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 국가의 본질에 대한 역사적 고찰
카야노 도시히토 지음, 김은주 옮김 / 산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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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카야노 도시히토는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프랑스를 거쳐 현재 일본 고다이라시의 쓰다주쿠(다른말로 즈다쥬크) 대학의 국제관계학과 준교수로 재직하면서 국가와 권력, 정치철학과 관련된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학자입니다. 특히 폭력론과 관련하여 아렌트, 아감벤, 슈미트 등에 지속적인 학문적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본내에서 신예 철학자로 불리우며 대학 외에 활발한 강연과 기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국내에도 그의 책이 번역되어 있는데요. 다만, 안타깝게도 지금 소개해 드릴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입니다. 도시히토의 이 논저는 2005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0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국가의 본질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라는 부제로서 대충 이 글의 내용을 짐작하게 합니다. 국가론에 대한 개념이 분명 역사적으로 고찰해봐야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만 저자는 단순히 역사적 수단의 해석보다는 국가를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사상가들의 주장과 이론을 도입하고 이를 재해석하는 형태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다만, 인용된 구절이나 문단을 다른 서체로 구별하는 식으로 글이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 점은 독해의 과정에서 분명 호불호가 있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전체적으로는 번역도 나무랄데 없고, 밝히고자 하는 주장도 꽤 명확하다고 볼 수 있고 상당히 균형잡힌 글이라 봐도 무방해보입니다.

우선 1장과 2장, 3장은 권력과 폭력과의 관계 그리고 이러한 이론의 확장으로 국가가 자신의 폭력 기반을 위한 부를 창출 및 사유화의 개념을 확장시켜 살펴보고, 4장에선 국가가 허구에 기반한다는 알튀세르 주장에 대한 잠정적 비판, 그리고 약간의 재해석과 다음 장인 5장에서 주권을 고찰해보고 6장에서는 국민국가의 형성에 이런저런 영향을 끼친 민족과 민족주의 개념과 7장에서는 현대의 국민 국가가 ‘공리적 이념’의 기로에 서 있는 자본주의 상황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카야노 도시히토는 글의 도입에서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게 된 연유에 대해서 “그 폭력이 사회 내에서 가장 강력해야 한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국가가 가지는 폭력의 정당성 기반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가 폭력을 소유하는 것이 오로지 도덕적이고 사회적 정당성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보다 사회내의 ‘사적 폭력’을 지양시키고 홉스를 재해석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단순히 그의 자연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마도 3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인간의 악의 측면성’을 제어하기 위해 국가는 필연적으로 요구 되었으며, 그것이 여타 홉스나 스피노자 등의 주권 개념에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원천적으로 인간의 불확실성 자체에 요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일찍이 한나 아렌트는 앞의 권력과 폭력의 관계에서 이 두 가지 단어는 아주 면밀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홉스의 인식대로 폭력이 권력적인 측면의 인식을 포함해야 한다는 말을 우리가 긍정한다면 국가가 어떤식으로 폭력을 수단화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철학 특히 정치철학의 근본적인 탐구 과제일 수도 있습니다.

앞의 사적 폭력을 지양시키는 국가의 행위에 대해 “국가가 다른 주체들에 대해 폭력의 행사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결코 정의를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독특하게 구분하는 점은 결국 국가 자체가 강대한 폭력을 기반으로 한 당위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국가가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에 대해 도덕적인 정당성을 부여시키기 위한 작업을 기울여 왔는데요. 카야노 도시히토는 이것과는 다른 주장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의 폭력 자체가 부정한 것이며, 그 주도권이 실추되는 사건은 늘 발생해 왔다”는 해석입니다. 오늘날의 국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 보장과 경제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당위성의 문제는 저자가 도출하는 결정적인 역사적 결과인 “국민의 개념은 사회의 산업화 내지는 산업시대에 출현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밝힙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3장의 부의 사유화로 인한 국가의 세금 징수는 폭력을 수단화 할 수 있는 금전적 뒷받침이 되었고, 사회의 각 개인들이 발생한 부를 사적 소유하고자 하는 원리에 크게 부합했던 것이 바로 국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이러한 폭력의 광범위한 국가 소유의 원칙은 ‘공리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야 됩니다. 아렌트와 푸코는 권력과 폭력의 구별을 첨예하게 연구한 사상이기도 한데요. 단순히 피아의 개념으로 정치와 국가를 해석한 카를 슈미트에 국한되지 않고 더군다나 배외의 개념과 배외주의를 찾아보고 있는 조르주 아감벤과는 달리 국가 폭력이 다른 불법적인 사적 폭력들과 어떻게 다른지 그 점을 권력의 유무에서 찾았던 것으로 우리는 양자를 명백히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앞선 아감벤이 탐구했던 국가에서의 배외 개념과 관련해 이 책에서는 한가지 해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아마도 국민 국가주의의 형성에서 민족과 인종의 개념이 어떤 영감을 주었고, 현재 유럽의 이민자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과 유사한 ‘국민=민족’ 이라는 개념이 파생한 위험성은 지극히 이해 가능합니다. 이 부분에서 아쉬운 점은 우리가 베스트팔렌 체제 이후 국민국가 담론의 인식에서 얼마간 나아가지 못하고 또한 전지구적 종교적, 인종적 문제가 정말 극복되거나 우리의 관용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인 것인지는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결론으로 홉스와 스피노자를 통해 해석된 주권이라는 개념이 인간을 위한 국민국가의 가능성을 낳았고, 그 이전인 봉건주의 시대에 소수의 이익을 위한 국가 폭력의 무분별성을 이른바 상위 개념으로 인식되는 국민과 민족이라는 틀로 국가의 권력을 아우르는 문제들을 겨우 해석 가능한 단계까지 끌어 올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짐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권은 본디 “지상의 초월적인 권력”으로서의 인식을 불식시키게 만드는 아렌트의 “권력의 목적을 넘어서서 폭력이 홀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이 조직화 된 집단적 폭력 자체가 폭주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항상 귀담아 둘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더불어 국가의 자본주의화에 따른 사회 전반의 공리적 가치의 쇠퇴에 대해서도 경계심과 사회 구성원들의 보다 깊은 관심이 필요하지 않나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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