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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거대한 재균형
마이클 페티스 지음, 김성수 옮김 / 에코리브르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이 글의 저자인 마이클 페티스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 출신으로 투자은행 베어 스턴스를 거쳐 현재 베이징 대학교의 금융 및 경제학 교수이자 카네기 재단의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은 멕시코, 마케도니아, 한국을 비롯한 각 정부에 재정 정책과 관련한 조언을 해왔다는 점인데요. 글 본문에도 우리나라가 수차례 언급되고 있어서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이 책은 지난 2013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에서 처음 출간되어, 국내에도 2013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원제는 ‘The Great Rebalancing’ 입니다. 아쉽게도 국내에 번역된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인데요.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과 관련된 흥미로운 해석을 책 전반에 담고 있는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이 중요한 글을 국내의 독자들이 일독하지 못한다고 하니 제법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총 9장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마지막 9장은 세계 금융 위기가 이대로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결론을 담고 있어 주요 논의는 1장부터 8장에 이르는 분량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선 1장은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뉴욕발 세계 금융 위기가 저자의 판단으로는 아직 이어지고 있다는 상황 판단과, 2장과 3장에서는 흑자국에 의한 무역 개입으로 봐도 무방한 통화 개입과 금리를 비롯한 저축 문제를 다루고 있고, 4장과 5장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얼마나 무모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해, 6장은 앞에서 논의된 내용과 연장선 상에서 현재 독일이 주도하고 있는 유로화 경제권과 그 반대의 입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에스파냐와 그리스와 같은 적자국들의 분석, 7장은 잠정적으로 무역 불균형은 부채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입장과 8장은 종래의 의견과는 달리 미국의 달러화가 기축 통화인 상황이 마냥 미국에게 유리하거나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 뉴욕발 세계 금융 위기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무분별한 수익을 위한 증권화 문제 뿐만 아니라 중국이 수년간 달성해 온 무역 흑자를 통해 구축된 중국 내의 과도한 저축이 미국으로 향하게 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저자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 많은 미국 내의 경제인들과 학자들이 중국인들의 거대한 저축 때문에 미국 경제가 초토화 되었다고 보는 것에 마냥 동의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런 중국계 자금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무분별한 신용 생활을 한 것을 꼬집지 않은 것은 저자의 판단 미스라고 생각합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글의 8장에서 “그 나라의 저축이 늘면 그 초과분은 틀림없이 나라 밖으로 수출된다”는 분석은 충분히 설득적이긴 합니다. 많은 중국인들과 독일인들이 미국의 국내 저축률이 그처럼 빈약한 것에는 많은 미국인들의 방만한 소비 생활을 손꼽히는 이유로 들고 있지만, 제가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국내 소비, 즉 가계 소비를 지속적으로 억제해 온 중국과 독일의 사례가 결코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특히 2010년 기준 중국의 가계 소비가 겨우 34% 수준에 이른 것은 문제가 될 만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제 당국과 학자들이 그동안 끊임없이 중국을 향해 요구해 온 위안화 절상과 관련하여 “위안화는 2005년 7월 이후 24%나 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역 불균형이 계속되고 있음에 비추어 통화는 분명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가정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중국 당국이 태도가 급변하여 위안화 절상에 나선다 할지라도 ‘인민폐의 절상-보조금을 더 많이 지급-가계에서 이러한 보조금을 충당-중국의 무역 흑자는 오히려 더 증가’라는 단계별 이동으로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학자들에 의해 심각한 적자국 국민들에 대해 “게으르고 소비 일변도에 경제 관념에 있어 방만하기까지 하다”고 하는 도덕적 반응을 보여 왔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도덕적 평가는 사실을 오도하는 것으로 “매우 큰 규모의 지속적인 흑자와 적자는 거의 틀림없이 어느 한 나라 또는 여러 나라의 정책이 왜곡된 데서 빚어진 결과”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이 책에 소개된 독일과 중국의 정책은 꽤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하여 더욱 지속적인 무역 흑자를 쟁취하기 위해 자신의 국내 저축 자산을 미국에 투입하고 미국이 더욱 부채의 늪에 빠지게 한다던지, 독일은 에스파냐와 그리스에 방만한 소비 생활을 그만두라고 하면서도 이들 두 나라의 채권을 수집하고 결국 같은 유럽 국가들을 자국의 수출 시장화로 만든 것과 같은 사례는 흑자국에도 분명 왜곡된 정책이 관여한 것입니다. 많은 흑자국들이 유형과 무형으로 자신들의 가계 소비를 억제한 것은 비판받을 만하며, 우리나라를 비롯 일본, 중국 그리고 브라질이 달러화 대 자국 통화를 지속적으로 인하시켜 온 것은 무역 거래에 있어서 미국에 대해 우위에 서게 되는 그와 같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은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만약 위안화와의 환율이 중국의 수출과 수입에 정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면, 중국이 절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정확하고 분명한 결론일 수는 없다”는 점은 중국의 대규모 대미 무역 흑자는 환율의 문제라기 보다는 중국 당국이 암암리에 지급하는 수출 보조금과 가계 소비를 억제하는 정책 등이 더 중요한 요인일 수도 있습니다. “통화 가치의 변화란 오직 다양한 부품의 가격에 영향을 미칠 경우에만 무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은 그래서 귀담아 들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자인 마이클 페티스가 오늘날 세계 무역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밝히고자 하는 것은 “사실상 세계적으로 지나치게 높은 저축은 글로벌 위기를 불러온 투기성 자본의 흐름과 무역 불균형의 핵심이다”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여기에 전부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저축의 수출’이 무역 적자국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한 이후에도 미국은 쌍둥이 적자를 자의반 타의반 감내하면서 세계 경제를 지탱해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거의 미국적 특수 상황과 오늘날 중국의 경제적 대두에 따라 저자는 이런 양국의 무역 전쟁에 적극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의 중요한 이유들로 첫째, 무역 전쟁은 합의 타결에 비해 세계적 성장을 더 늦춰놓는다는 점과 둘째로, 미국-중국 관계는 경제 문제를 뛰어넘어 훨씬 더 큰 중요성을 띠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중국은 단순히 슬리퍼나 라이터, 장난감을 만들어 미국에 파는 나라가 아님”에도 중국과 관련된 자신들의 국채문제, 중국을 대신할 나라는 얼마든지 시기에 따라 등장할 것이며, 미국 국민들의 신용 생활을 먼저 제어 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임을 망각하고 또한 가장 시급한 미국 국내의 사회 안전망 확보에 지금까지 손놓고 있었던 것은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의 반대의 측면으로 그동안 독일이 가계 소비를 억제하고 통화를 관리함으로써 사회적 인프라와 사회 안전방 구축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는지 제반 수치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끝으로 책의 일독을 마친 후에 기존의 세계 금융 위기와 관련해 꽤 훌륭한 분석을 시도했던 라구람 라잔이나 존 아이켄베리와 견주어도 저자의 이해와 식견이 부족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경제학자들이 단순한 도덕론적 입장에 빠져 무역 문제를 이분법으로 여기는 것에 대한 비판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앞서서 밝히기도 했지만 이 책을 더이상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는 점이었는데요. 그래서 모쪼록 출판사 측에서 많은 독자들을 위해 시급히 재간행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이클 페티스의 이 책을 알게 해주신 제 북플 친구분께 감사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