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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국가의 조건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안진환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으로 일본계 3세의 미국인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냉전 종식의 시기에 ‘역사의 종언’이라는 주장으로 자유 시장이 기반이 된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의 정당성과 우위성을 설명한 학자로 유명합니다. 동시에 그는 코넬대와 하버드대를 거쳐 조지 메이슨, 존스 홉킨스, 스탠포드 대학 등에서 강의하며 국가 발전론과 국제 경제학 및 국가 건설과 민주화에 대한 연구를 평생에 걸쳐 수행해 오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런 그에게는 약간의 관변 학자라는 이미지도 투영되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굳게 신봉하는 자유주의자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면에서는 다른 보수 우파 지식인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어찌됐든 그는 학계 전체적인 측면에서 자유주의 정치학 분야에 큰 획을 그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겁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State Building”이라는 원제로 지난 2004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이듬해인 2005년 3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다만, 현재로서 이 책은 절판된 상황입니다.
우선, 총 3부의 비교적 얇은 소고라 부를 수 있는 후쿠야마의 이 논저가 실질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바로 “약한 국가의 통치력 향상과 민주적 정통성 제고 및 자립적인 제도 강화 등의 방법과 관련된 주요한 과제”로서 살펴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후쿠야마는 약한 국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강한 국가를 설명하고 바로 이러한 점의 기본 조건으로 ‘훌륭한 통치와 (성숙한) 민주주의’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의 양가적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다원주의와 불협화음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시선을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쿠야마는 일견 보기에 그것이 명목적이라 할지라도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1장의 도입에서 설명하고 있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파고에 대해 “당시 공공부문의 지출에 몸살을 앓던 대다수 선진국들은 이런 신자유주의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평가하고 또한, “공공부문이라고 해도 규모를 줄일 분야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강화해야 할 분야도 있다는 점을 (아마도 당시 정책권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는 점도 그는 따로 후술하고 있는데요. 확실히 강한 국가의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잠정적인 민주주의의 쇠퇴를 불러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꽤 객관적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신자유주의적 이행 과정 가운데 비롯된 민영화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도 “민영화는 국가 기능 범위를 축소하는 것을 포함하는 한편, 높은 수준의 국가 역량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더불어 강조합니다. 2차대전 이후 유럽의 열강에 의해 식민지 치하에 있었던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과 전쟁의 폐허에서 갓 출범한 대만과 한국, 일본이 전자와 다른 성취를 보였던 이면에는 성공과 성장을 바라는 국민들의 조직적인 기대와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와 관련해 후쿠야마는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특유의 국가 정체성을 갖고 여기에 정부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요. 이것과 관련해 3장에서는 약간 광범위한 속단일수도 있으나 “유럽인이나 일본인은 자국이 민주 국가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역사를 공유해 온 국민이다. 이들은 정치가 아닌 다른 원천에서 정체성을 느낀다”고 다른 국가들과 구별되는 점을 진술합니다. 이것은 중국과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신자유주의화는 다른 측면에서도 부작용을 낳았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당시 워싱턴의 정책 입안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적절한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자유화는 위험하다는 논지를 적극적으로 펼친 바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로 설명됩니다. 즉, 많은 후진국과 실패 국가들이 최소한의 제도적 뒷받침 없이 시장 자유화와 세계화에 뛰어들게 되었고, 여기에는 후에 나오겠지만 사실상의 베스트팔렌 체제적 국민 주권 국가의 약화와 국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선진국들의 (광범위한) 방만한 원조 등이 번영과 발전을 바라는 전자의 국가들에게 일종의 대실패를 맛보게 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이것과 관련해 3장에서는 미국이 최근에 대외 원조와 관련해 일종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일정 수준의 개혁과 성장에 실패한 국가들에게 원조를 제공하지 않는 등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것의 이면에는 아예 그런 공감대와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실패 국가들의 국민들에게는 꽤 가혹한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을 후쿠야마는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1998년에 한국이 IMF에 의한 구제 금융을 받을 때 당시 미국 클린턴 정부가 분명 우리나라가 외환 자유화 전면적인 외환 거래를 준비할 제도적 수준의 준비와 기관의 유치가 되어있지 않음에도 그것을 강요한 것은 분명 문제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사실상의 경제적 국제 규범으로써 ‘워싱턴 컨센서스’가 이를 수행하는 관료조직의 애매한 인식과 미흡한 대처로 한국과 같은 국가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결과는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일종의 편의주의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불명확합니다만 어찌됐든 우리나라의 사례로 봐도 자유화 자체에는 최소한의 준비와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뒤이어, 2장은 일반 조직론에 입각해 개인과 조직간의 설명과 그런 개인들이 구성되어 나타나는 조직의 근본 특성과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조직론에 대한 연구는 성공한 국가 조직과 건설을 위한 선제 조건으로써 이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분야로 후쿠야마는 보는 듯 했는데요. 여기에는 각 개인들의 이기심들과 구성원들의 조직적인 협력의 문제와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에 따른 여러 문제점과 의의 등을 상세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즉, 본격적으로 조직을 구성시켜 제도를 뒷받침하고 국가 전반을 다루게 되는 상황에 이를 때, 국소적인 측면에서 기업의 조직 발전론과 이를 확장시켜 어떻게 하면 국가 조직으로서의 효율적인 성공을 이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여러 논의들과 논저들을 통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산재한 많은 조직들은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각 개인들이 자신들의 이기심을 갖고 있고 오로지 서로간의 공적인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협력을 추구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과제와 질문들을 구성원에 대한 인센티브와 확장시킨 공공 행정 분야의 의미까지 다루게 됩니다. “보통의 법치국가들은 기술적인 전문 지식과 결단력 있는 행동의 필요성이 결합된 군사 지휘권이나 금융 정책권 같은 특정 재량권을 행정력에 다시 포함할 수 있는 방법을 조심스레 모색하고 있다”고 후쿠야마는 덧붙이고 있는데요. “공공행정이 나라마다 다르고 포괄적인 일반화가 쉽지 않다는 걸 전제”하면서도 여기에는 특이성의 문제, 이를테면 공공교육이나 국방과 같은 산출과 효과의 관계에 따른 그래프와 도표 등을 글에 수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진 국가들 가운데 꽤 모범적인 모델로 불리우는 덴마크의 사례를 일반적으로 발전 국가들이 차용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에는 각 구성원과 조직,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 등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일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 미국은 일본과 한국 필리핀 등에서 자신들의 국가 기능적 전반을 이식하기 보다는 일반적인 선출된 민주적 정부의 기능과 기본적인 체계만을 만들어 놓은 것은 물론 단순한 외형적 결과론이겠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점은 분명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에는 미국이 이러한 체계를 이식한 전후 국가들 가운데 오로지 한국만이 특별하게 성공을 했으며, 이것은 미국의 도움이라기 보다는 오로지 한국민들의 노력의 성과라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과는 별개로 후쿠야마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글의 2장에서 영국이 과거 인도와 싱가포르에 남긴 유산으로 말미암아 인도는 짧은 기간내에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고, 싱가포르는 효과적인 헌법 체계를 만들었다고 평가합니다. 더불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한국과 대만의 일례를 들면서 “일본 또한 대만과 한국을 점령했던 시기에 견실한 제도를 몇개 남겼다”고 평가하는데요. 저는 이것이 당시 일제의 쌀수탈로 농민 자신들 마저 곤궁기에 먹을게 없었던 정도로 행해졌던 조선의 자원 기지화에 대해 정확한 성찰 없이 저런 정도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에 대해 매우 실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여기에다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 크나큰 증오심을 품고 있다”고 뭔가 이상한 뉘앙스의 문장을 들여다 놓기도 했는데요. 물론 그를 일본계 3세의 미국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되겠지만 조직론과 관련된 그렇게 많은 원전을 책에 소개했으면서도 이 정도의 역사 인식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예 일본이 한국에 대만에 남겨 놓은 견실한 제도에 대해 조금이라도 설명을 해놨으면 어느 정도 살펴볼 이유라도 되었겠지요.
끝으로, 많은 실패를 겪고 있는 국가들과 발전 과정에 있는 국가들에게 필요한 부분은 견실한 제도와 민주주의의 확립이 될 것입니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은 어느 정도 경제적 발전이 수반되어야 하겠지만, 후쿠야마가 2장에서 밝힌, “해당 국가의 엘리트들이 개혁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수요를 느끼지 않는 한 좀처럼 효과가 없다”는 점과 오히려 “리콴유와 같은 인물이 통치하는 권위주의 국가가 사실상 나을 수 있다”는 점은 민주주의 체제 확립의 복잡한 이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과 유럽의 극명한 차이에서 주권 민주 국가의 결정은 아무리 올바른 절차를 거친다 해도 그것만으로 공정성 또는 보편적인 자유주의의 가치와 합치한다고 보장할 수 없는 것과 민주적 다수가 타국에 무서운 결과를 안겨주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인권을 침해하거나 (자기들 민주적 질서의 바탕이 되는) 인간 존엄의 규범까지 어길 수도 있다”는 점은 우리가 꽤 곱씹어야 되는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후쿠야마는 논의 전개 과정에서 과거 국민 국가가 한계에 이르거나 그 의미가 축소되어 해당 개별 국가가 자신들의 주권을 보위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러한 결과가 과거 유고슬라비아 사태와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현재 미국의 일방주의에 기인한 것도 있기 때문에 많은 유럽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민주적 정통성이 얼마간의 개별 국가보다 더 큰 국제 공동체의 의지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것을 디스토피아적인 것으로 너무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집니다.사실상, 국내적인 민주적 통치로서의 기반과 국제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정당성은 서로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에 이것을 역으로 고찰해본다면 민주주의를 이행하는 국가들에게 국제 사회 차원의 행정적 지원과 이식의 실질적인 방안을 선진 민주 국가들이 고려해 보는 것이 어떨까 끝머리에서 다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큰 의미는 없겠지만, 76페이지에 오타 한 곳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문장들 가운데 핵무기와 관련된 표현이 있었는데, 꽤 인상 깊어 적어보려고 합니다. “병 속에 도로 집어 넣기 어려운 ‘지니’로 대변되는 핵무기”
-또한, 조지 W. 부시의 선취주의 즉, 예방 차원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선제 공격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