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새판짜기 - 세계화 역설과 민주적 대안
대니 로드릭 지음, 고빛샘.구세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세계 경제학계에서 꽤 이단아로 지칭되는 대니 로드릭은 하버드대를 거쳐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각국의 공공 정책을 비롯한 세계 거버넌스 연구에도 관심을 갖은 경제학자입니다. 그에 관한 다른 수식어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국제정치학자라는 다른 일면인데요. 물론 오늘날에는 국제정치학이 세계 경제학과 많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 양자간의 학문적 경계를 일부러 나눠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없는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그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로 일하는 것도 앞선 부분과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맨 처음에 제가 학계의 이단아라고 지칭한 것에는 그가 터키 출신의 일반 주류 경제학과 다른 범위의 학자이기 때문인데요. 더욱이 요즘에는 그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와 비교되기까지 합니다. 그런 연유로 경제학계에서 장 교수와 대니 로드릭은 서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얼마전에 서평을 썼던 ‘그래도 경제학이다’에 이어 두번째로 쓰게 되는 글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Globalization Paradox’로 지난 2011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도 같은 해에 번역 출판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된 상태입니다. 출판사의 사정이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왜 절판되었는지 아쉽기도 한데요. 곧 개정판 형식으로 새로운 판본이 다시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보겠습니다.

얼마전에 폴 크루그먼도 짧게 언급했듯이, 현재 세계는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의 명백한 현실적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 (대니 로드릭의 이 책에 씌여진 단어대로)은 간단히 ‘과다 세계화’ 혹은 ‘과도한 세계화’ 등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보다 더 예전에 경제학자 토머스 프리드먼은 “소위 통합된 세계가 경제 성장에 더 이롭고 확실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프리드먼은 맹렬한 신자유주의자이기도 한데요. 이 발언과 관련해서도 대니 로드릭은 급격히 통합된 세계가 세계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화의 명과 암에 대해서는 거의 명확한 것이고 자본의 거침없는 이동성을 제외한다면 다수의 노동자들을 포함한 시민들에게 몇가지 고통을 안겨준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사실 저의 호기심 반 궁금증 반 정도 되는 의문이기도 합니다만 과연 경제학이 인류의 복지 증진과 삶의 향상에 어떠한 태도를 갖고 있느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이 점을 오로지 경제학의 기준으로 사회를 재구성 할 수 있느냐와 여기에 정치를 제외하고 위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저는 꽤 많이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니 로드릭의 이 책은 저의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일종의 쓸 만한 자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세계는 지난 2007년 뉴욕 발 세계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담론이 철회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철회되기는 커녕 이 신자유주의 이념이 변조 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시장의 붕괴를 위해 시도된 이 정부의 개입이 마땅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심하게 말하면 안면몰수하는 발언을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장의 공적인 위치를 위해서 그 붕괴를 수수방관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어찌됐든 그런 ‘시장의 도덕적 해이’를 끄집어 냈던 누리엘 루비니 교수의 지적은 하나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총 12장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 430여페이지의 분량은 전체적으로 단일한 세계 경제사를 수렴한 글이면서 동시에 초기에 형성된 자유무역 이념과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 경제와 신자유주의를 거쳐 극심한 폐해를 안기고 있는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을 넘어 최종적으로 건전한 세계화를 향한 결론에 이르러 글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세계는 “민주주의, 국민국가, 세계화라는 세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초기 경제학에서 애덤 스미스가 정부를 자의반 타의반 야경 국가로 해석한 이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과 무역 헤게모니에 이르는 자유 시장 경제의 기조가 세계 경제의 큰 틀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우는 흐름은 브레턴우즈체제 이후 GATT와 WTO체제에 이르러 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기조를 세계 자유 무역의 방향타로 이어져 왔는데요. 여기에는 세계 금융의 자유화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골자로 한 ‘새로운 자본주의’가 이식되고, 금융 자유화 및 자유 무역이 몇십년간 견제와 비판을 당하지 않은 채 우리의 민주주의를 경제 논리로 소급해 온 것이 사실로 드러나기에 이릅니다. 저자인 대니 로드릭은 이러한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정체를 다시 ‘민주적 관행’을 포함한 국민국가가 민주정치의 주요한 처소로 다시 회귀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중요한 문제 해결의 인식적 틀이며, 국민국가의 민주주의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신자유주의를 선도해 온 앞선 금융 세계화는 “자유 무역과 기술 진보의 비교는 우리를 현혹시킬 수 있다”는 주장처럼 최근에 등장한 최신의 금융 기법으로 무장한 경제 엘리트들이 과거 많은 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기술 관료들이 대두하며, 정치를 밀실정치 내지는 정실정치로 왜곡시킬 가능성에 경고했던 것처럼 이 새로운 엘리트들이 결국 도덕적 해이로 결론남에 따라 국가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해를 끼친바가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 미국 정치는 과도한 금권 정치에 놓여 있는 것이며, 특히 이 글의 5장이 이를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금융 시장이 오작동 할 때’라는 소제목이 절묘한 매치라고 드는 이유라고 여겨집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대니 로드릭은 민주적 거버넌스에 입각해 세계 금융 체제에 대한 민주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다만, 현물 경제와 관련하여 수출 지향적 경제와 자본 자유화 및 금융 자유화는 별개로 이해해야하며, 맹목적으로 수출 지향적 경제로 말하여지는 각국의 활발한 무역 활동이 이 금융 자유화를 일정 부분 촉진시켜 왔다는 것에는 진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로드릭은 이 글에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발전과 관련된 조언에 대해서 일찍이 알렉산더 해밀턴이 파악했던 바와 같이 “정부 지원 없이 현재 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다는 믿음은 잘못되었다”는 문장과 더불어 1960년대 경제 성장의 길에 들어섰던 동아시아의 한국과 대만의 정부가 주도한 수출 보조금과 80년대 이후에서나 유치 산업을 위해 시장 개방을 늦췄던 것과 같이 마냥 자유무역에 기반한 개방 경제가 무조건 경제 성장을 답보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사례에 이어지는 것으로 최근 중국의 경제 성장과 마찬가지로 수출 주도 기반의 최소한의 제도적 및 현실적 안전장치가 있어야만 한다고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한국 정부와 대만 정부가 일관된 목표를 갖고 정부의 개입이 있었으나, 이것은 경제 성장의 알파와 오메가의 전부가 아니라 당시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 체제하의 자유 무역 기조가 일정 부분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혜택이 되어 왔던 것은 부정해선 안됩니다. 반대로 갓 식민지에서 독립한 아프리카 대륙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국가 경제 발전에 실질적으로 관심을 두기 보다 오로지 권력 유지에 신경 썼던 연유로 로드릭이 언급하는 모리셔스의 예를 제외한다면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이 근 오십 여년간의 실패에 놓여 있는 것은 한국과 대만과 극명하게 차이나는 부분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노골적인 금융 자유화 및 자본의 이동에 대해서 ‘각국의 법인세 제도를 존중하고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무역체제와 더불어 국제 금융 체제는 국제 경제 활성화보다 각국의 경제 상황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신념이 더 중요하다’고 재차 주장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무역자유화가 국가들의 자본 통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듯이 시장 전반의 합리적 기대가 완벽하리라는 것을 맹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건전한 세계화’의 전제 조건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며, 원천적으로 인간이 시장과 자본의 귀속물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대니 로드릭이 말하는 ‘신세계화의 논리’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1. 시장은 거버넌스 체제에 깊이 착근되어야 한다
2. 민주적 거버넌스와 정치 공동체는 주로 국민국가 내에 조직되며, 가까운 미래에는 그 상태에 머물 것이다
3. 번영으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은 없다
4. 각 나라는 저마다 자신의 사회적 합의, 규제, 제도를 보호할 권리가 있다
5. 어느 나라든 자국의 제도를 다른 나라에 강요할 권리는 없다
6. 국제 경제 협정의 목적은 각국의 다양한 제도 간의 접촉면을 조절하는 교통 법규를 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7. 비민주국가들은 국제 경제 질서에서 민주 국가들과 동일한 권리와 특권을 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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