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의 시대
세르주 모스코비치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1996년 3월
평점 :
절판


세르주 모스코비치는 루마니아 태생의 프랑스 사회 심리학자로 동시에 유대인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냉전에 이르는 시간을 살아온 우리와 거의 동시대인 인물이기도 한데요. 그는 과거 여러 지면을 통해 사회주의와 스탈린을 맹렬히 비판한 바가 있습니다. 여기 이 책을 통해서도 그가 기울인 사회학에 대한 관심을 얼핏 살펴볼 수가 있었는데요. 이와 비슷하게 군중 혹은 대중에 대한 좀 더 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측면의 주장도 펼쳐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귀스타브 르 봉에 대해 약간 과장하자면 학문의 사조로 여기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만합니다. 영문 위키에 그의 삶에 대한 여러가지 행적들이 보이는 데, 읽어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스탈린주의자와 파시스트를 동격으로 보는 점은 그의 지난 삶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아마도 1981년 불어판을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정하는 이상률 선생이 번역을 맡았기에 꽤 오래된 판임에도 흔쾌히 책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1996년에 출판되어 얼마 안 있다가 절판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책이 2쇄를 찍었을리는 조금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겠죠. 그래서 모쪼록 빨리 재간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우선 이 책은 총 9부로 구성되어 있고, 총 분량은 거의 600페이지가 넘기도 합니다. 상당한 두께에 저 역시 이 책을 오래 잡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앞서 말한대로 이상률 선생의 번역은 정말 나무랄 데가 없기에 가독성은 꽤 훌륭했습니다. 전체 분량 가운데 1부 부터 3부까지 세르주 모스코보치의 핵심 주장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뒤이어 5부와 6부는 집중해서 읽어야되는 부분이었고, 7부부터 9부는 대략 일종의 지도력에 대한 부분이라 이후부터는 일독이 꽤 수월하였습니다. 맨 처음에 저자는 민중에 대한 전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에서 지도자의 지도력과 의무가 비롯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무릇 “국민의 진보와 자유라는 대의에 봉사”해야 하고, 또한 이 민중 혹은 군중을 단면적인 측면에서 이들의 이기심 (내지는 욕망)을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약간의 아쉬움과 바람을 글 전체에서 토로하고 있는데요. 즉, 이 군중들을 설명해주는 ‘군중 심리학’이 더욱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서 심도있게 연구되고 이를 통해 많은 연구자들이 배출되어야한다고 그 당위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군중심리학의 선구자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귀스타브 르 봉과 가브리엘 타르드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입니다. 물론 아주 짤막하게 ‘대중의 반역’의 오르테가 이 가세트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전반부인 2부와 3부에서는 광범위하게 귀스타브 르 봉의 주장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귀스타브 르 봉은 개인과 군중은 매우 다른 성격을 나타내고, 이런 개인들이 모인 군중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군중속의 인간은 오히려 나쁘다”는 측면의 이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항상 움직이며 우글거리는 이 사회적 동물들 - 군중- “은 개인과 달리 행동과 사고에 있어서 평균 이하의 측면을 보이고 이들을 통해 19세기는 난폭하고 유순한 유동적인 군중의 폭발 세기로 저자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에 관해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스탈린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고 있는 것은 앞선 이해에 기반합니다. 더욱이 양차 대전 이전의 시기에 폭발적인 판매고를 보인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를 히틀러와 무솔로니가 끼고 있었다는 것은 꽤 의미심장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한 술 더떠 저자는 히틀러가 귀스타브 르 봉의 후계자라고 강조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3부에서는 이 군중들이 지도자들의 선동과 암시에 의해 그들이 원하는 인식과 이해를 보이기 시작하고, 매우 충동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이며 사뭇 통제가 되지 않는 일면을 보이는 군중에 대한 여러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실 군중에 대한 다소 이런 부정적인 측면은 차치하더라도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는 통제력을 갖추기가 어렵고 많은 군중들은 사회의 질서와 통제를 위해 독재를 바라기까지 한다는 서술에서는 저로서도 이 점을 완벽히 부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왜곡된 지도자들의 선동과 진실과 거짓이 적당히 섞인 프로파간다에 군중들이 매료된다면 그것은 일관된 그들의 문제는 아닙니다. 선동하는 지도자들이 앞선 프로파간다를 ‘질료’ 삼아 정치를 자신의 뜻대로 이끄는 것이 옳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죠. 물론 정치가 개인들의 이기심에 귀기울여 적절한 선을 제시하는 것이 맞다면 모든 군중이 그런것에 휩쓸리는 것은 어쩌면 자명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자인 세르주 모스코비치는 이런 군중과 관련된 해석 가운데 꽤 비범한 대학생 개개인에게 어떤 과제를 주지시켰을 때 쉽게 이해한 반면에 이들이 모인 클라스에 똑같은 수준의 강의를 시작했을 때 오히려 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는 사례를 들며, 오늘날 꽤 고학력의 사회가 된 시점에 우리와 같은 시민들이 과연 모스코비치가 말하는 휩쓸림과 일방적 전도에 빠질지는 꽤 많은 숙고가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저자는 3부 5장에서 지도자가 위선적이고 사기꾼이라고 추론해서는 안된다고 이 군중의 사적 요구와 욕망을 지도자가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서로가 마땅히 필요해 벌어지는 고도한 정치적 과정으로 그는 여기고 있었습니다.

특히 앞선 바와 반대로 저자는 “대중들 특히 군중들 각각은 이론가들이 기술하고 정치가들이 제시하는 바와 같은 국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싶어한다”면서 이 민주주의적 과정에 “이 이상들이 아무리 절대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것들은 예외없이 안정된 정치체제의 형성을 방해한다”고 민주주의적 한계를 언급하며, 통제되지 않은 정치를 저자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애초에 모스코비치는 글 서두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이 군중에 대한 이해가 과연 현대 사회에서 쓸모가 있을지 우리에게 반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큰 주제인 “무엇보다 군중 정치가 결국 전제 정치로 귀결될 가능성을 말하고자 한다” 주장합니다. 즉, 그는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통해 군중들이 지향하는 정치가 결국 전제 정치로 도달할 것을 다소 경고하면서, 군중 정치 자체의 사실상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군중 심리학적 여러 가설 중 현대 사회의 전제주의적 경향을 강조하고 이런 군중 정치의 배경이 되는 민주 국가들 가운데 일본과 같이 오랫동한 한 정당이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을 이것에 대한 예시로 들고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파시즘을 필두로 한 노골적인 전제정치가 군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현대사의 무대를 점령했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앞선 이해와 동일하다 볼 수 있습니다.

집단 현상의 에너지를 발견했다는 이 군중 심리학은 2차대전의 파시즘과 냉전을 오롯이 경험한 이 학자에게는 꽤 불안한 소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내내 양가적인 측면에서 주제의 양 쪽 전부를 판단해 내고 있습니다만, 확실히 모스코비치는 과거 세기의 어두운 정치를 너무 몸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2014년에 작고한 그가 앞으로 변화될 현대 정치의 사조를 아마 제대로 보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군중이 되어 포퓰리즘의 선봉에 서는 이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또한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무덤으로 내치고 제2의 파시즘을 초래하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래서 9부 생각하는 것의 금지가 어떤 의미일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수의 정치가 주요한 원동력이 되어 민주주의에서 좀 더 평등의 정치를 실현하게 되는 것이 저의 간절한 바람입니다만 엘리트주의자들을 비롯해 소수의 힘있는 자들은 아마도 다수의 대중 정치를 ‘폭거’내지는 ‘어리석음’으로 가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끝내는 이런 과장들을 벗겨내기 위해서는 시민 모두가 냉철한 이성과 매사를 끊임없이 성찰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봤습니다. 마찬가지로 제러미 벤담이 자신의 사상을 펼쳐냈던 18세기에도 그와 같은 생각을 거의 불순한 것으로 매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얼마간 메시아적 지도자를 갈망하는 모스코비치의 결말이 제법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바로 저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군중이라는 단어와 제가 신봉하는 시민이라는 단어가 같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만 이 글의 존재 의미는 바로 우리가 이런 군중이 되지 않아야 된다는 명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와 가브리엘 타르드의 ‘여론과 군중’ 그리고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을 차례대로 일독하시면 이 책의 면밀한 이해에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얼른 이 책이 재간행이 되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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