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본능 - 일상 너머를 투시하는 사회학적 통찰의 힘
랜들 콜린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사회학자로 알려진 랜들 콜린스는 하버드와 스탠퍼드를 거쳐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과거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을 당시 그는 반전 운동에도 참여했던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이후 하버드에서 사회심리학을 연구하고 버지니아 대학 등을 거쳐 현재 펜실베니아 대학의 사회학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자주 등장하지만 아마도 랜들 콜린스는 어빙 고프먼에 주로 탐독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지고 보면 고프먼도 역시 뒤르켐의 학문적 지류이니 콜린스 역시 그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막스 베버와 비슷하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에밀 뒤르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회학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뒤르켐의 사회학의 기능주의적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실증적 논거를 비롯한 사회학에서의 기본틀을 마련한 그의 업적은 분명 존중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지난 1982년 초도 출판되었으나, 이후, 1992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원제는 “Sociological Insight”로 국내에는 바로 1992년판을 기반으로 지난 2014년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다만, 현재 이 책은 절판된 상태인데요. 재간행을 앞두고 있는지는 다소 불명확합니다.

우선 이 책은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구조들을 (현실) 사회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여졌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글 자체는 저변의 확대를 위해 쓴 것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꽤 독해가 수월했던 것은 확실합니다. 즉. 총 6장의 주제로 차례대로 요약해 보자면, 1장은 인간의 합리적인 측면의 맹신 이면의 비합리성, 2장은 사실상 종교의 공통된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도덕주의, 3장은 일터나 일상생활에서 규명해 본 권력의 개념, 4장은 법과 범죄의 서로 역설적 측면에서 비롯된 사회 범죄의 의미, 5장은 전통적 성애적 권리의 변화 및 현재의 결혼 제도의 예측을, 6장은 사회학의 필연적 존재라고 여겨도 될 만한 인공지능의 불확실한 미래로 글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6장은 좀 더 설명이 필요한데요. 문맥 그대로라기 보다는 인공지능의 출현을 일종의 사회적 실험으로 저자는 바라보는 듯 했습니다. 더불어 이것에는 사회학과 사회학자들의 존재 의의가 있다고 보는 듯 했고요.

이 책의 저자인 콜린스는 자신의 글을 본격적으로 써 나가는 와중에 독자들에 중요한 인식 수단들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합리성은 완벽하지 않으며, 그 이면에는 비합리적인 측면이 반드시 존재하고, 그런 인간들이 모여 구성한 사회는 이 개개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합리적 행동에 나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그 안에 ‘의례’와 ‘유대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합리적인 본성 가운데 존재하는 비합리적인 측면과 의례 및 유대감을 기본 인식으로 이 책을 읽어 나가시면 글의 일관된 논지를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경제학자들은 완전히 반대되는 주장들에 대해 저마다 철저히 이성으로 무장한 옹호론을 내놓는 일은 아주 흔하다”고 저자는 일반적인 경제학과 이 합리적 본성과 더불어 사회학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사회학자들은 이 합리적인 본성 혹은 이기심과는 다른 “사회에 필연적으로 필수불가결인 도덕주의적 요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할텐데요. 바로 이러한 합리적 본성에 의해 추구되었던 “계약주의 내지는 계약설”에 에밀 뒤르켐이 “사회 조직의 궁극적인 기반이 계약이 아니라는 점”은 사회학자들이 이를 어떻게 보는지 극명히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양자간의 계약 관계를 해설하며 양쪽의 어느 한 사람이 계약 관계를 철회해 자신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인간의 합리적인 측면이라고 풀어냅니다. 다만, 매번 모든 계약 관계가 이런식으로 될 것이라면, 사회적 합의가 무너질테니 따라서 법에 의한 강제 규정이 존재하게 된 것은 앞의 근거적 단순화를 차치하더라도 꽤 아이러니한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개인의 이익과 안정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저자는 계약을 다루고 있으니 그만큼 저자의 이론에 대한 접근이 평이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떤 강제된 규약(사법체계)에서가 아니라 “모두가 공통의 이익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는 도덕적 의무를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의무 조항 역시 근거가 명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이 유대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경우는 훨씬 더 하다”는 분석은 단순히 유대감의 존재 여부에 따른 사회의 구성적 요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사익 추구와 별개로 도덕적 측면과 상대방을 고려하는 유대주의가 중요하다는 논법일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부분이 과거 계몽주의적 도덕적 접근이라고 폄하될 수 있으나 현재의 개인들의 수많은 이익 추구에 대해 어떠한 면죄부가 주어진 것은 꼭 모든 경제학자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들에 대한 합리적 근거를 교묘히 제시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에서 사회 전반에 이런 인식이 내면화 된게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전통주의 사회 이전과는 달리 근대 이후 자본주의 체제가 이식된 기존의 사회가 생산력과 그로 인한 사회 발전에 나서게 됨으로써, 이것이 필연적으로 진행된 흐름이라고 봐야 할 것이죠. 물론 이러한 도정에서 우리의 도덕적 책무와 도덕주의가 뒷전으로 밀려났으니 이 부분은 그것의 폐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어 4장은 특히 현재 미국내의 범죄와 사법제도의 모순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데요. 그만큼 현재 미국 사회의 범죄 발생의 근원을 사회적 차원에서 규명하는데 큰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모든 독자가 이 4장을 따로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뒷부분에 인용이 되기도 하지만, 에밀 뒤르켐은 사회가 살아남으려면 범죄가 필요하다고 하기까지 했는데요. 이 부분이 일정 부분 이런 범죄자들을 도태시켜 건전한 부분만을 건사시킨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미국의 사법 체계에 따른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 간의 거래와 가해자들에 대한 형량 거래 등이 만연한 범죄에 따른 사법 당국의 일처리 효율을 위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매우 강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개인의 범죄에 대해 그것을 일개 사람의 일로 국한시켜 이해하려는 편견이 있습니다. 저자인 콜린스는 이러한 기본적인 개인의 인식을 보이더라도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이들 범죄에 대해 접근하고 이해하면 그 결과는 분명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요. 그래서 범죄가 법의 역설적인 측면에서 조장되고 있다는 해석은 크게 공감이 되었고, 미국의 사법체계가 처벌의 엄중주의에 급급해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중범죄인들이 있는 교도소에 무차별적으로 수감시켜 갱생은 커녕, 다시 중범죄의 굴레에 옭아매는 결과를 미국 사법제도와 사회가 재생산하고 있다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정독을 하다가 잠시 들었던 생각은 경찰 조직과 사법 조직을 아주 면밀하게 관찰하고 시스템을 분석하는 어떤 연구 용역이나 연구부서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를테면 형법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이 모여서 이 조직내의 실제적인 조건과 성격을 규명하고 이것을 시민 사회에 널리 인식시키는 것이 이 자체만으로도 범죄 최소화에 기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이것은 다른 측면으로 의사나 변호사들이 자신들의 업계 정보를 가급적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소위 전문가들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일종의 은폐주의와 비슷한 효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인 너희들이 무엇을 알겠느냐와 같은 이 차별적 태도는 의사들이 자신들의 일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사회 구성원들과 자신들은 다른 존재임을 각인시키고 따라서 이들 계층이 통제가 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고 저자는 분석합니다. 실로 명료한 해석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끝으로, 우리가 그동안 자유주의적 이성에 기반한 사회적 체제의 틀을 마련해 왔다면, 이제는 이 합리적이라는 수준의 인식을 달리 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즉, 앞선 의사들의 예를 들었듯이 우리 모두가 사회적 유대감을 갖고 아주 직접적인 권력에 의지해 사회를 유지하기 보다는 소속감을 고취시키는 건전한 의례와 소수의 기득권층을 공통된 사회 구성원으로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반드시 마련하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의무이자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뭔가 통제라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실 수도 있으나 이것의 기본적인 의미는 “합리적인 이익이라는 본성의 비합리성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학의 근본 목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실종된 현재의 도덕적 책무를 고려해본다면 분명 매우 중요한 시점임은 분명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더 나아가서 열린 다원주의의 근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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