알려진 탈레랑의 인명 표기를 영문 표기로 글에 실는 것은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마찬가지로 1장에서는 당트레브 d’Entreves에 대한 표기는 정확한데 이걸보면 기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1페이지의 에드먼드 버커 역시 에드먼드 버크로 표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2장부터 등장하는 레그나 Regna라는 개념을 번역하지 않고 그냥 레그나라고 표기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듭니다. 107페이지에는 아예 레그나를 왕국으로 표기하는데 여기에서도 기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110p의 더취의 반란이라는 표기도 손쉽게 번역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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