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독점에 반대한다
미셸 볼드린, 데이비드 K. 러바인 지음, 김평수 옮김 / 에코리브르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두 공저자인 미셸 볼드린과 데이비드 K. 러바인은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에서 특별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여기서 특별 교수라는 직함이 석좌 교수라는 것과 유사한 직위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특별 교수 (Distinguished Professor)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가 구글링을 통해서도 잘 나오지는 않지만, 이 특별교수는 해당 학문 분야의 탁월한 업적이 있는 사람을 학교 측에서 초빙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물론 전자인 석좌교수의 성격에도 일정부분 유사한 점이 있을 수도 있겠죠. 우선 앞의 미셸 볼드린은 이탈리아 출신의 경제학자로 특히 기술 진보와 지적 재산권 뷴야의 전문가이고, 뒤이어 데이비드 K. 러바인 혹은 데이비드 K. 레빈도 마찬가지로 경제학, 특히 실증 경제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갖고 있는 학자입니다. 원제는 ‘Against Intellectual Monopoly’ 이며, 지난 2008년 출간되었습니다. 국내에는 그로부터 5년뒤인 2013년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약간의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번역된 책 제목이 뜻하는 바를 먼저 밝혀둬야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 독점이란, 지적 재산권과 특허권 등을 비롯한 독점 지식에 관한 분야입니다. 이에 두 공저자는 “지적 재산권이 만인에게 혜택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는 명제아래 그동안 영국 산업혁명 시대부터 현재까지 뿌리를 내려온 독점적 지식이 세계의 혁신에 이바지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시작으로 광범위한 비판적 논의를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총 10장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의 서문을 비롯해 10장의 최종 결론까지 대부분의 내용이 온전하게 “앞으로 지식 독점은 다수의 공적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재검토 되어야 한다”면서, 이에 관한 저자들의 아주 면밀한 토론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창작물과 지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된 특허와 관련된 소위 경제적 권리에 주목하고 인정하는 의견이 아마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두 저자의 의견 가운데 특히 “현재의 저작권법은 보장 기간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에 매우 동의하고, 경제학의 기본 개념인 경쟁과 혁신의 증대라는 측면에서 이런 지식 독점이 제한이 되어왔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장과 5장은 특히 미국과 유럽의 여러 사례를 인용하면서 그러한 주장을 강화하고 있는데요. 과거 특허 괴물이었던 램버스 사태에 대한 설명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처럼 견고한 특허 장벽이 신규 사업자들의 시장 진입을 막아왔으며, 일부 시장 지배적 위치에 있는 대기업들의 특허 풀 patent pools 역시 기존의 참여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기능을 해왔다고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문에서 “지적 재산 비효율성이라는 해악 때문에 특허권이 우리의 경제적 번영을 위협한다”고 평가하기에 이릅니다. 뒤이어 9장에서도 동일하게 언급되고 있지만, 제약 회사들이 벌이고 있는 특허권 문제와 약품 독점과 관련하여 “대형 제약회사들은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의 약품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아프리카를 에이즈 치료제 유통에서 제외시켜 인위적 희소성을 만들어낸다”고 저자들은 비판하며 이것은 즉, 아프리카에 이들 약을 싸게 공급하게 된다면, 미국과 유럽 소비자들(엄밀히 말하면 환자들)을 차별하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에 아예 아프리카에는 이 치료제를 팔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순차적 내용에 반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9장에서는 ‘특허없는 화학물질’이라는 다소 노골적인 표현까지 곁들이며, 이를 바탕으로 ‘특허가 없는 약품’도 정당한 인식적 기반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욱이 미국은 제약회사들의 약품 특허권과 이것의 판매권에 대한 최대한의 보장을 약속하고 있어 유독 선진국 가운데서도 국민들의 의료 안전망이 계속 취약해지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아이디어 창작권과 비롯한 지적 재산권과 관련하여 두 저자는 출판계와 관련한 현실을 꼬집고 있었는데요. 작고한 소설가의 저작권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이것을 읽는 다른 작가들의 2차 창작 내지는 발전적으로 모방된 작품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이에 대한 복잡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7장에서는 “결국, 우리가 저작권과 특허 그리고 그것이 수반하는 자유의 박탈이란 상황에 도달해야만 하고, 이것이 아주 흔한 일이 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라고 주장하는데, 물론 저도 이것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작권과 특허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는 분명 필요해 보입니다. 앞선 2장과 3장에서는 마이크로 소프트를 비롯한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과 ‘리눅스 프로그램’의 상관관계와 특별한 장치인 ‘오픈 소스’를 설명하며, 공개된 프로그램과 공개된 소스를 바탕으로 개발된 광범위한 프로그램에 과연 특허권을 부여할 만한가에 대해 독자들에게 의구심을 알리고 있습니다. 해리포터의 작가인 J. K. 롤링과 관련해서도 해리포터의 후속편을 쓸 권리는 분명 작가인 그녀에게 전적인 권한이 있지만, 이미 충분히 이 작품으로 인한 보상을 다방면에서 부여받았다고 전제하고 이제는 작가들이 작품에 대한 적당한 최종 보수를 일시불로 받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2차 창작과 모방을 사실상 허용하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제안합니다. 물론 시장에서의 독점을 찬양한 조지프 슘페터를 언급하고 있긴 합니다만 개인의 창작물에 대한 ‘적당한 보상’을 책정하는 기준이 어떻게 될지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논란이 있어 보입니다.

끝으로 흔히 산업 혁명 이후의 시기를 거쳐 경제적 합리주의가 요동치고 그에 따른 ‘경제적 인간’이 칭송 받으면서 세계의 혁신과 번영은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장 동력이라면 그렇다고 볼 수 있는 혁신과 관련하여 “혁신자는 기밀 유지를 통한 사적 지대추구와 특허를 통한 공적 지대 추구 사이의 실제적 균형과 마주하게 된다 (혹은 마주하게 될 것이다)”는 예측은 과연 실현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의 시장경제가 이미 개인의 이익 창출에 대해 어떠한 한계를 두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사적 이익이 과연 공적 이익과 수렴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그 전망이 암울해보입니다. 저는 현재의 시스템이 지적 재산과 특허를 포함한 개인과 기업의 창작권에 대한 재검토와 철회가 있지 않는 이상 이런 기조는 변하기 힘들 것이라 예측하는데요. 물론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충분히 공감할 만합니다. 또한 그 필요성도 입증될 만합니다. 아마도 이후의 결과물과 관련해서는 두 공저자들과 다른 반대편에 있는 이들의 치열한 토론과 의견 교환이 있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과는 약간 논외로 저의 소감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꽤 최신의 세계 경향을 살펴볼 수 있었고, 저자들이 언급하고 있는 많은 사례들이 해당 분야에 대한 독자들의 상황 인지를 위해 꽤 훌륭한 글이라 여겨졌습니다. 굳이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법조인과 동일 분야의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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