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소로스는 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까 - 세계 금융을 지배하는 수퍼리치들의 두 얼굴
니콜라 귀요 지음, 김태수 옮김 / 마티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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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귀요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위치한 유럽 대학 연구소 (European University Institute : EUI)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 받은 뒤에 미국 뉴욕대학과 컬럼비아대학 등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학자입니다. 앞선 유럽 대학 연구소라는 명칭이 국문으로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위키백과에 의하면 유럽 연합 회원국들이 유럽의 관점에서 사회 과학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연구 기관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사회 과학과 국제 관계학, 정치 이론, 민주주의 및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Financiers, philanthropes : Sociologie de Wall Street”로 지난 2006년 프랑스어로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2013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번역된 책 제목과 관련하여 먼저 밝히고 싶은 점은 전체적인 내용을 고려했을 때, 제목이 이것과 아주 동떨어졌다고 볼 수는 없으나 상당히 자극적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나 번역가의 판단일 수 있겠으나 대충 이 정도에서 논하는 것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서문과 결론을 포함해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글은 전체적인 논증에 있어서 꽤 설득적이고 또한 객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저자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융 자본주의와 관련한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 필요하긴 하지만 경제 관련 글임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은 크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번역도 매끄러운 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책의 전체적인 맥락은 산업 자본주의가 대공황 시기를 거쳐 은행의 역할이 커지고 금융과 관련된 투자 기법들이 만들어지면서 어떻게 금융 자본주의가 미국의 자본주의 이행과정에서 대두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과정 가운데 저자의 표현대로 ‘도적남작’이라 불리우는 기업사냥꾼들과 금융 엘리트들이 “평화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등의 진보적인 이데올로기적 입장 뒤에 숨어있는 이들 담론의 본질은 지배적 규범에서 일탈한 경제 행위를 정당화하는 전략”이라는 신흥 부자들의 ‘자선사업’ 행위를 다소 회의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즉, 이것은 기존의 기득권과 산업 엘리트들에 반해 계층적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익으로 고도화 된 금융기법을 다루는 이들을 ‘사기’와 같은 단어로 이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꽤 최근에 떠오른 이 기업 사냥꾼들이 자신들의 부의 정당성 내지는 현재의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일종의 희박한 근거라도 마련하고자 ‘조지 소로스’를 필두로 여러 금융인들의 이력과 부침을 상세히 열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기록되고 있는 적지 않은 금융인들의 일면은 기존의 여러 엘리트 계층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혹은 자신들의 부의 창출이 자본주의 내에서의 일정 지분을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 또한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2장부터 4장까지의 자본 축적의 새로운 형태라고 볼 수 있는 금융인들과 공격적 기업 합병, 몇몇 유명한 금융인 (혹은 금융 투기꾼)의 기법 들이 기존의 자본주의에서 어떤 파급을 갖고 있는지에 논하고 이러한 전문직업화 논리가 “일종의 정당화 전략으로서, 존중받는 ‘프로’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 유용”하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제목에서 언급된 조지 소로스는 지난 1992년 영국의 파운드화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막대한 환율 차익을 얻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자신은 수차례 “고삐풀린 금융 시장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위협을 경고”했는데요. 이러한 금융 시장 내지는 환율 투기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자가 오히려 금융 시장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2008년 뉴욕발 금융 위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CDS를 비롯한 채권의 무분별한 증권화와 이를 막대한 돈을 들여 사고 파는 행위가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런 와중에도 아무런 도덕적 가책 없이 자신들의 호주머니에 돈을 넣는데 그치지 않고, 미국 납세자들의 돈으로 투입한 공적 자금에도 거액의 은퇴자금을 챙기는 행위가 법적으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을 역시 목도한 바가 있습니다. 더욱이 부시 행정부 이후에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가 단 한명도 이들을 기소하지 않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기존의 전통적인 귀족 집안으로 대표되는 엘리트들이 1960년대 이전의 그나마 품위있는 은행 경영과 기업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다면 이후 아이비 리그 출신으로 MBA를 취득한 젊은 금융인들이 월 스트리트에 진출해 경쟁적으로 금융 기법을 만들어 이익을 창출한 것 이면에는 “애초에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기 위해, 그리고 모든 규제를 사전에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구축된 위선적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 담론은 이제 인수합병과 증권시장에 대한 국가의 감독과 규제를 강화하는 데 명분을 제공”한 이중적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과거 레이건 행정부가 케네디-존슨 시대에 성립된 대규모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폐지하면서 시장의 권한과 자원의 통제를 기업에 위임했으며,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구분을 둔 글래스-스티걸 법이 사실상 무력화 되면서 대량의 도덕적 해이의 원인”이 된 바가 있습니다. 저는 책을 마지막까지 일독하고 나서 저자가 이러한 금융 자본주의의 등장과 팽창이 전통적인 산업 자본주의의 무대가 축소되는 것이 아마도 자본주의 자체에 있어서 결코 긍정적인 상황은 아님을 우리에게 인식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러한 신흥 졸부들의 자선 사업이라는 “윤리적 세탁”을 비판하고 있는 이면에는 이러한 관점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해 보였습니다.

자신이 우위에 선 시장경제 시스템 하에서 막대한 돈을 쌓고 있는 이들이 시민들이 이룩한 사회와 전통적인 국가의 역할에 대해 자신들의 자선 사업이 국가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 대신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한정적으로 미국 경제안에서는 이러한 자선 사업이 세금 감면의 혜택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자본이 또다른 막대한 자본을 뽑아내는 현재의 시스템을 이 거대 부자들이 기피할 이유는 전혀 없으며, 오로지 자신들의 부의 유지와 권리 확보에 혈안인 것은 거의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저는 여기에서 단순히 돈이 많은 자들이 사회적 자원에 손을 뻗치는 것은 열번 양보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 엘리트들과 연계하여 사실상 민주주의를 무력화 시키는 과두제를 지향하는 것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부자들이 자신의 부 이상으로 다른 권리를 요구하는 것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의 수단이 마련되어야 하며, 전세계에 만연한 불평등의 상황은 이들이 권리 만큼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밝히지만 우리의 자본주의는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그동안 시장과 자본에 최대한의 자율을 제공했던 것 만큼 앞으로는 면밀한 정치적 감시와 민주적 수단의 투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알다시피 자본주의는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강한 요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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