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 도둑 정치, 거짓 위기, 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유강은 옮김 / 부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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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미국 출신의 역사학자들 중 매우 특별한 관심사를 갖고 있는 티모시 스나이더는 중부 및 동부 유럽 역사의 권위자이자 특히 2차대전 당시 전체주의에 의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던 바가 있습니다. 그는 미국 유수의 대학인 브라운 대학과 영국 옥스포드를 거쳐 런던 정경대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정치철학의 주제를 포함한 여러 주저들을 출간한 바가 있습니다. 또한 이와 관련한 여러 국제 학술상들도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은 작년인 2018년 처음 출간되어 국내에는 아주 최근이라 볼 수 있는 2019년 9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의 주요한 논점은 서방의 정치에 무차별적으로 개입한 러시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더불어 익명의 누군가들로부터 발생하는 수많은 가짜 뉴스들과 진실인 척 현실을 오도하는 온라인 상의 주장들이 몰고온 현실 정치의 여파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크게 풀어보면, 과거 이반 일린이라는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이론적 외관을 가진 지식인의 사상을 기초로 ‘대속자’와 ‘영원의 정치학’이라는 개념으로 현재 ‘푸틴 치하에 있는 러시아 및 러시아 정치’를 이론적으로 설명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저는 책에 삽입된 저자의 특별한 한 구절에 괜히 씁쓸한 웃음을 짓고 있는데요. 그것은 “푸틴 치하에 있는 러시아”라는 설명입니다. 저자인 스나이더의 입을 통해 현재 러시아가 최종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세계의 중요한 축들인 미국 정치의 교란과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를 “마더 러시아”의 가장 시급한 이익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익 경로 안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교묘하지만 매우 직접적인 전쟁과 유럽 각지의 극우 정치인들과의 연계를 여러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일관된 논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러시아의 노골적인 국제적 정치행위 가운데에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현실 정치가 또 놓여 있기도 합니다. 이 책 6장에서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경고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과두제’에 대해 경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수많은 유권자들의 표심과 정치 배경을 분석해 자신들의 이익에 규합하는 일들을 벌이고 있는 디지털 과두제 (digital oligarchy)라는 꽤 신선한 용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러시아는 수많은 해커들과 사이버 전사들을 동원해 이미 영국에서 수많은 영국인들에게 유럽 연합 탈퇴가 그들에게 이득이라는 자기 암시의 영향을 끼친 수많은 봇을 투입해 성공한 바가 있으며, 미국에서는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지난 2016년 11월 대통령 선거 직전, 페이스 북이 가짜 계정 580만 개를 폐쇄한 일이 있었습니다. 즉, 러시아 발로 꽤 신빙성 있게 의심되는 수많은 봇들이 악성적 가짜 뉴스를 만들어 수많은 유권자들에게 허위적 판단을 이끌게 하고 그런 식으로 정치화 시킨 것은 꽤 소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현재 세계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정부의 그림자 안에 수많은 해커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마냥 부인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더욱이 현재 “푸틴 치하에 있는 러시아”는 무늬만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실상 전제 독재 정치라고 규정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어서 양자 사이에 이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객관적이기도 합니다.

이 책, 4장에서는 러시아의 복합적인 정치적 속내가 녹아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개입이 사악한 측면에서 얼마나 왜곡되고 날조된 가짜 뉴스들을 사용해 왔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의한 소행이라고 주장한 지난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 사건과 우크라이나가 무고한 러시아인들을 학살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스스로가 러시아 영토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고 하는 등의 수많은 가짜 뉴스들을 살포해 유럽의 일부 언론들이 이를 수용적으로 인용하는 등의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또한 여기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매우 소극적인 대처로 말미암아 전세계 국가들에게 인정받는 주권국인 우크라이나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러시아의 직간접적인 작전과 군사 개입에 무너졌던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존재했던 대량의 핵무기들을 러시아로 귀환시키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보증한 1994년 부다페스트 메모랜덤이 어떻게 휴지 조각으로 전락했는지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약간의 논외로 북한의 김정은이 리비아의 카다피 축출보다도 실제로 핵무기를 잠시나마 보유하고 있던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반출하고 나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자신에게 교훈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보기도 했습니다. 세계의 두 강대국이 보장한 이 안보 메모가 우크라이나에게 어떻게 작용되었는지 고민해 보는 것도 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차대전 당시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이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 의한 침략을 차단하고 전체주의 위협에 대한 대응의 의지를 보인 이후 현재 푸틴 치하의 러시아가 보이고 있는 ‘홀로코스트는 유대인들 때문에 초래되었다’, ‘전세계에서 러시아를 터무니 없이 비난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음모다’라고 러시아 정계와 현지 언론에서 주장을 하는 것은 정치와 언론이 시민들의 정상적인 정치적 견제와 활발한 토론이 전무하면 발생할 수 있는 결과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이러한 온라인과 네트워크 상의 수많은 시민들의 정치 발언과 의견 교환이 민주주의에 결정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겼으나, 과거 민주주의와 시민에 대한 존 듀이의 통찰력이라 볼 수 있는 “제대로 된 사회교육과 정치 인식이 전무한 시민들이 인식론적 분별력을 발휘해 과연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스나이더 역시 현재 러시아의 야욕과 관련된 분량으로 논의를 집중한 나머지 앞으로 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이라 볼 수 있는 과두제에 대한 논의를 미국의 예를 들어 사회적 불평등과 이를 교묘히 용인하게 만드는 거대한 부 소유자들과 이들과 연계한 여러 계층들의 연합을 어느 정도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반대로 이러한 불평등이 통치 권력의 이득으로 직접 작용되고 있는 러시아와는 사뭇 상이점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스나이더는 이를 “미국 엘리트들의 절멸”이라는 표현으로 러시아가 생각하는 과두제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는데요. 푸틴에 충성하는 과두제와 미국 부유층들이 원하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회경제적 제도화와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양자의 현격한 차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러시아는 꽤 오랫동안 푸틴 치하로 남을 것 같으며, 이들 러시아와 중국을 명백하게 ‘민주주의의 그림자를 갖고 있는 국가’가 아니라 ‘전제 독재 국가’로 이해하는 것이 정치학적인 논법에 합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도널드 트럼프와 러시아와의 커넥션과 관련된 트럼프 타워에서의 러시아인들의 돈세탁과 트럼프와 관련된 주변 인물에 대한 러시아와의 연계는 실로 너무 엄청나서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티모시 스나이더가 어쩌면 양국 정부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했는데요. 모쪼록 저명있는 역사학자가 괜한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전체주의를 유지시킨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뚜렷한 잔학 행위가 아니라, 법치를 파괴하고 국민들을 그 파괴에 끌어들이는 사생활과 공적 생활 구분의 잠식이었다”





“글 초입에 저자인 스나이더와 제가 존경해 마지 않는 토니 주트와의 사소하지 않은 일화를 담고 있는데요. 당시 심각한 병마에 싸우면서도 우리를 위해 사력을 다바쳐 글을 남긴 한 역사학자의 경건한 양심에 저는 절로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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