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자유주의 양심 현대의 고전 12
마이클 하워드 지음, 안두환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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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의해 “영국의 위대한 역사가”라는 평가를 받은 전쟁사가 마이클 하워드는 옥스포드 대학의 치첼리 전쟁사 교수를 역임하고 미국 예일대의 러벳 해군 역사학 교수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런던 킹스 칼리지의 전쟁 연구 담당 교수로서도 명성을 떨치기도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영국 내에서 양차대전에 대한 연구로도 명성이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잉글랜드 버크셔에 소재한 웰링턴 대학을 거쳐 옥스포드에서 수학한 그는 앞선 대학 교수와 연구자의 이력을 통해 유럽 전체 학계에서도 전쟁사 분야에 혁혁한 성과를 올린 학자였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그는 2019년 11월 세상을 뜨고 말았는데요. 97세에 이르렀던 나이를 생각하면 노환으로 숨을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렇게 노련한 학자가 세상을 등진 것은 어찌됐든 매우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이 책은 지난 1977년 초도 출판되어, 최근인 2008년에 일종의 개정판으로 신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원제는 “War and the Liberal Conscience”로 국내에는 2018년 10월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특히 “마이클 하워드의 전쟁과 국제정치 3부작”이라는 시리즈로 그 가운데 ‘평화의 발명’은 절판인 상태지만, 나머지 ‘유럽사 속의 전쟁’과 이 책은 현재 시중에서 구하실 수 있습니다.

처음 책장을 넘기면서, 앞쪽에 문고판 서문이 있길래 처음에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인을 포함해 약 478페이지의 분량이 어떻게 문고판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었는데요. 결국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주를 포함한 원래의 본문은 203페이지고, (아마도) 옮긴이가 특별히 수록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인명색인이 250여페이지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일반 위키백과에서 찾아 보기 힘든 고트프리트 헤르더와 같은 인물의 상세 정보가 있어 일종의 보론으로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봐도 일견 무방해 보이기도 했는데요. 다만, 이 ‘전쟁과 자유주의 양심’이 먼저인지, 아니면 그에 따른 ‘인물 색인’이 먼저인지는 분량상 불확실해 보이긴 합니다만 보는 분들에 따라서 출판사의 이런 분량 추가는 마냥 즐거워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추가된 분량 때문에 그만큼 책가격이 올랐기 때문입니다.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와서, 마이클 하워드가 이 책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주제는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던 15세기 이후의 자유주의가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에서 어떠한 결과를 낳았고, 이들이 혐오해 마지 않았던 군비경쟁과 세력 균형보다 못한 파급을 초래한 것을 꽤 객관적으로 비평”하고자 하는 목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앞선 결과물은 칼 포퍼의 몇줄 통찰과도 상당히 일치하는데요. 천국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사회의 지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죠. 더불어, 여기에는 칼 포퍼 역시 자유주의를 신봉한 학자라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점인데요. 뭐 거창하게 역사의 장난이라는 것으로 뭉뚱그려 쓸 필요는 아마 없을겁니다. 이어서 전제 권력에 의한 개인의 자유 증대라는 가치의 15세기 자유주의 태동은 유럽의 일반 전제 군주들이 상업적인 목적이나 자신의 위신을 위해 혹은 복잡한 혼맥에 따른 요인 등으로 당시 국민들의 의사와는 다르게 전쟁에 뛰어들게 됨으로써, 이러한 전쟁을 방지하고 어떻게 하면 평화를 구축할 수 있겠느냐에 대한 기본성찰과 그에 따른 평화의 일반적인 이론을 상기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1장과 2장에 등장하는 에라스무스와 벤담, 밀, 루소 등의 발자취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열렬한 계몽주의자였던 몽테스키외 조차도 “군주정의 정신은 전쟁과 지배의 확대에 있다”는 평가 또한 동일한 범주안에 있는 해석일겁니다. 이러한 이념의 발전 가운데 임마누엘 칸트는 자신의 ‘영구 평화론’에서 “모든 인간이 자유로운 시민이 되는 국제 사회로의 발돋움으로 공화주의적 헌정 체제에서의 책임 있는 정부가 주가 되는 정체”가 평화 상태의 구축에 필요한 요소로 꼽은 바가 있습니다. 물론 저자인 마이클 하워드 역시 사실상 민주주의와 이를 따르는 국가들이 더 많아져야 국제정치가 평화로울 수 있다고 동의하고 있는데요. 다만, 5장 파시즘의 도래에서 우리가 볼 수 있듯이, 1943년 당시 히틀러에게 체코의 할양을 승인했던 “뮌헨 회담”을 지지하는 소위 자유주의적 양심이 히틀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는지는 매우 명백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구별되어야 할 점은 정치를 주도하는 영국의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이때의 평화를 반겨했으나, 다수의 시민들은 이에 대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점은 뭔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국제주의적 이상주의에 탐닉했던 우드로 윌슨과 그의 추종자들이 고안한 국제 연맹 체제가 1935년 이탈리아가 같은 국제 연맹 회원국인 에티오피아에 대해 야욕을 드러냈을 때, 영국이 주도한 협의체가 이탈리아에 에티오피아 할양을 승인한 이 아비시니아 위기와 그 이전인 1933년 동유럽 소수 민족의 자치와 민족주의를 무시한 4국 회담이 어떠한 결론에 이르렀는지 역시 자명합니다. “집단 안보의 유일한 보장책은 여론의 힘”이라는 벤담의 견해가 얼마나 순진무구했는지는 “일본의 만주 침공과 독일에서 히틀러의 등극은 아비시니아 위기 이전부터 이미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암시했다”는 저자의 판단에도 예측되고 있습니다. 일찍이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정권이 군사력을 증대하고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을 일종의 비도덕적인 문제로 폄하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에서 증대되었던 민족주의적 위기는 아직은 세계가 “평화보다는 자유가 더 필요하다”는 뼈아픈 현실을 드러내었다고 여겨집니다. 즉, 권력의 주체라고 불리거나 이를 뒷받침하는 자유주의적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세력 균형 자체를 도덕적으로 혐오했으면서도 외형적으로는 그것을 답습해 나갔다는 점은 이론과 현실은 엄청난 격차를 보인다는 증명이겠죠. 개인의 자유라는 기본적인 개념과 이를 확대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종의 보기 힘들었던 개혁적 상황이 그러한 이상적인 상태를 고려하더라도 무조건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는 점도 역사의 비참함인지 아니면 그 자유주의 양심의 순진함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종전 이후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승전국들이 독일을 국가 상태로 나둬야 하냐는 불확실한 두려움에도 독일을 일반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개조시킨다는 의지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국제정치학적 지점에서 독일을 영국과 프랑스의 방파제로 만든다는 핵심이 들어가 있었지만, 결국엔 제국주의적 대결에 지나지 않았다는 2차대전의 비판에도 스탈린의 소련을 제외한 승전국은 자유 민주주의가 독일에 필요하다는 공감대에 긍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고 있듯이 시민이 주가 되는 공화주의적 정부들이 평화 구축에 도움이 된다는 이념에 동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선 3장의 1차대전과 관련해서 저자가 일부 역사가들이 오도하고 있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대결 내지는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대결에서 비롯되었다는 오해를 비판하고 “적어도 유럽 대륙에서는 평화가 정당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전쟁을 더 치러야만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는 해석은 꽤 의미심장하기도 합니다. 1차대전을 뭔가 이념대전으로 매몰시키지 않고 국가간의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유주의적 열정과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은 1차대전 전후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과거 E. H. 카가 1차대전 즈음에 흘렀던 전쟁에 대한 낭만주의적 태도와 동경은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가 역사를 통해 대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시기의 각 국가들간의 광적인 군비 경쟁이 최소한의 갈등의 조절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 연유가 아닌가 짐작해 보기도 하는데요. 따라서, 국력 확장의 시기에서 서로간의 이해하는 군축의 필요성과 갈등을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동등한 국가들간의 협력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지난 1차대전의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계몽주의적 담론의 확대와 시민 사회의 자유를 함양시켰던 자유주의 자체의 이념은 충분히 근대의 맥락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무분별한 이상주의에 근거해 윌슨의 국제적 협력주의를 허무하게 끝내게 되었고, 특히 당시에 부상하고 있던 동유럽과 유럽 각지의 민족주의를 백안시한 점은 자유주의의 패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민족주의가 자유주의와 함께 갈 수 있겠는가에 대한 꽤 면밀한 논의가 있어야만 했으나, 이성이 없는 민족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민족주의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이 결국 유럽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크나큰 실책입니다. 물론 1차대전 이후 급격하게 붕괴한 세계 경제 상황에도 대전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혐오스런 전체주의를 잉태했던 것은 자유주의만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한편으로는 얼마나 순진함에 가득차 있었는지는 이것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개인 뿐만 아니라 민족의 생존 문제는 그것의 영향력이 지대할 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고 과연 ‘국가 이성’이라는 것이 실존할 것인가에 대해 뭔가 깊은 고찰이 더 필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보다 이성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객관적인 근대와 자유주의를 바라보고자 하는 한 역사학자의 이 글은 단순한 전쟁사가의 논법이라기 보다는 꽤 노련한 철학자의 연구물로 느껴질 정도로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곧 마이클 하워드의 번역된 다른 글도 찾아보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만큼 시대의 이성과 시민들의 합리성 그리고 자유에 대한 전반적인 양심에 대해 역사적 기록으로 탐구해 볼 수 있는 훌륭한 글이 아니었나 판단해봅니다.




-156페이지의 헨리 모겐도는 헨리 모겐소로 수정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173페이지의 뮌헨 협정과 관련된 문장에서 뮌헨 옆에 ‘협정’의 표기가 없었습니다. 양장본으로 만든 이 책에 이런 자잘한 편집 오류를 수정하지 않은 것은 매번 하는 말이지만 실망스런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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