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 - 폭주하는 세계화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 지음, 정연우 옮김 / 나눔의집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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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사회인류학 교수이자, 유럽 사회 인류학자 협회의 협회장을 역임한 유럽 내의 저명한 인류학자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는 현재 세계가 신자유주의적 과잉 시대임을 자각하고 이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의 결말인 8장에서 현재의 문제를 단순히 관념적 비판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관점을 갖고 있는데요. 충분히 공감할 만한 입장이기도 합니다. 또한, 책 곳곳에 나오고 있는 이중구속과 스케일의 충돌이라는 용어는 그의 논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유럽연구위원회 (ERC)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연구 프로젝트 ‘과열 : 세계화의 세 가지 위기’의 서론이자 개요이다”라는 취지의 출판 목적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아마도 이 책이 현시대의 문제 제기라는 측면에서 뒤이어 나올 후속 저작들의 일종의 방향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원제는 “Overheat : An Anthropology of Accelerated Change”로 지난 2016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최근인 올 2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책의 1장에서는 의미심장한 제목과 일맥상통한 의미인 현재의 과열에 대해 저자는 “자본주의는 19세기 이후부터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오늘날 화폐 경제 없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 공동체는 남아있지 않다고 해도 좋다”고 분석하며, 이러한 시장경제적우위를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가 인간의 삶을 좌우할 여러 부분에서 파급력을 끼치고 있고 이것의 여파가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이 위기는 크게 에너지 문제와 난민 문제 및 도시의 인구 집중에 따른 불평등적인 인간의 파편화와 환경 오염의 심각한 원인인 쓰레기 문제들과 소셜네트워크를 비롯한 정보 과잉등의 현 상황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즉, 과잉된 세계의 문제 제기와 함께 그로인한 부정적 파급효과를 7장에 걸쳐서 논하고 결론에 이르는 8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런 과열된 세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저자의 핵심 과제로 글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과거 나폴레옹 전쟁이 마무리 되는 시점이었던 1815년보다 현재의 전세계 인구는 대략 7배 정도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여왔습니다. 더불어 자원의 개발과 시장의 확대 및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여기에 자본주의가 인간의 노동력을 통한 더 많은 상품 생산에 집중해 왔습니다. 소위 인간의 합리적 이기심이라는 일종의 유일무이한 가치로 인해 시장이 계몽주의 시대 이후 고취시켜 왔던 인간의 삶의 증대에 대해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커져왔습니다. 물론 인간이 합리적 이기심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허구에 지나지 않았고 각각의 경제적 행위자들의 이기심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법에 의지해야될 만큼 자본주의 이행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냉전의 시기에서 1980년대 대처와 레이건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정치가 마땅히 맡아야 되는 부분에 경제가 합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믿음과 더 나아가서는 시장의 견제를 위한 정치적 요소를 전부 제거하기에 이릅니다. 하이에크 조차 시장의 자율적 합리성에 무조건적으로 기대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고, 칼 폴라니는 “시장 원리 자체를 반대하기 보다는 마땅히 사회적 원칙이 적용되어야만 하는 사회적 영역에까지 시장 원리가 확산되는 것을 반대한다”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의 8장에서 저자는 “경제성장과 생태적 지속가능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중 구속은 현 세계의 이중구속 (혹은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생태적 지속 가능성은 단순한 환경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유지하고 세대를 이어가기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경제 성장의 요구와 생태적 환경의 지속은 그야말로 이중구속에 해당한다고 저자는 여러번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로 비롯된 전세계의 규격화 내지는 초접근화의 세계화는 사실상 “구조적 모순과 지역적 갈등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저자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결국 고도화 된 자본주의의 이행과 이를 보장하기 위한 시장의 배타적 독립은 전 지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불러일으켰고, 이로 인한 문제의 표출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수많은 난민들의 발생이나 남반구와 북반구의 외형적 불평등이라 볼 수 있는데 에너지 불평등을 비롯한 북반구 선진 기업들의 폭발적인 아웃소싱과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남반구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와 보다 나은 삶의 기회에 대한 박탈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 지역의 거대하고 긴 슬럼화 지역에서의 폐가전을 이용해 하루를 벌어먹고 살고 있는 가나 소년들의 실례는 이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단순한 빈곤층 내지는 저개발국의 국민이라는 담론을 넘어 유럽이나 북반구의 선진국에게도 “안정적인 고용과 즉각적인 생존 사이에 존재하는 이 유동적인 회색지대를 설명하는 데에는 새롭게 떠오른 개념인 프레카리아트가 특히 유용하다”고 저자는 가이 스탠딩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비인간화적 이행은 저개발 국가나 선진국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시장의 우위라는 한길만을 강요해 왔습니다.

또한, 이 신자유주의의 고도화는 난민 문제에 있어 거의 모든 이민자가 환영받지 못하게 되는 일종의 경계선주의를 만들었고, 이점은 큰 틀에서 “현대 국가에서 행해지는 전형적인 배제의 형태”라 불릴만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시리아를 비롯한 난민의 발생이 전쟁과 분쟁으로 인한 명백한 원인이 존재하며 이런 전쟁과 무력 갈등 상황에서 이익을 얻는 기업과 국가들이 존재하고, 결론적으로 이러한 정치적 설계에 무고한 시민들이 난민화되었고 여기에서 한가지 명백한 점은 이들을 무슬림이라는 지칭으로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난민 발생의 일차적인 문제는 자크 랑시에르도 동의했듯이 이러한 정치외교적 배경이 먼저 박혀 있는 것입니다. 좀 더 확장된 틀에서는 “보편적 인권과 신자유주의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경제적 스케일로 재단해 등급을 나누는 등의 이중구속”이며, 이를 더 요약해 내자면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은 정치적 이슈를 경제적 이슈나 경영의 문제로 환원시킴으로써 근본적 가치, 사회 정의 장기적 관점에서 인류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한 조건들에 대한 논쟁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선 평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완곡한 어법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현재 세계에서 진보 좌파에게 거의 일임되어 있는 전지구적 생태 문제와 기후 변화 및 환경 오염은 그렇잖아도 현실 정치에서 궤멸되어 있는 이들에게 힘든 과제일 것입니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타협하지 않는 개발론자들, 이를 옹호하는 경제주의자들과 영합하여 현재의 지구적 위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 여파가 적을수도 있겠으나 후세에게는 그야말로 재앙으로 직면할 수도 있는 문제일텐데요. 여기에는 이와 관련하여 태평양에 존재하는 미국 텍사스주 크기의 거대 플라스틱 덩어리들과 육지에 터를 잡고 있는 쓰레기 무덤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하등 쓸모가 없는 쓰레기 더미에서 하루를 연명해 살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야 말로 딜레마이자 이중구속이며, 이 글의 결론에 이르러 느끼게 되는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이를 더 부추기는 시장경제의 왜곡이 과연 개선 가능할 수준 정도의 논의가 이뤄질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 글의 결론인 8장에서 저자는 “시민 모두가 동의할 만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해결책을 강구하기에 앞서 현실 인식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수단 하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렇게 변화하는 세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 칸트가 제시했던 세계시민주의적 관점으로까지 확대시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점을 진정한 해결책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우리 모두가 현실 인식의 괴리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최소한의 기대는 가져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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