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 브렉시트와 EU 권력의 재편성
폴 레버 지음, 이영래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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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레버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퀸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영국 외교부에 들어가 핀란드 헬싱키의 대사관 근무를 시작으로 EEC 및 UN근무를 거쳐 1997년부터 약 6년간 주 독일 영국 대사를 역임한 전문 외교관입니다. 그는 독일과 EU체제에 대한 깊이 있는 경험과 연구를 해왔던 것으로 유명한데요. 특히 과거와 현재의 유력한 여러 독일 정치인들과 친분을 맺었고 더불어 영국 내의 여러 언론사에 독일 정치와 외교와 관련된 인터뷰와 조언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바로 그런 EU내의 독일의 포괄적 영향력을 분석한 그의 이 책은 “Berlin Rules : Europe and the Germany Way”로 지난 2017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올해 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먼저 본격적으로 이 책에 대한 글을 쓰기에 앞서 번역에 대해 칭찬을 하고 싶은데요. 꽤 훌륭한 번역이라고 판단될 만큼 가독성이 매우 좋았습니다.

책의 원래 제목과 국문으로 번역된 이 책의 제목이 아주 동떨어진 맥락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다소 도발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제2차대전의 독일과 오버랩되기도 하는 독일이라는 국가의 유럽 지배라는 제목은 당사자들도 역시 크게 동의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유럽의 균형 외교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담당했던 영국 출신의 한 외교관의 사소한 걱정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과한 것이 아닌가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 책은 총 8장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브렉시트로 촉발된 EU의 존재 의의와 8장에서 보이는 저자의 의외의 평가인 “영국이나 EU 어느 한 쪽도 서로에게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고 각자 미래의 발전을 이룰 것”이라는 문장이 다소 이채로운 부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이 영국 출신의 노련한 외교관은 자신의 국가와 관련된 국익과 그것에 상충되는 독일의 이해에 대해 최대한 주관적인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글의 꽤 긍정적인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독일에게 2015년은 두 가지 사건에서 기억될 만한 연도일텐데요. 약 100만명의 이슬람 난민들 (저는 난민이라는 표현보다는 실향인들 내지는 불가피한 이민자라고 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을 받아들였고, 또한 그리스의 시리자가 백기 투항을 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2장에서는 EU 내에서 프랑스가 군사력에 대한 우위를, 독일이 경제적인 부분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갖는 것에 관해서 저자의 말대로 과거 서독과 동독의 통일 과정에서 동독이라는 국가가 법적으로 완전히 해체해 서독이 이를 인수했고 그러한 흐름에서 동독의 통화가 서독의 통화와 1:1 교환을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서독 국민들의 복합적인 고통을 언급하는데요. 독일 국민들 스스로가 통일과정에서 겪은 여러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충분히 감내했는데 왜 그것도 고통의 강도가 약하다고 할 수 있는 좀 더 도덕적으로 강화된 그리스의 재정 정책에 왜 그런 죽는 소리를 하는가에 대해 독일 내부의 입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 경제의 독특한 ‘도제 시스템’, 기업 내의 노사간의 각 단계의 갈등에 대한 의무적인 합의, 대다수 독일 기업들의 높은 도덕적 경영 등이 독일 경제가 현재에 이르러 전세계에 영향력을 보이는 근원이며, 물론 여기에는 독일 정부가 자국의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정책들도 포함해 밝히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해외에 만든 생산 공장들의 정치경제적 위치와 독일 현지와의 확연한 차이와 특수 직업군에 대한 면허제도와 오로지 독일인들만이 이런 일에 종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견제책이기도 합니다. 특히 저자는 “독일에서는 과거 영국의 옥스브리지 세대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제조업이나 민간 경제 부분을 멸시하는 풍조가 존재했던 적은 없었다”고 언급하는 것에 독일 국민성의 일면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EU내의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독일은 유로화와 관련된 이득도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한 편입니다. 실질 환율과 관련된 부분과 수출 상품에 대한 영향력에 기반한 EU내의 흑자 달성은 물론 독일 제품의 우수성이 답보된 결과이긴 하지만 유로화의 확대에 따른 독일의 분명한 이익과 ‘솅겔 조약’이 기반이 된 사람과 제품의 열린 접근성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독일 총리 메르켈이 2015년에 100만명에 가까운 이슬람 난민을 받아들였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보게 되었는데요. 바로 솅겔 조약에 대한 독일인들의 신념 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자신의 글에서 앞선 메르켈의 결정에 다소 이해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메르켈이 휴머니즘에 입각해 그런 판단을 했던 것은 분명 아닐겁니다. 후에 헝가리가 맹렬히 반대하고 있는 이슬람 난민들의 EU 분산 할당에 과거 빌리 브란트 총리 이후 독일과 밀접한 협력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폴란드가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기권한 것에는 독일 총리의 결정이 또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8장에서 앞으로 EU가 20년내에 이러한 이슬람 난민의 유입에 어떻게 대처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있는데요. EU군의 창설 움직임과 더불어 이것은 EU의 큰 도전이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주축이 되어 유럽 통합에 나서고 있는 EU체제에 대해 저자는 독일이 과거 전범국의 역사를 뒤로 하고 협력의 가치를 세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역사를 부정하고 회피하고 있는 어떤 나라와는 달리 독일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직시했고, 수도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기념물은 이를 입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는 독일의 수많은 정치인들이 실질적으로 참배를 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맥락입니다. 이런 독일에게 EU체제에 대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독일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왔고,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8개국과 전반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경제 발전과 사회 안정에 노력한 것도 과거를 긍정적으로 단절시키고 미래를 나아가기 위한 시도였을 겁니다. 다만, EU내의 경제적인 측면에서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재정 위기 국가에 독일이 어쩔 수 없이 지원을 수락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스에 대해서는 완전 항복을 요구한 것은 꽤 불합리한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아직 경제적 규모가 성숙되지 않은 루마니와와 불가리가 유로화 경제 체제에 편입되지 못하는 상황이나 유로화를 통한 건전한 재정 정책에 해당하지 않는 국가들이 통합 경제에 따른 이득을 위해 들어온 것은 그리스와 같은 문제를 초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덴마크가 유로화에 거부권을 갖고 스웨덴 역시 그러한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이는 것은 앞으로 독일이 주도한 ‘유로화 체제’에 도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영국은 이러한 EU체제 탈출에 꽤 논란이 될 수 있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바가 있습니다. 저자는 종래에는 EU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입국의 외교와 군대가 통합되는 것에 대해 영국은 분명 반대 의사를 갖고 있었다고 밝힙니다. 특히 파운드화가 유로화에 편입되는 것을 극히 거부했던 것이 주요 원인이자 이런 EU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독일과 영국의 이해관계가 중첩되어 있으며, 독일의 상품이 기존과 다름없이 영국 시장에서 자유로운 접근을 원하는 것에 양국의 협상력이 좌우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국의 이득이 기반된 성공적인 EU체제의 완전한 탈출을 바라는 영국에게 이러한 독일의 이해가 매우 중요한 지렛대가 되지 않을까 예측해 봅니다. 과거처럼 독일이 (정치군사적인) 측면에서의 결단을 프랑스에게 미루게 된다면 영국의 완전한 브렉시트는 아마 어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EU체제를 대표하는 UN 안전보장이사회의 대표국이 프랑스로 국한됨으로써 프랑스인들의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이득이 상당할 것이라는 예측에 저역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이 책은 전후 과정에서 독일의 재건과 냉전 시기를 거쳐 유럽 통합에 노정을 다한 독일에 대한 전반적으로 개관적인 해석과 유럽 정치사를 간략하게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EU에 대한 긴밀한 이해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꽤 유용한 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메르켈이 왜 푸틴과 그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적잖은 이해를 얻게 된 점과 독일의 의회 정치 전반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점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독일의 의회 정치가 미국의 의회 정치와 완전히 다른 구도를 갖고 있으며, 최종 권력자에 대한 제1 야당의 경쟁자가 기능적으로 불필요한 정치 조건을 갖고 있다는 점은 꽤 놀랍기도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브렉시트와 그리스 문제 및 EU체제 및 유럽에서의 NATO에 대한 함의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글이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EU내에서 군사적으로는 영국과 프랑스의 기득권이 경제적으로는 독일과 프랑스의 연계가 있었으나 영국이 브렉시트를 감행했기에 앞으로 이것과 관련한 정치외교적 대차대조표가 어떻게 나오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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