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 - 조커가 지배하는 시대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34
안병진 지음 / 스리체어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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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와 서울대를 거쳐 미국 뉴스쿨 대학원에서 한나 아렌트 상을 수여받은 경희대 미래문명원 안병진 교수는 국내에서 제법 잘 알려진 진보적 지식인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의 유명한 논저 가운데 하나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와 보수주의 위기의 뿌리’는 학계와 출판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안교수가 포퓰리즘 연구를 해보면 큰 학문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요. 물론 이는 일개 독서인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짦게 밝히는 대로 광범위한 도널드 트럼프 연구의 그리 가볍지 않은 길라잡이가 되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이 책은 몇년간의 지난 트럼프의 단상을 돌아본 글이면서, 앞으로 트럼프로 초래된 미국의 정책 변화와 세계 체제에 대한 여러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작은 분량의 글이지만 몇가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의문을 다소 해결할 수 있었는데요. 또한, 꽤 객관적인 시각의 글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우선, 미국의 수장인 도널드 트럼프는 국내에서 학계와 여러 전문가들에게 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자도 역시 트럼프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성을 언급하고 특유의 괴랄한 트위터 정치 그리고 자신이 어떤 분야이든지 통달했다는 식의 자기애적 사고를 마찬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얻게된 사실은 트럼프가 백안관에 입성 후, 전 정권이었던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TPP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오히려 아시아 태평양에 중국의 영향을 확대시킨 것과 최근에 이란의 핵합의를 과거로 돌리고 중동에 암울한 전운을 드리운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트럼프가 사실상 자신의 행동 결과에 대한 매우 진지한 예측과 성찰이 없는 인물이 아닌가하는 일종의 뜨악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의 전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미국의 패권과 영향력이 과거와 비교하여 상당히 기울었던 점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안정적인 국정 운영과 그 한계를 받아들여 그전과는 달리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표방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때로는 이스라엘이 포함된 중동 정세에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오바마는 보이기도 했는데요. 그런 배경에는 미국의 쇠퇴의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되지만,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한다면 물론 약간 다른 논법이지만, 저자의 말대로 중동에서 제3차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란의 핵문제와 이스라엘의 과도한 대응이 미국과 동맹국을 전화로 이끌 가능성이 있는데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과연 트럼프가 국제 정치 무대에서 이러한 파급 가능성을 과연 이해하고 있었는지 매우 의문이 듭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백악관을 차지하기 위해, 무소속이나 제3의 후보가 되는 길을 고려치 않고 공화당을 점령하는 길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특히 트럼프가 “인종적 배타성에 근거한 반동적 포퓰리즘의 화신”이고, 티파티를 비롯한 극우 포퓰리즘과 러스트 벨트를 비롯한 하류층 백인 남성의 지지를 얻고 당선에 이릅니다. 이러한 지지층의 파괴력으로 말미암아 공화당 내 꽤 건전한 보수주의자들 역시 트럼프에 굴복해 그의 지지기반이 된 점은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입니다. “이런 트럼프의 포퓰리즘을 지성주의적 리버럴들이 불편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운동”이라고 저자는 평가하며, 여기에 대한 미국 리버럴들의 단순한 격하한 평가와 대응 부족은 지난 3년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약간 다른 관점이겠지만 좌파 포퓰리즘과 같은 민주적 원동력을 주장한 샹탈 무페를 저자도 인용하고 있지만 인종주의와 엘리트 층에 대한 격렬한 분노 그리고 쉽게 선동되어 버리는 극우 포퓰리즘을 자유 민주주의의 어떤 맥락 속에 존재한다고 이해하는 저자의 판단에는 불행하게도 동의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미국의 고도화된 반지성주의적 분위기에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지도자의 출현을 예견한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인식을 감안하더라도 이 극우 포퓰리즘을 자유 민주주의의 어떤 사생아 쯤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저자 역시 맺음말에서 이러한 위험스런 정치 변동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시민들의 중요한 당위적 행동들과 인식의 확장 등을 여러 문장들로 제안하고 있습니다만, 시민이 자신만의 왕성한 지적 욕구와 깊은 성찰과 토론을 통해 선동 정치가들의 궤변을 논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현재까지 다수의 시민들을 이러한 공론장에서 퇴출시켜 버린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그냥 몇마디 말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지성주의가 지성주의를 압도하는 시대”라고 표현하는 저자의 언급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물론 왠만한 지성주의 시대로 표현되는 엘리트 지배 체제에 대한 과도한 믿음 또한 문제이긴 하지만, 트럼프 지지자들과 엘리트 들의 대결이라는 구도는 이것이 과연 정치 발전을 위한 대응인지 아니면 표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어떤 선동 정치인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는 꽤 명백해 보입니다. 다만, 이것과 관련해 저자가 설명한 “비통한 자들이 땅 위에서의 비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위대함으로 상승하고자 하는 욕망”에 대해선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앞선 부분에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어떤 욕망이 내포되어 있는 듯 보이는데요. 이들이 스스로 비루함을 선택한 것은 아닐텐데, 마찬가지로 젠더와 같은 개념이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것과 같이 이들의 비루함 또한 개인의 온전한 결과물이라기 보다는 저자가 인정하듯이 “1980년대 이후 지속된 신자유주의적 영향”과 이를 레이건 시대에 양 정치 세력이 용인한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끝으로, 1960년대 현재 트럼프의 아버지로 지칭해 될 만한 포퓰리시트였던 조지 윌리스와 마찬가지로 로널드 레이건을 트럼프와 한 묶음으로 만든 저자의 결단에 박수를 치고 싶었는데요. 리처드 닉슨과 로널드 레이건이 겉으로 표징하는 이념이 보수에서도 더 오른쪽이지만 이들이 꽤 유연한 정치적 판단으로 놀라운 결과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중국에 대한 긴장 완화와 소련에 대한 데탕트를 초래한 것 등과 같은 사례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며 하야한 리처드 닉슨이나 때로는 정치색을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널을 뛰었던 로널드 레이건이 정치인의 단일한 색깔을 정할 수 없을 정도로 (긍정적) 혼란을 준 것은 분명하나, 특히 레이건과 같은 경우도 그의 업적에 비견될 만큼 과도하고 불법적인 일들을 벌인 것은 분명합니다. 현재 미국 내에서 레이건의 위상을 고려해 본다면 그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빨리 제대로 이뤄졌음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또한, 트럼프 현상을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기반해 해석한 것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고, “양극화한 적대적 정치”이라는 현재 미국 정치의 일면을 어느 정도 드러낸 점은 좋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결론에서 많은 독자들이 오로지 얼마간의 국제 기사에 의지해 글로벌 현상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제언 역시 크게 공감할 만했습니다. 다만, 이러한 환경을 제대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먹고사니즘’을 얼마나 극복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이 먹고사니즘과 관련해 오해를 방지하고자 더 첨언하다면, 자신의 의지만으로도 충분한 문제들을 모두 먹고사니즘으로 몰고가는 행위를 주요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막줄은 이 책의 서평과는 매우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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