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 세습 - 불평등에 공모한 나를 고발한다
매튜 스튜어트 지음, 이승연 옮김, 이상헌 감수 / 이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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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스턴 출신의 철학자이자 저술가로 알려져 있는 매튜 스튜어트는 과거 프린스턴을 거쳐 옥스포드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고백하길, 풍족한 중산층의 가정에서 자라나 다른 사람들보다 부족함 없는 삶의 길을 걸었다고 먼저 책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최근에 번역 출간된 리처드 리브스의 ‘20 vs 80의 사회’에서 독자들에게 전한 고백과도 일맥상통한데요. 어찌됐든 이유와 변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진실성으로도 여겨집니다. 책의 초입에서도 짧게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스튜어트의 이 글은 미국의 시사 월간지 애틀란틱에 실린 글을 따로 번역 출간한 것입니다. 원제는 “The 9.9 Percent in the New American Aristocracy”로 국내에는 최근인 2019년 10월에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우선 저자인 자신을 포함해 책에 함께 등장하고 있는 미국의 9.9 퍼센트 계층에 대해 소위 능력자 계층 meritocratic class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리브스나 마틴 길렌스와는 달리 일반적인 중산층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고 능력자 계층이라는 조어를 글에 담고 있는데요. 이것은 의사와 변호사들을 포함한 고학력의 능력있는 화이트 칼라를 이르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특히, 스튜어트는 “우리는 우리의 성공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단순히 능력이 모자란 탓에 우리 계층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을 덧붙입니다. 좀 더 달리 표현하자면 마찬가지로 어느 부모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결정되고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그 보편적 권리를 향유할 정당성이 있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조세 제도에서 이들(능력자 계층)에 대한 과도한 혜택 등과 같은 불평등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 단순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동안 여러 사회학자들이 분석하고 연구한 사회적 계급의 분화와 반대의 고착화와 같은 부분에 어떠한 기준을 놓고 단정지을 생각은 없습니다만 초기 자유주의 시대의 많은 자유주의자들과 지식인들이 자본주의 자체가 건전한 계급 이동을 용인하고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 자체가 자본주의 사상의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 최대의 불평등 국가인 미국과 같은 사례에서 저자 역시 동의하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선명한 계급 이동성’이 차츰 무너지고 있으며, 이러한 복잡한 과정의 실체가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하지만 이 선상에 놓인 현상 자체는 단지 불평등의 심화가 가시화 된 것 뿐이라는 저자의 통찰은 새겨들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 소위 능력자 계층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는 침묵을 지키며 집단적으로 불평등을 선택했다”는 자기 고백입니다. 사실상 사회 구성원으로서 각 개인들의 능력차는 어쩌면 개성과도 같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능력차에 따른 급여 차이와 직장 선택의 문제는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저자가 다소 직접적으로 밝히는 바와 같이, “미국에서 대졸과 고졸의 임금차이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나는 것은 대졸과 고졸이 할 수 있는 일이 애초에 다르기 때문”이라고 언급합니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짧게 첨언을 한다면, 최상위 대학 출신자들을 우대하는 일반적인 기업 정책들이 과도화되고 대학 이후의 사회적 재교육이 대체로 전무하거나 접근이 어려운 것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든지 정부의 역할 분담에서 사회 현실이나 경제적 조건 등 여러 요인들을 차치하더라도 일차적으로는 책임이 있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특히 저자도 밝히고 있거니와 “이런 전문직종이 포함된 능력자 계층들이 속한 직업 단체들이 결사의 권리를 이용해 급여 획득과 사회 영향력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그것을 공익적 목적이라 이해하고 그렇지 않은 다수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생존과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결사는 그 반대로 취급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 글에서는 “맹비난 받는 생산계층”이라는 표현으로 노동자 계층에 대한 도넘는 미국 내의 비난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참으로 고착화 된 계급 폐쇄성과 더불어 경제적 불평등이 어떤 식으로 사회를 분열에 이르게 하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약간 결론에 어울리는 말이긴 합니다만 경제적 불평등과 수많은 노동자들의 현격한 착취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것 자체가 건전한 민주주의 시스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대물림 하려는 의도를 단순히 개인적 호불호 정도로 넘어가지 말고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의 개선이 시급히 필요한 것도 크게 보면 우리의 정치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미국의 상황은 우리와는 적잖은 차이가 있을 겁니다. 여러 수치로 봐도 우리의 불평등 상황은 외연적으로는 심하게 보이지 않기도 한데요. 다만, 미국은 조세불평등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고 “현재 미국 GDP 중 12분의 1은 금융 부문에서 발생한다”는 저자의 자료를 보더라도 금융 부문에 대한 조세 감시와 재설정이 있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최종적으로 이러한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일들이 지속되다 보면, “서서히 경제의 목을 조르며, 민주주의를 말살하게 된다”는 예상이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최근에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정치 전반이 반지성주의와 비이성에 휩싸여 정치 자체가 건전한 미래를 보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1에서 부터 10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앞서 언급한대로 이 능력자 계층들이 스스로 불평등 문제에 침묵하고 이러한 상황을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이익의 보장으로 여겼다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정부나 공공부문이 모든 사회 문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미국인들이 스스로 ‘아메리칸 드림’을 소중히 여긴다면 단순히 푸드 스탬프를 능력 밖의 사람들에게 남발할 것이 아니라 과도한 일부 계층에 대한 경제적이고 지위 강화적인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여기서 거듭 중요한 것은 정치적 불신과 사회 분열에 놓여 있는 이 상황의 요인들을 각각 따로 놓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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