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독식 사회 -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들의 열망과 위선
아난드 기리다라다스 지음, 정인경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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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시건 대학과 영국의 옥스포드를 거쳐 뉴욕 타임스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였던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인도 출신의 부모를 둔 언론인이자, 정치 분석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1981년 생으로 그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꽤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기도 한데요. MSNBC와 아스펜 연구소에서의 이력들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현재는 하버드 대학의 박사과정을 진행중이므로 그의 과거 경력을 감안하더라도 정치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는 한 명의 학자로서 이 글은 꽤 통찰력을 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미국 정치 무대와 관련된 훌륭한 경험들이 앞선 평가의 기반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아주 간단히 말해 현재의 심각한 불평등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점은 칭찬받아야 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이 책은 원제 “Winners Take All”로서 지난 2018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이듬해인 2019년 6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이 책은 총 7장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전체적으로 글 전반은 어떤 학문적 주장이라기 보다는 현재의 체제를 이끌고 있는 정치사회 시스템적인 상황과 이러한 현실에서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일하는 여러 인물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서사적 관점의 글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약간의 르포 형식의 글로 봐도 오해가 아니라고 여겨지는데요. 물론 저의 개인적인 느낌은 그러합니다만 정확한 판단의 몫은 독자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겨두고 싶습니다.

대략적으로 여기에 관통하는 주제는 “수많은 엘리트들 자신의 선한 인식이 명백하게 한계를 갖고 있으며, 시스템 자체를 변혁시키고 개선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라 기존의 시스템 하에서 다른 시민들이 어떻게 하면 순조롭게 적응해 나갈 수 있겠느냐 라는 인식과 행동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상황에서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상황이 민주주의 체제 어떠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 구조상의 맨 상층부에 있는 엘리트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바로 이 책이 제공하고 있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선을 행하기 위해 큰 경제적 희생을 기꺼이 치르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은 많은 엘리트들이 바로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보호받기 위해 그동안 무엇보다 정부를 우회하기 위한 시스템적 기반을 쌓아왔다”는 것과 다름 아닐 텐데요. 일부 이들 가운데 선한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소위 ‘윈윈주의’의라는 명제로 모두가 적당한 이득을 얻는 것의 결과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기득권과 비기득권이 모두 누리는 이득 말이죠. 그런데 외형상 이러한 가치추구는 꽤 설득력이 있긴 하나, 실제적으로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이 책에서는 묘사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악화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또한 그러한 인식을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실효적인 시스템의 개선 없이 즉, 어느 것도 희생하기는 어렵다는 식의 안일주의가 그 원인이 되고 있다고 봐야할 텐데요. 앞선 이들 엘리트들이 이러한 현실적 문제에 있어 스스로가 도덕적 책임감을 인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에 있어서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글에서도 볼 수 없는 통찰력을 저자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대니 로드릭과 같은 경제학자들은 “중산층의 공동화, 포퓰리즘, 민족주의, 외국인 혐오”를 비롯해 사실상 미국이 사유화 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여기에는 자신 스스로가 분명 엘리트이자 기득권층인 도널드 트럼프가 오히려 수많은 기존 엘리트들을 비난하는 신뢰성의 문제와 인종차별주의, 권위주의와 종족적 민주주의로 무장한 근본적인 탈정치의 화신이 미국 정치 무대에 들어섰다는 것 만으로도 이 “포퓰리즘적 분노”가 얼마나 왜곡적 현실을 불러 일으켰는지 책을 통해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선동되어졌다는 말 이상으로 트럼프의 교묘한 언설과 도덕적인 의무감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만연한 타성에도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인을 분리해 낼 수 있는 시민의 변별력을 먼저 언급하기 전에 그동안 미국이 심각한 불평등화 과정에서 시민의 기본적 기반이 위태로운 수준을 벗어나 2008년의 주택 시장 붕괴와 같은 정치와 경제적 기반의 침몰이 바로 트럼프의 탄생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러한 인식을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트럼프의 출현에 일반 시민들의 책임이 아니라 이러한 불평등을 가속화 시킨 엘리트들에게 먼저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밝혀두기 위함입니다. 여기에는 자신들이 피해자인 척 하는 부유층들과 자본주의 시장을 왜곡하는 역외 금융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시민의 의무인 세금의 의무를 회피하는 등의 ‘탈도덕적인 정당화’가 한 몫을 하였습니다. 역외 금융과 같은 문제들을 대중들이 집중하지 못하게 언론들을 움직여 왔다는 저자의 주장은 바로 이러한 근거가 됩니다.

글의 1장에서는 앞선 ‘소위 선한 엘리트들의’ 마켓월드 MarketWorld에 대해 먼저 글의 맥락을 위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마켓월드는 현 상태로부터 이익을 얻으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도 해내는 일종의 신흥 권력 엘리트들의 세계로 이것이 일반적인 리버럴한 엘리트들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부유층 엘리트들의 독서모임’과 같은 얼마나 순진무구한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지 글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글을 통해 드러난 이들의 순진함이 단순한 가치판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기존의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당위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득권층이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희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즉, 엘리트들의 입맛에 맞는 시스템에 대한 적당한 비판을 해오고 있는 지식 소매상들을 다루고 있는 4장은 이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지식 소매상들의 범람은 샹탈 무페가 강조한 지식인의 숭고한 책무인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하는 비판적 지식인의 설 땅을 쉽게 무너뜨리고 있으며, 앞선 지식 소매상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부유층과 기득권의 행보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들이 추구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이미 일반 시민들과 엄청난 재력과 사회적 자원을 가진 부유층 엘리트들이 자신들이 실제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상 이 시스템을 바꾸려하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명백합니다. 겉으로는 어떤 대안을 표명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떠한 대안도 바라지 않는 이들의 도덕적 위선은 사실상 지그문트 바우만이 강조한 시민들이 품위있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문제제기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이러한 논리적 서술 가운데 6장은 많은 부유층이 자신들의 관대함이 기반이 된 기부 행위로 시급한 사회적 정의로 대체하려고 한다는 것을 의심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카네기와 포드는 앞선 관점으로 기부를 활용했으며, 노조를 카르텔이라 모함했던 것은 돈으로 쌓은 권력을 선민주의에 이용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제가 몇번이나 다른 책들에서 반복해 왔지만, 탈자본주의로의 이행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장 자본주의에 마땅한 정치적 기본 가치를 다시 부활시키자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는데요. 마찬가지로 “엘리트들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그 자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저자의 평가 역시 저의 인식과 유사하다고 여겨집니다. 시장에 면밀한 정치적 감시를 회복하자는 많은 정치학자들의 주장을 공염불로 만들어내는 엘리트들과 지식 소매상들의 결합은 “제도와 법 위에 시장 자본주의가 서야 한다”는 사활적 물음에 반하는 것으로도 봐야겠죠. 마찬가지로 책의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7장에서 인용된 대니 로드릭의 “세계 경제가 직면한 대다수, 그것이 무역 규제이든, 금융 불안정성이든, 아니면 적절한 발전의 부재와 세계적 빈곤을 비롯한 다른 어떤 문제이든 간에, 이 수많은 문제들은 사실 우리의 지역 정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 심각성은 훨씬 더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라는 제언은 그 의미하는 바가 실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과거 다소 진정성을 갖고 있던 힐러리 클린턴과 같은 리벌럴이 골드만삭스와 돈으로 연계 되면서 시민에게 그 신뢰를 잃게 되었다는 대니 로드릭의 다른 관점도 설득력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끝으로 우리가 한 사회의 공유된 민주적인 제도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도와야 하고, 이것의 맥락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평등의 기반에서 이뤄진다는 점은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물론 민주주의를 외길로 몬 자유시장주의가 전세계 사람들을 빈곤에서 구해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이 시장 자유가 만연하여 발생하는 문제들을 우리가 양가적 측면으로 눈을 감고 외면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떤 식으로 붕괴하게 될지 예견할 수 있을겁니다. 이것은 단순한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대중에게 견디는 자세만을 알리려고 하는” 노골적인 의도와 건전한 비판의 눈을 끈으로 가리는 것과 같은 조작이 우리 삶의 피폐화를 초래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얼마나 우리가 더 노력을 해야하느냐에 대한 볼멘 소리가 이어질 것입니다만 요즘과 같은 엘리트 지배체제가 얼마나 타성에 젖어 있었는지 이 지점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모두가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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