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1% 억만장자 제국 - 거대한 불평등의 근원
한스 위르겐 크뤼스만스키 지음, 류동수 옮김 / 새로운제안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지난 2016년 작고한 독일 사회학자인 한스 위르겐 크뤼만스키 교수는 사회학, 역사학, 심리철학 등의 연구로 일생을 바쳤습니다. 특히 자유 베를린 대학과 빈 대학을 거쳐 독일 북라인-웨스트펠리아의 명문으로 일컫는 공립대학 뮌스터 대학의 교수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독일 매체에 단골로 출연해 정치와 사회 비판에 동참하고, 특히 최근까지 미국정치를 연구하며, 미국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군사복합체에 대해 더욱 주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책의 원제는 ‘0.1 % - Das Imperium Der Milliadare’로서 201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4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더불어 현재는 절판된 상태로 시중에서는 구할 수가 없는 상태인데요. 모쪼록 많은 독자들을 위해 시급히 재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크뤼스만스키 교수는 오늘날 전세계의 막대한 부를 차지하고 있는 부자들을 오늘날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는 주된 변곡 요인이라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일찍이 갈브레이스가 “수많은 글과 매체에서 부자들에 대해 이야기 되고는 있지만, 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시도가 전무하다는 점이 아쉽다”는 고백에 저 역시 동의하게 되었는데요. 부자들의 막대한 부에 대해 이런저런 표면적인 평가와 서술만 해왔지, 전체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분석 등이 미흡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슈퍼 부자들에 대한 두 가지 차별화된 조건을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전세계 차원의 자본주의는 지배구조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고 돈을 가진자에게 일종의 사회경제적 규칙을 만드는 권리를 사실상 부여 받고 있으며, 둘째로는 이 슈퍼 부자들이 어느 정도 공적,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이러한 부자들의 기본적인 시장 행위자로서 뿐만 아니라 시스템내의 참여자로서, 경제에 국한된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와 정치 전반에도 영향력을 침투시켜 그야말로 “승자 독식 사회와 금권 지배 체제의 쌍두마차”를 이들이 끌고 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학자들을 포함한 모두가 자기 입으로 말하기 두려운 부분이 바로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가 사실상 자본의 지배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책의 2장에서 4장에서 충분히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재산권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독일 기본법을 보더라도 현재 수많은 조세피난처에 은닉되어 있는 검은 자금들과 스위스 은행들이 보호하고 있는 마찬가지의 검은 돈이 일부가 아닌 다수의 부자들이 관여한 불법적 행위라고 판단될 만합니다. 또한 이 부자들이 전통적인 자본주의 자본가의 토대에서 부를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대부분 금융과 부동산 투자, 최근 등장한 부자들 마저 2000년대 초 IT 붐을 타고 신흥 부유층에 도달하게 된 것으로 이것은 애덤 스미스가 우려한 ‘일반적인 자본주의 토대가 변이’되는 상황과 같습니다. 2008년 뉴욕 발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도 금융 자본주의가 부유층의 부를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축적하게 해 준 사실상 그들만의 패러다임 전환을 발생시킨 것인데요. 이 ‘금융 자본주의’를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 범주 안에 넣고 해석할 수 있는지도 저로서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금력 엘리트 자본주의 이행 과정에서 1990년대 초반 냉전의 해체가 민주주의 내에서 소수 부유층들의 제약을 벗어나게 한 결과가 되었고, 신자유주의의 출범과 다수 부자들의 ‘극자유주의’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타난 것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글로벌 신자유주의 경제가 수많은 부채 경제를 초래하고 이러한 채권들을 보유하고 있는 세력들이 기존의 유럽의 ‘사회안전망 자본주의’를 불식시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이 부분 역시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새로운 질서는 사회 안전망 전부를 민영화시켜 거대기업과 부자들의 막대한 이익으로 돌려지고, 자본이 좌우하는 일반적인 시민들의 안전 보장 상태로 바꾸려는 미래의 모습이 과연 어떨지는 충분히 상상 가능합니다. 이를 수월하게 전개하기 위해 선거로 선출된 정치인들과 많은 정치 엘리트들을 포섭하여 이들 금권이 사실상 배후에서 정치를 조정하는 권력을 보유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국 장 지글러는 이러한 이행을 ‘신봉건주의 시대’의 출현이라 봤고, 로버트 달을 비롯한 많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이 우려한 ‘장막안의 과두제’와 다를바가 없는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슈퍼 부자들을 제외하고 경제적인 측면의 사회 계층적 분석에 몰입했고, 이들을 대체로 선망하면서도 사회 외적으로 별개의 이들로 취급해 왔습니다. 이 부자들 역시 자신들이 언론 노출을 극히 꺼려하면서 실제로 자신들의 부의 안전을 위한 ‘유목민화’를 추구해 왔는데요. 이 유목민화는 적극적으로 한 국가나 사회에 규합되는 것이 아니라 세금 이익이나 재산의 분산과 같은 목적으로 여러곳을 기본적인 의식주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고려해 쉽게 국가들을 넘나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 부자들을 위해 재산 관리 회사들이 결합되고, 변호사와 회계사, 은행원들 및 정치인들이 움직이는 무브먼트의 중요 지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이 21세기 유목민의 습성을 간파한 저자의 분석은 꽤 설득적입니다. 그래서 글 곳곳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저자의 질문인 ‘진정한 자본가는 존재하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대답을 찾기는 어려운 것이고, 거대한 부유층들을 “신자유주의 기치 아래 탄생한 금력 장치는 기업을 통한 자산 운용, 모든 가능한 소득원 (특히 금융 시장)으로부터의 소득 창출, 상속, 심지어 약탈까지를 잘 조율된 네트워크 같은 하나의 커넥션으로 이어준다”고 저자가 밝혀내는 것은 바로 앞선 분석이 바탕되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이 책의 6장에서는 ‘봉건주의로의 회귀와 부조리한 나라’라는 소주제로 최근 사회과학 분야에서 떠오르고 있는 ‘재봉건화’에 대해 언급되고 있습니다. 결국 파격적인 이런 이행을 막기 위해 시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가 매우 시급해 보입니다. 저자는 책의 3장에서는 2009년 뉴욕에서의 억만장자 비밀회동을 소개하며, 이들 소수 부자들이 전세계 자본주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세계 인구를 40억명으로 줄일 필요성이 있으며, 이를 위한 논의도 밝혀진 것으로 나옵니다. 마이클 블룸버그, 오프라 윈프리, 조지 소로스, 테드 터너와 같은 이들이 그 성원이었습니다. 단편적으로 보면 그냥 음모론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일화입니다만 무엇보다 선출된 것도 아닌 소위 기득권들이 전세계 다수의 운명을 가늠하고 있다는 것이 단순히 소름끼친다는 말로 다 설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을 포함한 경제 전반의 문제점들이 생활을 옥죄고 있는 시점에서 이 패러다임이 날로 강화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아마추어 시민들의 연대와 행동을 통한 민주주의의 확대 만이 유일한 현실적 대안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