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무엇인가 (반양장) - 벌린, 아렌트, 푸코의 자유 개념을 넘어
사이토 준이치 지음, 이혜진.김수영.송미정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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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사이토 준이치는 와세다 대학원의 박사과정을 거쳐 현재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술원 교수로 재직중인 일본의 정치학자입니다. 더불어 사이토 준이치 교수는 일본 내 리버럴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국내에는 그의 대표적인 논저 ‘민주적 공공성’이 이미 번역되어 있는데요. 이 민주적 공공성이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큰 관심을 받은바가 있습니다. 이 책의 일본어 원전 지난 2005년 이와나미 쇼텐에서 출판되었고, 국내에는 약간 늦은 2011년에 소개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의미로 자유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오늘날 지유시장과 관련된 ‘신자자유주의’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관념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18세기 공화주의의 태동에 있어 ‘주권 개념’과 함께 ‘개인의 자유’는 이른바 도약을 하게 되었는데요. 과거 유럽에서 상업과 중간계층의 대두로 기존의 전통적 권력에서 소수이긴 하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계몽적 자각이 다수의 인간이 지배계급에 매몰되어 있던 시기를 극복하는데 초석이 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그런 평가를 해보게 됩니다. 애덤 스미스가 미래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시장에 의해 제약을 받게되리라는 것을 스스로 예견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영국 사상에서도 ‘시장’을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는 저자의 단언은 꽤 의미심장합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사이토 준이치 교수는 “평등한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쓰인 것이며, 극심한 자유의 불평등한 분배 상황이 그 자체로 ‘자유’라는 이름하에 정당화되는 사태를 어떻게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써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자유는 이사야 벌린의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구분으로 정치학의 화두로 등장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알게된 벌린의 자유 개념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바로 “실제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하더라도 자유 그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는 그의 주장입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들 가운데는 특히 개인들이 폭력에 노출되는 최소한의 안전 보장이 안되는 사항이나, 오늘날 시장의 권력이 비대해짐에 따라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경제적인 것’의 시녀가 되어,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고, 마찬가지로 시민의 개인적 관심사 내지는 삶의 목적성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으로 시선이 좁아짐에 따라 전혀 공공적인 것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상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통해 ‘자유’ 자체가 정치 본연의 모습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2장에서 저자는 벌린의 ‘소극적 자유’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것으로 자유의 전반적인 재정의를 시도합니다. 단순히 ‘간섭의 부재’ 상태 만으로 인식되는 이 소극적 자유가 어떻게 보면 국가의 정상 기능에 대한 침해와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잠정적인 분리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한나 아렌트는 ‘타자와의 교섭’을 통한 자유의 확충을 중요한 관점으로 여겨왔고, 이를 통해 권력관계와 지배상태를 논하며, 특히 지배상태에 놓이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자유를 보존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여긴바가 있습니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왜 다시 자유인가’의 패팃은 ‘공화적 자유’로서 법률에 기초한 국가의 간섭을 긍정합니다. 즉, 여기의 공화적 자유는 ‘법에 의한 자유’를 뜻하며, 국가 스스로가 자유를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는 많은 ‘경계인들’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근래의 신자유주의를 비롯한 ‘배타적 자유 옹호론자들’의 국가 저항주의를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공화적 자유’가 밝히는 최소한의 선에 저역시 긍정하는 편입니다. 어쩌면 그보다 법에 의한 보장으로서의 자유에 관심이 가는 거겠죠. 여기에 “많은 공화주의자들이 국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재차 강조”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4장에 집약되어 있는 “모든 자유는 자기 규율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주제는 자유와 자기 통제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입니다. 우리는 사실상 자신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역시 동일하게 보장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벌린의 ‘소극적 자유’는 그 자체의 의미를 환원하더라도 (타인에 의한) 간섭과 자신의 자유는 대칭적이고, 마찬가지로 (타인에 대한 자신의) 간섭 또한 타인의 자유에 침해가 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로서 개인의 방종은 필히 제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전술 조건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것은 어찌보면 폭력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 등 증오 표현을 행하는 사람이 그로인해 상처를 받는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사례에 극히 공감하게 되는 것은 ‘소수 발언의 자유’를 무조건 옹호하기 힘든 이유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법에 의한 ‘개인의 의견 피력에 대한 자유’를 부정할 의도는 없지만, 발언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고 이로인해 그 폭력의 대상자 내지는 그룹이 사실상 자유를 제한당하는 지경에 이른다는 확장된 결론을 일시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이 책의 5장과 6장은 자유가 성공적으로 자리하기 위한 기반이 되는 안전과 필요한 공공성의 개념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저자가 피력한 이 글의 목적을 소개하면서, 오늘날 민주주의하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 시스템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마땅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그 이해와 분석의 중대한 결여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아마티아 센이 일찍이 주장했던 것처럼 “빈곤에는 단순한 물질적 곤궁 뿐만 아니라 기본적 자유의 박탈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위의 관점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여러기지의 능력 차등과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의 차이로 인해 대부분의 시민들이 자신의 자유를 영위하고 행하는데 차별과 차이를 갖게 만듭니다. 그럼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나 국가의 개입 내지는 조정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애초에 ‘공화주의적 자유’가 법에 의해 보장된 모든 이들의 자유의 보존이라면 우리에게는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더욱 강화된 사회내에서 ‘민주주의 이념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 것입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계급 갈등과 노골적인 계급 지배적 이념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면 본래의 가치를 보호하고 혹은 회귀에 나서 다수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입니다.

저와는 달리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수의 자유를 옹호하는 일에 관심과 책임을 갖는 것이 바로 나의 책임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나’라고 지칭한 것은 저자 자신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겠죠. 타인의 자유에 대한 책임을 나 자신이 인식하고 한나 아렌트가 강조한 바대로 끊임없이 타자와의 교류와 교섭 및 서로간의 이해를 지속해 자유 자체가 안고 있는 본질적 위험을 해소시키는 것으로 점차 나아가야 하겠죠.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의 자유를 위해 타인과 사회, 국가, 제도와 법을 통한 아주 다각적이고 다양한 원리들로 무장해 사실상 정치와 사회를 제거시킨 시장의 위협과 이를 옹호하는 소수들로부터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결국 정치와 자유는 서로 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상호보완적이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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