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성장 - 경제성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데이비드 필링 지음, 조진서 옮김 / 이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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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필링은 지난 1990년 영국 유수의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즈에 입사해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의 각지를 돌며 존경받는 언론인으로 활동을 해 온 바가 있습니다. 특히 그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도쿄 사무 국장을 역임하며, 중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아시아 경제에 큰 관심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현재는 독특한 칼럼니스트로서 환경 문제와 제약 업계와 관련된 글 뿐만 아니라 경제와 투자 및 정치경제를 두루 포함하는 여러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에 대한 정보가 위키 백과에서는 나오지가 않아서 파이낸셜 타임즈에 들어가 기사를 찾아보기도 했는데요. 기사의 성향도 그렇거니와 이 글에서 보이는 논지는 일반적인 경제적 관점과는 거리가 먼 꽤 진보적인 인사로 보였습니다. 이 책은 지난 2018년 “The Growth Declusion” 원제로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2019년 번역 출간이 되었는데요.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서도 이 책이 번역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책의 구성은 총 3부, 14장의 소주제들로 이뤄져 있는데요. 글의 성격을 잠시 논해본다면 일반적인 경제학 개론서가 아니라 일종의 르포 형식의 인물 대화들과 이를 통한 저자의 분석이 섞여 있는 경제에세이 겸 가벼운 논저 정도로 규정할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최근에 출간된 다이앤 코일의 “GDP 사용설명서”와 유사한 취지의 글이기도 합니다. 우선 저자는 그동안 전세계가 “경제 성장에 대한 숭배는 거의 도착증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서두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론 결론 부분인 14장에서 독자들의 오해를 피하고자 “GDP가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들도 있지만 이 책은 아니다. 결점이 많다고는 해도, GDP는 여전히 강력한 측정치이며 유용한 정책도구이다” 라고 원칙적인 실효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학 자체를 숫자로 해석하는 환원주의로 고착화시키고 자신들의 분야를 일종의 ‘전문학’으로서 공고히 한 것은 비판 받을 만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즉, 이것은 모든 경제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채로 경제학 이데올로기에 놓여 있는 수많은 시민들의 삶과 행복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니 오히려 그러한 해석을 일부러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경제학이 스스로 개선되어야 함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학의 메커니즘이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라는 미덕(?)하에 인간의 이기심을 더욱 부추기는 형태로 발전되어 왔으며, 결국 이러한 시스템의 완성이 현재도 진행중이며 또한, 심각한 불평등의 폐해를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고 저자는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의 한계는 저자가 짧게 언급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불평등 문제 및 그 현상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지 못한다는 점과 시민 개개인의 행복을 어떻게 하면 실제적으로 수치화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대안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특히 축소 되고 있는 중산층 시민들은 자신들의 생활 수준이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분노한 상태다” 라고 짧게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경제적 불평등과 중산층의 붕괴를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중국 공산당의 관료인 니우웬유안 등과 같은 여러 관료들과의 대화는 해당 국가의 엘리트가 GDP를 어떤식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독자들이 간접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점은 이 책의 큰 이점이라고 할만합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흥미로운 부분은 (모두가 납득할 만한) 경제 성장에 대해 “첫째로 노동자의 수를 늘리고, 둘째로 그 노동자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일하게 만들어서 생산성을 높이게 하는 것이다”라고 대안 아닌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급여가 절실한 노동자들을 더 고용해 이들이 돈을 받는만큼 강도높은 효율성에 근거해 생산능력을 향상시켜보자는 단순한 제언이겠지만, 이것이 과연 시스템 내부에서 저항없이 수행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먼저 노동자들의 소득 수준을 높여 내수를 향상시키는 식의 경제 논리를 많은 이들이 사회주의라고 공격하고 있는 마당에 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실효성이 어느 정도까지 나올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시민들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결국 권력에 보다 가까운 부유층들과 거대 기업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제한시키고 제도와 법 위에 기업 활동과 영리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긍정적인 규제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 클린턴 행정부가 무력화 시킨 글래스-스티걸 법안과 같은 것이 유사한 사례일겁니다.

물론, 저자가 밝히는대로, “가난한 나라에서는 평등을 우선하는게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인용에는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여기에서 인용되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사례를 보더라도 개도국의 기득권층과 엘리트가 보다 선명한 도덕적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 하며, 제도 전반에 부패가 싹을 틔우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하는 것이 경제 성장의 완성에 선결과제일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획과 방법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실질적으로 실행할 수단을 갖고 있는 자들이 사익에 치중한다면 경제 성장이 무의미한 것입니다. 바로 나이지리아는 원유 수출의 성장세와 더불어 지난 몇년간 수치상으로는 경제가 발전했지만 다수의 국민들이 아직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부정적 예시에 해당합니다. 장 지글러의 언급대로 이러한 악순환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면밀한 교육이 먼저 이뤄져야 하겠지만, 개도국의 수많은 국민들은 아직도 먹고 사는 문제에 사활적 관심을 갖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들 국가에 민주적 관심이 뿌리 내리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끝으로 2008년 미국 뉴욕발 금융위기 이후에 미국 메릴랜드 주의 GDP가 오히려 성장했다는 것을 저자는 인용하고 있는데요. 이 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필링의 이 책에서는 단순히 수치화 된 GDP가 과연 경제 성장의 지표로 건전하게 사용될 만한가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자 역시 자신이 ‘회의주의’에 입각해 경제를 바라보는 것이 지금에선 매우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데요. 이 점은 현재 중국 공산당의 관료들이 양적인 경제 성장이 좌절될 경우 자신들의 권력 기반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측면의 이해와 일맥상통합니다. GDP에 대한 맹신을 거둬들이고 오히려 일목요연한 회의주의로 환상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경제에 대한 저자의 관점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인간이 ‘억제해야 될 욕구’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열망을 들고 있는데요. 이것은 서두에 아포칼립스적인 수사로 나오는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개인들간의 군비 경쟁이 가져오는 결과의 총합이다”와 비슷해 보입니다. 그래서 GDP 통계에서 중간소득 및 평균값의 중간을 공개하자는 저자의 논의가 왜 필요한 지 다소 이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GDP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기후와 환경파괴와도 관련이 있으며, 지금도 수많은 미국인들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여러 상품을 사들이고 있다는 것을 꼬집으며, 이러한 대량 생산 추이에 과연 지구가 견뎌낼 수 있겠느냐에 대해 우리는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측면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기후 협약 탈퇴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될 것으로 여겨야 하겠죠.



- 본문 90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 124 페이지에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European Commission 은 아일랜드 정부에~”이라는 문장에서 조사 ‘은’을 커미션에 맞춰 붙였더군요. 원래 ‘집행위원회는’ 이라고 표기해야 되지 않던가요. 하여튼 국문의 문장 형식이 외래어에 따라가는 건 꽤 이상한 점이라고 봐야 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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