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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 세상을 바꾼 400년의 시간 ㅣ 흥망의 세계사 1
후쿠이 노리히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다른세상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아마도 여성 학자로 여겨지는 후쿠이 노리히코는 일본 도쿄 출신으로 프랑스 근현대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일본 명문인 도쿄의 가쿠슈인 대학의 학장이라는 설명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저자와 관련하여 명확하지 않은 점은 박사 학위를 중도에 그만 두었다고 나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장을 역임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한국과 일본의 대학 체계가 달라서 그런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구글에 검색을 해봐도 저자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나오지 않았는데요. 윗 부분은 이 정도 언급으로 정리하고 싶군요. 이 책은 지난 2008년 일본 고단샤 출판사 창사 100주년 기획 시리즈 물로 출간되어, 당시 일본 서점가에서 큰 인기를 누린 바 있습니다. 국내에는 지난 2013년 번역 출판되었고, 현재는 절판된 상황입니다.
제가 일전에 서평을 쓴 필립 T. 호프먼의 ‘정복의 조건’이라는 글과 후쿠이 노리히코의 이 책은 꽤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이 글의 저자는 유럽이 세계의 패권을 성공적으로 획득하게 된 연유에는 바로 ‘공업화와 국민국가’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2차 공업 주도의 공업화로 둔 것은 아마도 지난 일본이 미국 페리제독에게 겪은 ‘흑선’의 존재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봤습니다. 여기에는 “기계 공업이 실질적으로 발전하기 전인 18세기 중반까지는 경제적인 면에서 유럽이 아시아에 뒤쳐졌다고 보는 게 맞다”는 분석과 이 공업화는 연계하여 설명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의 성공적인 산업혁명이 유럽의 모든 산업 생산 역량의 획기적인 증대로 나타나고 그런 결과물로써 농업과 수공업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중공업의 생산 확대는 수많은 식민지들에서의 다양한 자원 수집에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점은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으며, 이렇게 공업화의 과정에 들어서게 된 최초의 장면을 저자는 15세기 초 포르투갈이 인도한 유럽의 대항해시대로 꼽고 있습니다. 전면적인 전 유럽의 상업부흥을 일으킨 이 대항해시대는 상업 활동 하나만으로도 부를 축적하는 국가들을 탄생시켰고, 다시 이러한 부를 상업활동과 여타 군사력에 재투자 함으로써 유럽이 단순히 합리주의적 상업활동에 기반한 흐름만으로 유럽의 근대화를 설명하기는 분명 어렵습니다. 다만, 상업 부흥과 계몽주의의 발생은 매우 연관이 있어보였고, 영국의 귀족들이 자신들의 국왕의 왕권을 제한하기에 이른 과정도 바로 이러한 상업의 이윤 가치가 날로 증대됨에 따라 돈의 힘이 어떠한 것을 이뤄낼 수 있는지 ‘상업주의 인간’의 탄생을 목도한 것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뿐만 아니라 상업의 부흥은 유럽 각국의 부르주아 계급을 잉태했고, 이들이 1770년대 미국 독립혁명과 이후의 프랑스 혁명까지 주역이 되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저자 역시 “프랑스 혁명이 복합적인 사건이었다는 인식 자체는 오늘날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부분이다.”는 분석 또한 저의 판단과 일치합니다. 즉, 이 프랑스 혁명이 몇번의 굴곡을 거쳐 결국에는 유럽에 ‘국민국가’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나중에는 나폴레옹 자체가 왜곡된 정치욕으로 말미암아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존계비속에 의한 전 프랑스 통치라는 황당한 체계를 만들어 낸 치명적 선택이 대 프랑스 동맹을 만들어 내고 끝내 자신까지 파멸에 이르게 만들었지만, 초기 프랑스 혁명정부가 주변의 이웃 국가들과 대결할 즈음에 혁명의 이념의 불꽃을 조금이라도 길게 끌고 갔으면 전유럽에서의 국민국가 출현이 조금 더 앞당겨 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뒤이어 영국, 프랑스가 주도한 유럽의 식민제국과 관련하여 저자는 ‘박애적 제국주의’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요. 역사학자 더든도 이와 관련하여 ‘계몽적 통치’에 주목한 바가 있습니다. 사실 박애나 계목 통치나 하는 말들은 그저 제국주의적 식민 통치에 대해 덧칠을 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으며, 아직도 이와 관련된 역사의 정리 또한 채 마무리도 되지 못했습니다. 식민지 경영을 몸소 실천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해당 지역의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미명하여 인력과 자원들을 비롯한 강제 징발 및 소비기지로 만든 것이 과연 계몽이나 박애주의가 들어갈 만한 것들인지 심사숙고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합니다.
끝으로 후쿠이 노리히코의 이 책은 상당한 분량에도 크게 고려할 만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2차대전 당시, 전체주의의 책임을 계몽주의에서 찾으려고 하는 일군의 사조에 대한 비판과 히틀러에 대한 짤막한 그녀의 평가는 다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만, ‘국민주의로서의 내셔널리즘’이라는 분석은 꽤 마음에 들기도 했습니다. 이론적 분석이 꽤 귀담아 들을만 하다는 말씀입니다. 더불어 쿠바의 노예 해방 운동인 성 도밍그의 해방운동과 관련해 지도자인 해방 노예 ‘루베르튀르’라는 이름을 글에 적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자 역시 꽤 많은 연구를 기울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책 외적으로 한가지를 더 말씀드리자면 일독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에 남을 듯 한데요. 무슨 무슨 어려운 용어가 전무함에도 이상하게 읽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 점은 제 마지막 소회로 남겨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