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정체
이옥연 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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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이 주관해 출판한 이 유럽의 정체라는 논문 모음집은 두 명의 서양학자와 다섯 명의 국내학자가 모여 21세기 유럽의 정체적 기원이라는 주제로 종교, 문화, 경제, 정치, 국제 관계 및 역사적 접근에서 이를 규명해 보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이 갖고 있는 학문적 논의가 어떻게 보면 그렇게 심도있는 내용은 아니어서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런 적당한 수준의 논의는 일반 독자들에게 오늘날 유럽의 형성과 정체성의 기원을 조금이나마 접근해 볼 수 있는 일종의 개론서적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의 호기심을 갖고 일독하게 되었는데요. 먼저, 소위 ‘유럽 유일주의’라는 유럽인들의 꽤 배외적 기준은 어디서 비롯되었고, 유럽의 기독교적 근간이 여기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호기심과 두번째로 국내에는 거의 유일한 클로드 르포르의 권위자인 홍태영 교수의 글이 있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서슴없이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로 소개해 드릴 이 글은 지난 앞선 설명과 마찬가지로 서울대출판문화원에서 주관해 최근인 2011년 논문 모음집으로 정식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1장부터 3장은 유럽의 기독교적 기원과 중세 그리고 유럽의 근대성을 살펴보고 4장부터 7장은 근래 모습을 갖춘 통합 유럽의 기원과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과 반대의 부침 그리고 유로화 출범과 관련한 정치경제적 해석과 더불어 미래의 진정한 유럽 통합이라는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으로 글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인위적으로 나눠 설명한 이런 접근법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마시고 논문 하나하나를 따로 접근해보셔도 충분히 일반 독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런 학술적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만 갖고 있으면 일독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점은 이 글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장에서도 얼마간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제가 일전에 서평을 쓴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에서 유럽의 기독교 문화가 어떤식으로 유대인들의 유대 문화 배제에 영향을 끼쳤는지 이번 장을 통해 그 단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기독교인과 유태인은 서로 관용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측면의 설명은 어떻게 양자 사이의 이런 토대의 가치가 어떻게 쉽게 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예측을 이 글을 통해 가능하게 해줍니다. 즉, “과거 오스만 제국의 서진으로 인해 유럽인들은 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은 외부 세력의 급진적 진출을 앞둔 자신들의 문화 보존과 크게는 유럽권의 방어와 (사실상) 기독교 세력의 수호라는 정체성을 낳게 됩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이러한 정체성에 기름을 끼얹게 되는데요. 물론 당시의 로마가 이끄는 기독교적 분위기가 어느 정도의 강력한 지속성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후에 왜곡되어 버리는 신성 로마 제국의 세속 권력의 유럽 전역의 확대는 어느 정도는 기독교적 자구책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도 될만한 사건이라 생각됩니다.

이후, 중세의 암흑기와 봉건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 되는 유럽의 전제 왕권들이 그 기독교를 기반으로 일전에 퇴치한 스페인에서의 이슬람과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목표로 이뤄진 십자군 운동 전개에도 마찬가지로 유럽은 견고한 기독교 세력권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광범위한 정치적 기반을 유럽인들은 획득하게 됩니다. 즉, 로마 교황에 의해 승인받은 국왕의 명령에 대해 어떤 중요한 체계적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것이랄까요. 주류가 기독교 정치 문화이니 이는 아마 당연하게 인식되는 부분이기도 할겁니다. 따라서 이런 기독교 문화가 기반이 된 당시의 유럽의 정체성이 어떻게 유럽 유일주의로 이어졌느냐에 대해선 이를테면 소위 ‘문명화 과정’이라는 논법으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유럽이 성공적인 산업 혁명 이후, 제국주의를 내면화 시켜 세계 각지에 식민지 건설을 시작하게 됨으로써 이어진 소위 내면과 외면이 합일되어 나타난 정치적 논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알렉시스 더든의 ‘계몽적 착취’와 일맥상통한다고 여겨집니다. 상대방이 문명적으로 미개하기 때문에 마땅히 우리가 지배할 수 밖에 없고 이 지배는 궁극적으로는 이들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은 유럽 주류 기독교 문화의 차별적 근원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 점은 약간 이해긴 하지만 오늘날 이슬람 세력이 다른 문명에 갖고 있는 인식으로 사회경제적으로 지대한 세계화 본류에 힘입어 세계 각국이 자유 시장 경제로 전환되었음에도 실질적으로 경제에만 국한되어 실질적인 국가와 문화 통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이것은 앞선 초기에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한 관용을 갖고 있었음에도 어떻게 이것이 심각한 유대 민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낳게 되고 여기에 더 민족적 혐오를 초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일말의 인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은 문명화되었고, 다른 이들은 미개하다는 측면의 인식론 말입니다. 이러한 차별의식이 계몽주의와 결합하에 어떤식으로 발현되었는지는 제국주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 4장부터 6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몰락한 독일의 가치 재평가가 미소간의 냉전으로 변화되었고 이를 통한 유럽 전체의 프랑스와 독일의 주도하에 벌어진 여러 정치경제적 통합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더 쉽게 말하자면 ‘유럽에서 아빠의 역할을 프랑스가 엄마의 역할을 독일이 한 것”으로 볼 수 있겠는데요. 앞선 프랑스는 2차대전 당시의 연합국의 승전 기여가 크지 않았기에, 소위 중견국의 위치로서 종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에 드골은 자신의 자랑스런 프랑스가 그러한 대접을 받는데 격분하여 (물론 드골이 일차원적인 면모만 드러냈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핵을 갖으려고 하고 실질적으로 미국을 넘어 유럽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와중에는 1961년 이후에 정책을 전환에 EC에 가입하려는 영국에 거부권을 지속하고 대륙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한 통합 체제를 가속화하게 됩니다. 여기에 프랑스는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별다른 효과가 없음에도 유로화 출범을 정치적 발언을 확대하기 위해 참여하고 일종의 같은 협력자 그룹 내에서 독일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서도 이 유로화를 지지하게 되는데요. 이는 독일이 그리스에 대한 그 우유부단한 태도에도 일맥상통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서로 통합된 통화가 각 정부의 부채 해결 해소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보면 규모의 경제나 또한 유럽 전체의 헤게모니 획들을 위해 서로 연합하고 이것은 정치적으로는 동유럽을 유럽 울타리 안에 넣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논란을 낳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이익을 위해 이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예견되는 그 한계를 여실히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통찰력이라고 봐도 무방한 의견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오늘날 유럽의 기존의 전통적인 정체성과 대립될 수 밖에 없는 이슬람 이민과 최근의 난민들의 유입은 과연 기존의 유럽이라는 시민들의 연대성을 지속할 수 있겠는가에 암울한 전망을 드리운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찍이 에티엔 발리바르는 이 난민 문제를 정치와 경제로 나누어 이해했다가는 유럽이 갈등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베스트팔렌 체제를 신봉하는 키신저의 논법대로 유럽에서 기존의 국가적 인식과 해법이 이 이슬람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할지에 대해 앞으로 유럽의 통합과 정체성 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으로 여겨집니다. 즉, 이슬람 문제의 다른 접근과 다른 해결 방법이 있어야만 산적한 동유럽의 문제와 함께 유럽 내부의 통합과 외부의 결속력을 더 다실 수 있는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발리바르 뿐만 아니라 랑시에르 또한 바우만 까지도 중요하게 봤던 문제로서 앞으로 유럽의 건전한 통합이 여기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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