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에 대하여 -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한승동 옮김 / 돌베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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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에서 자이니치 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 대학을 거쳐 현재 도쿄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중인 서경식 선생과 일본 후쿠시마 출신으로 도쿄대 프랑스과를 졸업하고 현재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교수이자, 일본 내에 자크 데리다에 관한 권위자로 명성을 얻은 대표적 리버럴 지식인 다카하시 데쓰야의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를 일독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를 꽤 인상깊게 읽었는데요. 이 책에서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소수의 희생으로 이익을 얻는 자들의 행태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서경식 선생과 관련해서는 2017년 번역 출간된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를 읽고 일본에서 선생이 겪은 경험들을 통해 실로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소회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라는 부제는 우리에게는 실로 의미심장하며, 두 사람이 엮은 대화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 국민의 가감없는 실체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18년 8월 처음 일본어로 출판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 8월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서경식 선생이 이 책의 서문에 쓴 한 문장을 먼저 언급하고 싶습니다. “국민 다수가 자숙하며 예속의 정도를 점점 심화시킬 때, 전체주의의 완성된 행태를 목도할 것이다.” 이것은 단연코 현재의 일본인들을 지칭한 문장입니다. 특히 “자신들의 역사를 판단하고 응답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무시했던 일본인들로서는 그 끝의 결과가 어떤식이 될지는 매우 자명합니다. 아마도 자신들의 역사를 판단하고 응답하게 될 때 아베 신조와 같은 인물은 설 땅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선, 이 글은 전체 4장의 주제와 한 분량의 자료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2장인 ‘일본의 본성’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1장에서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전쟁 책임, 전후 책임, 식민 지배 책임 중 어느 것이든 1945년에 끝난 일본 제국 체제에 대한 책임을 불문에 붙여 왔다는 점, ‘중심부 일본 국민’이 그에 대한 판단을 회피해 왔다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문제 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일본 국민이 스스로 시민이 되기 보다는 범접할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전통적인 일왕의 신민이 되기를 자처하면서 그리고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판단하고 응답하는 어떠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이를 통해 일본 사회의 곳곳에 왜곡과 불철저함을 만들어냈다는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결론에 매우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200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더반에서 있었던 과거 아프리카 대륙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유럽 종주국들의 도의적 책임을 도출한 ‘더반 회의’와 유사한 ‘여성국제전범법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NHK가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한 내용을 포함해 일본 내에서 역사문제를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밝혀내는 등의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자학 사관이라는 얼토당토 되지 않는 입장과 일본 지식인들이 정치에 전면에 나서 비판을 가하는 것을 금기시 하는 풍토가 한몫을 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2장은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박유하 씨의 최근 논란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박유하 씨의 ‘제국의 위안부’는 읽지 못했으나, 그의 법정 공방과 관련해 류시민, 김규항, 홍세화, 고종석 씨 등이 박유하 형사 기소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사상적 자유를 옹호한 움직임으로 비록 박유하씨가 꽤 논란이 될 만한 주장을 해왔지만 개인 자유의 원칙적인 측면에서 법원에 의한 판단을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 책에서도 박유하 씨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요. 특히 박유하 씨의 ‘화해를 위해서’와 관련하여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주요 논점으로 조선인 업자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일본군 내지 일본군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이 명확하다.”며 자신은 이것에 설득당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일전에 어떤 일본 지식인은 우선 자국민들을 용서하고 구제해야 비로소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을 돌아볼 수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다분한 것과 같습니다. 또한 박유하 씨가 지난 1995년에 발족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 조성으로 일본이 사과한 것과 같다는 식의 주장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즉, 국민 기금이 있으므로 일본의 사죄의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인데요. 사실 박유하 씨의 ‘제국의 위안부’와 ‘화해를 위해서’는 그 주장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일본내의 우익과 한국의 사과 요구에 비판적인 이들의 논리로 교묘히 매개되어 왔다는 부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전체적인 맥락에서 서경식 선생은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매우 곤란한 화해가 가능하냐는 이야기를 아마도 의도적으로 끊임없이 혼동하면서, 화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개개의 피해자들에게 국가 간의 화해를 막는 존재라는 위치를 부여했다”고 해석합니다. 더불어 일본내의 리버럴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인 우에노 지즈코와 같은 사람이 이러한 한국의 태도와 정대협과 같은 단체를 내셔널주의적이다고 오도하는 것은 매우 큰 문제임은 자명합니다. 역사 문제와 관련해 개인이 한 국가를 상대로 진실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며, 이것을 한국인의 민족주의적 태도라고 우회 비판하는 것은 그만큼 유감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하물며 일부 위안부 할머니들이 정치적이다 라고 언급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박유하는 일본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의 논리를 세우고 있다”는 주장을 가볍게 들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재 나무위키에도 올라와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박유하 씨의 ‘화해를 위해서’의 국내판에는 없고 일본판에만 있는 내용중에 “일본 지식인들이 스스로에 대해 물어 온 정도의 자기비판과 책임의식을 한국은 아직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한줄이 대체 무슨 의도인지는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저도 역사의 고통을 저울질을 하는 것을 무엇보다 비판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행위자의 범죄를 여러 수단으로 가리는 것은 피해자를 두 번 욕보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오늘날 일본이 2001년 더반 회의를 거울 삼아 도의적 책임 이외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수단을 강구해 오지 않았나 유추해 보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박노자 교수가 언급한대로 일본이 저지른 위안부 범죄는 ‘제네바 협약’, ‘헤이그 협약’, ‘국제 여성 인신매매 방지 조약’ 등에 대한 위반이므로 그것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근거는 매우 명확하다는 것을 여기에 남겨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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